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 * *
‘좋아, 도착했어.’
본단 건물로 들어선 레온은 곧바로 커티스의 집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할! ……은 놈!”
‘으응?’
근처에서 누군가의 역정 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목소리를 쫓아 눈을 돌린 레온은 살짝 열려 있는 연구실의 문틈으로 한 남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건?’
그건 바로.
“크흑, 이런 망할 놈의 자식. 마른하늘에 벼락을 맞을 놈의 자식, 세로쉬 전기구이 통닭처럼 만들어 버릴 놈 같으니이이!”
연신 구수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 이의 정체는 바로 다름 아닌 레온이 과중한 업무를 맡기고 떠났던 케인이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레온이 시킨 과중한 업무를 홀로 진행하고 있었다.
한시가 바쁜 듯, 양손에 시약병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의 온몸에서 육수처럼 땀이 뻘뻘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조용히 자신에게 쏟아 내는 불만을 듣고 있던 레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쭈?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벌컥.
“케 조수!”
순간 레온이 연구실의 문을 와락 열어젖혔다.
쨍그랑!
“히익!”
그러자 들고 있던 시약병까지 떨어뜨리며,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케인의 모습이 펼쳐졌다.
싸아-.
레온이 잠시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지그시 케인을 바라보았다.
‘마, 망했다.’
케인이 파랗게 질린 얼굴에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는 표정을 띠며 말을 건넸다.
“오, 오셨습니까. ……그, 언제부터 거기에 서 계셨는지?”
그의 말이 이어지자, 레온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방금 왔어. 왜,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도 하고 있었어?”
찔끔.
“하, 하하. 무슨, 저어언혀 그런 이야기 안 했습니다.”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 내며 케인이 대답했다.
‘흥!’
그에 레온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스윽.
그러곤 고개를 돌려 방금 전까지 케인이 작업하던 것들을 살피더니, 이내 시큰둥하게 말을 내뱉었다.
“흠, 그건 그렇고 케 조수, 이거 작업 속도가 너무 느린 것 아냐?”
“……네?”
케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흠, 내가 분명히 돌아오기 전까지 다 해 놓으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아, 저, 그게…….”
“케 조수의 실력이 하염없이 부족했던 거야? 아니면 일을 빈둥빈둥 대면서 대충대충 한 거야?”
자존심을 팍팍 긁는 레온의 말에 케인은.
‘야, 이 망할 놈아. 네가 암흑투기장에 다녀온 게 고작 2시간이야!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다 하냐! 연금술사의 조상의 할아버지도 무리야!’
라고 빼액,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죄, 죄송합니다.”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입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그에 레온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쯔쯔, 벌써부터 이렇게 실망을 안겨 주다니……. 잘 좀 하자고, 케 조수.”
케인이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레온은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일전에 떠올렸던 새로운 사업계획 포션을 생산하라는 추가 업무를 지시하였다.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일을 시키다니, 현실이었다면 고소를 당하고도 남았으리라.
‘이곳은 게임 속이라지요.’
안타깝게도 판테라에서 노동자의 인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레온의 노예에게는 더욱 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케인과의 볼일을 끝낸 레온은 다시 커티스에게로 향했다.
“오오! 왔는가!”
커티스는 레온을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오듯이 한걸음에 다가와 레온의 손을 붙잡았다.
“토너먼트의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걱정해 주신 덕택에 32강 가뿐히 통과했습니다.”
“오오, 역시 자네라면 분명히 훌륭한 성과를 내었을 거라 의심치 않았네.”
“감사합니다. 이제 다음 시합인 16강만 통과하면 목표했던 8강에 진출하게 됩니다.”
기사단의 입단까지 단 한 단계만이 남았다고 말하자, 커티스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정말 훌륭하군. 모든 일이 끝나면 자네의 노고는 결코 잊지 않고 보답하겠네!”
커티스는 정말 귀한 일을 하고 있다며, 레온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했다.
그런 그의 말과 행동이 진심이라는 것은 시스템 메시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커티스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커티스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커티스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레온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호감도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별말씀을, 이 정도쯤이야 당연한 것이죠.”
“오오, 겸손하기까지! 정말 자네 같은 사람을 만난 건 신의 축복일세.”
레온이 겸양을 떨자, 커티스는 더욱 호감을 가진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레온의 속마음은 겉모습과 전혀 달랐다.
‘근데 이 아저씨는 호감도로만 퉁 칠 생각인가.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걸 알면, 알아서 딱딱 격려금 같은 것도 주고, 꿍쳐 둔 아이템도 주고 해야지.’
마음속으로는 ‘돈 좀 줘요!’ 하고 소리를 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커티스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면, 기겁했을 생각을 하고 있는 레온이었다.
그렇게 잠시간 둘만의 대화를 마친 후.
커티스는 레온을 연금술사들이 모두 모여 있는 대회의장으로 데려갔다.
방에 들어서며 레온은 살짝 놀래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더 크구나.’
모두 모인 연금술사들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때, 커티스가 레온을 바라보며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말을 꺼내었다.
“자, 그럼 이제 말해 주게나. 자네가 찾아내었다는 주재료의 정체가 무엇인가! 자네의 해석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네!”
모든 연금술사들의 시선이 순간 레온에게 향했다.
스윽.
그러자 레온은 깊은 눈빛을 띤 채,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레온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호문클루스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짐작하게 했다.
‘후후, 원래 이런 건 살짝 뜸을 들여 줘야 제 맛이지. 60초 후에 공개됩니다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잠시 그 눈빛들을 즐기던 레온은,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저의 해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레온은 먼저 이전에 들었던 호문클루스를 만들 힌트를 지닌 문장을 말했다.
-여섯 별의 영혼이 사그라진 육신 위에 강철의 외투를 입을 때, 호문클루스가 완성되리라.
그 후, 자신의 청중들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기 시작하였다.
“먼저 ‘여섯 별의 영혼’이라 함은, 말 그대로 영혼을 의미합니다. 샤먼들이 다루는 힘의 원천이죠. 그리고 별의 개수는 샤먼들이 영혼의 등급을 구분하는 방식입니다.”
레온이 첫 번째 단어인 ‘여섯 별의 영혼’에 대해 설명을 연금술사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탄성을 내뱉었다.
“오오!”
“샤먼들이 영혼을 사용하였던가!”
“맞아, 분명 어떤 서적에서 그렇다고 들은 적이 있어!”
“쉬잇! 아직 레온 님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네!”
그들이 레온에게 집중하며 다시 조용해지자, 레온의 해석이 다시 이어졌다.
“다음으로 ‘사그라진 육신’이라는 건 바로 네크로맨서들이 다루는 언데드 소환수를 뜻합니다. 그들은 아시다시피 생명이 다한 육체를 자신의 종복으로 부리죠.”
이번에 연금술사들은 모두 입만 쩍하고 커다랗게 벌릴 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아직 하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온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강철의 외투’란 여러분도 충분히 짐작하고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연금술사들만이 만들 수 있는 ‘기어 골렘’을 뜻합니다.”
꿀꺽.
여러 명이 동시에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커티스가 슬며시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그에 레온은 고개를 주억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곤 선언하듯 말했다.
“호문클루스는……! 연금술의 비전뿐 아니라, 다른 두 개의 클래스의 비전까지 총동원되어 만들었진 실험체였던 것입니다.”
두둥!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큰 충격을 받은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곤 곧이어 해석을 들은 연금술사들이 각자 다양한 반응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서로 간에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그리고 곧이어 도출된 결론은.
“이거 충분히 일리가 있어!”
“여태까지의 가설 중에 가장 가능성이 높아!”
레온의 가설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연금술사들 사이에 논의되었던 해석은 모두 그럴듯하기는 해도 어딘가 하나씩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레온의 해석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걸리는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순간 커티스가 레온을 경외심을 가지고 쳐다보며 말을 꺼내었다.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레온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직 가설일 뿐인걸요.”
한데 그때, 다른 연금술사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후우, 한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겠군요. 레온 님의 가설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는…….”
“그건 그래. 여섯 별의 영혼을 다룰 수 있는 상급의 샤먼을 먼저 찾고, 다음으로 그에 필적하는 상급의 네크로맨서를 수소문해야 하니까.”
“그냥 찾는 것도 아니고, 수준 높은 이들을 초빙해야 할 터인데.”
“찾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데려오는 건 더 힘들지 않을까?”
“끄응, 막막하군.”
연금술사들이 저러는 것도 당연했다.
이들은 샤먼이 패치 숲에 있는 지조차 모를 테니까 말이었다.
게다가 이런 연구를 도와달라고 부탁할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레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당당히 말을 하였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최상위급의 능력을 지닌 네크로맨서와 샤먼이 여러분의 가까이에 이미 있으니까요.”
‘으응?’
순간 모두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커티스가 슬그머니 말을 꺼내자, 레온이 씨익 하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곤 스킬을 시전하였다.
“소환, 마루. 소환, 파크.”
우우우웅!
슈우우웅!
커다란 공명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커다란 소환진이 바닥에 그려졌고.
-으아! 오랜만이다낭!
-헤헤, 주인아! 보고 싶었다!
곧이어 연금술사들의 눈앞에 마루와 파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이제껏 보았던 것 중에 가장 놀란 표정이었다.
레온은 그들의 눈앞에서 네크로맨서와 샤먼의 힘을 공개하였다.
이들은 숨어 있는 비밀 조직에 NPC였기에 말이 새어 나갈 일도 없었던 데다가, 레온이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연구의 진행이 어려웠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혹시나 믿을 수 없는 레온의 이런 비밀스런 힘에 믿지 못하겠다며, 거부반응을 연금술사들이 일으킬까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이어진 반응으로 그것은 기우로 밝혀졌다.
“어, 어찌 사람이 동시에 이런 수많은 힘을. 자네는 정말 하늘이 내린 천재로군!”
“연금술사와 샤먼 게다가 네크로맨서까지. 세 클래스의 힘을 전부 다룰 수 있다니!”
“으하하! 저 둘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어!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이!”
그들은 그런 것은 전혀 상관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의 비원이 성취되는 과정이 펼쳐지자, 급흥분을 하여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던 그때.
레온은 속으로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바로.
‘후후, 자, 이제 슬슬 가설을 사실로 검증시켜 볼까!’
라는 것이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