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보스 룸에 입장하였습니다.
레온이 보스 룸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간 순간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는 듯했다.
띠링.
띠링.
한데 그때, 갑작스레 들려오는 효과음에 레온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의아해하며 이어 떠오르는 또 다른 메시지를 확인한 레온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오!’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발생하여 있었다.
-최단 시간 내에 보스 룸에 입장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최단 시간 조건 달성 보상으로, 출현하는 보스 몬스터의 경험치와 레어 아이템 드롭 확률이 두 배로 상승합니다.
‘아싸!’
레온이 쾌재를 불렀다.
자신도 모르게 달성해 버린 히든 조건 달성으로 인해 경험치와 아이템 드롭 확률이 두 배씩이나 상승한 것이었다.
레온이 들어온 던전은 일전에 너클즈를 얻었던 곳과 같은 ‘경쟁 던전’이었다.
도전하는 수많은 다른 유저들과 순위를 겨루는 경쟁 던전은 던전마다 각기 다른 독특한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곳 던전은 최단 시간 내에 보스 룸까지 진입한 이에게 주는 특별 보너스가 있는 모양이었다.
‘흐흐, 이게 웬 떡이냐.’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지만 새로운 직업을 만들 한계 레벨까지 경험치도 얼마 남지 않아 있었고, 레어 아이템이야 언제 받아도 기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레온은 한동안 헤벌쭉한 얼굴로 실실 웃어 보였지만.
“크흠.”
이내 가까이 있던 연금술사들이 그런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확인하고는 헛기침을 하며 제정신을 차렸다.
스윽.
그러곤 말없이 고개를 돌려 뒤따르던 연금술사들에게 진지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내비쳤다.
보스 룸이니 각자 마음의 준비를 하란 뜻이었다.
그러자 연금술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술사들은 전투 태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방 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꿀꺽.
그러던 중 연금술사들 중 누군가가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겉으로 티는 안 내지만, 속으로는 잔뜩 긴장해 있었던 것이었다.
한데 그들이 그렇게 염려를 할 만도 해 보였다.
지금까지 질리도록 상대했던 일반 잡몹인 다크 발키리가 웬만한 다른 던전의 부 보스 몬스터와 비슷할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이제 나타날 보스 몬스터가 얼마나 강할지 쉽사리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이리라.
처척.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레온이 속으로.
‘걱정 마라, 형이 다 알아서 해 줄 테니까.’
라고 생각하며 가장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러자 연금술사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레온이 앞으로 당당히 나서 준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묻어 나오던 긴장감이 한층 해소되어 있었다.
이번 던전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것이었지만, 이미 그들이 레온의 실력에 대해 얼마나 믿음이 커졌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들은 점차 레온의 자발적 노예가 되어 가고 있었다.
‘든든하다, 든든해.’
‘이런 레온 님께 폐를 끼칠 순 없지! 정신 차리자!’
어느새 연금술사들의 눈이 존경심과 경외로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것을 본 레온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순간 레온이 속으로 시커먼 속내를 떠올렸다.
‘후후, 전투를 담당하는 핵심 조직원들의 마음을 이렇게 쉽게 얻다니. 데빌즈 네스트도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게 얼마 남지 않았구먼.’
커티스가 레온에게 연금술사들을 맡긴 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물론 커티스마저 레온에게 현혹되어 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었다.
‘흠, 근데 그건 그렇다 치고……. 여기 좀 이상한데?’
한데 그때, 앞서 걸어가던 레온이 한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주먹을 움켜쥐어 보였다.
정지 신호였다.
처척-.
척!
연금술사들이 제자리에 멈춰 서자, 레온이 들어 올린 주먹을 그대로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수색 명령이었다.
파바밧.
레온의 명령에 수색조를 맡고 있는 연금술사들이 곧장 보스 룸 내부를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레온이 그들을 멈춰 세운 이유는 간단했다.
‘방 바깥에는 몬스터들이 그렇게 많더니, 정작 보스 룸은 왜 이리 휑해?’
잔뜩 긴장한 것이 허무해질 정도로 연회장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궁전의 넓은 홀에는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고 텅 비어 있었던 것이었다.
레온은 턱을 괸 채, 조용히 이유를 추측해 보았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방 안에 보스 몹을 불러내는 장치가 있을 거야.’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 님.”
수색을 하고 있던 연금술사 하나가 연회장의 구석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레온을 불렀다.
한달음에 이동한 레온은 자신의 추측이 제대로 맞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레온의 눈앞에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모루와 대장장이용 망치가 나타나 있었다.
파지지직!
지지직!
망치는 아무런 장치도 없는 모루 위에 둥둥 떠올라, 주위에 스파크를 만들고 있었다.
전혀 연회장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레온은 한눈에 이 물건이 보스 몬스터를 불러내는 장치임을 알 수 있었다.
한데 그 순간, 레온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거 갖고 싶다. 얻을 수 있는 건가?’
다름이 아니라, 예사롭지 않은 망치와 모루를 보니 오랜만에 대장장이의 장비에 대한 욕심이 차올랐던 것이었다.
그의 물건들은 이미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내구도가 바닥으로 떨어졌거나, 이제 쓰기 민망한 수준의 망치밖에는 남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게 딱인데 말이지.’
레온은 모루와 망치를 다시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곤 속으로 ‘뭐 드롭율도 두 배로 높아졌겠다. 운이 좋으면 얻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스파크를 튀기고 있는 망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지지직!
두두두둥!
콰가가가!
그러자 역시 레온의 예상대로 진행이 되었다.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는 놈이 누구더냐!
보스 몬스터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연회장에 검은 벼락이 사정없이 내리 꽂히는 이펙트가 펼쳐졌던 것이었다.
레온의 눈앞에 여섯 장의 검은 날개를 펼치고 있는 타락 천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타락 천사장 아리스]
레벨 : 232
분류 : 천사형
등급 : 영웅
마신의 유혹에 넘어간 타락한 천계의 천사장.
타락하며 섬겼던 대장장이 천신의 신물을 훔쳐 도망쳤다.
그로 인해 마신의 은총을 받았고 부하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력한 전격 마법을 사용한다.
“레온 님을 엄호해라!”
“다시 포메이션을 유지해!”
투다다다!
허공에 보스 몬스터 아리스가 출현하자, 연금술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빠르게 진형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레온은 잠시 멍하니 보스 몬스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이쿠. 타, 타락 천사 최고.’
천사치고는 노출도가 있는 복장에 레온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레온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신물에 눈독을 들이다니! 죽여 버리겠다, 더러운 인간 놈들!
쐐애액!
촤아앗!
아리스는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달려들며 공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부웅!
파지직!
콰가가!
전류를 머금고 있는 삼지창이 기어 골렘과 연금술사들에게 거침없이 휘둘러졌다.
“크악!”
“마, 막아!”
고통에 찬 연금술사들의 비명이 쏟아졌다.
진형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연금술사 ‘말튼’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연금술사 ‘빈첸’이 감전 상태 이상에 걸렸습니다.
‘헉! 이런!’
그제야 레온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정신을 되찾았다.
게임 캐릭터의 노출도와 방어력이 비례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공격력도 비례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순간 레온이 연금술사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모두 최우선적으로 방어에 집중해! 공격은 내가 한다!”
레온의 말이 끝나자 모든 연금술사들이 방어 진형을 갖추었다.
그러자 조금은 피해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호호호! 모조리 다 죽여 주마!
“크아악!”
“으억!”
미친 듯이 날뛰는 아리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신의 생각보다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레온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오토마톤 소환, 슬레이프닐. 오토마톤 소환, 스키르니르.”
우우웅!
지이잉!
소환진에서 스키르니르가 나타나자마자, 레온은 곧바로 제 몸에 장착을 하였다.
“가자! 슬레이프닐!”
투카카!
파아앗!
그러곤 함께 나타난 강철의 천마를 탄 채, 아리스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까가강!
레온의 검이 아리스의 창을 막아 내었다.
-흥! 네놈이 이 모자란 놈들의 대장이구나!
채챙!
채채챙!
창과 검의 공방이 여러 번 이어질 때마다, 주황빛의 불꽃이 튀어 올랐다.
그렇게 레온과 아리스와 박빙의 전투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쿠과가가!
퍼퍼펑!
검은 번개가 일렁이는 창을 찌르는 타락 천사와 검은 불꽃이 이글거리는 검을 휘두르는 강철의 기사의 모습은 마치 묵시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잠시 후, 레온은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라? 이거 안 되겠는데.’
지금 자신만으로는 반반 싸움은 가능하지만, 꺾어 내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보스 몬스터 중에 가장 강력한 상대였다.
그러던 그때.
투다다다!
레온이 마치 전투를 회피하듯 뒤편으로 쭉 신형을 빼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연금술사들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었다.
“아아, 설마.”
“……보스 몬스터는 무리였나.”
그들의 눈에는 레온이 벅차 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깔깔, 한심한 인간 놈. 그래, 그대로 문을 열고 도망을 가면 따라가지는 않으마.
얼굴에 한껏 비웃음을 띠운 채, 아리스가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러자 레온이 콧방귀를 끼며 대답했다.
“뭐래, 이 노출증 환자가.”
-뭐, 뭣!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이 강철 갑옷 속에서 씨익, 하고 웃어 보이며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간단한 정답을 떠올렸다.
그건 바로.
‘두 마리로 안 되면 세 마리를 꺼내면 되지.’
라는 것이었다.
“오토마톤 소환……!”
레온은 그러곤 완성해 두었던 세 번째 오토마톤을 소환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오토마톤의 이름은 바로.
“마루……!”
다름 아닌 마루였다.
우우웅!
파아아앗!
효과음과 함께 지면에 커다란 소환진이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여태껏 나타났던 소환진 중에 가장 커다란 크기의 소환진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소환진에서 네 발로 땅을 짚고 선 엄청난 크기의 강철 늑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공할 기운이 마루에게서 뿜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스는 애써 무시해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흥! 그래 보아야 얕은수! 하나가 더 늘어난다고 날 이길 수 있을 듯하더……!
한데 그때, 그녀의 말을 잘라 먹으며 강철 늑대가 말을 꺼냈다.
-아우! 이게 얼마 만이낭! 너무 오랜 만에 불렀다 주인앙!
놀랍게도 마루는 오토마톤이 되었음에도, 그대로 변함없이 마루의 이지(理智)를 지니고 있었다.
마치 마루가 기어 골렘과 영혼까지 집어 삼킨 것처럼 말이었다.
‘저 녀석, 분명히 무언가 비밀이 있다니까.’
레온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어라? 주인, 내 목소리가 이상하다낭. 요요. 욤마.
마루는 그저 자신의 목소리가 오토튠이 된 것처럼 나오자, 신기한지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