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금방 끝나겠지 하며 알케믹 소드맨의 직업 퀘스트를 손쉽게 생각했던 레온은.
‘이놈들, 대체 왜 이러지?’
그러나 잠시 후, 그러한 자신의 성급했던 결론을 전면 수정해야 함을 깨닫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혹시 커티스라고 아시나요? 연금술사인데, 제가 만날 일이 좀 있어서요.”
라는 그의 질문에 대한 NPC들의 다채로운 반응들이 하나같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던 탓이었다.
“……!”
낯빛이 하얗게 질리며 말없이 그저 놀라기만 하는 행인.
“그런 사람 모르니, 장사 망치지 말고 얼른 가슈.”
소금을 뿌리며 가게에서 재빨리 레온을 내쫓는 가게 주인.
“엄마, 엄마, 이 아저씨가 연금……. 읍!”
급히 아이의 입을 막고 옆구리에 끼운 채 도망가는 아주머니.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는 점점 지쳐 가고만 있었다.
‘이거 왠지 느낌이 싸한데.’
순간 레온이 답답함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영 좋지 않은 예감마저 고개를 들고 있었다.
‘끄응, 그렇다고 해도 방법이 없잖아.’
하지만 그의 말처럼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현실의 커뮤니티에 정말 아무런 정보도 없었으니까.
‘뭐 이렇게 들쑤시다 보면 하나 얻어 걸리겠지.’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한 레온은 NPC들에게 정보를 찾는 데에 오히려 더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역시나 그렇다고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다시금 NPC들에게서 부정적인 반응들만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꽤나 긴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보게.”
레온을 부르는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좀 말해 줘 봐요. 알고 있는 것 같구먼, 뭘 이리 숨겨 싸.”
하지만 레온은 그때에도 다른 NPC 한 명과 입씨름을 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 번 더 동일한 인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젊은이.”
“으, 으응?”
그제야 자신을 부르고 있는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레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굉장히 순박한 인상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채, 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요?”
레온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허허, 그래. 맞네.”
그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레온은 그를 빠르게 위아래로 살피곤, 속으로 생각했다.
‘뭐지? 딱 보아도 NPC 같은데.’
“……아, 네. 근데 누구신지?”
경계심이 서 있는 레온의 말에 남자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놀라운 말을 건네 왔다.
“허허, 다름이 아니고. 자네가 찾는 이를 아무래도 내가 찾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일세.”
‘호오?’
이게 웬 떡인지, 먼저 찾아와 주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레온이 수소문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다가온 것 같았다.
대화가 이어졌다.
“아까부터 보니, 연금술사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맞는가?”
“아, 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신가요?”
“하하, 암, 잘 알지. 연금술사들은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니 말일세. 음, 커티스라는 이름은 처음 듣지만, 친구들 중 아는 이가 분명히 있을 걸세.”
“……아, 그렇습니까?”
대화가 지속될수록 잔뜩 들떴던 레온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흐음, 왜지. 이 꺼림칙한 기분은.’
갑작스레 호의를 베푸는 이 선량해 보이는 NPC가 영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흐음, 지금까지 살면서 친구 팔이 하는 놈치고 사기꾼 아닌 놈을 본 적이 없는데.’
레온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자, 날 따라오게.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기는 하지만 친구들에게 데려다주겠네.”
그는 심지어 연금술사에게 데려다준다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레온은 갈등에 빠졌다.
‘흠, 이걸 어쩐다.’
수상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여태껏 찾은 이들 중 유일하게 정보를 지니고 있는 듯한 NPC였다.
그렇다고 또 무시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잠시간 고민하던 레온이 이내 그에게 대답했다.
“네,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허허, 실례라니. 별일도 아닌 것을 자, 이리로 오게.”
레온은 일단 그를 따라가 보기로 하였다.
‘일단 뭐가 됐든 단서를 찾는 게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긴장과 경계심은 더욱 곤두세웠다.
만일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면 곧장 도망치자고 생각했다.
레온이 남자를 쫓아가며 조심스레 자신의 반지를 매만졌다.
새롭게 얻은 도주용 스킬이 그곳에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은 성큼성큼 이동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로로 걸어가다가, 이내 인적이 드문 좁은 길목에 들어서고 있었다.
“허허, 연금술사 친구들의 취향이 특이하다네. 이런 후미진 곳을 좋아하다니 말이네.”
자연스레 레온의 얼굴이 살짝 굳자, 남자가 또다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처척-.
이윽고 앞서 걸어가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자, 다 왔구먼. 이곳일세.”
레온이 건물을 훑어보았다.
외견상으로는 그럴듯했다.
지금도 내부에서 연금술사들이 실험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던 것이었다.
‘쩝, 아리송하네.’
레온이 그렇게 주춤거리고 있자, 남자가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허허, 얼른 들어가 보세.”
남자의 말과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운 나머지 순간적으로 레온의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애매하긴 한데, 쉽게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뭐 도망치는 거야 어렵지 않으니. 들어가 볼까?’
한데 그렇게 레온이 끝까지 고민하던 찰나.
“……나라면 절대 안 들어갈 거야, 거기.”
갑자기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온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누구?’
거기에는 갈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하고 있는 미인이 서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마주친 적 없는 여인이었기에, 레온은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의문의 여인이 순간 한마디를 덧붙였다.
“조심.”
그러자 일순간 갑자기 등 뒤가 서늘했다.
‘읏!’
쐐애애액!
바로 다음 순간, 파공성과 함께 등 뒤에서 암습이 쏟아졌다.
파바밧!
하지만 그녀의 조언을 듣자마자 바로 바닥에 몸을 구른 레온이 간발의 차로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먼지투성이가 된 채, 레온이 새롭게 나타난 여인의 지근거리에서 일어나 전투 자세를 갖추었다.
기습을 해 온 이는 짐작한 일인이었다.
‘칫, 함정이었나.’
“빌어먹을 이교도 자식. 동료가 있었다니, 운이 좋았구나.”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악마의 그것처럼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그는 번들거리는 살의와 분노로 가득한 눈빛을 띤 채로 레온에게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자 레온 또한 분노를 토해 냈다.
“친구한테 데려다 준다고 하다가, 갑자기 칼침을 놓으려고 하는 건 무슨 경우야. 이 썩을 놈의 자식아!”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어 준 후, 레온은 속으로 남자가 한 말을 곱씹었다.
‘나보고 이교도라고? 무슨 소리지?’
갑작스레 등장한 기묘한 단어였다.
그때 상황 파악을 위해 머리를 바쁘게 굴리던 레온은 이내 고개를 돌려 도움을 준 여인에게 슬며시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리온입니다.”
“세토.”
짧은 통성명 시간을 가지며, 레온은 자신의 이름을 세토라고 밝힌 여인을 매의 눈으로 빠르게 살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적 같지는 않지만, 경계는 늦추지 않으면서, 일단 저 자식을 처리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아야겠군.’
갑작스레 등장해 도움을 준 그녀도 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레온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근데 저 망할 놈의 자식은 날 왜 여기로 데려온 거야?’
다시금 레온에게 그런 의문이 떠오르고 있던 그때.
친절하게도 NPC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정보를 쏟아 내었다.
“흥! 커티스라면 분명히 제에에서 암약하는 사교도 집단 ‘데빌즈 네스트’의 수장! 그런 자를 만나고 싶다고 찾아다니다니. 이 정신 나간 이교도 녀석! 당장에라도 쳐 죽이고 싶구나!”
그의 말을 듣자, 레온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암흑성국의 도시 ‘제에’에 숨어 있는 연금술사 커티스를 찾아가자.
‘참나, 숨어 있다는 게 이런 뜻이었어?’
그제야 퀘스트의 내용에 적혀 있던 ‘숨어 있는’이라는 표현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NPC들이 계속 피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차갑게 가라앉은 여자의 말이 이어지자, 레온은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 발로 종교재판소로 걸어 들어가려고 하다니, 무슨 생각이야? 신종 자살 방법이야?”
그 말을 들은 레온의 눈동자가 확연하게 커졌다.
‘저 건물이 종교재판소라고?’
종교재판소.
마몬교의 이단 심문관들이 이교도를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소로, 실상은 고문실에 다르지 않았다.
행해지는 처벌 수위가 워낙 잔인하다 보니 전혀 티 나지 않게 비밀스럽게 만든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순간 레온이 자신이 들어갈 뻔했던 종교재판소 건물을 다시 바라보았다.
‘소름 돋네.’
그러자 아까 보았던 건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보였다.
식은땀 한 방울이 등줄기로 흘러내렸다.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 저 문을 열고 들어갔으면 그대로 이교도 심문관들에게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즉결 처형되었을 거야.”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암흑성국의 종교재판소에서 치러지는 일들은 끔찍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뭐, 유저에게 고문까지는 안 하겠지만.
기사단원과 맞먹는 힘을 지닌 이단 심문관들에게 패배라도 하여 수감이 되었다면, 그 즉시 토너먼트는 실패로 돌아갔을 터였다.
‘게다가 제에를 담당하는 이교도 심문관 중에는 그 유명한 모즈구스도 있잖아. 이거 생각 없이 들어갔으면 제대로 꼬였을 수도 있었겠네.’
그 순간 레온은 자신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NPC에 대한 살의가 차올랐다.
한데 그때였다.
‘앗! 잠깐만!’
당장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고 온 NPC를 박살을 내려던 레온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문제점이 떠올랐다.
‘……이교도 심문관이면 어찌 되었건 제에의 귀족이나 마찬가지잖아. 헉, 여기서 저놈들과 엮이면 나중에 낭패를 볼 수 있겠는데?’
그의 말을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알다시피 그는 기사단을 들어가야만 했다.
한데 마몬교의 신관들과 기사단은 암흑성국을 이끄는 두 집단 중 하나였다.
한데 여기서 전투를 벌여 신관들과 척을 지면, 기사단에 들어가서 어떻게든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다분했던 것이었다.
‘이거 싸우면 안 돼.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된 레온은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덥석.
“……?”
갑자기 옆에 있던 여자의 손을 붙잡더니, 당황한 표정의 여인을 데리고는.
“어, 어! 어딜 내빼냐, 이 이교도 놈!”
투다다다!
부리나케 도망을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