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데빌즈 네스트라는 단체가 연금술사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까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NPC들에게 대략적인 정보 정도는 파악한 유저가 있을지 모른다는 유호의 생각은 그렇게 사실로 드러났다.
게시글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 내려가는 유호의 눈이 연신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유호가 만족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게시글은 이거 하나뿐이지만, 생각보다 뛰어난 정보들이 담겨 있어.’
역시 양보다는 질이었다. 그의 말처럼 상당히 도움이 될 정보들이 담겨 있었던 것이었다.
그중 가장 핵심을 뽑아 보자면 두 가지였다.
1. 데빌즈 네스트는 암살자 집단이며,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은 피해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유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의 그 미소에는 안도감과 더불어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순간 유호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교도로 몰려 여의치 않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연금술사들은 저력이 확실히 있는 것 같은데?’
연금술사들이 암흑성국에게 핍박받는 상황인 것은 놀랍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금껏 연을 맺었던 다른 세력들.
즉 암살자, 본 네크로맨서, 샤먼 등등 모두가 이것보다 더 몰락했었으니까 말이었다.
한데 이번 연금술사들은 그들과는 다른 맘에 드는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그런 와중에도 자신들의 힘으로 착실히 복수를 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는 문장을 볼 때, 지위가 높은 대상도 처치를 했었다는 건데. 이거 연금술사들의 힘이 생각보다 꽤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겠어.’
제에는 암흑성국의 도시들 중에서도 상당히 발달한 곳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런 이곳에서 높은 직위에 있는 이들은 당연히 뛰어난 호위 병력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 이들의 암살을 성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데빌즈 네스트는 계속해서 암살을 성공하고 있었다.
‘분명히 매주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고 했으니까.’
그런데도 암흑성국이 아직까지도 그들을 쉽게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연금술사들의 저력을 보여 주는 부분이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힘을 보존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유호의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유호의 얼굴에 여전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연을 맺어야 하는 단체가 덜 망한 상태라는 것.
그 사실이 유호를 기쁘게 만들고 있었다.
참으로 소박한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겪었던 숱한 역경이 그를 이렇게 만들어 놓아 있었다.
‘흠, 그리고 다음은…….’
2.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문양의 상징을 피해자의 옆에 남기고 있다.
그리고 유호가 주목한 두 번째는 다름 아닌 데빌즈 네스트가 희생자 옆에 남겨 놓는다는 문양에 있었다.
“우로보로스.”
다음 순간 유호가 그 상징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문양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러면서 유호는 속으로 한 가지 결론을 더 정리했다.
‘……이걸 단체의 상징으로 삼은 걸 보면, 데빌즈 네스트가 연금술사들의 단체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겠군.’
유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뫼비우스의 띠 모양을 한 뱀 ‘우로보로스’는 현자의 돌 혹은 무한을 상징하는 연금술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이었기 때문이었다.
유호가 알케믹 소드맨으로 전직하며, 획득한 패시브 스킬 ‘우로보로스의 순환’이 아니던가.
게시글을 찾기 전만 하더라도, 그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자신이 찾는 ‘연금술사, 커티스’가 데빌즈 네스트의 수장으로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과연 그 구성원들도 연금술사일까 하는 것이었다.
한데 이로써 구성원들도 연금술과 연관이 깊으리라는 또 다른 추측이 머릿속에 들고 있었다.
단체의 상징을 수장 혼자서 정한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었다.
그런 다음, 유호는 작성자가 추가로 덧붙인 내용이 없는 지 살폈다.
‘쩝, 이후로 추가로 덧붙인 건 딱 한 번이 다군.’
하지만 아쉽게도 작성된 날짜 이후에 이루어진 내용 추가는 한 번밖에는 없었다.
그것도 한 달은 족히 지나 있었다.
아무래도 작성자가 데빌즈 네스트에 대해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분명 무언가 숨겨진 퀘스트 같은 것이 있을까 해서 파 보다가, 별 다른 것이 나타나지 않으니 거기서 접은 것이리라.
아무튼 작성자가 추가한 정보는 바로.
‘호오, 암살된 리스트로군.’
데빌즈 네스트가 여태껏 처리해 온 이들에 대한 정보였다.
[데빌즈 네스트 추가정보]
1. 이교도 조사관, ‘호가딘’
종교재판소에서 일하던 NPC로, 숨어 있는 이교도들의 장소를 색출해 내는 데 달인이었다고 함.
새벽 외진 골목에 강철로 된 둔기에 얻어맞아 죽은 채 발견.
2. 이교도 척결 부대 소속 병사 ‘밀리트’
여러 이교도들의 소탕전에 참전했었음.
단골 술집에서 전장에서 자신이 세훈 공훈을 자랑한 다음 날. 본인의 자택에서 독살된 채 발견.
3. 광신도 상인, ‘데릭’
마몬교에 항상 거금을 기부하던 상인.
4.(…….)
5.(……중략……)
마치 죽음 공책에 적혀 있는 것처럼, 추가된 정보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망 원인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유호는 몇십 명이 넘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읽어 보고는 패턴을 파악해 보았다.
‘이거 연금술사들에게 직접 해를 입힌 자들이나 입힐 것으로 예상되는 자들, 그리고 간접적으로라도 거기에 도움을 준 자들을 암살하고 있는 것 같군.’
그렇게 데빌즈 네스트의 목적에 대한 분석은 끝이 났다.
그렇다면 이제 유호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가장 큰 것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흐음.”
그건 바로, 어떻게 데빌즈 네스트를 찾느냐는 것이었다.
그 순간부터 유호가 머리를 바쁘게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한데 그도 그럴 것이, 암흑성국도 잡아내지 못한 이들을 찾아낼 방법을 떠올리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한참을 끙끙거리며 떠올리던 유호는 수중에 추적할 별 다른 단서가 없는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실상 몇 가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생각나는 건 하나뿐인데 말이지.’
그러곤 이어진 다음 순간, 가장 데빌즈 네스트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건 바로 토너먼트를 8강까지 진출한 후, 암흑성국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했다.
암흑성국이 지니고 있는 데빌즈 네스트의 정보를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기사단에 들어간 후, 데빌즈 네스트를 찾는 임무에 직접 지원을 한다든지. 아니면 암흑성국의 정보망을 이용해 보는 것이 제일 좋긴 하지.’
그들도 여태껏 그냥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 현재 데빌즈 네스트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암흑성국의 정보국일 것이었다.
그리고 암흑성국의 소속이 되면 당연히 그 정보들을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말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떠올린 유호의 얼굴은 썩 밝지 않았다.
그는 끄응, 하는 신음성을 흘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흠, 괜찮은 방법이기는 한데…… 이것도 단점이 없는 게 아니라서.’
일단 시간이 문제였다.
현재 토너먼트에서 당장 1차 예선이 끝난 시점이지 않은가.
8강전이 마무리되려면 너무 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정보망을 통해 자신이 단서를 찾을 확률이 100%는 아니라는 것 또한 컸다.
분명히 그들이 모아 놓은 정보 중에 놓친 것들이 있기는 할 터였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있다면 찾아낼 자신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보들 중에 도움이 될 단서가 아예 없을 확률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끄응.”
순간 유호가 신음성을 토해 냈다.
‘흠, 그럼 이걸 어쩐다.’
좀 더 빠르고 확실하게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그는 그 생각 하나로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답답한 마음에 유호가 순간 표적이 되었던 상대들의 리스트를 다시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어라, 잠깐만.’
한데 그때였다.
무슨 이유에선가 유호의 눈빛이 이채를 띠어 있었다.
한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후후후, 그래. 이게 더 확실하고 손쉬운 방법일 수 있겠어!”
이내 자신만만한 표정이 된 유호가 방 안의 캡슐로 이동해 좌석에 몸을 뉘였다.
위이잉!
그러곤 재빨리 게임 속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 * *
그로부터 잠시 후.
“으하하하! 한 잔 더.”
“마시고 죽자!”
제에의 주점 ‘갈까마귀’ 내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곳의 특징이 하나 있다면, 제에의 수많은 주점 중 가장 성황리에 운영이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저들뿐 아니라 수많은 NPC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데 수많은 NPC 그룹들 중 한 곳이 유독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야야, 저기 저 NPC들이 마몬교 광신도들 맞지?”
“쉿, 저놈들에 대해선 말도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마. 잘못하다간 종교재판소에 끌려간다니까.”
“……그러고 보니 저놈들 주변을 계속 둘러보는 거 보소. 꼬투리 하나 잡아서 끌고 갈라는 건가 보다.”
유저들의 대화 내용처럼 그 NPC 그룹은 바로 마몬교의 광신도들이었다.
다섯 명인 그들은 한쪽 어깨에 마몬교의 상징이 그려진 완장을 찬 채, 술을 마시며 주위를 음험한 눈빛으로 살피고 있었다.
그 완장은 종교재판소에서 몇몇 이들에게 내려 주는 것으로, 이교도로 의심이 가는 이들을 재판소로 잡아 올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이번에는 광신도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려오고 있었다.
“근데 파쿤은 어디에 있는 거야? 왜 안 와?”
“몰라, 아침에 확실한 이교도 놈을 찾아냈다고 잡아 넘기고 온다더니,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
“설마, 멍청하게 당한 것 아냐?”
“끌끌, 그럼 마몬님의 곁에서 편히 쉬고 있겠지.”
한데 그때였다.
주점에 있는 다른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뚜벅뚜벅.
“안녕하십니까.”
겁도 없이 그들을 향해 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말을 건넨 것이었다.
광신도 다섯 명 모두 아무런 대답 없이 그 남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돼지 코가 인상적인 못난 얼굴에 배불뚝이.
하지만 값비싸 보이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그는 거부처럼 보이고 있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다가온 남자가 말을 다시 건넸다.
“허허, 마몬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을 보니 술을 대접하고 싶어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술을 대접하겠다는 남자의 말에 광신도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껄껄, 우리의 고생을 알아주다니.”
“흐흐, 잘 마시겠소.”
“와서 앉았다가 가시게.”
“오오, 그렇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러고 난 후, 남자는 광신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자는 광신도들의 말에 하나하나 커다랗게 리액션을 해 주며 비위를 맞춰 주었다.
한데 그렇게 술잔이 오고가며 분위기가 무르익던 그때.
남자가 갑자기 술에 잔뜩 취한 얼굴로 가게에 있는 모두가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사실 저에게 이교도들, 정확히는 연금술사들이 잔뜩 모여 숨어 있는 곳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흐흐, 이걸 며칠 후 모든 사업상 업무가 끝나는 날, 종교재판소에 가서 소상히 전부 이야기를 드릴 생각입니다.”
남자의 말에 광신도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하지만 사실 신앙심으로 가득 차 보이는 남자의 속내는 달랐다.
‘쩝, 소문이 널리널리 잘 퍼져야 할 텐데.’
사실 그 남자의 정체는 바로 레온이었다.
스킬을 사용해 모습을 다시 한 번 변화시킨 것이었다.
게임에 들어오기 전, 현실에서 레온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발상의 전환은 바로.
‘내가 찾을 이유가 뭐가 있어! 그쪽이 나를 찾게 만들면 되지!’
데빌즈 네스트 쪽에서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자.라는 것이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자신이 눈에 띄는 행동을 반복하여 암살 대상으로 선정이 되고, 그들이 자신을 죽이러 오게끔 만드는 방법인 것이었다.
‘자, 연금술사들아! 얼른 날 죽이러 와라!’
오랜만에 마조히스트 모드가 된 레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