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84화 (184/332)

# 184

지이잉-.

유호가 캡슐의 좌석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런 그의 미간이 잔뜩 좁혀져 있었다. 한눈에도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한데 누구든 그의 상황을 안다면 그럴 만도 하다고 말하리라.

순간 유호가 고구마를 삼킨 듯 답답해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오, 이제 딱 새로 얻은 직업을 써먹어 봐야 할 타이밍인데. 이때를 딱 맞춰서 찾아오고 난리야, 이 녀석은.’

새로운 직업 ‘알케믹 소드맨’이 되며 손에 넣은 연금술 스킬과 검술 스킬들을 펼쳐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자신의 여동생은 몰래 방해꾼 방해꾼 열매라도 잡수신 건지, 이렇게 타이밍을 꼭 맞춰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얼른 내쫓아 버려야겠어!’

그렇게 순간 유호가 속으로 이제 어떻게 진행을 할지 생각을 끝마쳤다.

끼익-.

한데 그때 갑자기 방 안에 을씨년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유호가 끙끙거리며 삐걱거리는 캡슐 문을 올리고 있었다.

“어우, 이건 또 왜 이래.”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하더니, 최저가 보급형으로 산 그의 캡슐이 벌써부터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끄응차!”

기합과 함께 겨우겨우 빠져나온 유호는 숨을 골랐다.

그러곤 찌뿌둥한 몸으로 방을 나왔다.

그러자 역시나 그의 여동생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빠…….”

그녀는 조금 힘없어 보이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 왔다.

‘넘어가면 안 돼.’

순간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유호가 내심 살짝 걱정이 들었지만.

이내 조금 강하게 나가자고 생각하며, 얼굴을 굳힌 채 단호한 어조로 타박을 시작했다.

“야, 진유희! 너 이렇게 연락도 없이 오면 내가 내쫓는다고 했어, 안 했어.”

“아, 오빠, 그게 아니…….”

“어허, 변명하지 말고.”

순간 그녀가 변명을 하려 하자, 유호가 사전에 차단을 해 버렸다.

‘어딜 또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고.’

이번 기회에 아주 혼쭐을 내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유호였다.

“사람마다 삶의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는데 이렇게 들이닥치면 어떡해, 응? 내가 게임을 하고 있어서 망정이었지, 어, 다른 일이라도 하고 있었으…….”

순간 갑자기 자신의 프라이버시 발언이 괜한 오해를 살 것이 걱정이 된 유호가 고개를 저으며 가장 걱정되었던 문제를 덧붙였다.

“……아무튼 가장 큰 건 네가 이렇게 올 때마다 네가 아니고 엄마인 줄 알고 깜짝, 깜짜으아아악!”

그러던 그때, 유호가 제 말을 모두 끝마치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반응이었다.

유호의 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떨려 오고 있었다.

한데 그런 유호를 바라보는 유희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스윽.

유희의 옆에서 호랑이 같은 눈동자를 지닌 한 중년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어 있었다.

‘어, 어째서 이곳에.’

유호가 흔들리는 눈으로 유희를 살피자, 그녀가 슬며시 눈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엄마인 줄 알고 뒤에 뭐라고?”

급속도로 유호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진유호, 그의 어머니가 등장해 있었다.

* * *

그로부터 잠시 후.

유호는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리며 어머니의 앞에 공손하게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유호가 내온 인스턴트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그러자 유호가 그런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게,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유희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러곤 그는 유희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너, 이 배신자. 왜 말 안 했어!’

‘히잉, 엄마가 말하지 말라 했단 말이야.’

‘넌 진짜 이따 게임 안에서 보자.’

‘히잉…….’

한데 그때,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어머니가 말을 하였다.

“내가 말하지 말라 했으니, 그렇게 째려볼 필요 없단다.”

뜨끔.

덜컥한 심정을 숨기고, 양철 로봇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유호가 그런 그녀에게 대답했다.

“허허, 제가 저의 여동생을 째려볼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허허, 어머님, 그간 신체 강녕하셨나이까.”

“그래,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 거니?”

“네, 네, 이번에는 다시 장학금을 탈 수 있을 것 같아요.”

유호가 분위기를 조금 풀어 보고자, 장학금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지난 학기들에 게임으로 버는 돈을 장학금으로 뒤바꾸어 말씀드리곤 했던 것이었다.

호로록.

한데 그때, 어머니가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유희에게 들었다. 그 동안의 장학금들 모두 게임으로 번 돈이라면서.”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부터 유호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미친 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호와 유희의 눈빛 대화가 폭풍처럼 다시금 이어졌다.

‘진유희이이이이!’

‘나,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이미 다 대학교에 확인해 보고 알고 계셨단 말이야.’

그러던 그때.

“휴우.”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유호가 자연스레 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함과 더불어 이 상황이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다음 순간, 생각보다 차분한 톤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호야, 정말 진지하게 게임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 거니?”

유호는 그 말에 내리깔고 있던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타박하거나 구박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었다.

유호는 이 순간이 정말 진지하게 자신의 삶의 목표를 이야기해야 할 타이밍임을 깨달았다.

그때 유호가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어머니와 눈을 맞추고 말을 꺼냈다.

“네, 저 정말 진지하게 게임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요.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고 열심히 노력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제 성과도 어느 정도 이뤘어요. 조금만 믿어 주시면…….”

한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래, 알겠다.”

어머니의 대답이 들려왔다.

‘엥?’

유호는 깜짝 놀랐다.

지금껏 자신이 게임을 하면 그렇게나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과는 반대로 너무 간단하게 승낙을 해 버린 것이었다.

유호가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아, 저, 어머니, 알겠다 하시는 건?”

“말 그대로란다. 우리는 네가 장학금도 받아 오고 공부도 곧잘 하니 어느새 우리의 바람을 너의 바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말을 유호는 아무런 대답 없이 조용히 들었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 네 눈빛을 보니 정말 진심인 것 같구나. 헛바람이 든 건 아닌 것 같으니 네가 하고 싶은 일 도전 해 보렴. 그리고…….”

스윽.

어머니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유호에게 건네었다.

“이것 받고.”

얼떨결에 받은 유호가 자신의 손에 놓인 물건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그건 바로 통장이었다.

“모든 일이 처음부터 잘되진 않을 거야. 그리고 그 부분을 매끄럽게 해결하려면 역시 돈이 필요할 테고. 이제 아빠와 엄마도 네 일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 줄게.”

통장을 펼쳐본 유호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일전에 어머니에게 돌려드렸던 돈이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그 돈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다가, 자신이 하는 일에 보탬이 되라고 다시 돌려준 것이었다.

‘어머니.’

유호가 울컥하는 감정을 힘겹게 추슬렀다.

그러곤 정말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받았던 통장을 다시금 어머니에게 돌려드렸다.

“어머니, 이건 다시 돌려드릴게요.”

“왜, 모자란 거니?”

어머니의 말에 유호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해요. 그리고 사실 저 벌써 조금 성공했거든요.”

“……?”

그리고 잠시 후, 유호가 현재 벌어들인 돈의 액수를 들은 어머니의 눈이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잠시 후, 유호는 큰 결단을 내렸다.

‘오늘 게임은 쉰다!’

이런 날을 그냥 넘어가서야 되겠는가.

유호는 오랜만에 자신을 보러 오신 어머니와 유희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파악했던 고급 레스토랑으로 모셔 식사를 대접한 것이었다.

“뭘 이런 곳에서…… 나는 괜찮단다.”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지만 유호는 상남자 포스로 음식을 대접했다.

입으로는 사양하시면서도 막상 성공한 자식이 대접하는 식사에 감동하셨는지, 식사 내내 너무나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유호는 그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없어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있으면 더 행복하구먼.’

그때였다.

“근데 유호야.”

“네?”

“너 하는 게임 재밌니?”

“아, 네, 재밌긴 한데 왜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유희가 그녀에게 질문했다.

“왜, 엄마? 엄마도 하게?”

“응, 네 아버지 퇴직도 얼마 안 남았고, 시간이 나면 한번 시작해 볼까 해서.”

어머니가 유호를 슬쩍 한번 흘겨보더니 말을 이었다.

“이렇게 찾아오지 않고서야 얘 한 번 보는 게 쉽지 않잖니. 가족끼리 얼굴 자주 보려면 나도 게임을 시작하는 편이 낫겠더라고.”

‘……얼레?’

“꺄아, 난 좋아! 같이하자 엄마, 내가 엄마 책임질게!”

“너도 하고 있니?”

순간 레온은 감동이 살짝 사라지며, 등줄기로 땀 한 방울이 흘러 내리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이게 좋은 일일까.

문득 슬픈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유호야, 바쁘니? 이건 뭐니?’

‘어머, 그런 것도 있어? 나 혼자서는 어려워서 못 하겠다.’

‘누가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그리고 자연스럽게 게임 속에서 어머니를 모시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느낌을 받는 유호였다.

그의 게임 라이프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유호는 굳게 결심했다.

‘……유희한테 용돈 좀 챙겨 줘야겠다. 어머니 잘 부탁드린다고.’

아무튼 그렇게 묘한 분위기에서 밥을 다 먹은 후, 유희와 어머니는 본가로 떠나갔다.

식사 대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유호는 늦게나마 게임에 접속하려 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후, 그러고 보니…….”

그러곤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꽤나 짭짤한 수입을 거두었음에도, 막상 생활비 외에는 그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까지 사용한 것은 영지에 투자하는 것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것도 초반뿐, 이제 영지도 정상화가 되어 크게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지가 도시로 커지고 규모가 실시간으로 커져 가며 세금으로 걷히는 액수도 늘어나 흑자로 돌아선 지 오래였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하나도 안 썼잖아?’

이제 그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름신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

“에잉, 그래. 이렇게 늦게 접속해 봤자 얼마 하지도 못하겠지.”

유호는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집을 뛰쳐나갔다.

30분 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백화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안녕하세요. NT 직영 캡슐 직영 판매점입니다.”

역시 유호는 유호였다.

‘흐흐, 돈도 벌었겠다, 게임 캡슐 업그레이드 좀 해 보실까?’

매장을 둘러보는 그에게 직원이 다가와 응대한다.

“지금 보고 계시는 모델에 관심 있으세요?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그게 지금 최고 사양 신상품 캡슐입니다.”

판매의 열정으로 가득 찬 직원이 말을 두다다다 쏟아 냈다.

“이전 세대 모델보다 싱크로율 문제도 개선되고, 내부 구조도 넓어졌어요. 게다가 자체 내장 캠으로 녹화도 제공되어서 화질이 영화급으로 찍힙니다.”

“호오…….”

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신형 캡슐의 각종 편리함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끌렸다.

지금 쓰는 보급형의 캡슐은 가격을 낮추는 데 중점이 되어 있다 보니, 여러 가지로 부족한 면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싱크로율이 약간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사실 유호가 보급형에서 그만큼의 컨트롤을 보여 주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2~5% 이상의 추가 싱크로율 상승이 적혀 있었다.

‘더욱 강해질 수 있어.’

추가적으로 영상 편집에 도움도 되리라.

“마음에 드네요. 얼마죠?”

“……가격은 이렇게 됩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 3,260만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유호는 조금의 당황도 없었다.

스윽.

유호가 자신의 카드를 당당히 건네며.

“일시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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