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93화 (193/332)

# 193

레벨 제한이 없이 진행되는 혈석 토너먼트가 확실히 여러 곳에서 이슈가 많이 되었던 것 같기는 했다.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들어찬 관중석과 여러 게임 방송사에서 허공에 띄워 놓은 취재용 수정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참가자들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콜로세움 안에는 수많은 정사각형 모양의 결투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예선전을 치러야 하는 참가자들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그래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부분의 예선전들의 전투는 결판이 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젠장! 매칭을 어떻게 이렇게 해 주는 거야!”

“제작사의 농간이다!”

“히익! 님 제발 살살 좀 해 줘요.”

여기저기서 참가자들의 불만 어린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랬다. 전원의 상대가 랜덤으로 매칭이 되다 보니, 등급의 격차가 나는 참가자끼리 맞붙는 일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136번 결투장의 승자는 수정 등급의 모라타 선수입니다!”

“324번 결투장의 승자는 황금 등급의 네이런 선수로 결정이 됐습니다!”

등급의 우위에 있는 참가자들이 상대를 압도하는 양상이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리는 전투가 속출하고 있었지만, 그 짧은 순간 속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콰직!

“크아악!”

섬뜩한 효과음과 함께 한 참가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난장판이 된 결투장 안에서 한 참가자가 만신창이 신세가 되어 있었다.

어찌나 전투 과정이 끔찍했던지, 지켜보던 관객 중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혈석 토너먼트 자체가 19세 이상으로 한정되는 성인 콘텐츠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너무나 잔인하게 전투를 벌어진 상황이었다.

“낄낄, 그게 다야? 더 발악해 보라고, 쓰레기.”

그때, 상대방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주인공인 연두색 머리의 남자가 혀를 날름거리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자가 그 유명한 쿠단이야?”

“으으, 미친 또라이라더니, 진짜 딱 맞네.”

“참나, 백금 등급 토너먼트에서 매번 4강 이상에 오르는 놈이 여길 나오다니.”

“그러니까 말이야. 혈석 토너먼트와 같은 기간에 백금 등급 토너먼트가 열리니 거기를 포기하고 나올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된 건 어우쿠라는 건가?”

“……말 좀 작작 줄여라.”

등장과 함께 우승 후보로 점쳐지는 악질 PK범인 쿠단을 비롯하여, 백금 등급의 유저가 셋이나 넘게 참전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시킬 만큼의 압도적인 실력 격차를 보여 주는 무대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러던 그때.

백금 등급의 유저가 아니었음에도 그에 못지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무대가 또 하나 있었다.

순간 사람들의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흐흐, 역시 양학이 제일 재밌지”

“어이, 이봐, 최대한 늦게 죽이라고!”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 산적같이 생긴 거구의 두 남자가 대치를 하고 있었다.

관객들이 흥미를 띠고 보는 건 라돈과 리온.

즉 레온의 무대였다.

백금 등급만큼이나, 혈석 토너먼트에서 유일한 황동 등급의 유저인 레온의 전투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상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앞서의 반응들과 같이 레온이 처참하게 뭉개지는 광경을 보고 싶은 것뿐이리라.

그리고 그 순간.

결투장에 있는 두 사람의 분위기는 완전히 상반되어 있었다.

여유만만인 라돈에 비해 레온은 잔뜩 졸아붙어 있었던 것이다.

한눈에도 레온은 긴장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피식.

그때 라돈이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꺼냈다.

“끌끌, 어이, 너무 그렇게 티 나게 쫄면 어떻게 하나. 상대 기운 빠지게 말이야.”

“흐, 흥! 쫄기는 누가 쫄아!”

레온이 말을 버벅거리며 대답했다.

“호오, 그러면 진짜인지 한번 확인해 볼까!”

파바밧!

그러자 다음 순간, 붉은 무복이 펄럭이며 맹렬한 기세로 라돈이 레온에게 달려들었다.

쿠궁!

쿵!

한 발짝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결투장의 바닥이 움푹 움푹 파이며 파편이 튀었다.

하지만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피할 준비도 안 한 채,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이윽고 어느새 코앞에 당도한 라돈의 스킬이 쏟아졌다.

“흐아아앗! 질풍권!”

퍼퍼펑!

까강!

깡!

거센 기운을 담은 주먹이 레온의 전신 곳곳을 가리지 않고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이제껏 치러 왔던 전투들과 달리 전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끙끙거리며, 검을 들어 공격들을 막는 데 치중하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 막아 내지 못하였다.

퍼퍽!

“쿨럭! 크윽!”

복부에 크게 한 방을 내어준 레온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레온은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빌빌거리며, 전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스켈레톤의 소환을 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으하하하! 개꽁승이로구나!”

그런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라돈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니까 어딜 황동 따위가 참가를 해!”

“분수를 모르면 큰코다치는 거다, 멍청아!”

관중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 댔다.

하지만 그 순간.

레온은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저 연신 거칠게 심호흡을 가다듬는 ‘척’을 하며 속으로,

‘하, 거참, 연기하기 힘드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랬다. 레온은 지금 라돈에게 정말로 밀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라돈을 제압하는 일은 어린 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 쉬웠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진짜 황동 등급의 유저처럼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었다.

먼저 첫째는 혈석 토너먼트가 이번 예선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내가 압도적으로 강하게 이겨 버리면, 내 배당률이 수직 하강할 거야. 돈 벌 기회를 내 발로 차 버릴 순 없지, 암.’

다음 경기에도 자신에게 돈을 걸어 큰돈을 벌기 위함이었던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혹시 모를 코르부스 길드의 정찰병이 있을지 모른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흠, 일단 제에에서는 스켈레톤들을 포함해 네크로맨서의 힘은 숨겨 놓을 필요가 있겠어.’라고 콜로세움에 들어서며 결정을 하였던 것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크헉, 헉, 뭐, 뭐야 이거?”

거친 숨소리와 함께 놀란 반응이 라돈 측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반격을 당한 것도 없는데 어느새 자신의 체력이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으니까.

순간 레온이 속으로 그런 그를 비웃으며 생각했다.

‘흐흐, 반사 대미지 개꿀.’

그랬다. 레온은 검으로 힘겹게 막아 내는 척하며, 주먹과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마다 리턴 브레이커 스킬을 사용하였던 것이었다.

완벽히 숙달하는 경지에 올라 스킬로 반사하는 대미지의 수치까지 조절할 수 있는 레온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그가 흥분에 차 있을 때 대미지를 축적시켜 놓았던 것이었다.

라돈이 당황에 차 있던 그때.

‘최대한 우습게 이겨야 돼.’라고 생각하며 레온이 상황을 새로운 전개로 이어 가기 시작했다.

파바밧!

일단 레온은 근접전을 하고 있던 상황을 빠져나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마치 돌팔매질을 하려는 것처럼 포즈를 취하더니 한 가지 스킬을 시전했다.

“골드 쓰레쉬!”

우우우웅!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레온의 손이 황금색으로 번쩍였다.

“하앗!”

다음 순간, 그대로 레온이 마치 야구 선수처럼 크게 궤적을 그리며 팔을 휘둘렀다.

휘이익!

쐐애액!

파공성을 내며 레온의 손을 떠난 무언가가 라돈에게 향했다.

라돈에게 날아들며 점점 거대해지고 있는 물체의 형상을 확인한 사람들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동전?’

‘코인?’

어느새 사람 머리만 해진 그것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동전이었다.

순간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스킬에 소모할 골드를 설정해 주십시오.

‘50골드!’

레온이 속으로 안타까움을 삼키며 금액을 설정한 찰나.

라돈이 자신에게 날아든 동전을 주먹으로 쳐 냈다.

퍼펑!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큭!”

그의 손에 닿자 동전은 폭음을 내며 터진 것이다.

골드 쓰레쉬 스킬은 소울 갬블러의 스킬 중 하나로, 실제 돈을 소모한 만큼의 대미지를 지니고 있는 폭탄 동전으로 변환시켜 적에게 투척하는 스킬이었던 것이었다.

“콜록콜록.”

라돈의 얼굴이 석탄이라도 묻은 듯 까맣게 변해 있었다.

“푸하하, 저건 또 뭐야. 동전 폭탄이야?”

“야, 저딴 투척용 아이템 하나 못 막을 거면 그냥 내려가라, 내려가.”

“저놈도 똑같네.”

“끌끌, 바보들의 행진이구먼!”

골드 쓰레쉬는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관중들의 시선에는 그저 우스꽝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연이어 관중석에서 웃음소리와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이, 이 자식이!”

어느새 자신까지 비웃음을 사게 되자 라돈이 콧김을 씩씩거리며 분노를 쏟아 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죽여 버리겠어!”

투다다다!

파바밧!

뚜껑이 열린 그가 레온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폭주기관차처럼 자신에게 달려드는 그를 바라보며 레온이 겉으로는 겁에 질린 표정을 연기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순간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마지막이다! 여기가 중요해!’

그가 자신의 코앞까지 달려든 찰나.

“성질 변화. 유리.”

레온이 혼자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스킬을 시전하고는.

“으아악! 살려 줘!”

곧이어 모두가 들리게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떨리는 손으로 대검을 붙들고 있는 채 말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미끄덩!

‘어라?’

라돈이 경악한 표정을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달려들던 라돈의 몸이 바나나라도 밟은 듯 휘영청 앞으로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관중들의 시선에는 그가 발을 헛디딘 것으로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바, 바닥이 갑자기 왜 이래?’

갑자기 그가 발을 디딘 곳이 마치 유리처럼 미끄럽게 변하여 있었다.

[성질 변화]

연금술을 활용해 자신으로부터 10m 범위 안에 존재하는 지형지물의 성질을 5분간 변화시킬 수 있다.

-현재 적용 가능 범위 : 50cm X 50cm

-현재 변화 가능 성질 : ‘고무’, ‘유리’, ‘스프링’

-변화 가능 성질의 교환은 다른 물질을 손에 올린 후, ‘성질 추출’ 스킬을 사용하면 가능합니다.

-숙련도가 오르면 변화 가능 성질의 숫자가 증가합니다.

-시스템상, 사용이 불가능한 지형지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레온이 연금술 스킬인 성질 변화로 그가 발을 디딘 결투장 바닥의 성질을 유리로 바꿔 버렸던 것이었다.

요란하게 미끄러진 그의 몸이 레온이 쥐고 있던 검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아, 안 돼!’

“끄아아아!”

비명을 내지르는 그의 눈에 레온의 얼굴이 살짝 비치었다.

‘아, 악마!’

그리고 다음 순간.

푸욱!

결투장에 섬뜩한 효과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