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레온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성질을 꾹 참으며 케인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몇 번씩 주먹이 꽉 쥐어졌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제 자네를 믿지 않을 수 없군. 자, 얼른 이곳을 나가세. 함께 갈 곳이 있다네.
드디어 케인의 신뢰를 얻게 되어, 데빌즈 네스트의 은신처로 함께 이동을 하게 된 것이었다.
레온은 그 말을 듣자 겉으로는 크게 기뻐하면서도, 고개를 돌리고는 몰래 뿌득 하며 이를 갈았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 내가 반드시 복수해 준다.’
라고 말이었다.
출발 전 레온은 뚱보의 몸이 너무 거추장스러워, 케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변신을 해제했다.
오랜만에 아무런 변신도 하지 않은 원래 레온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두 사람은 곧바로 숲을 떠났고,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그들은 한 곳에 걸음을 멈추어 있었다.
한데 그때.
무슨 이유에선가 레온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순간 레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쩝, 이거 괜찮으려나…….’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눈앞을 바라보았다.
히이잉-.
말들이 줄에 묶인 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수없이 많은 마차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제에의 마차 대여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레온의 얼굴이 어두웠던 이유는 바로 데빌즈 네스트의 은신처가 마차를 타고 가야 할 만큼 멀리에 있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그가 끄응 하며 신음성을 내었다.
‘제에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며 안 되는데.’
그가 그런 걱정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 곧 32강 토너먼트에 참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기나긴 추격전과 숲에서의 전투가 끝나자, 밤의 어둠도 점차 걷히고 있었다.
레온이 남은 시각을 확인해 보았다.
‘……시작까지 5시간 정도 남았나.’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자 레온이 마차에 오르고 있는 케인에게 말을 건넸다.
“……저 혹시 제에에서 많이 벗어나야 합니까?”
그렇게 레온이 염려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지만.
씨익.
그는 그저 레온의 말에 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레온은 또 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날 놀리는 거야? 이 자식, 진짜 패고 싶네.’
정말 사람의 폭력 충동을 맹렬하게 자극하는 놈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케인의 말은 레온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아니네, 이미 도착했거든. 자, 걱정 말고 얼른 타기나 하시게.”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마차의 내부로 냉큼 들어가 버렸다.
‘……이미 도착했다고?’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해하던 레온은.
‘뭐, 일단 들어가 보면 알겠지.’
이내 그렇게 생각하며 마차의 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갔다.
한데 그때, 레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차의 내부를 살폈다.
‘뭐야, 이 자식 어디 갔어?’
분명 앞서 들어간 케인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도망간 건가?’
레온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그때.
쑤욱!
“으억!”
별안간 레온이 비명을 내질렀다.
한데 펼쳐진 상황이 그가 그렇게 당황할 만도 해 보였다.
‘뭐, 뭐야? 이거?’
갑자기 발을 딛고 있던 마차의 바닥에서 두 팔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마차 아래로 레온을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 어?”
손에 붙잡힌 순간부터 마차 바닥으로 늪에 빠지듯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레온이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음 순간, 마차의 내부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렇게 얼굴까지 통과하자 레온은 갑자기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두 발을 잡아끌던 손은 사라져 있었다.
처척!
그러자 곧장 레온은 자세를 바로 갖추었고, 이내 정확하게 착지를 성공할 수 있었다.
‘……여긴 대체?’
그러곤 곧바로 빠르게 주위를 살핀 레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차 안에 마을이 있다고?’
갑자기 난데없이 눈앞에 상당한 규모의 마을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하고 있는 레온에게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케인이 말을 건네 왔다.
발을 끌어당긴 건 역시 그였던 것이다.
“놀랐나? 이곳이 바로 우리 연금술사들이 살고 있는 ‘샴발라’일세.”
샴발라.
그곳이 이 마을의 이름인 것 같았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질문을 건넸다.
“다른 공간으로 텔레포트 된 겁니까?”
하지만 케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네. 이곳은 그런 방법으로는 이동할 수 없는 곳이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위적으로 창조된 공간이거든. 위대한 연금술사 엘릭 형제님이 만들어 낸 곳이라네.”
레온의 표정에 경악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데 그렇게 놀랄 만도 한 업적이었다.
이만 한,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공간을 창조하다니 말이다.
레온이 지닌 것 중에 비슷한 것을 찾으라면 그림자 아공간이 있겠지만.
그곳은 알다시피 스켈레톤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지 않던가.
규모와 모든 것이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이곳은 바깥의 사람들이 사는 세계와 똑같았다.
그제야 레온은 종교재판소 놈들이 데빌즈 네스트를 못 잡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곳에 있으니 잡을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러던 그때, 케인이 레온에게 말을 건네었다.
“자, 가세. 커티스 님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니까.”
* * *
두 사람은 곧장 마을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큰 건물로 향하였다.
레온은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온갖 고생 끝에 직업 퀘스트가 지목했던 커티스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으니, 기뻐할 만도 해 보였다.
‘흐흐, 드디어 봉인되어 있던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겠어!’
그렇게 가는 내내, 케인은 자신이 이 공간을 만든 것도 아니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 몇 가지는 기억해 놓아야 할 이야기들이 있었다.
‘샴발라로 들어오는 출입구는 12시간에 한 번씩 다른 마차로 바뀐다네.’
‘게다가 마차만 안다고 해서 들어올 수도 없지. 데빌즈 네스트의 일원이 한 명이라도 없으면 문은 절대 열리지 않으니까 말일세.’
그렇게 레온이 케인의 말을 되새기고 있던 그때.
드디어 데빌즈 네스트의 본단에 들어서고 있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자리하고 있던 수많은 연금술사들의 시선이 단번에 레온에게 쏠렸다.
한데 그 눈초리들은 하나같이 모두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갑작스레 등장한 외부인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졸아들 레온이 아니었다.
그는 당당히 가슴을 편 채, 꼭대기 층에 있는 커티스의 집무실까지 이동했다.
끼익.
‘저자인가.’
문이 열리자, 레온의 눈에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끼고 있는 외눈 안경이 시선을 끄는 그는 비밀 단체의 수장보다는 저명한 학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처척.
“돌아왔습니다.”
케인이 무릎을 꿇으며 그에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레온 또한 옆에 똑같이 따라 무릎을 꿇었다.
“……왔는가.”
그러던 그때, 커티스가 케인을 지나쳐 레온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 순간 커티스에게서 강력한 위압감이 뿜어졌다.
그것을 받아 내는 레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자, 상당한 강자다.’
마르고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은 정말 외형뿐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만난 NPC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레벨이 상당히 높겠는데?’
하지만 놀란 것은 레온만이 아니었다.
‘흐음.’
그렇게 자신의 기운을 자연스레 받아 내는 것을 바라보는 커티스 또한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스윽.
커티스가 레온에게 손을 건네며 말을 건넸다.
“반갑소. 내가 데빌즈 네스트를 이끌고 있는 커티스요.”
“안녕하세요. 리, 아니 레온입니다.”
한데 그렇게 서로 악수를 하던 그때였다.
‘어라? 이상한데?’
레온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두 눈에 의아함을 가득 담은 눈빛을 띠고 있었다.
순간 그가 속으로 의문의 원인을 떠올렸다.
‘만나서 악수까지 나눴는데, 왜 퀘스트가 완료가 안 되지?’
분명히 목표 대상이었던 커티스를 만나는 데 성공했는데, 직업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설마 이자가 커티스가 아닌 건가?’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케인의 태도와 더불어 커티스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그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해결해야 하는 다른 조건이 남아 있는 건가?’
레온은 그러면서 커티스의 반응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아, 설마.’
커티스의 눈빛에 의심이 가득했다. 아직 그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레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아무래도 이놈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될 것 같은데…….’
그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레온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럴듯한 스토리가 필요해!’
NPC들을 속여 넘길 만한 시나리오를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천년같이 느껴지는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그래, 이거다!’
생각을 정리한 레온이 불꽃 연기를 시작하였다.
“크흑.”
순간 레온이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아니, 자네 왜 그러는가?”
그러자 커티스가 놀란 얼굴로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아, 죄송합니다. 드디어 커티스 님을 보니, 제 가슴이 울컥하는군요. 스승님의 유언을 지킬 수 있게 되어 너무 감격을 했나 봅니다.”
“……자네 힘든 일을 겪었나 보군, 진정하게.”
눈물을 닦으며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난 후, 레온은 즉석에서 만들어 낸 시나리오를 커티스에게 읊어 주기 시작하였다.
이단 심문관들에게 공격을 당하여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은 채, 산속에 은거하고 있던 스승.
그런 스승을 우연히 몬스터에게 쫓기다가 만나게 된 자신.
그 후 사제의 연을 맺게 되었지만 스승은 결국 두 달의 시간이 지나자, 레온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죽고 말았다.
그리고 스승의 유언은 이러했다.
연금술사라는 정체를 숨기고 암흑성국의 기사단에 들어가, 다른 연금술사들을 위해 정보를 수집해 주는 첩자의 역할을 수행해 달라는 것.
모든 말을 들은 커티스의 반응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럼 지금 암흑성국의 기사단에 들어가기 위해, 제에에서 열리는 암흑투기장에 참가하고 있다는 말인가?”
레온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커티스의 눈에 대견함과 더불어 동정심이 떠올랐다.
“허, 죽음을 무릅쓰고 이중 첩자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니. 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그것을 확인하자, 레온은 자신의 삽시간에 적어 내려간 시나리오가 잘 먹혀 들어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띠링.
띠링.
-직업 퀘스트, ‘연금술사 커티스를 찾아가자’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봉인되어 있던 스킬이 모두 해제되었습니다.
-보상으로, ‘기어 골렘 제작도’, ‘캐스팅의 포션 레시피’를 획득하였습니다.
‘좋았어!’
레온이 마침내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때.
획!
커티스가 고개를 돌려 케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 분노가 가득 차올라 있었다.
케인은 그것을 바라보며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커티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목표를 선정할 때, 잘 알아본 후에 진행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독단적으로 암살을 시도하더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연금술사들을 위해 이처럼 헌신하는 젊은이가 희생이라도 됐으면 어떻게 할 뻔했는가!”
그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레온을 습격한 것은 케인의 독단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케인은 시건방지게 굴던 것은 어디로 갔는지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데빌즈 네스트에서 커티스의 입지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였다.
한데 그때, 레온이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그에게 굴러들어왔다.
커티스가 케인에게 말을 꺼냈다.
“케인, 자네가 레온의 조수가 되어 24시간 곁에서 수행하며 일을 돕게.”
케인에게 레온의 조수가 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