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흥! 이 건방진 똥강아지가!
마루가 자신을 무시하고 여유롭게 장난이나 치고 있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던 아리스가 이내 커다란 분노를 토해 내었다.
파아앗!
부웅!
-저깟 놈이 도움이 될 성 싶으냐!
그러곤 머리 위로 자신의 삼지창을 크게 한 바퀴 돌리더니, 마루를 무시하고 연금술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루!”
그리고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레온이 커다랗게 마루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러자 이어진 다음 순간.
위이잉!
파아앙!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까강!
채챙!
강철로 바뀐 자신의 새로운 두 다리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에 성공한 마루가 아리스의 공격을 대신 막아 내고 있었다.
마루가 박차고 뛰어오른 지면이 녀석의 강철 발톱에 의해 쥐어뜯기듯 갈려 나가 있었다.
처척.
가볍게 방어를 성공한 마루는 위풍당당하게 연금술사들과 아리스의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이, 이잇!
허무하게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아리스가 부들부들 제 몸을 떨었다.
그러곤 마루를 죽일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마루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슬며시 뒤편에 있는 연금술사들에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순간 마루가 새침하게 말을 건넸다.
-흥, 딱히 너희를 구해 주려고 한 건 아니다낭!
욱씬.
그러자 불현듯 연금술사들은 마루에게 왠지 모를 뭉클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여유를 즐길 겨를이 없었다.
-날 놀리다니!
파아앗!
틈을 노리며 아리스가 재차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챙!
챙!
까강!
칼날처럼 튀어나온 마루의 강철 발톱들과 아리스의 창이 쉴 새 없이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롸! 죽인다낭!
그리고 동시에 마루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공간에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연금술사들은.
“우리도 질 수 없지!”
“그래, 이렇게 당하고만 있으면 레온 님을 볼 면목이 없어!”
“너의 공격의 패턴은 다 파악됐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마루를 도와 반격을 쏟아 내기 시작하였다.
퍼퍼펑!
콰강!
아리스를 향해 기어 골렘 군단의 집중 포화가 시작되었다.
마루와 레온 덕택에 사기가 크게 오르자, 처음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그때.
‘마루 녀석, 오랜 만에 아주 신났네. 신났어.’
레온은 함께 싸우려던 것도 잠시 잊은 채, 마루를 구경꾼처럼 관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루를 오토마톤으로 만든 사실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리라.
한데 사실 레온이 마루를 오토마톤으로 만든 선택은 아는 이가 본다면 의아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루는 레온이 지니고 있던 소환수 중에서 진화가 가능한 유일한 개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레온이 이러한 선택을 내린 것에는 그 ‘진화’가 가장 큰 이유를 지니고 있었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레온이 이곳 던전으로 출발을 하기 이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 * *
지금으로부터 2시간 전.
‘쩝, 그것 덕에 시간제한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짧아. 제대로 쓸 것만 하자.’
레온은 세 번째 오토마톤의 재료로 삼을 스켈레톤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어 레온은 자신의 모든 소환수들의 상태 창을 눈앞에 모두 띄워 놓았다.
그러곤 차례로 샅샅이 살피다가 하나씩 지워 나갔다.
곧이어 마루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러자 레온은.
‘에이, 마루는 당연히 안 되지.’
라고 생각하며 곧바로 마루의 상태 창을 꺼 버리려 하였다.
한데 그때였다.
멈칫.
‘아, 깜빡하고 있었네. 이거.’
마루의 상태 창을 유심히 살피던 그는 여태껏 자신이 깜빡하고 있던 사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쩝, 마루 진화시켜야 되는데.’
그건 바로 자신이 마루의 두 번째 진화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들을 무심코 넘겼었다는 것이었다.
순간 레온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동안 바쁘긴 너무 바빴지.’
최근에 토너먼트와 여러 퀘스트 때문에 하도 바빴던 터라, 뒤로 미루고 미루다가 깜빡한 것이었다.
‘흠, 일단 이것부터 해결할까?’
그러자 레온은 일단 마루부터 진화시킨 뒤, 마지막 오토마톤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그다지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레온이 마루의 진화 가능한 선택지들을 모두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오, 또 세 개나 있네.’
운 좋게도 첫 번째 진화 때와 마찬가지로 마루의 진화가능 조건이 여러 개가 충족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잠깐만.’
선택지를 상세히 살피던 레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하여 있었다.
1. [톡신 본 펜리르]
-조건 ‘적정레벨’ 충족
-영웅 등급 / 진화 불가
2. [아포칼립스 팽]
-조건 ‘마기흡수’ 충족
-영웅 등급 / 진화 불가
3. [킹 워울프]
-조건 ‘강자섭취’ 충족
-영웅 등급 / 진화 불가
‘……이거 왜 죄다 진화가 불가능해?’
그랬다. 모든 선택지들의 설명에 차후에 진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끄응.’
순간 레온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신음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그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루는 그의 소환수 중 본 드래곤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존재가 아니던가.
한데 그런 존재가 240에서 레벨이 멈추게 될 판이었으니, 미칠 지경인 것이다.
순간 레온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우, 내가 너무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었나.’
태생적인 한계에 종착한 것도 같았다.
하긴 지금까지 마루가 초월적인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기는 했다.
사실 마루는 저레벨대의 보스 몬스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니까 말이다.
레온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세 진화 루트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답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레온은 셋 중 어느 것으로도 진화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그때.
‘잠깐만!’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도박수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혹시 마루가 오토마톤이 된다면 뭔가 좀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마루를 오토마톤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은 주먹을 불끈 쥐며 그 생각을 실제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240레벨에 멈춰서 끝나 버릴 거라면, 여기에다 모든 걸 걸겠어! 분명히 마루도 그걸 원할 거야.’
……마루는 자신의 이지를 상실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을 테지만, 레온은 망설임 없이 마루를 가지고 모 아니면 도의 도박을 단행하였다.
* * *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좋아, 이번에는 이 스킬로 해 볼까.’
레온은 마루의 상태 창을 바쁘게 살피며 새롭게 얻은 스킬의 시전을 명령하고 있었다.
“마루! 풍인포!”
손톱에서 참격을 날리던 풍인조 스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한데 스킬의 사용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구우우우우!
우우우웅!
레온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공명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갑작스레 마루의 입안에서 휘황찬란한 빛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가가가가!
콰아아앙!
마침내 벌려진 마루의 입에서 가공할 파괴력을 담은 풍압포가 아리스를 향해 발사되었다.
마치 드래곤 브레스와 같았다.
-유, 유피테르 선더!
지이이이잉!
촤아아아앗!
그에 맞서 아리스가 하얗게 질린 채, 삼지창을 휘두르며 자신 또한 가장 강력한 스킬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잠시 후.
-꺄아아!
들려온 것은 아리스의 비명 소리뿐이었다.
마루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적의 스킬 샷을 모두 피해 내어 있었다.
-타락 천사장, 아리스가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타락 천사장, 아리스가 추가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좋아!’
효과음과 함께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며, 레온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마루를 소환할 걸 그랬구먼. 혼자서도 아주 잘해요!’
마루를 오토마톤으로 바꾸는 결정이 이루어진 지금 현재.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랬다. 마루는 한 단계, 아니 몇 단계는 더 높은 경지로 진화하여 있었다.
[오토마톤 / 마루]
레벨 212 / 풀메탈 본 펜리르 / 진화 가능 / 한계 레벨 340
분류 : 메카닉 언데드
등급 : 영웅
힘 2,430 민첩 2,170
지혜 720 체력 2,165
생명력 264,400 마력 92,350
(……중략……)
보유 스킬
1. 약자멸시(패시브)
2. 독 내성(패시브)
3. 약육강식(패시브)
5. 풀메탈 바디(패시브)
-모든 근접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체력 수치의 50% 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중소형 크기 이하의 몬스터와 상대할 때, 추가 대미지를 입힙니다.
6. 풍인포(風刃砲)
7. 독화탄(毒華彈)
8. 거대화
9. 스텔스 모드
10. 스펙터 모드
(……중략……)
보유 영력
1. 패기 방출
호문클루스와 기어 골렘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오토마톤의 한 종류.
알케믹 소드맨 ‘레온’이 최초로 만들어 낸 오리지널 오토마톤. 다른 오토마톤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최대 소환 지속 가능 시간 : 8시간
-재사용 대기시간 : 3시간
‘흐흐, 역시 인생은 한 방이지!’
그의 도박은 완전히 성공하여 있었다.
마루는 ‘풀메탈 본 펜리르’라는 전혀 새로운 종으로 진화가 되었던 것이었다.
본 드래곤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스텟 수치.
최대 소환 지속 가능 시간은 8시간으로 길고, 재사용 대기시간은 3시간밖에 되지 않는, 다른 오토마톤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후 진화도 가능한 상태라는 점이었다.
또 하나의 예상치 않은 히든피스가 발생하여 있었다.
만일 마루를 오토마톤으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는지 두려워질 정도였다.
그러나 레온은 이것이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을 재료로 오토마톤을 만들었을 때 발생되는 일반적인 결과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거기서 뭐 하낭! 주인도 도와라낭!
이것은 분명히 저기서 덩치에 안 맞게 방방 날뛰며 자신을 재촉하고 있는 녀석의 비밀스런 특별함 때문이리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루가 대체 어떤 존재인지 궁금증이 더해 가고 있었다.
‘……뭐, 언젠가 알게 되겠지.’
하지만 곧 레온은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하였다.
투다다다!
투콰아아아!
그러곤 여전히 슬레이프닐을 탄 채로 수세에 몰려 있는 아리스에게 섬광처럼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레온은 한 손만으로 자신의 거대한 검을 지탱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새에 아리스의 지척까지 다가온 레온은 마루에게 소리쳤다.
“끝내자, 마루!”
-크와아앙!
하지만 녀석은 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준비가 끝나 있었다.
파고드는 레온의 움직임을 캐치한 것이었다.
오랜 파트너처럼 완벽한 타이밍으로 강철의 듀오가 아리스에게 합격을 찔러 넣고 있었다.
푸욱!
서거걱!
대검과 발톱이 동시에 아리스를 난자했다.
-끄아아아!
끔찍한 비명성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여섯 장의 검은 날개가 한 장, 두 장씩 떨어져 내렸고.
쿠우웅!
곧이어 아리스의 거체가 지면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띠링.
띠링.
띠링.
-타락 천사장, 아리스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더 이상 레벨이 상승할 수 없습니다.
레온의 귓전에 경쾌한 효과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