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레온은 한계 레벨에 도달하여 더 이상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직업 창조의 시간이 돌아왔구먼.’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음 인장 사용의 결과가 더욱 기대가 되고 있었다.
한데 그럴 만도 해 보였다.
이제는 전 주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창조하려 시도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이번에는 꼭 레전드리 등급 이상의 직업을 얻겠어.’
물론 인장 퀘스트를 깰 수 있는 에픽 등급 직업이 나오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괜히 욕심을 부리다가 부정 타지 말자 생각하며 레온은 현실적이게 유니크를 넘어 딱 한 등급만 더 올라가자고 목표를 잡았다.
‘하지만 그 전에 앞서 할 일이 있지…….’
그러나 레온은 곧바로 직업 창조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먼저 손에 넣어야 할 것들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소환. 마루, 슬레이프닐, 스키르니르.”
레온은 일단 소환 지속 시간을 아끼기 위해, 꺼내 놓았던 모든 오토마톤들을 역소환하였다.
-으엥? 벌써 가야 되는 거낭?
마루가 슬픈 목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지이잉!
처처척!
다음 순간, 레온의 몸을 감싸고 있던 스키르니르의 강철 장갑(裝甲)이 개방되었다.
“휴우.”
그렇게 레온이 오토마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곁에 있던 연금술사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하하, 보스 몬스터도 레온 님에게는 별 것 아니군요!”
“감히 박쥐 따위가 강철 골렘을 이길 순 없지!”
“크으, 저희의 빛과 소금이십니다.”
레온은 어느새 자신의 열성 팬들이 되어 버린 연금술사들에게 사람 좋은 미소로 화답하는 동시에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한 곳으로 이동해 갔다.
처척.
곧이어 그가 발걸음이 멈춘 곳에는 시체가 되어 버린 아리스가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뚜둑.
레온이 손의 관절을 풀었다.
‘좋아, 내 아이템부터 챙겨 보실까?’
이윽고 레온이 곧바로 루팅 작업에 들어갔다.
띠링.
띠링.
곧이어 효과음과 함께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오르고 있었다.
-‘타락 천사의 울부짖는 천둥의 날개깃’을 획득하였습니다.
-‘선더볼트 트라이던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검은 달맞이 마석’을 획득하였습니다.
-(…….)
-(……중략……)
규모가 큰 공격대 던전의 보스 몬스터답게 아리스가 쏟아 내는 아이템의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등급 또한 결코 낮지 않았다.
[타락 천사의 울부짖는 천둥의 날개깃]
분류 : 장신구
등급 : 유일
타락한 천사장 아리스의 등에 달려 있던 여섯 장의 날개깃.
검게 물든 깃털에 번개의 힘이 깊숙이 배어 있다.
-장착 시, 모든 NPC들에게 천사족으로 보이게 된다.
-매력도 +100
-번개 마법 저항력 +235
-생명력 +12,000
-최대 비행 시간 6시간
-받는 치유량 증가 120%
[선더볼트 트라이던트]
분류 : 창
등급 : 유일
내구도 : 25,500/25,500
공격력 : 880
착용 제한 : 최소 레벨 210
타락 천사장 아리스가 사용했던 벼락의 힘이 깃들어 있는 삼지창.
-공격 속도 25% 상승
-번개 속성 마법 저항력 150 증가
-모든 창술사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 15% 감소
-적에게 공격 적중 시, 15% 확률로 감전 상태 이상 부여
-장착 시, 스킬 ‘유피테르 선더’ 사용 가능.
[검은 달맞이 마석]
분류 : 잡화
등급 : 유일
10년에 한 번씩 하늘에 검은 달이 뜰 때만 나타난다고 하는 의문의 광석.
내부에 검은 달의 기운을 품고 있으며, 마석에 마력을 주입하면 그 주변에 독특한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중략……)
드롭 확률 두 배 상승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무려 유일 등급 세 개라는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타나 있었다.
분명히 평상시였다면, 레온은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대박을 외치고 있었으리라.
한데 지금 이 순간.
레온은 무슨 이유때문인지, 전혀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미묘해 보이는 표정만을 얼굴에 짓고 있었다.
그 표정에는 놀랍게도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그때 레온의 머릿속에는 갖기를 원했던 다른 아이템의 잔상이 자꾸만 아른거리고 있었다.
순간 그가 입맛을 다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쩝, 다 좋은데 망치가 없네.’
그랬다. 레온은 보스 룸에 들어와 손을 가져다 대었던 휘황찬란한 망치에 계속 미련이 남았던 것이었다.
그는 정말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한데 레온을 아는 이가 이 상황을 본다면, 누구든 쉽게 이해가 가지 않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대장장이용 망치가 무엇이라고 그렇게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던 그때, 레온이 한숨을 푹 내쉬며 그에 대한 답을 떠올리고 있었다.
‘휴, 이러면 이거 진짜 언제 스켈레톤을 5강으로 만드냐…….’
의외의 부분이었지만, 그건 꽤나 오랫동안 레온의 속을 썩인 문제였다.
본 블랙 스미스의 강화 스킬 레벨이 5레벨에서 딱 막혀 있었던 것 말이었다.
아무리 스킬 레벨을 올리려고 시도해도, 숙련도가 오르지를 않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미궁 속에 빠져 있던 이 문제의 해결책을 최근에서야 알아낼 수 있었다.
순간 레온이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혀를 찼다.
‘참나, 숙련도를 올리려면 장비빨을 세워야 하다니. 이거야, 원.’
강화 스킬을 6레벨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대장장이용 망치의 등급이 높아야 했던 것이었다.
비주류 직업인 대장장이의 아이템은 고등급일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게 형성이 되어 있었다.
소환수의 스텟 수치를 큰 폭으로 상승시키는 사기 스킬인 만큼, 개발사에서 이런 금전적인 페널티를 부여한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레온은 큰맘 먹고 유일 등급의 망치를 구매했었다.
……한데 이게 웬걸, 이번에는 숙련도가 99퍼센트에서 멈춰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영웅 등급 망치의 가격은 도저히 구매 결정을 내리기 힘들 정도로 그 값이 너무나 비쌌다.
그래서 레온은 보스 룸에서 휘황찬란한 망치를 보고는 그렇게 기뻐했던 것이었다.
‘오오, 공짜 망치다!’
딱 보아도 영웅 등급 이상인 것 같은 망치가 눈앞에 둥둥 떠 다니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한 푼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었는데, 과한 욕심이었나 보았다.
‘끄응, 포기해야지 뭐.’
순간 레온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연신 이제 단념하자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토마톤 때문에 강화 스킬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었다.
오토마톤을 만들 때, 재료로 사용하는 스켈레톤의 강화가 더 많이 되어 있으면 기어 골렘과 스텟이 합해질 때 더 좋은 결과를 만들게 될 테니 말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띠링.
띠링.
마치 거짓말처럼 난데없이 레온의 귓전에 요란한 효과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뭐지? 이건?’
레온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상한 타이밍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의문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히든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히든 타임에 보스 몬스터 처치에 성공한 공격대의 최종 집계를 시작합니다.
‘히든 조건? 히든 타임?’
순간 레온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역시나 전혀 감이 잡히지를 않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조건을 만족하였다는 것일까.
그때 허공에 커다란 시스템 창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엥?’
거기에 적힌 내용을 보고는 레온이 깜짝 놀란 반응을 쏟아 내었다.
[타락한 발할라 / 최소인원 클리어 랭킹]
1위
-도전자 : 레온
-기록 : 31인 / SSS랭크
2위
-도전자 : 차우
-기록 : 40인 / S랭크
3위
-도전자 : 가반
-기록 : 70인 / A랭크
레온이 놀랄 만도 해 보였다.
자신의 이름이 떡하니 1등에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31명이라는, 다른 공격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숫자였다.
순간 레온이 이채를 띠었다.
이곳 던전에 이런 집계가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정말로 운 좋게 자신이 히든 타임이라는 시각을 맞춰서 들어온 것 같았다.
두근두근.
순간 레온의 심장이 요동쳤다.
설마, 하는 기대감이 가슴속에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각 순위별 도전자에게 보상을 부여합니다.
-축하합니다. 1위에 등극하였습니다.
-보상이 인벤토리에 도착하였습니다.
-보상을 확인하여 주십시오.
보상을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레온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 생각지도 않은 행운에 레온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꿀꺽.
왠지 모를 긴장감을 속에서 침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레온이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선물 상자를 열어 보았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선물 상자의 뚜껑이 열렸다.
“…….”
그리고 안에 담긴 보상 아이템을 확인한 레온은 말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잠시 후.
“크흐, 흐흐. 흐하하하!”
갑작스레 레온이 미친 듯이 웃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연금술사들이 깜짝 놀라 레온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레온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신이 난 채,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으하하하! 전설 등급이라니! 미쳤다, 미쳤어!”
라고 말이었다.
레온의 눈앞에 그가 획득한 보상 아이템의 상세 정보가 떠올라 있었다.
[대장장이 천신의 찬란한 황혼의 망치]
분류 : 망치
등급 : 전설
공격력 : 880
내구도 : 파괴 불가
착용 제한 : 최소 레벨 220
옵션 :
-강화 스킬, 성공률 20~40% 증가
(높은 등급일수록 성공률 하락.)
-제작 스킬, 성공률 +20% 증가
-장착 시, ‘초월 강화’ 스킬 사용 가능
(스킬 자체에 제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대장장이 스킬 사용 시, 숙련도 300% 추가 상승
-보유 시, 모든 드워프 NPC에게 호감도 50 상승
스윽.
레온이 망치를 인벤토리에서 꺼내어 한 손에 높이 들어 보였다.
그러자 연금술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질문을 건네 왔다.
“어라? 레온 님, 그 망치는?”
“……아니, 어떻게 챙기셨어요? 분명히 아까 손대자마자 사라지던데.”
그들의 질문은 모두 비슷했다.
레온이 망치를 어떻게 챙겼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랬다. 레온이 획득한 보상 아이템은 그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 하던 그 망치였던 것이다.
어느새 레온의 두 눈동자가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레온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건 바로.
‘이걸로 또 돈을 쓸어 담을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본 스켈레톤을 사간 고객들 중, 거의 전부가 자신의 스켈레톤을 5강으로 추가로 강화를 하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하도 오래 강화 스킬을 올리지 못하다 보니, 기다림에 몸이 달은 고객들이 산더미처럼 많이 생겨있었다.
레온이 원하는 만큼 추가금을 주겠다고 판트라넷에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고객까지 있을 정도였다.
순간 레온이 제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될 놈은 되는구나!’
그의 눈앞에 새로운 황금 길이 펼쳐져 있었다.
* * *
그리고 레온이 그렇게 행복에 겨워 하던 그때.
“꼬로로록.”
“이, 이봐요. 괜찮아요?”
“이봐, 우리 돈은 주고 기절하라고.”
입에 게거품을 문 채 뒤로 넘어가고 있는 불쌍하기 짝이 없는 신세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페가수스 길드에서 자금을 훔쳐 공격대를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온에게 밀려 1위 보상을 얻는 데 실패한 차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