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레온의 경기가 시작되기 잠시 전.
수많은 사람들이 16강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집중을 하고 있는 두 인물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일전에 종교재판소에 끌려갈 뻔했던 레온을 도와주었던 유저인 카이였다.
그녀는 당시 레온에게 보여 주었던 본모습과 달리, 가면을 쓴 채 온몸을 감싸는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사회자의 목소리에 따라 레온이 경기장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그런 레온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순간 그녀가 속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지금까지 보여 준 전투 과정으로만 생각한다면야 쿠단의 압도적인 승리지만…….’
그의 상대인 쿠단은 이미 엄청난 실력가로 정평이 나 있는 유저였다.
그녀 자신도 전투를 벌인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꽤나 까다로운 상대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분명히 승패는 이미 나와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녀의 촉이 자꾸만 시끄럽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리온이라는 저자가 무언가 파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든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이내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이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레온과 쿠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다고 해도 저들이 다음 경기에서 꺾어야 할 존재인 건 마찬가지.’
그랬다. 정해진 대진표상, 저 결투의 승자가 다음 8강전에서 그녀와 맞상대를 하게 되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 굳은 의지가 스쳐 지나갔다.
한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8강을 승리로 장식해야 했다.
그래야 보상으로 그녀의 길드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그것’을 획득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경기, 최대한 집중해서 보아야겠어.’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마법 카드 발동, 디 아이 오브 트루.”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자그마한 목소리로 스킬을 시전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그녀의 눈빛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레온에게 집중하고 있는 두 번째 인물은 다름 아닌 레온의 16강 상대인 백금 등급의 유저 쿠단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그는 레온이 저번에 치렀던 경기 영상을 반복 재생하여 보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것은 생각 없는 망나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는 먹잇감을 고르고 난 뒤에는, 해치울 준비를 할 때는 이처럼 철저하게 하였던 것이다.
‘어떤 재료든지 완벽하게 파악한 후, 요리해 먹는 게 더 맛있으니까 말이지.’
그 모든 것은 상대가 꿈틀거리지도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밟아 줄 때 느끼는 희열 때문이었다.
그는 상대의 고통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중증의 사디스트였다.
순간 영상의 레온을 보며 연신 혀를 날름거리던 쿠단이 이내 잔인함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낄낄, 저 자식은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그러던 그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흙수저의 반란? 사실은 내가 바로 히든 직업의 소유자! 홍 코너, 사신 리오오오온!”
다음 순간, 레온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경기장에 올라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쿠단이 명백한 비웃음을 얼굴에 떠올렸다.
‘끌끌, 귀여워 죽겠네. 어디서 같잖은 히든피스 하나 주워 먹고 저리 기세등등한 꼴이라니.’
그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을 때, 확실히 히든 직업이 맞는 것 같기는 했으나.
아무리 보아도 자신보다는 약하다는 결론이 도출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가 이어 속으로 생각했다.
‘히든 직업 위의 히든 직업이 있는 걸 알려 주지.’
그러던 그때, 자신을 부르는 사회자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가 가는 길에는 오로지 죽음뿐! 청 코너, 학살자 쿠단!”
그리고 말이 끝나는 순간, 쿠단이 경기장으로 성큼성큼 올라서고 있었다.
‘완전히 짓밟아 주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었다.
* * *
“대망의 16강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마지막 말과 함께 경기는 곧바로 진행되었다.
경기장에 오른 두 사람은 각자 양쪽 끝에 선 채, 무기를 빼어 들고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누구 하나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있었다.
‘뭐야, 저 자식?’
한데 그때, 레온은 쿠단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왜 저렇게 변태같이 웃고 있어?’
경기장에 오르고부터 저놈이 자꾸만 사람 소름 돋게 만드는 음흉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탓이었다.
참다못한 레온이 짜증 섞인 투로 쿠단에게 소리쳤다.
“이봐, 뭘 그리 부담스럽게 쳐다봐!”
그러자 쿠단이 무시와 비아냥거림이 가득 담긴 말로 대답했다.
“아아, 미안. 참기 힘들게 우스워서 말이지. 그쪽이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는 꼴이 말이야.”
하지만 그런 저급의 도발에 넘어갈 만큼 레온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뭔 개똥 같은 소리야. 생긴 건 꼭 벼멸구같이 생겨 가지고.”
가볍게 받아친 레온은 곧바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투다다다!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간 레온은 곧이어 형태 변화로 바꾸어 놓은 흑염룡의 거태도로 쿠단에게 참격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촤아아!
스르릉!
쐐애액!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볍게 휘두르는 것 같았지만, 그 속에 상당한 위력을 담아 휘두르고 있었다.
휘익!
훼엑!
하지만 쿠단은 레온의 그 모든 공격을 가볍게 피해 내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여유가 묻어났다.
“낄낄, 이게 다야? 한심하기는!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러다가 이내 얼굴에는 조소를 그대로 띤 채, 세차게 반격에 들어갔다.
쿠단의 무기 또한 레온과 같은 검이었다.
채앵!
채채챙!
레온의 검과 쿠단의 검이 맹렬하게 서로 부딪치며 불꽃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레온의 모든 공격이 무효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자 레온은 눈앞의 변태가 지닌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자식, 괜히 백금급은 아니네.’
파바밧!
그것을 깨달은 순간, 레온은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뒤로 후퇴하였다.
평범하게 가서는 승산이 없어 보였던 것이었다.
‘소울 슬롯으로 가 볼까.’
레온은 이전 경기와 같이 사일런트 왈츠를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울 슬롯.”
그 즉시 레온이 빠르게 스킬을 시전하였다.
눈앞에 반투명한 삐에로가 나타났고, 레온은 곧바로 해당 숫자를 맞추었다.
이제는 숙련된 그 일련의 동작이 매우 빨랐기에, 거리가 벌어져 있던 쿠단은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슈와아악!
우우웅!
효과음과 함께 레온이 뽑아 들고 있던 검이 거대한 낫의 형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레온의 낫이 등장하자, 사회자와 관중들의 열띤 반응이 터져 나왔다.
“나왔습니다! 리온의 상징, 사신의 낫입니다!”
“얼른 해치워 버려!”
“형이 너 한번 믿어 본다!”
“세이X한테 빌려온 거냐!”
한데 그때였다.
소울 슬롯 스킬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레온의 표정이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뭐지? 저 자식?’
레온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역시나 쿠단 때문이었다.
레온의 낫이 등장한 이후부터 오히려 더욱 기뻐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쿠단이 말을 꺼냈다.
“낄낄, 어떻게 된 게 이 멍청이들은 모두 내가 생각한 그대로 따라가는지.”
그의 말을 들은 레온은 살짝 속으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생겨났지만.
곧이어 그저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파바바밧!
그러곤 앞으로 달려 나가며 스킬을 시전하였다.
“사일런……!”
아니, 시전하려 하였다.
처척!
그 순간, 쿠단이 자신의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더니 레온보다 한발 앞서 스킬을 시전하였다.
“안개 저주, 무기 봉인!”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은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슈아아아아!
콰아아!
‘뭐, 뭐야 저건?’
쿠단의 한쪽 손이 갑자기 산산히 흩어지며 안개의 모습으로 화하더니, 곧이어 그 안개가 레온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거 위험하다!’
자신을 향해 폭풍처럼 쏟아지는 그 안개를 보는 순간, 레온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파바밧!
레온은 사용하려던 스킬도 취소하고는 오로지 피하는 데 노력하였지만.
“크읏!”
안개의 속도는 떨쳐 버릴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런!’
레온에게 도달한 의문의 안개는 레온이 꺼내 든 데스 사이드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발생한 기현상에 레온은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낫이 갉아 먹히고 있어?’
마치 메뚜기 떼가 덮쳐 곡식이 사라지듯, 자신의 낫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유저 쿠단의 ‘안개 저주’에 적중당하였습니다.
-무기 봉인으로 ‘낫’이 지정되었습니다.
-강제적으로 장착이 해제됩니다.
곧이어 완전히 갉아 먹힌 낫은 본래의 검 형태로 되돌아와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관중이 경악한 반응을 쏟아 내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리온 선수의 사신이 낫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뭐, 뭐야?”
“……낫이 털린 거 같은데?”
레온이 말없이 분노를 담아 쿠단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쿠단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꺼내었다.
“낄낄, 놀랐어? 뭘 그리 바퀴벌레처럼 발버둥을 쳐. 어차피 못 피하는 건데 말이야.”
그러곤 이어 놀라운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하였다.
“어때, 놀랐어? 우쭈쭈, 히든 직업을 지닌 사람이 너뿐인 줄 알았어요?”
쿠단은 자신 또한 히든 직업의 소유자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후후, 내 직업은 미스트 룰러. 무려 유니크 등급이지. 어디서 레어 정도의 직업을 주워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넌 나한테 안 돼.”
‘유니크 등급이라고?’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은 했지만, 유니크 등급 직업의 소유자였다니.
말을 들은 레온과 관중들은 모두 놀란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흐흐, 역시 그 낫이 너의 히든피스였던가 본데, 넌 날 만나면 안 됐어. 미안하지만 스킬의 상성이 내가 한참 우위에 있거든.”
기세등등한 쿠단은 스킬의 효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낄낄, 나의 안개 저주 스킬은 내가 지정한 종류의 무기 하나를 상대가 10분간 사용하지 못하게 강제로 막아 버릴 수 있으니까.”
쿠단의 말을 들은 레온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저딴 게 다 있어?’
사기적인 힘을 지닌 스킬이었던 것이다.
강제로 상대의 전용 무기를 봉쇄해 버린다니 말이었다.
유니크 직업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소울 슬롯의 거의 완벽한 파훼법을 들고 나와 있었다.
레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칫, 이거 안 되겠군.’
레온이 곧장 차선책으로 새로운 스킬을 사용하였다.
“오러 블레이즈.”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에 위력을 담은 푸른 오러가 서렸다.
투다다다!
그 상태 그대로 레온이 자신의 자랑질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쿠단에게 달려들었다.
파바밧!
순간 허공으로 번쩍 뛰어오른 레온이 알케믹 소드맨의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랜드 크로스!”
우우우웅!
콰가가강!
이어진 다음 순간, 엄청난 위력의 오러가 쿠단을 향해 쏟아졌다.
거대한 십자 형태의 오러가 경기장을 그대로 덮쳤다.
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검압에 생긴 충격파에 관중들이 소매로 눈을 가렸다가, 다시금 경기장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이어 그들의 놀란 반응이 쏟아졌다.
“와! 미쳤다.”
“경기장이 박살이 났잖아?”
경기장이 마치 도장이라도 찍힌 듯, 십자 형태로 파여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모래 먼지가 걷힌 후, 드러난 쿠단은 옷가지가 살짝 베여 있었지만, 본신의 타격은 전혀 입지 않은 듯했다.
지면에 착지한 레온이 혀를 차며 속으로 생각했다.
‘칫, 역시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알케믹 소드맨은 레어 등급이었다.
그 말인즉 상대가 유니크 등급이라면 그 등급의 스킬로는 타격을 입히기에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쉽지 않은 상대였다.
‘……어찌한다.’
마음 같아서는 오토마톤이나 스켈레톤을 소환하여 짓밟아 주고 싶었지만, 이렇게 훤히 드러난 곳에서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것은 무리였다.
‘같은 유니크 직업의 스킬로 전투를 하려고 해도 소울 갬블러 스킬 중에 소울 슬롯 말고는 공격기가 마땅치 않고…….’
그때 레온이 관중석 중에 기사단원이 자리하고 있는 곳을 보며, 혀를 차며 속으로 마저 생각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흑뢰강림을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레온이 그렇게 제자리에 선 채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자, 쿠단이 귀엽다는 듯 날름 혀로 입술을 축이며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낄낄, 이게 바로 격의 차이란 거다. 애송이.”
‘……저 자식이.’
순간 레온의 눈에 불꽃처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레온이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쿠단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나도 제대로 보여 주도록 하지.”
그러곤 또 다른 스킬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룸 오브 미스트.”
촤아아아!
푸아아아!
쿠단이 새롭게 시전한 스킬은 경기장 전체에 커다란 여파를 몰고 오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어쭈, 이것 봐라?’
무슨 이유에선가 그 순간 레온이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