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223화 (223/332)

# 223

쿠단의 시체에 알 수 없는 모종의 행동을 취한 레온은 어느새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병사의 인도에 따라 경기장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곤 곧이어 병사는 레온을 8강 진출자 전용 대기실로 인도해 갔다.

“남은 경기 동안 기다리셨다가, 본인 차례가 돌아오면 내려오시면 됩니다.”

그러곤 그 말을 끝으로 병사는 사라졌다.

털썩.

“아이고, 죽겠다.”

그러자 레온은 곧장 비치된 푹신한 의자에 몸을 던졌다.

몸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한데 그럴 만도 해 보였다.

보스 몬스터 노가다를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반복하다가, 쉬지도 못하고 곧장 경기에 참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쩝, 난 이렇게 고생하는데 연금술사들은 은신처에서 푹 쉬고 있겠지. 부럽다, 부러워.’

나흘 동안 계속된 폭풍 노가다에 기가 쪽 빨려 기지에서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연금술사들이 들었으면 분노를 터뜨렸을 생각을 서슴없이 하는 레온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의자에 앉아 노곤한 몸을 풀고 있던 레온은 옆에 놓인 바구니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호오.”

곧장 바구니 안을 뒤적거린 레온은 곧이어 탄성을 터뜨렸다.

바구니 안에는 체력 회복을 위한 각종 포션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곧이어 레온은 그것들을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상당한 고가의 포션들이었기에, 전투로 떨어졌던 체력이 금세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용하지 않은 포션들을 인벤토리 안에 깡그리 쏟아부으며, 레온은 시선을 돌렸다.

“좋아, 좋아. 특등석이구먼.”

방 안의 한쪽 면이 통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바깥으로 경기장이 정면으로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레온이 의자에서 일어나 통유리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자신이 내려간 이후, 진행되고 있는 16강 경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순간 레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곳에는 다름 아닌 레온의 다음 상대가 될 이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레온이 한쪽 손으로 턱을 괴며 속으로 생각했다.

‘흐음, 다음 내 상대가 저자인가.’

두 사람 중 한 명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괴상한 가면에 온몸을 덮는 긴 로브.

그는 바로 자신이 32강전을 치를 때, 바로 옆 경기장에서 보았던 의문의 카드술사 카이였다.

아직 레온은 카이와 세토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경기장의 전투는 원사이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카이의 연속된 카드 스킬에 상대방 유저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레온이 카이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흠, 아무리 보아도 유희보다 숙련도가 훨씬 높은 것 같군.’

카이의 직업과 유희의 직업이 동일하였기에, 레온의 눈에 카이의 실력이 일반 관중이 보는 것보다 더욱 세밀하게 보이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유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훨씬 더 높아 보았다.

카드 연계가 유기적으로 발휘되고 있었던 데다가, 카드에만 치우치지 않고 본신의 근접 전투 기술 또한 상당히 뛰어난 듯했던 것이었다.

‘끄응, 히든 직업의 스킬에 빠져서 본신의 컨트롤은 구데기였던 쿠단보다 훨씬 까다로울 수 있겠는데.’

순간 레온의 맘속에 쉽지 않은 상대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있었다.

곧이어 경기는 역시나 카이의 승리로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다음으로 펼쳐질 16강 경기에 레온이 집중하려던 순간이었다.

똑똑.

‘으응?’

갑작스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레온의 대기실 방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누구…….”

세요, 라는 레온의 다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벌컥, 하며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이어 예의를 밥 말아먹은 방문자들의 면모를 확인한 찰나.

레온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기실로 한두 사람이 아닌 일단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복장은…….’

그것으로도 놀랄 따름이었는데, 그들의 복장이 레온을 더욱 긴장케 만들고 있었다.

레온의 눈 밑이 미세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투구부터 시작해 병장기와 전신을 덮고 있는 갑옷까지 모두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다.

레온이 당황한 것을 속으로 애써 숨기며 생각했다.

‘……흑암기사단이 왜 나를?’

그랬다. 그들은 레온이 들어가고자 하고 있는 흑암기사단의 복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병사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한 발 나서며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참가자, 리온 맞는가.”

병사들의 기세가 사납기 그지없었다.

레온이 나지막하게 대답을 하였다.

“……맞습니다만.”

처처척!

그 순간, 검은 갑옷의 병사들이 레온의 빙 둘러싸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그에 레온은 들키지 않게 전투태세를 확실히 갖추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걱정되는 것은 혹시나 자신의 정체가 연금술사라는 것을 들킨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병사가 투구 속에서 짐승의 그것과 같은 눈빛을 쏘아 내며, 조용히 대답하였다.

“같이 좀 따라와 주어야겠다.”

이걸 어찌한다.

그 찰나의 순간, 레온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었다.

대기실에 들어와 있는 흑암기사단원은 총 12명이었다.

‘이 정도면 싹 다 처치 가능하지.’

장소가 협소한 것이 단점이긴 했지만, 전투를 벌인다면 충분히 승리로 가져올 수 있을 듯했다.

‘……한 큐에 처치하고, 본 드래곤을 소환해서 도시를 빠져나간다면.’

레온이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도주로를 설정하던 그때.

이어진 병사의 한마디가 레온의 생각을 달리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상관이 널 보고 싶어 하신다.”

* * *

그로부터 잠시 후.

레온은 흑암기사단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그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다른 방으로 이동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레온은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놈들의 상관이 날 찾는다라…….’

점점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했지만, 아직까지 8강에 진출한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이건 상대를 직접 만나 보는 것 외에는 의문을 풀 수단이 없겠어.’

레온이 그렇게 결론을 내린 그때, 문 앞에 도착하여 있었다.

“들어가시오.”

끼익.

흑암기사단원이 곧장 문을 열며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후우.’

그러자 레온이 긴장감을 날 세운 채,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방 안에는 한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깥의 병사들과 똑같은 칠흑의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투구는 착용하지 않아 있었다.

한쪽 눈에 눈썹부터 코 밑까지 그어진 자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체적으로 마른 체형이었지만, 전혀 유약해 보이지 않았다.

‘이자, 상당히 강력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결코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늑대와 같은 분위기가 풍겨나고 있었다.

레온과 시선을 맞춘 그가 씨익 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꺼냈다.

“왔군.”

레온은 눈앞의 존재가 자신이 잠입해야 하는 단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예의를 갖추며 인사를 건네었다.

“리온이라고 합니다. 흑암기사단의 단원분께서 이렇게 불러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레온의 말에 나이저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호오,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나?”

“어찌 암흑성국에 적을 두고 살면서 흑암기사단을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감동일 따름입니다.”

“껄껄, 그런가.”

레온이 대놓고 띄워 주었지만, 남자는 그것이 오히려 더욱 마음에 든 눈치였다.

-흑암기사단 나이저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역시나 곧이어, 호감도가 상승하였다는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레온이 보이지 않게끔 살짝 미소를 머금던 그때, 나이저가 말을 이었다.

“아, 내 소개가 늦었군. 반갑네. 흑암기사단 내의 2병단 단장을 맡고 있는 나이저일세.”

그의 설명에 레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2병단 단장이라.’

나이저가 자신의 생각보다 상당한 직책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온이 미리 조사한 바에 따르면, 흑암기사단은 내부에 1병단에서 3병단까지 총 세 개가 존재하는 거대 집단이었다.

앞에 붙은 숫자가 적을수록 정예의 기사단이었다.

“오오! 2병단의 단장님이셨다니. 역시 처음 보자마자 강인함이 흘러넘치는 것을 보고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러한가? 자네 사람 보는 눈이 제대로 있구먼.”

레온은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리자, 한동안 칭찬 머신처럼 나이저를 띄워 주기 시작하였다.

레온의 현란한 말솜씨에 호감도는 조금씩 계속하여 상승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불현듯 나이저가 자신의 목적을 말을 꺼내고 있었다.

“……해서 내가 이런 토너먼트에 내가 굳이 참석한 것은 클라리우 님에게 보탬이 될 만한 재목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네.”

“아, 그러셨군요.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레온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기분 좋은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후의 말에 따라 자신이 목표했던 흑암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이저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마음에 드는 이가 없었네. 전투 실력도 거기서 거기인 것 같고 말이지.”

“……아, 네.”

순간 레온은 ‘뭐야, 망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고 끝까지 말을 들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레온이 기대했던 내용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데 그런 와중에 자네가 눈에 띄었네. 32강에 오를 때까지 힘을 숨길 줄 아는 영리함과, 아직 성장 기대치가 높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지.”

자신이 맘에 들었다는 말에 레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건네었다.

“오오, 그렇다면 혹시?”

그러자 나이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네. 자네만 좋다면 나는 자네를 흑암기사단에 들어오는 걸 추천하고 싶군.”

자신이 바라던 대답이 들려오자, 레온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

‘좋았어! 이게 또 이렇게 풀리는구나!’

그도 그럴 것이, 8강을 치르지 않고도 흑암기사단의 일원이 될 기회를 획득했던 것이었다.

띠링.

띠링.

말뿐이 아니었는지, 레온의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히든 조건, ‘나이저의 눈도장을 받아라.’를 달성하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까, 순간 레온이 원인을 떠올려 보았다.

그 이유는 하나밖에는 없을 듯했다.

황동 등급의 자신이 엄청난 격차를 지닌 상대들을 연달아 해치운 것 때문에, 총 획득한 지명도가 다른 이들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던 것 말이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나이저에게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건넸다.

“저야 영광입니다! 흑암기사단원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나이저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스윽.

그러곤 곧이어 물건 하나를 레온에게 건네었다.

“자, 받게나.”

레온이 낚아채듯 그 물건을 받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히든 조건 달성 보상으로 ‘나이저의 추천장’을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흑암기사단이 되는 길’을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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