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 * *
자신을 향한 삼인조의 작당 모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레온은 하수도의 깊숙한 내부로 진입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에 소요되는 시간은 전혀 빨라지지 않아 있었다.
마치 달팽이가 기어가듯 느릿느릿 진행이 되었다.
금세 대여섯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그러자 어느새 레온은 알케믹 소드맨의 검술 스킬 대부분을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데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가는 것 같던 그때.
무슨 이유에선가 레온은 연신 뒷머리를 긁적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끄응, 이걸 어쩐다.”
순간 침음을 흘리며 레온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의 주변을 바라보니, 그가 그런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레온의 눈앞에 수많은 앞서 보았던 이끼 트롤과 거대한 거미 몬스터인 베놈 스파이더 들이 수두룩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랬다. 일촉즉발의 전투 상황 중이었던 것이다.
크르르!
그르?
놈들은 자신들을 앞에 두고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여유롭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레온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 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이유이기에, 이런 상황에서 고민에 빠지게 만든 것일까.
그러던 그 순간.
크와아아!
쿠웅!
쿵!
이끼 트롤이 들고 있던 거대한 몽둥이를 배수로의 땅바닥에 연이어 내리찍으며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스윽.
그제야 레온의 시선이 다시금 몬스터들에게 닿았다.
그는 심히 거슬린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거참, 가뜩이나 골머리도 아픈데 더럽게 시끄럽게 구네.’
레온이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잠시 좀 갇혀 있어라, 너네.”
처척!
그가 양손을 모아 합장하더니, 한 가지 스킬을 시전하였다.
“방호벽 연성!”
파지지직!
그러자 두 손등에 작은 마법진 같은 술식이 나타나며 스파크가 튀었다.
쿠구구구궁!
그러곤 곧이어 지하 배수로의 바닥에서 거대한 강철 벽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땅땅이가 사용하는 암벽 방패 스킬의 강화 버전인 것 같았다.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강철 벽은 적들을 에워싸며 가두어 버렸다.
꾸, 꾸에?
크에에!
몬스터들은 갑자기 강철 감옥에 갇혀 버리자 당황한 나머지 연이어 신음성을 흘렸다.
[방호벽 연성]
합장을 하는 것으로 연금술식을 발동하여 지면에서 15분간, 견고한 방어력과 마법 반사 효과를 지닌 강철 벽을 연성시킵니다.
-지속 시간이 지나면 방호벽은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갑니다.
-한계 이상의 대미지가 축적되면 파괴됩니다.
레온이 먼지를 털 듯 손을 털며 말을 꺼냈다.
“쯧, 사람이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귀찮게 하고 있어. 새끼들아, 기다려 봐. 좀만 있다가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모두 죽여 줄 테니까.”
살벌하기 짝이 없는 예고를 해 준 후, 레온은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순간, 레온을 고민하게 만드는 원인은 단 하나였다.
무언가를 바라보며 레온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휴우, 포션 조제랑 골렘 연성이 봉인되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러했다. 연금술 스킬란에 있는 중요한 두 스킬이 봉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그의 눈앞에 아이템 정보 창이 떠올라 있었다.
[이끼 트롤의 마력 혈액]
종류 : 재료
등급 : 중급
연금술사들만이 드문 확률로 몬스터에게서 채취할 수 있다는 온전한 마력이 담겨 있는 혈액.
[이끼 트롤의 숨결]
종류 : 재료
등급 : 중급
연금술사들만이 드문 확률로 몬스터에게서 채취할 수 있다는 마지막 숨결이 모여 만들어진 결정.
그가 고구마를 먹은 듯 갑갑한 심정으로 속으로 생각하였다.
‘끄응, 직업 전용 재료 아이템을 얻었는데, 쓸 수가 없다니.’
이 상황의 전말은 이러했다.
잠시 전, 다를 것 없이 이끼 트롤을 해치우고 난 후 루팅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생전 처음 보는 재료 아이템이 뜨는 것이 아닌가.
상세 정보를 읽어 보니, 연금술사들만이 획득할 수 있는 직업 전용 재료 아이템이었다.
그러자 당연히 그는 들뜬 마음으로 곧장 포션 조제 스킬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뜬 것은 서글픈 내용의 메시지였다.
-포션 조제 스킬은 봉인된 상태입니다.
-포션 조제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골렘 연성 스킬은 봉인된 상태입니다.
-골렘 연성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화들짝 놀란 레온이 혹시나 하고 골렘 연성 스킬도 사용해 보자,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때 레온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쩝, 예전에 암살자를 얻었을 때나 본 네크로맨서를 얻었을 때랑 비슷한 상황인 것 같은데…….’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직업 능력의 일부가 막혀 있었지 않은가.
‘그럼 이제 슬슬 뭔가 뜰 때가 됐는데?’
레온이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하던 그때.
띠링.
띠링.
역시나 그의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오며,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직업 퀘스트의 생성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직업 퀘스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의 퀘스트냐.’
순간 레온이 눈을 빛내며 새롭게 얻은 직업 퀘스트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연금술사 커티스를 찾아가자 / 직업]
당신은 연금술의 길을 걷는 이가 되었다.
하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연금술은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학문이 아니다.
심지어 포션을 만드는 데 필요한 레시피와 골렘의 제작도도 하나 없는 것이 당신의 현실이다.
이 경우 해결책은 하나밖에는 없다.
다른 선배 연금술사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암흑성국의 도시 ‘제에’에 숨어 있는 연금술사 커티스를 찾아가자.
난이도 : S
보상 : 봉인된 스킬 해제, 알 수 없음
-이 퀘스트는 직업 퀘스트이므로 거부가 불가합니다.
내용을 모두 읽은 후, 레온은 한숨 돌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오, 이거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것 같은데?’
과거 쟈켄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그냥 도시 내에서 커티스라는 연금술사를 찾기만 하면 해결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딱 하나 걸리는 것은, 분명히 손쉬울 것이라 예상이 되는 데에도 S라는 상당한 난이도가 적혀 있는 것뿐이었다.
한데 그때.
쿠쿠쿵!
콰가강!
그가 연성해 놓은 방호벽이 이끼 트롤들의 공격에 산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 사라지자.
크르르르!
그와앙!
놈들은 거친 포효를 쏟아 내며 레온에게 달려들었다.
투다다다!
타다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적들이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었음에도, 레온은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그저 미간을 좁히며 마음속으로.
‘아, 엄청 귀찮게 구네 자식들.’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쐐애액!
바람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들의 몽둥이찜질이 시작되었다.
쿠쿠쿵!
콰쾅!
마치 두더지 잡기를 하는 것처럼 레온을 향해 수많은 몽둥이들이 불을 뿜고 있었다.
거대한 힘에 완전히 짓이겨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찰나였지만.
까강!
채챙!
하지만 레온은 자신의 대검으로 그 숱한 공격을 가볍게 막아 내고 있었다.
훼에엑!
쐐애액!
분명히 휘두르기가 버거운 거대한 양손 대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가벼운 레이피어처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한데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띄고 있었다.
끼이잉!
쿠, 쿠엑!
그저 레온이 별다른 공격 없이 막아 내고만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적들이 고통에 찬 신음을 쏟아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레온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바로 무한 반사다, 이 녀석들아!’
그의 눈앞에 연이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적의 공격을 방어하였습니다.
-리턴 브레이커의 효과로 ‘이끼 트롤1’에게 반사 대미지를 입힙니다.
-적의 공격을 방어하였습니다.
-리턴 브레이커의 효과로 ‘이끼 트롤4’에게 반사 대미지를 입힙니다.
이 괴이한 상황은 모두 메시지의 내용처럼 그의 스킬 ‘리턴 브레이커’가 작용하고 있어서였다.
[리턴 브레이커]
자신에게 가해지는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할 시, 받은 대미지의 일부를 마법 대미지로 바꾸어 적에게 그대로 반사시킵니다.
-자신의 방어력을 100% 이상 상회하는 대미지는 반사시킬 수 없습니다.
그저 검으로 막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미지를 적에게 줄 수 있다니, 굉장한 효력의 스킬이었다.
진정한 공방일체라고나 할까.
꾸에에!
끼이!
누적된 반사 대미지에 적들이 알아서 죽어 나가고 있었다.
-이끼 트롤1을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제대로 한 방 날려 줘 볼까?’
그러던 그때, 눈빛이 달라진 레온이 방어 일변도에서 갑자기 자세를 바꾸어 참격을 준비하였다.
우우웅!
순간 그의 대검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잠시 후.
지하 배수로 던전 내의 깊숙한 지역.
발목 정도만 구정물이 차 있는 다른 곳과 달리 몸을 푹 담길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이 한가운데에 고여 있었다.
“흐암.”
한데 그때, 갑자기 커다란 하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앙을 둘러싸고 배치되어 있는 구조물들 중 하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삼인조 중 한 명인 말롱이었다.
그가 지루해 죽겠다는 듯 그렇게 하품을 뱉어 내자, 나머지 두 사람도 그에 전염이 되어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딱 보아도 기다리느라 지쳐 있는 듯 보였다.
순간 파반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왜 안 오는 거지?”
“낸들 아냐. 아, 거참. 더럽게 지루하네.”
말롱의 대답에 파반 또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가, 갑자기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헉, 설마 이미 죽어서 도시로 돌아간 거 아니야?”
“……아씨, 그럼 헛수고한 건가.”
그러자 파반과 말롱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루친 또한 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 당최 도착하지를 않고 있자, 이미 죽은 것 아니냐는 녀석들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던 것이었다.
‘끄응, 아까 보니 약해 보이긴 했지만. 쳇, 이런 상황은 미처 예상을 못 했군.’
파반과 말롱의 말이 이어졌다.
“쩝, ‘녀석’을 도로 회수해야 하나.”
“그럼 네가 다시 포획해. 저 자식, 먹이를 안 주면 지랄 같은 난동을 부린단 말이야.”
“에혀, 알았어. 그럼 얼른 데리고 다시 돌아…….”
말롱의 말에 파반이 갑자기 숨어 있던 곳에서 벗어나, 물이 고여 있는 중심지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쉬잇!”
갑작스레 루친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술에 손가락을 붙였다.
깜짝 놀란 파반이 다시금 구조물에 몸을 급히 숨기며 그를 바라보자, 루친이 말없이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파반과 말롱이 손바닥으로 제 입을 막고는 입구를 바라보았다.
첨벙, 첨벙.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어두운 입구에서 레온이 공간 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우, 여긴 무슨 구정물이 이렇게 많이 고여 있어.”
주변을 둘러보던 레온이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흐흐, 왔다!’
‘드디어!’
흐리멍덩하던 세 사람의 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 진득한 살의로 번들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