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제에를 벗어난 레온은 곧 목적지에 도착하여 있었다.
첨벙, 첨벙.
레온이 발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지면에 고여 있는 물이 튀어 올랐다.
그때 레온의 불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끄응, 여기가 찾아본 곳들 중에 제일 괜찮긴 한데…….”
스윽.
순간 레온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어두운 주변의 시야와 주변의 형상으로 보아, 그가 선택한 이번 던전은 지하 배수로인 듯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코를 막으며 말을 마무리하였다.
“……휴, 이건 냄새가 너무 심하잖아.”
[폐쇄된 지하 배수로]
원래는 제에 곳곳에 생활용수를 대던 수로였으나, 과거 대륙을 덮쳤던 대지진의 영향으로 폐쇄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자 마몬의 마기에 물든 몬스터들이 숨어들었고, 결국 현재는 그들의 거처가 되었다.
이곳 폐쇄된 지하 배수로는 100레벨 초반 대의 유저들에게 맞는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더 높은 난이도의 던전도 있었지만 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투기장에 참가하기 위해, 24시간 안에 도시로 되돌아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지.’
그래서 최대한 가까운 곳을 찾아야 했고, 결정한 곳이 이곳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예상치 못한 단점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상상을 초월한 악취였다.
‘예전에 브룩과 함께 들어갔던 하수도는 비교도 안 되네.’
그렇게 레온이 자신의 직업이 비겁자였던 시절.
쥐새끼들에게 몸을 갉아 먹혔던 옛 던전을 떠올리던 그때.
키에에!
꾸에에!
앞쪽 멀리에서 드디어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좋아, 이제 시작되겠군!’
채챙!
그러자 레온이 언제 그랬냐는 듯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투박한 양손 대검이었다.
한데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그가 장착한 검이 완전히 처음 보는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분명 최근에 새로운 검 아이템을 얻은 적이 없었으며, 도시를 떠나기 전 대장간에 들른 적도 없지 않던가
갑자기 새로운 무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데 그때였다.
“자, 에고. 준비하자.”
갑자기 레온이 검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그는 대검에 마치 에고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랬다. 완전히 모습이 변화되어 있었지만, 그 검의 본질은 흑염룡의 거태도였던 것이었다.
레온이 새롭게 얻은 스킬 ‘형태 변화’를 미리 걸어 둔 것이었다.
[형태 변화]
연금술을 사용하여 소유한 아이템의 외견을 원하는 형상으로 변화시킵니다.
-변하된 아이템의 성능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아이템의 이름에 ‘연금 변형’이 추가됩니다.
그가 제에를 빠져나와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흑염룡의 거태도를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신물을 알아보는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되는 마음이 한편에 계속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형태 변화 스킬을 통해 그런 불안함은 싹 사라져 있었다.
한데 뽑아 들기만 하면 사극 톤으로 말을 쏟아 내었던 수다쟁이 에고 녀석이 오늘따라 조용했다.
그때 레온이 머쓱해하며 말을 다시 건넸다.
“야, 에고, 아직도 삐져 있냐.”
-…….
말이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전에 대기실에서 진동음을 내던 녀석을 주먹으로 내리찍었던 일 때문에 아직까지 삐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또 말이 없자, 레온이 살짝 민망해하며 다시 말을 건넸다.
“에이, 형이 그래서 스킬로 외견도 예쁘게 바꿔 줬잖아.”
-……하나도 안 예쁘오. 본룡은 이전의 모습이 더 좋소.
토라진 여자 친구처럼 구는 녀석에게 레온이 달래 주기 위해 제안을 건넸다.
“짜식, 알았어. 도시로 돌아가면 저번처럼 숫돌에다가 매끈하게 날이라도 갈아 줄게.”
-흐흥.
저번에 한 번 날을 갈아 줬더니, 그렇게 좋아했던 녀석이었다.
그렇게 에고를 어르고 달래며 레온은 몬스터들의 코앞까지 가까이 숨어들었다.
‘호오, 오랜만에 보는 덩치들이네.’
그러곤 눈앞에 몬스터의 상세 정보를 펼쳐 보았다.
[이끼 트롤]
레벨 : 107
분류 : 인간형
등급 : 희귀
지하 배수로에 흐르는 마몬의 기운에 변형된 트롤.
포악한 성정은 더욱 심해져, 침입자를 잔인하게 죽이고 있다.
크르르.
원래 녹색이었던 피부색이 하얗게 변형된 일단의 트롤 무리가 거대한 몽둥이를 든 채 서 있었다.
먹잇감들을 매의 눈으로 바라보며 레온이 눈을 빛냈다.
‘시작해 볼까!’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평상시와 조금 다르게 전투 개시를 준비했다.
그건 바로.
콰르르.
꿀꺽. 꿀꺽.
목구멍에 인벤토리에서 꺼낸 수많은 종류의 포션들을 들이붓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포션 조제 스킬로 만든 것들은 아니었다. 이미 수중에 지니고 있던 것들이었다.
독 저항의 포션, 신속의 포션, 힘의 포션, 힐링 셀브.
그는 정말 포션이란 포션들은 죄다 털어 넣고 있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새롭게 얻은 연금술 스킬을 사용해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케미컬 라이프 LV. 1 / 패시브]
-모든 물약의 효과를 2회 중첩하여 적용받습니다.
-모든 물약의 지속 시간이 두 배가 됩니다.
그와 동시에 레온의 눈앞에 연이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신속의 포션을 사용하였습니다.
-5분간 민첩 스텟이 35만큼 증가합니다.
-케미컬 라이프 스킬의 효과로 물약의 효과를 중첩하여 사용이 가능합니다.(현재 중첩 2/2)
-케미컬 라이프 스킬의 효과로 지속 시간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
순간 레온이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민첩 스텟이 70이 올랐어! 중첩된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의 시야의 오른편 위에 ‘민첩 +70/10분’이라고 버프 효과가 적혀 있었다.
동일한 포션을 중첩하여 사용이 가능하게 되는 능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이후에 포션 조제 스킬을 통해 강력한 효과를 지닌 포션을 만들게 된다면, 더욱 크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스킬에 레벨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케미컬 라이프 스킬이 레벨 업을 하면 현재는 2중첩의 한계가 상승될 확률도 충분히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러던 그때, 레온이 살짝 걱정 어린 표정이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끄응, 이것도 돈 꽤나 잡아먹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판테라에서 포션의 가격은 상당했다.
그런 것을 끊이지 않고 마셔야 한다고 하니, 머릿속에서 돈이 깨져 나가는 것이 상상이 되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레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일단 그건 다음 문제고, 일단 시간제한이 풀리기 전에 한번 싸워 보자!’
파바밧!
포션들의 효과로 완벽히 도핑 상태가 된 레온이 트롤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 * *
그러던 그때, 멀리 뒤편에 숨어 레온을 지켜보고 있는 세 명의 무리가 있었다.
끄득.
순간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저놈이었어.”
3인 중 한 남자가 분노와 살의로 가득 찬 눈빛을 띤 채 말을 꺼냈다.
그의 이름은 루친.
일전에 하수도에서 레온과 브룩을 PK하려다, 도리어 크게 된통 당하고 아이템을 뺏겼던 전력이 있는 이였다.
순간 그의 뒤에 있던 나머지 두 사람.
파반과 말롱의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신기하네,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말이야. 쩝, 근데 저놈도 결국 우리처럼 PK를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올 만도 하지. 그때 우리한테 독 묻힌 단검 던질 때 기억 안 나냐? 완전 사이코패스야, 저놈.”
파반과 말롱은 저끼리 떠들다가 그때가 다시 생각나는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화조 속에서 쏟아지는 단검에 죽어 나간 것은 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이었던 것이었다.
어느새 겁에 질린 표정이 된 파반과 말롱이 조심스럽게 루친에게 말을 건네었다.
“저기, 루친. 일단 네 말대로 뒤따라오기는 했는데…….”
“……우리로 될까? 길드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그들의 소심한 태도에 루친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들은 대체 발전이 없네, 발전이.’
하지만 그런 속마음은 숨긴 채, 그들에게 차분히 말을 건넸다.
“야, 이미 우린 세 명이나 있는데 고작 한 명을 잡는다고 길드원을 요청하면 그놈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이제 막 길드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데 놈들에게 우습게 보일 일 있냐?”
루친의 말이 타당한 면이 있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지.”
“……어떻게 들어간 길드인데.”
그러자 루친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고. 이제 좀 자각을 해, 우리 셋 모두 히든피스를 얻은 상태라고. 저딴 녀석 충분히 우리 셋이 족칠 수 있어.”
그가 놀라운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들 셋 모두 히든피스를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조금 자신감을 회복한 듯 파반과 말롱이 대답했다.
“맞아, 그렇긴 하지.”
“우리 지금까지 강자들도 쌈 싸 먹고는 했잖아.”
그러곤 루친이 자신의 분석 결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봐 봐, 고작 이 정도의 던전에서 저렇게 포션을 지속적으로 먹으면서 싸우고 있다는 건 녀석의 레벨이 고작해야 110에서 120 정도라는 거야.”
끄덕끄덕.
두 사람이 어린 양처럼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눈에 살의가 번들거렸다.
“착용하고 있는 검을 보니 쓰레기 같은 것을 끼고 있으니, 템 차이는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고.”
“30레벨 차이면 충분히 발라 버릴 수 있지.”
그들의 레벨은 평균 150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평상시의 의욕 넘치는 PK범으로 변모한 그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루친이 말했다.
“게다가 전투도 엄청나게 오래 걸리고 있는 걸 보면 전투 센스도 없는 게 분명해 보이고 말이야.”
그의 말처럼 레온의 현재 전투는 남이 보기에는 버퍼링에 걸린 듯이 느려 있었다.
쾌속한 레온의 평상시의 전투 스타일과는 정반대였다.
한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레온은 애초에 목표를 빠른 사냥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목표는 바로 알케믹 소드맨의 스킬들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능숙해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스킬 하나를 사용하고 생각에 잠길 때도 있었으며.
몬스터 한 마리를 꽤나 오랜 시간 상대하며 수많은 방법으로 스킬을 사용해 볼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처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전에 레온의 함정에 빠지느라, 레온과 제대로 전투를 벌이지 못했기에.
그의 본 실력을 알지 못해 전투 센스가 떨어져 그렇게 전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루친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너희들의 말이 맞는 것도 있어. 저 지독한 놈을 또 우습게 보았다가 뒤통수를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러니까 만반의 준비를 하자고.”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준비라면?”
“어떤?”
그때 상처 입은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루친이 그들에게 한마디를 꺼내었다.
“저놈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니까, 우리가 앞쪽으로 몰래 빠르게 이동해서, 이번에는 우리가 함정을 파 놓자.”
“오오!”
“그거 좋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정에는 함정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세 사람 다 살의가 가득한 눈빛이 되었다.
‘죽여 버리겠어!’
‘우리의 힘을 보여 주마!’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 셋이 동시에 그림자 밑으로 쑥 꺼지더니, 레온이 있는 곳에서 벗어나 깊숙한 안쪽으로 이동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