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레온의 걱정은 그대로 현실이 되어 있었다.
쾅!
투쾅!
기계 골렘의 거대한 주먹이 지면을 강타할 때마다, 그 자리에 움푹 파인 자국이 연이어 생겨나고 있었고.
‘아오, 진짜!’
레온은 진땀을 흘리며 그 공격들을 피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림자 은신을 통해 케인에게 접근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젠장, 이놈을 멈추려면 저놈한테 접근해야 되는데…….’
골렘이 너무 저돌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까닭에 도저히 스킬의 사정거리 안으로 진입을 할 수가 없었던 것.
순간 레온이 답답해하며 이어 생각했다.
‘끄응, 그렇다고 반격을 할 수도 없고. 어쩌나, 이거.’
그는 현재 자신은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검도 뽑아 들지 않은 상태였다.
레온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당혹스러워하던 그때.
위잉!
철커덕!
마치 총이 장전되는 것처럼 골렘의 두 기계 팔이 쾌속하게 앞뒤로 움직였다.
그것을 보며 레온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한 대라도 맞으면 체력이 뭉텅이로 빠지겠는데?’
이 전투로 인해 레온은 연금술사들이 지니고 있는 저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추가로 다른 골렘을 소환을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네크로맨서나 소환술사처럼 여러 마리를 동시에 소환할 수는 없는 듯했지만.
그것이 전혀 단점이 되지 않을 만큼, 골렘 한 구가 지닌 전투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던 것이다.
쿠쿵!
쿵!
그러던 그때, 기어 골렘이 다시금 레온에게 달려들었다.
“흐억!”
그에 회피를 하려던 레온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발을 뻗은 그대로 미끄러질 뻔한 것이다.
그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겨우 균형을 되찾았다.
순간 레온이 치솟는 스트레스를 느끼며, 저 멀리 서 있는 케인을 바라보았다.
“성질 변화!”
그러자 그는 연이어 두 손을 뗐다 붙였다 하며, 연금술 스킬을 시전하고 있었다.
케인은 레온 자신이 토너먼트에서 쓰던 방법을 똑같이 사용했다.
성질 변화로 레온이 발을 딛고 있는 지형을 계속하여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오, 내가 당하니까 나한테 당했던 놈들의 기분을 알겠네.’
본의 아니게 역지사지의 심정을 느끼게 된 레온이었다.
그때, 레온이 자신을 한참 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케인이 그를 잔뜩 비웃으며 말을 꺼냈다.
“흥! 겨우 그 정도의 실력으로 쫓아온 거냐, 멍청한 녀석.”
화를 돋우는 녀석의 말에 레온이 분노를 담아 찌릿하고 째려보았다.
‘저놈이, 가뜩이나 열 받아 죽겠는데.’
움찔.
그러자 그 기세에 놀란 케인이 몸을 꿈틀거렸다.
‘뭔 눈빛이…….’
하지만 그러는 것도 잠시.
케인은 이내 전개되는 상황을 다시 살피고는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렸다.
“후후, 이제 독 안에 든 쥐구나!”
그의 말처럼, 현재 레온은 등 뒤가 막힌 코너에 몰려 있었다.
계속하여 회피만 반복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칫, 이거 피곤하게 됐는데.’
순간 레온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잠깐 말 좀 들어 보라니까!”
하지만 케인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는 골렘에게 공격 스킬을 지시할 따름이었다.
“마크! 연발 난타!”
위잉!
철컹!
철커컹!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골렘의 양팔이 배는 빠른 속도로 장전이 되기 시작하였다.
두두두두!
쿠가강!
그러곤 곧이어 골렘의 주먹 세례가 미친 듯이 레온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윽!’
레온은 바쁘게 팔목 보호대가 장착된 양팔을 휘둘러 가며, 그 공격을 방어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떠오르기 시작한 시스템 메시지들에 그의 낯빛이 단숨에 하얗게 질려 갔다.
-기어 골렘의 ‘무기 파괴’ 특성으로 인해 판탈로네의 비전 건틀릿의 내구도가 120만큼 하락하였습니다.
-기어 골렘의 ‘무기 파괴’ 특성으로 인해 판탈로네의 비전 건틀릿의 내구도가 70만큼 하락하였습니다.
‘으아, 내 건틀릿!’
골렘이 지니고 있는 내구도를 하락시키는 무기 파괴 특성으로 인해, 공격을 방어한 판탈로네의 비전 건틀릿이 막대한 손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좀 들어 보라니까!”
이러다가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수치가 떨어질까 걱정이 된 레온이 버럭 화를 내었다.
하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퍼억!
“큭!”
오히려 비 오듯 쏟아지던 골렘의 공격 중 하나가 레온의 복부를 강렬하게 강타하였다.
그러자 그 순간.
‘이 자식……!’
마침내 참고 참던 레온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였다.
채챙!
까앙!
‘퀘스트고 뭐고 안 되겠다. 일단 좀 처맞자, 너.’
눈이 돌아간 레온이 검을 뽑아 들어 골렘의 공격을 막아 냈다.
‘뭐지?’
순간 케인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저 검을 뽑아 든 것뿐인데, 레온에게서 폭사되는 기운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그때, 레온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 가지 스킬을 시전하였다.
“……오러 블레이즈!”
슈우웅!
파아앗!
순간 그의 검날에서 휘황찬란한 광휘가 내뿜어지며 오러가 솟아올랐다.
끼이이잉!
그리고 다음 순간, 기계 골렘의 팔과 검의 오러가 맞닿자, 강렬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저건!’
공사 현장의 용접 장비에서 볼 법한 주황빛 불꽃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쐐애액!
촤아악!
콰가가!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레온이 연달아 쾌속하게 오러가 깃든 검을 휘둘렀다.
케인이 눈으로 쫓지 못할 만큼의 빠른 속도였다.
레온은 그가 코너에 몰려 있던 곳에서부터 골렘을 케인이 서 있는 방향으로 계속하여 뒷걸음질 치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새 전세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레온이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흐아아!”
무언가를 작정한 듯한 표정의 레온이 포효하며, 맹렬히 휘두르던 검의 궤적을 바꾸었다.
서거걱! 서걱!
그러자 참격이 지나간 다음 순간.
피유웅!
쿠쿵!
쿵!
“아, 안 돼!”
곧이어 케인의 비명 소리와 함께 골렘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왼팔, 오른팔, 그리고 왼 다리가 차례로 잘려 나가, 허공에서 춤을 추더니 곧이어 땅바닥에 떨어지며 커다란 소음을 만든 것이다.
휘청.
그리고 어느새 한 발만이 남은 골렘은 술에 취한 듯, 사정없이 비틀거리다가.
쿠우우웅!
거대한 흙먼지를 만들며 꼴사납게 지면에 쓰러졌다.
‘마, 말도 안 돼.’
그렇게 자신의 골렘이 눈 깜짝할 새에 쓰러지자, 케인은 경악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레온은 그런 그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투다다닷!
벼락이 내리꽂히는 듯한 번쩍하는 이펙트가 케인의 눈앞에 펼쳐졌고.
“쿠억!”
곧이어 복부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케인은 격한 고통에 양손으로 배를 부여잡은 채,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점점 정신이 잃으며 혼절해 가는 와중에 귓가로.
‘……왜 이 자식들은 꼭 말로 할 때 안 듣는 거야…….’
라는 희미한 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 *
잠시 후, 케인은 꿈을 꾸고 있었다.
‘흐흐. 간지러.’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연신 간질이는 꿈이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온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한데 꿈속에서 케인은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끄으응, 근데 왜 이리 손이 축축하지?’
손이 너무 과하게 습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어나.’
누구지?
케인의 귓가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복되던 목소리는 점차 선명해져 갔다.
‘일어나!’
그 외침에 그가 눈을 뜨려던 찰나.
촤아악!
갑작스레 그의 얼굴에 물벼락이 쏟아졌다.
“어푸푸!”
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뜬 그는 식겁한 상태로 허둥지둥하며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얼굴에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순간 그는 손을 들어 올려 흐르는 물을 닦아 내려 했지만.
‘어, 안 움직여?’
자신의 두 팔이 전혀 움직이지를 않았다.
발버둥을 치는데도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꽉 묶여 있는 듯했다.
연신 눈을 끔뻑이며 제대로 뜬 후,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빨판?’
자신을 휘감고 있는 거대한 촉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랬다. 그가 꿈속에서 느꼈던 축축한 손길은 촉수의 움직임이었던 것이었다.
그가 고개를 올려 위를 쳐다보자.
“헉!”
거기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크라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어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거기에는 호수의 물이 깔려 있었다.
케인은 사방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호수의 정중앙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는 수영을 못 했다.
여기서 빠지면 수장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일어났어?”
크라켄의 한쪽 어깨에 올라타고 있던 레온이 슬쩍 말을 건네 왔다.
레온이 바로 숲의 중앙에 있는 호수로 케인을 짊어지고 이동하여, 크라켄의 촉수로 단단히 케인의 몸을 묶은 채 호수의 정중앙 부근으로 이동하였던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라도 눈을 떴을 때 쉽게 도망을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과, 물에서는 기계 골렘을 사용할 수 없을 것 때문이었다.
레온의 말이 이어졌다.
“너무 놀라진 마. 밧줄이 없어서 대용으로 묶어 놓은 거니까 얘기만 좀 하고 금방 풀어 줄게.”
상당히 상냥한 어조였다.
하지만 케인은 버럭 화를 냈다.
“더러운 마몬교 놈! 얼른 죽여라!”
그러나 한 방 제대로 때려 줬더니 화가 누그러진 레온이 어린아이를 달래듯 대답했다.
“아니, 아까부터 자꾸 마몬교래. 마몬은 개뿔, 나 무교야, 무교! 마몬교도 아니라고.”
그런 레온의 대답에 케인이 살짝 놀란 반응을 내보였다.
‘……마몬교도가 자신이 마몬교도인 걸 부정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마몬교도들은 설령 자신이 죽게 될 지언정, 신앙을 부정하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냐, 저런 것도 모두 연기일 수 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인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레온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이 자식, 진짜 지독하네.’
그런 그의 반응에 레온은 백번 말하는 것보다 보여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꺼냈다.
“후우-. 아무리 얘기를 해도 믿지 않을 것 같네. 일단 이걸 먼저 좀 봐 봐, 그럼 내가 누군지 알 테니까.”
케인은 코웃음을 쳤지만 곧이어 그 표정은 단번에 달라졌다.
“형태 변화.”
우우웅!
슈우웅!
순간 레온이 끼고 있던 팔목 보호대의 외형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그건!”
눈앞에서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보던 케인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레온이 그런 그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
“봤지? 나도 연금술사라고. 도저히 당신들을 만날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을 쓴 거야.”
한 번으로는 믿지 않을까 봐, 레온은 그것을 시작으로 자신이 지닌 연금술 스킬들을 모두 케인에게 하나씩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케인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속임수를 쓰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건 믿을 수밖에 없군.’
바로 코앞에서 스킬들을 전부 지켜보았기 때문에, 곧 레온의 정체가 연금술사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이윽고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레온에게 어처구니가 없는 말을 꺼냈다.
“허, 참, 아니, 왜 처음에 자신이 연금술사라고 말하지 않았나. 말했으면 이렇게 같은 동지끼리 이렇게 싸우지 않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케인은 마치 다중 인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엄청난 경지에 이른 태세 변환을 보여 주고 있었다.
레온은 그런 그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네가 다짜고짜 벽을 뚫고 뛰어가더니, 싸움을 걸었잖아. 미친놈아!’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속으로 꾹 참아 내었다.
이제 그들의 은신처로 따라 들어갈 수 있게 설득해야 하는 중요한 고비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은 힘겹게 이마에 튀어 오르는 혈관을 잠재우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 하,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