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97화 (197/332)

# 197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전력 질주를 한 레온은 잠시 후.

“후우, 후.”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 틈에 숨은 채, 거칠어진 자신의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도주는 급하게 결정이 되었지만, 그 진행 과정은 순조로웠다.

이처럼 위급한 상황이 펼쳐졌을 시, 이용할 도주로 정도는 따라오며 미리 파악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스윽.

그러던 그때, 레온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어 아직 추적자가 따라붙어 있는지 살폈다.

이내 확인을 마친 레온의 표정이 밝아졌다.

‘좋아, 포기했나 보군.’

광분하며 미친놈처럼 자신의 뒤를 쫓던 광신도 NPC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중해서 귀를 기울여도 자그마한 발자국 소리 하나조차 들리지 않는 걸 보아하니, 놈은 확실히 자신들을 놓친 모양이었다.

“휴우, 다행이다.”

그러자 레온은 몸을 벽에 기댄 채, 안도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거의 최초의 일이었다.

그가 전투에서 도망을 친 후에 이렇게 기뻐하는 일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도망치기로 결정하던 순간에도 말했듯, 종교재판소에서 전투가 진행됐을 시 그에게 벌어질 여파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지체되어서 재판소에서 나온 이교도 심문관과 전투가 벌어지게 됐다면. 그 순간 바로 암흑성국의 공적으로 낙인 찍혔을 거니까 말이야.’

하지만 당한 것은 꼭 열 배로 되갚아 주는 것이 좌우명인 레온은 기필코 후에 종교재판소 놈들에게 한 방을 먹여 주겠다 다짐하였다.

한데 그때였다.

“……이봐.”

순간 레온의 옆에서 착 가라앉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자연스레 레온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자신의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바로 옆에 매섭기 짝이 없는 눈빛을 보내고 있는 세토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레온과 세토의 눈빛이 잠시간 교차한 뒤, 그녀가 레온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제 좀 놓지?”

라고 말이었다.

레온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다가.

‘헉!’

이내 자신의 손이 아직도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제, 제가 너무 급해 가지고.”

그러면서 레온은 속으로 그녀가 놀라진 않았을까 걱정을 하였다.

자신의 현재 모습은 어느 범죄자와 견주어도 결코 지지 않을 흉악한 얼굴의 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레온의 염려와는 달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눈빛으로 그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아직도 민망한지 연신 뒷머리를 긁적이는 레온이 슬쩍 그녀에게 말을 꺼내었다.

“아, 그,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안 도와주셨으면 큰 낭패를 볼 뻔했네요.”

“신경 쓰지 마라.”

“……저, 세토라고 하셨죠? 나중에 이번에 신세 진 것은 꼭 갚겠습니다.”

“괜찮다.”

레온의 말에 그녀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단답식으로 대답을 이어 갔다.

……한데 그 와중에 레온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지.’

무슨 이유에선가 그녀가 그의 얼굴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당혹스러운 지 레온은 속으로,

‘……혹시 산적 스타일이 취향인가?’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싸아-.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었고, 공간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흐른 후.

레온은 한참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고생을 하다가 슬쩍 작별 인사를 건네었다.

“크흠, 아, 저, 그럼 전 이만 가 보려고 하는데.”

그에 세토가 말없이 살짝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안녕히.”

그러자 레온은 속으로,

‘거참, 겁나 차가운 여자네.’라고 생각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급히 그 자리를 떠나갔다.

한데 그때마저도, 그녀는 레온이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레온이 말한 것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순간 그녀가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코르부스 길드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이 틀린 건가.’

그녀는 레온을 바라보며 냉철하게 파악을 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도망을 치다니, 실력도 부족한 것 같고. ……근데 저런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한데 그렇게 그녀가 레온에 대해 낮게 내린 평가를 되짚고 있던 그때.

투다다다.

레온이 사라진 방향의 반대편에서 갑작스레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여기 숨어 있었구나, 이 이교도 년!”

그들을 쫓던 광신도 남자가 시뻘게진 얼굴로 그녀에게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놀란 기색이 없어 보였다.

파바밧!

“죽여 주마!”

순간 적이 검을 꼬나 쥔 채, 그대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그저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데 그러던 그때였다.

위잉!

철컹-.

그녀의 팔목에 갑자기 아이템 하나가 장착되었다.

눈에 익은 반달 형태의 디스크였다.

처척-.

그녀가 디스크의 가운데에 꽂혀 있는 카드 덱에서 한 장을 뽑아들었다.

그러곤 곧장 스킬을 시전하였다.

“함정 카드 발동. 죽음의 파괴 바이러스.”

파아앗!

그 말이 끝난 순간, 어두운 보랏빛의 사이한 기운이 카드에서 뿜어져 공간을 뒤덮었다.

“뭐, 뭐야!”

다음 순간, 적의 경악에 찬 반응이 쏟아졌다.

스멀스멀.

안개처럼 퍼진 보랏빛 기운이 그의 모든 구멍이란 구멍 속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끄, 아아아!”

그러자 달려들던 그는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세토.

그녀의 제대로 된 풀 닉네임은 카이 바세토로.

바로 레온이 자신의 토너먼트를 끝낸 후, 옆 무대에서 보았던 가면과 로브를 감싸고 있던 이였다.

그리고 마침내 잠시 후.

추욱-.

한순간에 회색빛 시체가 되어 버린 광신도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돌려 레온이 사라져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여전히 차가운 눈빛을 띤 채,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래, 어차피 상위 라운드에 올라오다 보면 어차피 만나게 되겠지. 싸워 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거야.’

* * *

위이잉!

방 안에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이어 캡슐의 뚜껑이 열리며 올라갔다.

그러자 그 안에서 유호의 모습이 나타났다.

“에고고.”

이어 캡슐의 좌석에서 몸을 일으키던 유호가 신음성을 토해 냈다.

“끄응, 요새 무리를 했나. 나올 때마다 이러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탓이었다.

세토와 헤어진 후, 유호는 곧장 보상으로 받았던 티켓을 이용해 숙소로 이동해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자 마을에서 연금술사에 대한 단서를 더 찾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 그는 일단 밖에서 찾아보자고 결정을 내렸고, 곧장 로그아웃을 한 것이었다.

스윽.

“……어디 보자.”

유호가 현실에 나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시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유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2차 예선전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았네.”

함정에 빠져 허비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시간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럼 이제 지금부터 그가 할 일은 하나였다.

순간 유호가 광신도 NPC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커티스라면 분명히 제에에서 암약하는 사교도 집단 ‘데빌즈 네스트’의 수장!

자신이 쫓던 연금술사 커티스가 소속되어 있는 ‘데빌즈 네스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전에 다른 급한 한 가지 일을 해결해야 할 듯싶었다.

꼬르륵.

순간 유호의 배 속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유호가 한 손으로 배를 문지르더니, 이내 입맛을 다시며 말을 꺼냈다.

“에휴, 일단 밥 좀 먹자.”

그리고 잠시 후.

우걱우걱.

유호는 걸신들린 것처럼 음식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이전처럼 콘프레이크로 대충 때우는 것이 아니었다. 탁자에 온갖 반찬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지난번 어머니가 두고 간 반찬들이었다.

삐빅.

그리고 그렇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으면서 유호는 바로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당연하게도 게임 채널인 OGTV를 보려는 목적이었다.

한데 다음 순간, 화면을 바라보던 유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호오?”

한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19세 이상 시청 가능 프로그램입니다. 성인 인증이 필요합니다.]

영상은 나오지 않은 채, 느닷없이 성인 인증을 해 달라는 문구만 떡하니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억.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이기에?’

먹던 밥숟갈도 내려놓은 채, 유호가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띠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꿀꺽.

그러다가 목구멍으로 침을 꼴깍 삼키고는,

‘엣헴, 성인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니. 분명히 더욱 유익한 방송일 게 틀림없지, 암.’

라고 생각하며 바람보다 빠르게 곧바로 인증을 완료하였다.

그렇게 짧은 인증 과정이 끝이 나자, 프로그램 영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에계?’

이어 유호의 잔뜩 실망한 반응이 이어졌다.

[암흑성국의 성인 콘텐츠 집중 탐구!]

[혈석 등급 암흑투기장, 베스트 씬 30!]

그가 예상한 유익한 내용(?)의 프로그램이 전혀 아니었다.

방송에 걸려 있던 성인 제한은 암흑성국의 콘텐츠를 설명하기 때문인 듯했다.

‘에잉, 그냥 예선전 하이라이트 모음이네.’

유호가 참가한 암흑투기장의 예선전에서 나온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모아 소개하는 내용인 것 같았다.

한데 그때였다.

“어, 어?”

유호가 화면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란 반응을 만들었다.

그의 눈에 새롭게 바뀐 하이라이트 영상의 제목이 보이고 있었다.

[암흑투기장 역사상 가장 운 좋은 사나이]

그리고 이어진 영상 속에서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남자가 상대방에게 달려들다가 미끄러지더니 그대로 상대의 검에 꽂혀 사망하는 장면이 나왔다.

유호가 손가락으로 그렇게 상대를 이기고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로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고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저건 나잖아?’

그랬다. 유호의 전투 장면이 방송에 노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이어진 레온의 반응이 독특했다.

“하하, 이거 대박인데?”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좋았어, 이런 영상이 TV에 나왔으면 혹시라도 나한테 걸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지겠어!’

이게 웬 떡인지, 방송국에서 알아서 높은 배당률을 유지하게끔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삐빅.

레온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TV를 껐다.

그러곤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손을 풀었다.

‘그럼 이제 슬슬 일을 해 볼까?’

슬슬 정보를 찾기 시작해 볼까 생각한 것이었다.

유호는 곧장 캡슐로 이동한 후, 판트라넷에 접속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자신의 예상을 떠올렸다.

‘연금술사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데빌즈 네스트에 대한 정보는 있을 거야.’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NPC들의 반응을 볼 때, 연금술사들과 연관이 있는 것은 몰라도 자신이 묻고 있는 것에 대해 무언가 조금은 알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 집단에 대해서 NPC들에게 슬쩍 건네 들은 유저가 있을 듯한데.’

그는 바쁘게 판트라넷의 게시글들을 살피며, 정보를 수집했다.

한데 운이 좋았다.

‘오오!’

다른 때보다 훨씬 빠르게 정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데빌즈 네스트(?)란 단체가 등장했다네요.]

제에의 인물들을 암살하고 있어 골치를 썩이고 있는 의문의 집단이네요.

지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매주 한두 명씩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쉬쉬하고 있지만, NPC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으로 감돌고 있는 듯.

희생자 옆에 꼭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묘한 문양의 상징을 남기고 있다고 하네요.

암흑성국은 마몬교에 반발하는 이교도들의 집단 혹은 암살자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단정 짓고 있답니다.

-추가 정보 있으면 덧붙일게요.

유호는 찾고 있던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찾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