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204화 (204/332)

# 204

제에의 한눈에도 위험해 보이는 뒷골목을 한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거닐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강하게 풍겨 나고 있었다.

“끄윽.”

그가 입에 물고 있는 이쑤시개를 잘근거리며 트림을 내뱉었다.

추잡함과 여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그의 정체는 바로 코르부스 길드를 이끄는 세 명의 핵심 간부 중 하나인 말큐스의 부하 ‘토드’였다.

그는 레온을 습격했던 루친 패거리가 아이템을 빼앗아 갔다고 지목한 의문의 남성을 찾기 위해, 이곳에 파견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분명 그런 명령을 받고 오기는 했지만, 사실 토드는 이곳에 오고 나서 제대로 된 조사를 시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스윽.

길을 걷던 토드가 문득 고개를 돌려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사방에서 그런 그와 눈을 맞추며 애타게 그를 찾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형님, 오늘 대박 터진 손님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들렀다 가세요.”

“오빠, 저기보다 여기가 더 판돈이 높아. 이리로 와.”

그곳에는 화려한 외견을 자랑하는 각종 도박장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는 대답 없이 그저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며 곳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로 행선지를 정할지 고르고 있는 것이리라.

무척이나 행복한 고민인 듯, 그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만족감이 잔뜩 차올라 있었다.

이어 그가 속으로 생각하였다.

‘흐흐, 이게 웬 떡이냐. 길드에서 나서서 나를 판테라의 라스베이거스로 보내 주다니 말이야.’

그랬다. 그는 중증의 도박 중독이었다.

제에에 와서 종일 도박에만 빠져 있느라,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코르부스 길드가 토드에게 조사를 맡긴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토드는 이곳에 와서 길드가 준 착수금을 흥청망청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마음의 죄책감이 없었다.

왜냐하면 온전히 사용했다고 해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으리라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처음 이곳으로 출발할 때부터, 루친 일행의 변명을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있었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오러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초고레벨의 검사가 본 드래곤을 소환한다니…….

순간 다시 한 번 루친 일행의 허언을 떠올린 토드가 피식, 하고 비웃음을 얼굴에 만개하였다.

‘그 자식들, 급해도 그렇지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나. 끌끌, 뭐 나에게는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어차피 헛돈으로 쓰일 거라면 이렇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더욱 좋은 일이지 않은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를 마친 토드가 이내 오늘 가기로 결정한 도박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투다다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음이 울려 퍼졌다.

‘뭐야?’

토드가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보냈다.

‘헉!’

그러자 거기에는.

“으아아, 늦었다 늦었어. 비켜요, 비켜!”

험상궂은 얼굴을 한 거구의 남자가 미친 듯이 뜀박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퍼퍽!

“크억!”

당황한 토드는 머뭇거리다가 그대로 질주하던 그 남자에게 호되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가 충격에 비명을 토해 내며 발라당 넘어졌다.

그렇게 토드가 신음성을 쏟아 내고 있던 그때.

“진짜 죄송해요오오!”

의문의 남자는 사과의 한마디를 남긴 채 나타났을 때처럼 바람같이 사라지고 있었다.

토드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급해 보이던 그 남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는 콜로세움으로 향하고 있었다.

토드가 눈에 살의를 가득 담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자식, 따라가서 죽여 버릴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면, 암살을 하기에는 관중이 너무 많아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토드가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에잉, 운 좋은 줄 알아라.’

이어 토드가 기분도 꿀꿀해졌는데, 얼른 도박이나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데 그때였다.

멈칫.

‘어라? 잠깐만.’

토드가 행동을 멈추고는 제 고개를 갸웃하였다.

무언가 이상한 구석이 하나 있었던 탓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남자가 처음 나타났던 골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신의 의심했던 것이 정확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저자가 나온 쪽은 아예 길이 없는 막다른 길인데.’

전혀 나올 수가 없는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래도 오랜 시간 수색원으로 일한 그의 촉이 저자가 무언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촉은 제대로 발동되려던 찰나, 진행되지 못하고 이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 형님. 왜 들어오시다가 마세요, 얼른 들어오세요. 형님만 아세요, 오늘 호구들 투성이예요.”

도박장 앞에서 호객을 하고 있는 종업원이 토드가 들어오려다가 말자, 적극적으로 꾀기 시작한 탓이었다.

“……진짜냐?”

그리고 그것은 효과 만점이었다.

토드는 종업원의 입 발린 말에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남자에 대한 관심을 싹 지워 버렸다.

‘에이, 그래. 뭐 수상해 봐야 뭐 있겠어? 클래스가 좀도둑인가 보지, 뭐.’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몰랐다.

지금 그가 눈앞에서 훗날 자신의 길드에 말도 안 되는 풍파를 몰고 올 당사자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을 말이었다.

* * *

오늘의 콜로세움 또한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숫자의 관중들이 만석으로 차 있었다.

관중들이 내뿜는 미칠 듯한 환호성과 뜨거운 열기도 동일하였다.

하지만 오늘 콜로세움 내부에 딱 한 가지, 완전히 다른 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예선전에서는 수없이 많았던 경기장이 오늘은 단 하나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32강으로 돌입하며 예선전처럼 수많은 경기를 한꺼번에 진행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자.

한 번에 하나의 결투만을 진행시키게 된 것이었다.

모든 관중들의 시선과 카메라 수정구들이 경기장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길고 길었던 예선전은 끝이 나고, 드디어 대망의 본무대가 시작되려던 그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경기장 위로 성큼성큼 사회자가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자, 그럼 지금부터 혈석 등급의 암흑투기장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크 역할을 하는 마법 아이템을 손에 움켜쥔 채, 목청을 높이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콜로세움 내부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곧장 양끝 쪽으로 나 있는 두 개의 선수 입장 출입구를 바라보다가, 먼저 한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어 소리쳤다.

“나에게 방어란 없다! 맹공의 창술사! 이 남자, 전생에 코뿔소가 아니었을까! 청 코너, 수정 등급의 루키노오오!”

루키노라는 선수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우와아아아!

열화와 같은 함성 소리가 콜로세움 안에 울려 퍼졌다.

처척-.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보다 두세 배는 긴 것 같은 창을 들고 있는 한 거구의 남자가 어깨를 당당히 편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몸짓에서 여유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잔뜩 신이 난 관중들이 커다랗게 소리를 질러 대었다.

“수정 등급의 패왕! 너한테 돈 다 걸었다!”

“그냥 한 방에 죽여 버려!”

루키노는 백금 등급의 바로 아래인 수정 등급으로, 현재 199레벨을 자랑하는 강자였다.

그는 현재 수정 등급 암흑투기장에서 가장 많은 승수를 자랑하는 이이기도 했다.

그의 여유는 여태까지 겪었던 수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그가 결투장의 한쪽 끝에 멈추어 선 것을 확인한 사회자가 이번에는 반대편 출입구를 가리키며 소개 멘트를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멘트의 내용이 앞서 소개했던 루키노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떴다, 행운맨! 황동 등급의 아버지! 행운의 여신을 목마 태우고 있는 남자! 홍 코너, 황동 등급의 리오오온!”

실력에 대한 소개는 없고 오로지 그가 가진 운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리온, 아니 레온은 전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데 그의 분위기가 약간 달랐다.

저번까지는 계속 완전히 겁먹은 듯한 모습을 연출하며 방심을 유도했었는데, 오늘은 얼굴을 굳힌 채 그저 묵묵히 걸어 올라갔던 것이었다.

그러자 순간.

우아아아!

우우우우!

함성 소리와 야유 소리가 함께 뒤섞였다.

의심과 의문이 가득 담긴 눈빛들이 레온을 향했다.

“와, 이거 말이 되는 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운빨로 32강까지 오다니.”

“아오, 배 아파. 여기서 떨어져도 지명도가 어디야.”

“지명도뿐이냐. 보상 아이템도 상당할걸.”

그들의 눈에는 시기와 질투가 배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장에 어느새 두 참가자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랐다.

루키노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 떠올라 있었으며, 레온의 얼굴은 무표정이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레온의 표정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드디어 사회자가 경기장에서 내려오며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혈석 토너먼트, 32강전! 첫 무대! 드디어 시작하겠습니다!”

* * *

그렇게 레온과 루키노가 맞부딪치던 그때.

일반적인 관중석이 아닌 방처럼 꾸며져 있는 특별석에서 통유리를 통해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중 첫 번째는 레온이 잠입하려 하고 있는 흑암기사단의 단원인 ‘나이저’였다.

8강에 든 유저는 자신들의 소속이 될 수도 있었기에, 32강부터는 기사단원 중 하나를 보내 참관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이저는 영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한 채, 펜대를 손가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첫 경기가 아무런 기대가 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 순간, 나이저는 속으로 생각했다.

‘쯧, 황동 등급이라…… 이번 대결은 클라리우 님에게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영 기대가 되지를 않아.’ 라고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이 깨진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간이 지난 순간이었다.

‘……뭐야 저건?’

어느새 경기를 지켜보던 그의 두 눈이 크게 확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양학을 하기 위해 혈석 토너먼트에 참가한 백금 등급의 악질 PK범 ‘쿠단’이었다.

그는 루키노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흐흐, 내 다음 먹잇감이 저놈이군.”

그랬다. 쿠단이 32강을 통과하면 레온과 루키노 중 승자와 16강에 맞붙게 되었던 것이었다.

“창술사라…… 가볍게 짓밟아 주지.”

하지만 그는 레온에게는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레온이 올라오리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그가 잠시 경기장에서 눈을 떼고 머릿속으로 어떻게 루키노를 요리해 주어야 영상이 잘 돌아다닐지 떠올렸다.

우오오오오.

한데 그때였다.

‘으응? 뭐야?’

관중석에서 갑작스레 일제히 탄성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곧바로 시선을 다시금 돌려 경기장을 살핀 쿠단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러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하였다는 듯, 쿠단은 마치 도마뱀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크크, 재밌는데? 운이 아니었어?”

그의 눈에 비친 레온이 사신의 그것 같은 거대한 낫을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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