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다르칸’ 영지.
암흑성국과 가까이 위치해 있는 이곳은 코르부스 길드가 소유하고 있는 수많은 영지 중 한 곳이었다.
그들의 수도 영지인 ‘코르번’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번성한 곳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어떤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많은 유저들에게 상당한 이목을 끌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한데 오늘따라 다르칸의 영주실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그러던 그때, 코르부스 길드를 이끄는 세 명의 핵심 간부 중 하나인 말큐스가 영주 의자에 앉은 채, 골치가 아픈 듯 양쪽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짓누르고 있었다.
“후우.”
이윽고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눈앞을 응시했다.
그러자 강제로 바닥에 무릎을 꿇려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온에게 된통 당하고 아이템을 빼앗겼던 루친, 파반, 말롱의 삼인조였다.
그들은 레온에게 죽어 사망한 후, 귀환 위치를 찍어 놓았던 길드 영지인 다르칸으로 복귀하였던 것이었다.
영주실 내에 자리하고 있는 길드원들의 서늘한 창칼이 무릎을 꿇고 있는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순간 말큐스가 살기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삼인조를 노려보다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꼭 필요하다고 사정사정하기에 빌려주었건만, 그걸 받은 지 일주일도 안 되서 홀라당 팔아먹어?”
그의 목소리에서 참을 수 없는 노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한데 그가 그렇게 화가 날 만도 해 보였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겨우 제작에 성공한 귀중한 소환 아이템 중 하나를 눈앞의 삼인조가 팔아먹은 것이다.
물론 그들은 레온에게 빼앗긴 것이지만, 말큐스는 전혀 믿지 않고 있었다.
순간 삼인조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아, 진짜 억울합니다. 어디다가 가져다 판 게 아니라니깐요.”
“글쎄, 다른 놈한테 뺏겼다고요! 그 자식을 잡아야 돼!”
“그래! 본 드래곤을 지니고 있는 녀석을 찾아 보면 된다니까!”
그때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쏟아 내고 있는 삼인조를 바라보며 말큐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들, 언제까지 똑같은 헛소리를 계속 늘어놓을 작정이지.’
라고 말이었다.
세 놈들은 말을 맞춰 놓은 듯했다.
한데 지어내도 좀 믿을 만한 것으로 지어내야 할 터인데, 그들은 삼류 소설이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었다.
저렙 유저인 줄 알고 습격한 녀석이 갑자기 본 드래곤을 소환해 크라켄을 제압하더니, 갑자기 상위 랭커 검사들이 사용한다는 오러 스킬을 사용해 자신들을 무찔렀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 말큐스가 계속해서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는 그들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만.”
그러곤 앉아 있던 의자에서 걸어 내려와 성큼성큼 삼인조에게 다가갔다.
이어진 다음 순간.
퍼퍽!
퍽!
말큐스의 무참한 폭력이 쏟아졌다.
“크억!”
“악!”
삼인조가 비명을 내뱉었다.
분노로 얼굴이 붉어진 그가 온갖 욕설을 쏟아 내며, 주먹을 휘둘러 댔다.
“본 드래곤? 오러? 이 개자식들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면서 나를 농락해?”
그렇게 돼지 멱따는 소리가 한동안 영지실에 울려 퍼지다가 이윽고 멈추었다.
“으으.”
“쿨럭.”
삼인조는 엉망진창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말큐스가 그것을 보며 고갯짓하자 다른 길드원들이 그들을 끌고 나갔다.
“……어떻게 할까요?”
그때 옆에서 부영주를 맡고 있는 길드원이 말을 꺼냈다.
그러자 말큐스가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섬뜩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뭘 물어, 뼛속까지 뽑아 먹어야지. ……게임을 하는 건지, 노역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말이야.”
“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부영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한데 그때, 말큐스가 마치 뱀의 그것 같은 눈빛을 띠며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에에 저놈들이 말한 녀석이 있는지, 한 명 정도는 보내서 찾도록 시켜 봐.”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네, 형님. 허업!”
순간 자연스럽게 대답하던 부영주가 말실수를 한 듯, 자신의 입을 다급히 막았다.
찌릿.
아니나 다를까 말큐스가 부영주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부영주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똑똑.
한데 그때, 다행히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곤 다른 길드원이 불쑥 들어오더니, 그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말큐스 님, 페가수스 길드가 도착하였습니다.”
하얗게 질려 있던 부영주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오늘은 그들과 페가수스 사이에 연합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스윽.
처척.
말큐스가 슬며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흥, 오늘은 웬일로 부잣집 도련님들이 일찍 오셨군. 눈엣가시 같던 블루 아이즈를 빨리 처먹고 싶다는 건가.”
그의 어투에서 못마땅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가자.”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호위대를 대동한 채 페가수스 길드원들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였다.
부영주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북부 대륙에 새로운 피바람이 불어오려 하고 있었다.
* * *
암흑투기장이 열리는 제에의 콜로세움 옆에는 그에 못지않은 거대한 크기를 지닌 건물이 하나 더 자리하고 있었다.
“아, 거참 밀지 좀 맙시다!”
“이봐, 당신! 새치기하지 마!”
“뭐야, 여기 화장실 줄이야? 망할, 잘못 섰다.”
우글우글 모여든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문전에서 오랜 시간을 대기하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제에의 공식 도박장인 ‘이슈발 도박장’이었다.
내부에서는 현실의 카지노처럼 수많은 종류의 도박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어진 이래 한 번도 만석이 되지 않은 적이 없는 곳으로 유명했다.
오픈 당시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아슬아슬 걸치고 있어 언론의 지탄을 받았었지만, 엄청난 돈을 지니고 있는 NT의 로비를 통해 거짓말처럼 비판 기사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로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원활히 유지가 되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한국은 돈이 있으면 참 살기 쉬워지는 곳이었다.
“으하하하! 대박이다, 대박!”
“오늘 돈 좀 먹겠구나!”
한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유독 이용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더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건 바로 오늘 열리는 신규 콘텐츠, 혈석 등급 암흑투기장이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도박이 오픈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들뜰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봐, 자네도 혈석 투기장에 걸 거지?”
“흐흐, 당연한 거 아닌가. 오픈 전부터 혈석 투기장에 베팅하는 게 꿀이라는 소문이 잔뜩 퍼져 있었는데!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고!”
암흑투기장의 참가자에게 돈을 걸 수 있는 5층은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입장하려는 유저들끼리 싸움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마법 수정구에 쓰이는 수정을 얇게 펴서 만들어진 거대한 직사각형의 수정판이, 마치 스크린 경마장의 전광판처럼 한쪽 벽면에 펼쳐져 있었다.
그 수정판은 마치 현실속의 모니터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레벨당 등급표와 암흑투기장에 참가한 이들의 확정된 대진표가 떠올라 있었다.
[암흑투기장 / 레벨당 등급표]
황동 등급(1레벨~50레벨)
백은 등급(51레벨~100레벨)
황금 등급(101레벨~160레벨)
수정 등급(161레벨~199레벨)
백금 등급(200레벨~…….)
[블랑코(수정) VS 로도스(황금)]-배당률 보기
[리타(백은) VS 포요(백은)]-배당률 보기
[랑랑(수정) VS 매튜(수정)]-배당률 보기
(…….)
참가자가 워낙 많다 보니, 사람들은 매의 눈으로 자신들이 베팅할 참가자를 찾아내고 있었다.
투기장이 시작되면 베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빠르게 걸어야 했다.
“어라?”
“풉, 이놈은 뭐야?”
“와, 진짜 개나 소나 참전을 하는구나.”
그런데 참가자 중 한 명이 사람들의 비웃음을 유발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참가자 중 딱 한 명.
‘황동’ 등급의 유저가 있었던 탓이었다.
[리온(황동) VS 라돈(황금)] -배당률 보기
그러던 그때, 한 남자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이건 뭐 첫판부터 가볍게 먹고 들어가겠구먼.”
그는 바로 리온의 상대인 라돈이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이 인상적인 남자로 붉은 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160레벨의 격투가였다.
주변의 유저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일명 ‘꽁승’을 할 수 있게 된 그가 부러울 만도 할 것이었다.
라돈의 등급은 황금, 상대는 황동. 말이 안 되는 격차를 지니고 있었다.
한데 라돈의 배당률을 살피던 유저들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칫, 이거 배당률이 너무 낮잖아. 이겨도 본전이라니.”
“저 사람 고의 패배해서 승부 조작이라도 하고 싶겠어. 상대편 배당률이 엄청나네.”
“끌끌, 그니까. 안타깝구먼, 참가자는 본인의 승리에밖에 걸 수 없으니까 말이야.”
엄청나게 배당률이 차이가 남에도 어느 한 사람도 리온에게 돈을 걸지 않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군중들 사이로 5층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베팅을 담당하는 NPC에게 걸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번 베팅이 완료되면 절대로 무를 수 없습니다. 선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참가자 ‘리온’에게 베팅하신 것 맞으십니까?”
“응, 맞아. 이 돈 전부 걸게.”
“네, 접수되셨습니다.”
옆에서 그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딱 보아도 상당한 거액을 리온에게 걸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곧이어 주변 사람들이 혀를 차며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저 호구 새끼, 크크.”
“저런 놈들이 있다니까. 앞뒤 안 재고 높은 배당률만 보고 생돈 날리는 머저리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거나 말거나 돈을 건 남자는 왔던 것처럼 홀연히 도박장을 떠나고 있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말이었다.
‘흐흐, 꿩 먹고 알 먹고네. 이거 돈 좀 알차게 벌겠는걸.’
그 남자의 정체는 당연하게도 어느새 리온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있는 레온이었다.
그로부터 1시간 정도가 흐른 후.
“크흠, 흠흠.”
어느 곳에 있는 대기 통로에서 한 남자가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다 준비를 마친 남자는 자리하고 있던 통로를 성큼성큼 벗어났다.
그러자 다음 순간.
와아아아-!
귀가 먹먹하게 만드는 관중들의 엄청난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가 통로를 벗어나자 나온 것은 콜로세움에 있는 암흑투기장의 전투장이었다.
그는 바로 암흑투기장의 대전을 중계하는 캐스터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판테라 최초의! 서바이벌 토너먼트! 혈석 토너먼트르을 시작합니다!”
커다란 외침과 함께 레온이 참가한 토너먼트가 시작되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