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어둠이 내려앉은 깊은 밤.
모두가 잠에 들어 있을 이 야심한 시각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집중하여 보지 않으면, 그 존재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쉽게 눈치채지 못할 것이었다.
그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의 온몸을 덮고 있는 검은 암행복이었고.
파바밧!
다른 하나는 들짐승보다 빠른 것 같은 민첩함 때문이었다.
누가 보아도 수상한 행색을 하고 있는 복면인의 정체는 바로 데빌즈 네스트 소속의 연금술사, ‘케인’이었다.
휘이잉.
휘익.
그는 줄지어 세워져 있는 건물들의 지붕 위를 거침없이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데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 어떠한 소음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성질 변화’ 스킬의 효력이었다.
점프를 뛰며 그의 발이 닿을 곳을 미리 푹신한 솜 재질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었다.
처척.
그리고 그렇게 사뿐사뿐 걸어가던 그는 곧이어 한 건물의 지붕에서 행동을 멈추었다.
제에의 여러 여관들 중에서도 화려하고 값비싼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빠르게 주위를 살피고 난 후, 케인은 지붕의 한편에 쪼그리고 앉았다.
스윽.
그러곤 기도를 하듯 양손을 하나로 모았다가 떼어 낸 후, 그대로 지붕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문 연성.”
촤아앗!
슈우웅!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효과음과 함께 마법진이 지붕위에 그려졌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가로막혀 있던 지붕에 사람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문이 생성이 되어 있었다.
끼익.
놀라운 광경이었지만, 케인에게는 익숙한 광경인지 그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그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좁은 천장이 나타났다.
케인은 몸을 눕힌 채, 혹시나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끔 은밀하게 이동하여 갔다.
천장에는 당연하게도 조금의 빛도 없었지만, 케인은 거침없이 쭉쭉 나아갔다.
그리고 곧이어 그는 목표 지점에 당도할 수 있었다.
406호.
지금 현재 그가 모습을 숨기고 있는 천장의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객실의 번호였다.
척!
순간 그가 다시 한 번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였고, 천장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슈우웅!
예의 마법진이 다시금 그려졌고, 곧이어 이번에는 여닫을 수 있는 창문이 만들어졌다.
투명한 유리 재질의 창 아래로 방 내부가 들여다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객실 안에 비치된 침대에 실크 재질의 잠옷을 입고 있는 한 뚱보가 대자로 뻗어 있었다.
“드르렁.”
시끄러운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목표 대상은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 흉한 모습을 지켜보던 케인이 들키지 않을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몬의 더러운 돼지 놈.”
순간 케인의 가려진 복면 사이로 보이는 눈빛에서 험악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표출되었다.
그가 그렇게 분노를 내뿜고 있는 건 그가 정보 수집차 들른 주점에서 저놈이 지껄이던 말들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이교도들을 잡느라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우리 마몬교분들, 항상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교도들을 처치하는 데에 무기라도 맞추시라고 이번 상행의 이익금 중에 상당 부분을 교단에 기부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그러면서 제가 비밀리에 획득한 연금술사 이교도 놈들이 숨어 있는 은거지에 대한 정보도 말씀드릴 겁니다.’
전부 다 그들의 암살 대상으로 선정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망언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마지막 말은 그를 단번에 목표 대상으로 설정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순간 그의 눈동자에 의심의 빛이 슬쩍 떠올랐다.
‘……은신처를 알고 있다는 게 정말일까?’
자신들의 거처를 알고 있다는 말에 대한 사실 여부에 대해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딴 놈이 알고 있을 리가 없지. 그냥 허풍처럼 한 말이 분명해.’
그가 그런 확신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거처는 조직의 일원이 배신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걱정을 털어 낸 그는 곧이어 행동을 시작하였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스윽.
그가 연성해 낸 창문을 열더니, 이내 그 아래로 거미줄을 타고 있는 거미처럼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를 한 그는 발을 세우고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침대로 다가섰다.
스릉.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자신의 품속에서 날카롭게 날이 선 비수와 우로보로스의 표식을 꺼내 들었다.
그는 먼저 침대 위에 살며시 표식을 올려놓았다.
샤악!
그러곤 비수를 꽉 움켜쥔 양손을 제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잘 죽어라, 마몬의 돼지!’
쐐애액!
그러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목표물의 심장 부위에 정확히 비수를 꽂아 넣었다.
한데 이어진 다음 순간.
작업을 끝마친 케인의 반응이 무언가 이상했다.
성공적으로 일을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당황에 가득한 표정이었던 것이었다.
한데 펼쳐진 상황을 자세히 바라보자,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가 꽂아 넣은 비수를 목표 대상이었던 남자가 양 손바닥으로 딱 붙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부들부들.
비수가 붙잡힌 그 상태 그대로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비수가 뽑히지를 않았다.
그러던 순간, 케인의 당혹스러워하는 눈이 목표 대상과 마주쳤다.
분명히 잠에 들어 감겨 있던 남자의 눈이 말똥말똥하게 제대로 뜨여 있었다.
‘이, 이건 대체?’
그런데 다음 순간 이어진 괴상한 전개에 케인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 갔다.
갑자기 눈이 마주친 목표 대상, 레온이 해맑게 미소를 짓더니.
“오오, 드디어 오셨군요!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대뜸 환영 인사를 건네 왔던 것이었다.
케인은 당혹스러워하고 있었지만, 레온의 반응에는 조금의 거짓도 들어 있지 않았다.
비수를 움켜쥐고 누운 채, 그는 암살자의 방문을 너무나 열렬히 기뻐하고 있었다.
‘크으, 일주일 동안의 고생이 헛된 게 아니었구나.’
순간 그의 머릿속에 그가 지난 일주일간 반복했던 행동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루의 텀을 두고 치러졌던 연이은 예선들은 모두 당연히 승리했다.
운으로 이긴 것처럼 보이게끔 처리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연금술 스킬을 이용해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거나, 어떻게든 장외 패로 만들어 버렸다.
아무튼 그렇게 예선에 통과하고 나면 모두는 쉬지만 그는 쉴 틈도 없이 다른 일을 시작하여야 했다.
모습을 변화시키고 제에의 주점을 돌며 광신도들과 술판을 벌이며 ‘날 좀 죽여 주쇼.’ 하고 어디에 있을지 모를 연금술사들에게 연신 광고를 해야 했던 것이었다.
원래부터도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최소한의 잠만을 자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더 시간을 줄여 자신이 목표 대상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한 레온이었다.
숙소도 설정한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고급 여관을 잡아 놓느라, 밤새 아무런 암습이 없이 지나가면 허투루 나간 생돈에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한데 일주일 만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암살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파바밧!
레온의 손에 잡혀 빠지지 않는 비수를 버리고 케인이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레온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케인에게 말을 건넸다.
“자자, 흥분하지 마시고 잠시만 내 말을 들어 봐요.”
하지만 레온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파바밧!
“……함정이었군.”
라는 외마디 말과 함께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 케인이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슈우웅!
파밧!
케인은 곧장 객실의 벽으로 달려가더니, 문을 연성하여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케인은 아슬아슬하게 다른 집의 지붕을 밟을 수 있었다.
“어, 어? 아 씨!”
그러자 레온도 당황한 표정을 얼굴에 띤 채, 뒤늦게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투다다닷!
파바밧!
그렇게 두 사람이 달밤에 미친 사람처럼 지붕 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서서 내 말 좀 들어 봐!”
꿀꺽꿀꺽.
레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케인은 귀를 막고 무시한 채 품속에서 하얀 포션을 하나 꺼내 먹었다.
‘끈질긴 놈! 끝까지 쫓아오는군! 하지만 이동속도를 극한까지 올려 주는 이 포션을 먹은 난 못 쫓아올걸!’
파아아앗!
그의 말처럼 정말 물약을 먹자마자, 그의 이동속도가 엄청나게 상승하여 있었다.
그는 미리 확보하여 놓은 탈출로로 미친 듯이 질주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따돌렸으려나?’
하지만 다음 순간.
“히익!”
그는 경악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 저놈은 대체!’
물약을 들이켰음에도 불구하고 레온이 종전과 똑같이 코앞까지 따라붙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레온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야! 내가 그쪽보다 더 빨라, 도망가지 말고 얘기를 좀 들어 보라고!”
하지만 케인이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추격전은 계속되었고, 이윽고 그들은 도시까지도 빠져나가게 되었다.
그래도 경비병이 있으니 성문은 못 나가겠지 했던 레온의 추측은 이내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성벽에다가도 문을 연성을 할 수 있다니. 연금술 개사기 아니야?’
보수 중인 성벽으로 이동한 케인이 문을 연성하더니, 어렵지 않게 도시를 빠져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잠시 후, 두 사람은 제에의 근방에 있는 숲에 도달했다.
“아, 거참 왜 이리 공격적이야. 이 친구!”
레온이 그렇게 말하던 찰나.
휘익!
드디어 케인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레온이 원하는 대화를 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었다.
처척!
그가 손을 합장하며 스킬을 시전하였다.
“골렘 소환! 기어 골렘, 마크!”
그러자 지면에 소환진이 크게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마몬교의 경비병들이 있는 제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케인이 레온을 공격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위이잉!
소환진 속에서 골렘의 거대한 형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어라?’
한데 그것을 바라보던 레온의 눈이 순간 크게 확장되었다.
‘우워? 저게 골렘이야?’
그가 지금껏 보아온 일반적인 골렘은 대부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데 연금술사의 골렘은 그것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었다.
위잉-!
철컹-!
끼이잉!
스팀 펑크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강철로 된 기계 형태였던 것이었다.
‘거의 반은 로봇인데?’
레온이 흥미로운 눈빛을 띠고 있던 그때.
케인이 손가락으로 레온을 가리키며 공격 명령을 하달하였다.
“마크! 저 자식이다! 해치워 버려!”
그러자 아무런 감정이 없는 골렘의 붉은 외눈동자의 불빛이 레온을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온은 크게 긴장을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래 보아야 골렘. 내 속도면 따라잡지 못할걸.’
골렘의 가장 큰 단점은 느린 속도였다.
레온에게는 가장 손쉬운 상대 중 하나였던 것이다.
철컹-.
츄아아앙!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이 완전히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쿠콰가가!
강철 골렘은 암석 골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민첩하게 레온에게 접근해 왔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뿜어지는 위압감에 레온은 놀란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순간 레온의 등 뒤로 식은땀 한 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이거 좀 위험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