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드래곤 피어는 공간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울음소리가 아닌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삼인조의 얼굴은 황망함.
그 자체였다.
‘사,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설마 우리 또 당하는 거야?’
하지만 그때.
레온은 무슨 이유에선가 살짝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흠, 크기가 줄어들면 드래곤 피어의 데시벨도 줄어드나 보네. 예상치 못한 역효과군.’
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정말 본 드래곤의 모습이 일전의 그것과 차이가 있었다.
본래 본 드래곤의 크기와 드래곤 피어의 위력은 지금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더 거대하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는 레온이 본 드래곤을 소환하는 동시에 몰래 사용하였던 ‘강제 변환’ 스킬의 효력 때문이었다.
[강제 변환]
연금술의 비의를 사용하여 적 혹은 자신의 소환수를 다른 형태로 변화시켜 버린다.
-적에게 시전 시 : 5초 동안 상대의 신체 부위 중 한 곳을 전혀 다른 형태로 변이시킵니다.
(변이 가능 신체 부위 목록 / 자세히 보기)
-소유 중인 소환수에게 시전 시 : 소환수의 크기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거대화 시 : 소환수의 물리 대미지 방어력과 마법 대미지 방어력이 15% 상승합니다. 소환수의 물리 대미지 공격력이 20% 상승합니다.)
(축소화 시 : 소환수의 이동속도가 80% 상승합니다. 소환수의 회피 성공률이 14% 상승합니다.)
흑염룡의 거태도를 평범한 모습으로 뒤바꾼 형태 변화 스킬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강제 변환’은 소환수의 크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효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레온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쩝, 그래도 평소 크기면 이곳에서 소환조차 못 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연금술사의 스킬 중에 소환수의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곳 하수도가 제에의 모든 하수를 처리했던 거대한 규모의 공간이기는 하였지만, 그래 보았자 고작 하수도였다.
일전에 레온이 소환하였을 때의 거대하기 짝이 없는 본 드래곤의 크기는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그대로 꺼내었다면, 대장간에서 소환하였을 때처럼 천장 벽을 뚫어 버렸을 것이었다.
그러면 전혀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고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크기는 공중으로 날아다닐 정도는 안 되나, 그래도 충분히 여유롭게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건 바로 어째서 레온이 다른 소환수들이 아닌 본 드래곤을 소환하였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알다시피 본 드래곤은 레온의 비장의 한 수가 아닌가.
이렇듯 쉽게 그 존재를 노출을 시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온이 본 드래곤을 소환하였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일단 첫 번째는 크라켄을 압도할 정도의 강함을 지닌 소환수가 본 드래곤 외에는 마땅히 없다는 것이 주효했다.
저들이 꺼낸 크라켄은 그들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뛰어난 소환수였다.
충분한 물이 있는 지형에서만 소환할 수 있다는 크나큰 단점이 있었지만, 그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사실 마루도 선택지에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녀석을 택하기에는 악조건이 너무 많았다.
‘……이곳의 지형이 마루를 사용하기에는 너무 맞지 않아.’
마루의 강점인 빠른 속도로 공간을 장악하며, 히트앤드런을 반복하는 것이 발휘되기에는 이곳 자체에 고여 있는 깊은 물이 너무 많았다.
백이면 백 크라켄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 수중전이 벌어지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마루의 전투 능력이 절반도 발휘되기 힘들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본 드래곤을 꺼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상으로 남아 유출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로선 PK를 해 준 게 고마울 따름이지.’
과거 한 PK범이 초보 유저를 희롱하듯 찍은 PK 영상이 유포가 되며, 그 내용이 너무 가학적이라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PK가 시작되는 즉시, 공격을 가한 PK범은 즉시 모든 종류의 영상 녹화가 금지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싸아-.
드래곤 피어가 잦아들고 일순간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꿀꺽.
파반이 차오르는 두려움에 침을 목구멍으로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순간 루친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른 이들에게 소리쳤다.
“쪼, 쫄지 마! 저게 진짜 본 드래곤일 리 없어. 분명히 외형만 번드르르한 가짜일 거야.”
그러자 하얗게 질려 있던 두 사람의 얼굴에 살짝 혈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던 것이었다.
본 드래곤이라니.
아니, 어느 누가 지금 그런 말도 안 되는 등급의 소환수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런 저급한 던전에나 오는 녀석이 말이었다.
“……마, 맞아! 저거 분명 드래곤처럼 생긴 드레이크일 거야!”
“그치? 크기도 시네마틱 영상에서 본 것보다 훨씬 조그맣고.”
그렇게 그들이 저들끼리 열심히 행복 회로를 돌리며 현실도피를 하고 있던 그때.
‘쯔쯔, 멍청한 놈들.’
레온은 비릿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저 모습에 본 드래곤을 꺼낸 마지막 세 번째 이유가 있었다.
‘……설령 이후로 저 녀석이 쪼르르 제 길드에 고자질한다고 해도 그 사실을 믿어 줄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단언컨대 어느 누구도 믿어 주지 않을 터였다.
지금 당장 직접 본 드래곤을 목격하고 전투를 벌이고 있는 당사자들조차 믿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었다.
그러던 다음 순간.
마음을 추슬렀음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레온에게 섣불리 공격을 감행하지 못했다.
어떻게 본 드래곤을 상대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를 않는 것이리라.
한데 그때.
본 드래곤의 닫혀 있던 입이 열리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웩, 주인아. 여기 냄새가 너무 심하다. 똥 냄새가 난다! 똥 냄새!
그러자 레온이 피식 웃으며 파크에게 대답했다.
“그래, 나도 싫다. 그러니까 얼른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자.”
그러자 파크가 본 드래곤의 피처럼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말했다.
-알았다, 주인. 흠, 저 오징어랑 옆에 쭉정이들만 처리하면 되는 거냐?
부르르.
순간 공간에 흘러넘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운에 세 사람과 한 마리의 오징어가 일시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레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놀라운 말을 꺼냈다.
“아니, 오징어만. ……저놈들은 내 사냥감이거든.”
그는 파크에게 오로지 크라켄만을 상대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었다.
말을 끝마친 그의 두 눈에서 공기를 무겁게 만들 정도의 짙은 살기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이어 파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주인아! 그럼 난 오징어 볶음을 하고 있겠다!
쿠과가아아!
그 말을 끝으로 파크가 거대한 몸을 움직이며, 날카롭게 공격을 시작했다.
촤아아아!
-꾸, 꾸이이이이!
크라켄이 그런 녀석에게 어느새 재생된 수많은 촉수들을 날려 댔다.
하수도에 마치 괴수 대전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던 그때, 세 사람은 레온을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방금 레온의 발언을 들으며 자신감을 회복했던 것이다.
‘멍청한 자식!’
‘소환해 놓고 우리에게 사용을 안 한다고?’
‘그래, 아주 제대로 짓밟아 주마!’
소환자를 죽이면 소환수는 그대로 역소환되는 것은 어린아이조차 알고 있었다.
그들은 레온이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투다다다!
순간 삼인조가 각자 크게 소리를 지르며, 레온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더 쪽수가 많아!”
“죽여 버려!”
후우욱!
슈우욱!
순간 녀석들의 신형이 단체로 땅속으로 꺼지며 사라졌다.
‘그림자 은신’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레온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매의 눈으로 그들의 경로를 파악하고 있었다.
‘저놈은 저쪽 그림자에서 내 뒷그림자를 잡겠고. 다른 놈은 저길 탔으니까 옆쪽 벽면 그림자에서 기습하겠군.’
분명 그들은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췄지만, 레온에게는 훤히 보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판테라에서 처음으로 암살자 직업을 얻은 것이 누구인가.
바로 레온이 아니던가.
그림자 은신의 파훼법에 대해 그보다 잘 알고 있는 이는 없을 터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촤아악!
쐐애액!
“흐아앗!”
“죽어라!”
정확히 레온이 짐작했던 그림자에서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기습을 감행했다.
휘익!
파밧!
파바밧!
그러나 레온은 세 명이 쏟아 내는 공격들을 정말 미치도록 빠른 속도로 전부 다 회피해 내고 있었다.
‘뭐, 뭐야!’
‘……!’
‘이 자식!’
자신들 중 단 하나의 공격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자, 자신만만하던 세 사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아니, 이 자식 왜 이리 잘 피해?’
‘……암살자들의 공격법을 모두 숙달하고 있는 것 같잖아.’
처음에는 요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도 모든 공격이 무효화되고 있자,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순간 레온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이제 내 차례!’
기습이 실패로 돌아간 채 모습을 드러낸 암살자는 최악의 방어력을 지닌 제물일 따름이었다.
“하아앗!”
순간 레온이 엄청난 속도로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부우웅!
쐐애애액!
귀를 아프게 하는 거센 파공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크, 어억!”
“끄아악!”
그에 적중당한 적들이 비명을 토해 내었다.
-플레이어 레온의 공격으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상태 이상 ‘출혈’에 걸렸습니다.
-지속적으로 체력이 소모됩니다.
삼인조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효과음이 계속 울려 퍼지며, 체력이 쭉쭉 떨어지고 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숨어 있는 그림자를 어찌나 잘 찾아내는지, 거침없이 찔러 대는 통에 그림자 속에서도 공격을 받고 있었다.
체력은 위험 수치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물러서!”
투다다다!
파바밧!
전면전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루친이 세 사람을 모두 뒤로 물렸다.
“하아하아.”
“윽, 크억.”
분명히 수적 우위가 있는 자신들이 몰아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여유 만만하기 짝이 없었고 자신들은 숨에 가쁜 벅찬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자 루친은 속으로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지금처럼 쪽수로 밀어붙이는 건 안 되겠어. 그래, 평소처럼 말려 죽이자!’
그가 동료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반지를 사용해!”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바밧!
이어진 다음 순간, 세 사람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뭐야?’
그에 레온은 살짝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 각자 세 방향의 벽면으로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벽에다가 머리 박고 자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런 의문이 들던 그때.
갑자기 세 사람이 동시에 같이 끼고 있는 동일한 반지를 매만지더니, 새로운 스킬을 시전하였다.
“투영환신(透影幻身)!”
슈우우웅!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이어졌다.
레온의 눈이 이채가 떠올랐다.
갑자기 적들의 모습이 벽면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던 것이었다.
‘오오! 벽을 통과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흥미로움만 가득 차오른 표정이었다.
그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저거 혹시 섀도우 워커 직업 전용 템인가?’
그러던 그때!
촤아아아!
세 벽면에서 그림자 촉수들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랬다. 그들은 벽에 숨은 채, 자신들은 공격하지 못하게 하면서, 촉수로 공격을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그들과 잘 맞는 비열한 공격 방법이었다.
쿠가가가!
콰가강!
날아드는 촉수에 레온이 발 딛고 있던 지면이 부서지며, 돌의 파편이 튀어 올랐다.
바쁘게 회피를 하고 있는 그 순간.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뭐, 이러면 이러는 데에도 방법이 있지.’
그리고 다음 순간.
처척!
대검을 높이 세우며 레온이 한 가지 스킬을 시전하였다.
“오러 블레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