# 224
‘좋았어!’
눈앞에 떠오르는 두 시스템 메시지를 보는 순간 레온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러곤 계속 이어지는 나이저의 말에 딴짓을 하는 것이 들키지 않게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빠르게 확인에 들어갔다.
[나이저의 추천장]
종류 : 잡화
등급 : 유일
-획득 시 귀속
흑암기사단 2병단 단장 나이저의 직인이 찍혀 있는 입단 추천장이다.
‘후보자, 리온이 흑암기사단의 일원이 되는 것을 추천합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크으!’
레온은 커다랗게 탄성이 터질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추천장의 내용을 살펴보니, 드디어 기사단장 암살의 첫발을 딛게 된 것이 실감이 났던 것이다.
‘그럼 퀘스트로 넘어가 볼까!’
그는 이어 퀘스트의 내용까지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흑암기사단이 되는 길 / 연계]
운 좋게도 당신은 흑암기사단 2병단 단장 나이저에게 흑암기사단의 입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내었다.
본래 더욱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 필요하지만, 토너먼트에서 드러난 당신의 실력이 나이저의 눈길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흔치 않은 일을 이룬 것은 확실하나, 그렇다고 아직 마음을 편하게 놓기는 이르다.
말 그대로 기회만 얻었을 뿐, 기사단의 일원으로 확정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 09:00시까지 흑암 기사단 건물로 가 보자.
마지막 관문인 입단 심사를 치를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SS
퀘스트 보상 : 정식 흑암기사단 대원, 악명 20,000
모두 읽어 내려간 레온은 다시금 퀘스트 내용 중 한 부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부분은 바로 마지막 한 줄이었다.
-마지막 관문인 입단 심사를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입단 심사?’
의아함에 레온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였다.
심사라면 시험이 아니던가.
그는 추천장을 얻은 즉시 바로 흑암기사단의 일원이 되리라, 예측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던 그때, 그 의문을 풀어 주는 나이저의 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자, 내일 동이 트면 서쪽에 있는 기사단 건물로 오게. 그리고 정문 앞에 있는 입단 심사관에게 그 추천장을 제시하면 건물 내에 있는 심사장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걸세.
‘쳇, 쉽게는 안 준다 이건가.’
그의 말을 들은 결과, 입단 심사는 피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못내 아쉬운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내 레온은 이렇게 기회를 얻은 것이 어디냐 하며 그 마음을 털어 내었다.
그런데 이어진 다음 순간.
“아, 그렇군요…….”
레온은 떨쳐 낸 마음과는 반대로 일부러 살짝 표정을 굳히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 레온의 태도에 나이저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응? 한데 자네 왜 그러는가? 무슨 문제가 있나?”
레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을 회피하였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에 나이저가 단호한 말투로 재촉했다.
“어허, 얼른 말을 해 보게.”
그러자 레온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꺼내었다.
“……휴우, 그저 심사가 있다고 하시기에, 혹여나 제가 떨어지기라도 해서 추천해 주신 나이저 님의 명성에 누를 끼칠까 걱정이 되어 그랬습니다.”
레온의 말에 나이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진심을 담아 연기하는 레온에게 넘어간 것이었다.
순간 나이저가 말을 꺼냈다.
“허허, 이 친구. 어째 마음에 쏙 드는 말만 하는군.”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호오, 이 친구. 근래에 보기 드문 인성을 지니고 있군. 조금 더 지켜보다가 내 심복으로 삼아도 괜찮겠는데?’ 라고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 레온의 진짜 속마음은 표면적인 것과 완전히 달랐다.
‘후후, 이 녀석 제대로 된 흑우야. 미리 구워삶아 놓으면 앞으로 톡톡히 뽕을 뽑아낼 수 있겠어.’
그리고 레온의 그 사악한 예측은 곧이어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순간 나이저의 말이 이어졌다.
“이보게, 걱정 말게나. 내가 준 추천장이 있으면 일단 첫 번째 테스트는 바로 통과할 수 있게 되니 말일세. 그리고 자네라면 나머지 시험들도 분명히 손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네.”
‘호오?’
레온의 눈에 이채가 살짝 떠올랐다.
첫 번째 시험의 프리패스라니.
생각보다 자신이 얻어 낸 추천장이 꽤나 괜찮은 효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어 레온이 감동한 표정을 띠며 나이저에게 대답하였다.
“네! 그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꼭 2병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레온의 말에 나이저가 호쾌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하였다.
“하하, 그래. 꼭 2병단에서 다시 보기를 기대하겠네.”
띠링.
띠링.
-흑암기사단 나이저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흑암기사단 나이저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레온의 신들린 연기와 언변으로 인해 나이저의 호감도가 계속하여 오르고 있었다.
사회생활의 기본 스킬인 아부가 만렙의 경지에 올라 있는 레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둘 사이에 다른 의미의 눈빛이 교차하던 그때.
똑똑.
별안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곤 곧이어 방문이 열리며 병사 한 명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나이저가 레온에게 보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로 병사에게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냐.”
“나이저 님, 이제 곧 8강 경기가 시작됩니다. 진행자가 리온을 찾고 있습니다.”
“흐음, 그런가.”
레온과 나이저가 떠드는 사이 16강 경기들이 모두 마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8강의 첫 경기의 참가자가 레온이었기에, 이렇게 찾고 있는 것이었다.
나이저가 아쉬움이 가득한 따듯한 눈빛을 띤 채, 레온에게 말을 꺼내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군. 내일 꼭 테스트를 모두 통과하여 다음번에는 같은 기사단원으로 보도록 하지.”
“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에 레온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인사를 건네었다.
그러고 난 뒤, 방을 빠져나와 병사의 인도를 따라 경기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때.
‘후후, 하나는 끝마쳤고. ……그럼 이제 계획대로 해 볼까!’
머릿속에 미리 정해 둔 계획을 떠올리는 레온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 * *
우아아아!
16강이 마무리가 되고, 8강의 첫 경기가 시작되려는 시점. 경기를 기다리는 관중들은 각자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8강의 첫 경기가 파란을 일으켰던 리온의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리온의 16강전은 그들에게 커다란 임팩트를 남겨 놓아 있었다.
그러던 그때, 대화를 나누는 관중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캬, 우승 후보인 쿠단을 격침시키다니.”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장담하는데 곧 암흑성국 내에서 리온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거야.”
“후우, 이번에 무조건 복구한다! 빌릴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죄다 빌려서 돈을 마련했다!”
“……헉, 그걸 다 리온의 승리에 건 거야?”
“야, 이번 상대도 백금 유전데 그러다가 지기라도 하면 어쩌려…….”
“워워, 재수 없는 소리는 거기까지. 쿠단도 이겼는데 저딴 녀석을 못 이기겠냐. 걱정하덜 말아라.”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데 그때였다.
“저기 왔다!”
“오오, 시작한다.”
“좋았어! 가라, 리온!”
무슨 일인지,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고 있던 리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사회자가 레온에게 슬며시 다가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내었다.
“휴우, 드디어 오셨군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그러나 레온은 대답 없이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재수 없는 놈. 져 버려라.’
그러자 사회자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곧장 경기를 시작하려 하였다.
“그럼 이제부터 8강 경기를 시작 하겠습니……!”
한데 그때.
사회자의 말이 뚝 끊어졌다.
처척.
갑자기 뜬금없이 레온이 이의가 있다는 듯, 손을 번쩍 들어 올린 것이었다.
관중들과 사회자, 레온의 상대인 카이까지 눈빛에 의아함이 떠올라 있었다.
모든 이의 시선이 레온에게 향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레온이 닫혀있던 입을 열며 충격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건 바로.
“기권하겠습니다.” 였다.
싸아-.
일순간 경기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모든 이들이 레온의 말을 도통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정적을 깨고 레온의 말이 이어졌다.
“도저히 저번 전투로 인한 피해가 극복이 안 되네요. 16강부터는 기권 가능한 것 맞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회자가 떨떠름하게 대답을 하였다.
“아, 네. 그렇긴 합니다만.”
“네, 그럼 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러자 레온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여끼까지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레온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처럼 얼어붙은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그제야 관중들이 저들끼리 시끄럽게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뭐, 뭐야?”
“지금 진 거야? 어, 어. 야, 괜찮아?”
“꾸르르륵.”
빌린 돈까지 모두 탕진한 관중이 입에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갔다.
레온이 기권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백금 등급의 유저를 상대하려면, 본신의 힘을 조금이나마 풀어내야 해. 굳이 이런 데에서 내 힘을 공개할 필요도 없고, 여기다가 쓰는 시간도 아까워.’
자신의 힘을 공개해야 하는 위험함과 더 이상 이곳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본래 목적은 우승이 아니었다.
그저 8강에 들어 기사단에 들어갈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미 그것은 손에 넣은 상태였다.
그나마 아쉬운 것은 승리 후의 보상품이었는데, 상품 중에 얻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지금 그는 무엇보다 시급하게 달성해야 할 일이 있지 않던가.
이제 데빌즈 네스트로 복귀하면 꿈에 그리던 두 가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순간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흐흐, 이제 본 드래곤과 호문클루스를 만들 수 있어!’
라고 말이었다.
그랬다. 레온은 지난 노가다를 통해 이미 수중에 6성 영혼을 획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암흑기사단의 일원이 된 후에 어떤 생활이 펼쳐질 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경우, 어떻게든 최대 전력을 보유한 상태로 잠입을 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내일 오전 9시까지 시험을 치르러 가려면, 남은 시간이 꽤나 촉박하였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당황한 사회자를 지나쳐 경기장의 출구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갔다.
그 순간, 레온의 시선이 자신의 8강전 상대였던 카이에게 닿았다.
레온은 아직 카이가 자신이 만났었던 세토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저 가면 속에는 함박웃음이 지어져 있으리라.
순간 레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웬 떡이냐 싶겠지?’
씨익.
이어 레온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횡재했네. 그쪽.’
이라고 말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레온이 출구 바깥으로 사라지고 나자, 경기장에 엄청난 야유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