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백군의 중단 라인을 책임지고 있는 흑마법사 하르도가 순간 짜증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 저 새끼 또 죽었네. 진짜 개노답이다.’
상단 라인에 갔던 같은 편 플레이어가 또다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잔뜩 열이 받은 그는 곧바로 신전에서 유령 상태가 되어 있는 녀석에게 욕지거리를 쏟아 내었다.
“야 이 XX아! 반반만 가라는 게 그렇게 어렵냐?”
그러자 곧이어 당해 보지 않았으면 입 다물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날아들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쯔쯔, 저게 할 소리인가. 끝까지 지 실력을 인정을 안 해요.’
혀를 차며 그렇게 생각한 그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힘겹게 화를 가라앉히며 마음을 다잡았다.
‘후우, 릴렉스하자. 상단에서 묵직한 똥이 쌓여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편이 유리하니까.’
그의 말처럼 객관적 지표는 그들이 승리에 가까움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일단 하단 라인은 완전히 우세할뿐더러, 자신도 이제 균형을 무너뜨리고 상대를 가파르게 몰아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자신이 분전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여기서 어떻게든 내가 킬을 얻어와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자신의 거듭된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대 플레이어를 도발하기 시작하였다.
“낄낄, 어이, 초반에 자신만만하던 기세는 어디로 갔나? 거기 황량한 머리카락들과 함께 사라진 건가?”
심적으로 흔들어 빈틈을 유도하려는 계책이었다.
이를 악물며 청군 플레이어는 꾹 참아 내고 있었지만.
“이보게나, 민머리.”
“저보게, 대머리.”
부들부들.
지치지도 않고 계속되는 도발에 분노로 몸을 떨어 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결국 울컥하여 사무친 한을 담아.
“이 자식아, 너도 언제 찾아올지 몰라! 탈모에 안전지대가 있는 줄 아냐!”
라고 큰 소리로 소리치고 말았다.
파바밧!
“100만 탈모인들의 분노를 받아라!”
그러곤 메이지라는 자신의 포지션을 까먹은 채, 전사처럼 앞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좋아, 제대로 들어갔군!’
거기까지 확인하자, 하르도는 입꼬리를 살며시 말아 올리며 자신도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한데 그때였다.
끼익!
뚜껑이 열려 달려들던 상대편 메이지가 갑자기 발걸음을 황급히 멈추는 것이 아닌가.
‘뭐야? 왜?’
그러자 하르도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자신보다 상대가 더 놀란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 커져 있었고,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자…….’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뒤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싹.
그러던 그때,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는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가 획 소리가 날만큼 재빨리 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히익!’
머리 위로 높이 든 대검을 내려치려 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까꿍?”
하얗게 질려 있는 그를 향해, 남자가 순간 장난스럽게 히죽 웃어 보이며 말을 꺼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부우웅!
콰가가!
“크아악!”
그에게 가공할 위력을 담고 있는 참격이 쏟아졌다.
그는 메이지, 지닌 체력이 상당히 낮았다. 그 한 방에 위험 수치까지 체력이 떨어져 버렸다.
갑자기 등 뒤에서 툭 튀어나와 무방비 상태의 그를 공격한 것은 당연하게도 레온이었다.
‘크윽! 일단 피해야 해.’
하르도가 예상치 못한 대미지에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도망을 치려 했다.
쨍그랑.
그러나 그 순간, 상대가 투척한 포션 병이 바닥에 떨어지며 깨졌다.
‘히익!’
그러면서 순식간에 노란색으로 물든 땅은 자신의 발을 꽉 붙잡았다.
“파, 파이어 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치명적인 상황에 당황에 찬 목소리로 뒤늦게나마 공격 스킬을 시전하려던 그때.
쐐애액!
레온이 대검을 그대로 번쩍 들어 올리고는 다시 한 번 그를 내려찍어 버렸다.
콰각!
소름끼치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싸아-.
전장이 침묵이 감돌았다.
전투를 하던 백군의 병사들마저 깜짝 등장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띠링.
그때 정적을 깨고 효과음이 들려왔다.
-플레이어 리오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반대머리 남자가 레온에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어, 어떻게 여기까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니 맵에 분명 상단 라인에 있었는……?”
하지만 레온은 질문에 해답을 해 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이 빠르게 말을 꺼내었다.
“질문은 다음 기회에. 지금 이 게임 빨리 끝내야 되서.”
파바밧.
그러곤 레온이 함께 등장한 거대한 스켈레톤과 함께 하단으로 향하는 정글 속으로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이건 대체?’
갑자기 뚝딱 정리된 황당한 상황에 반대머리남이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 * *
타다닷!
레온과 포바가 정글을 뚫고 빠르게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레온이 포바에게 엄지를 척 세우며 말을 건넸다.
“아주 잘했어, 포바. 바로 그거야.”
-끼에에.
포바가 가슴을 한껏 피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자기 자신도 타이밍이 아주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나 보았다.
레온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하단 라인으로 이동한 뒤에 또 순간 이동으로 썰어 보자!”
그러자 포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로써 한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레온이 이렇듯 멀리 떨어져 있던 거리를 단숨에 좁힐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포바가 지닌 ‘블링크’ 스킬의 힘이라는 것을 말이었다.
[블링크]
전방으로 30미터를 순간 이동 합니다. 이동 지점에 장애물이 없어야 합니다.
-소환자와 함께 이동이 가능합니다.
순간 레온이 결과에 크게 만족스러워하며 속으로 자신의 계획을 자화자찬했다.
‘직접적인 공격 스킬이 아니면서 전 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순간 이동을 통한 기습이 최고지!’
순간 이동 능력을 활용하여, 자신이 제2의 정글 사냥꾼이 되어 갱킹을 다니자는 그의 계획은 그 후로도 대성공이었다.
엘릭 형제의 배합 실린더의 능력을 활용한 포션들과 현 시각에 나올 수 없는 뛰어난 위력의 무기.
그리고 레온의 극상의 컨트롤이 이뤄 내는 삼박자로 적들은 그의 손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적들의 사무친 한탄과 비명이 연이어 쏟아졌다.
“크아악! 이 새끼 뭐야!”
“이런 젠장! 또 왔냐! 그만 좀 와!”
“으아, 계속 아래에 있지. 왜 상단에 복귀했어!”
패색이 짙었던 전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맵의 전체를 날아다니는 레온의 활약에 힘입어 곧 전 라인이 흥하게 되었다.
-협곡의 지배자가 나타났습니다!
-전설이 출현하였습니다!
-백군의 2차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백군의 3차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레온의 오더를 따르는 청군의 거센 공세에 백군의 포탑들이 연이어 터져 나갔다.
그렇게 협곡에서의 전투가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어, 하다가 어느새 자신들의 신전 앞에서 농성을 하는 신세가 된 백군의 플레이어들이 억울함에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하단 라인은 우리가 이겼는데!”
“이런 게 어디 있어, 망할! 저놈 저거 버그 플레이어 아니야?”
“어허! 어딜 감히 우리 리오 님에게 그런 망측한 개소리를 지껄이느냐. 에라이, 천벌을 맞을 놈.”
“이이! 개발린 놈이 입만 살아서는!”
“하하! 버스 타는 것도 실력이란다. 이기는 놈이 장땡이지. 멍청이들아! 에베베.”
그렇게 탈탈 털렸던 우탄이 껄껄 웃으며 그들을 농락해대기를 10여 분 후.
레온을 포함한 청군의 플레이어들은 마침내.
-축하합니다. 청군의 플레이어가 암흑무투전 ‘불멸자의 협곡’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눈앞에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내용의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청군 플레이어들 모두는 불멸자의 협곡으로 이동되기 전에 있던 대기실에 다시금 귀환하여 있었다.
“크하하, 그 새끼들 표정 봤어? 진짜 진국이었다니까.”
“아, 진짜 처음에는 하도 열 받아서 이러다가 머리가 더 까지는 줄 알았어.”
패색이 짙었던 힘겨웠던 전투를 막 승리로 장식하였기 때문일까.
레온을 제외한 나머지 유저들 모두가 잔뜩 흥분한 상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우탄이 성큼성큼 레온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조용히 서 있는 레온의 어깨를 툭 치더니, 살갑게 말을 건네었다.
“흐흐, 진짜배기를 내가 몰라봤군그래. 큰 빚을 졌어. 내 다음에 자네를 또 만나게 되면 꼭 신세 갚도록 하지.”
게임에 처음 들어갈 때부터 레온에게 생난리를 피우더니, 어느새 태세 전환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에 레온은 ‘됐고, 이후에는 알은척하지 말아 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끝난 마당에 귀찮게 또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짝짝!
그때 대기실로 박수를 치며 보급관 라듐이 들어왔다.
“승리를 축하한다, 제군들.”
순간 모두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가 승리 이후 보상을 주는 일도 담당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보상을 수여하겠다.”
곧이어 이어진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띠링.
띠링.
효과음이 들려오며 모두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암흑무투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악명 1,500이 상대 팀 플레이어에게 전가되었습니다.
-보상으로 ‘푸른 서리 장갑’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동전 주머니’를 획득하였습니다.
‘좋아, 확실히 줄었어!’
일단 레온은 가장 먼저 자신의 악명이 확실히 줄어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곤 바로 안에 골드가 들어 있는 동전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호오?”
레온은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적은 양의 보수를 준다고 해서 기대를 안 했는데, 상당한 양의 골드가 들어 있었던 까닭이었다.
레온의 반응에 다른 유저들이 다가와 주머니 안을 대놓고 훔쳐보았다.
다른 곳이었다면 이런 매너가 아닌 행동을 하지 않겠지만, 이들이 그런 상식을 지니고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의 반응을 보아 각자의 주머니에 있는 금액의 차이가 꽤 있는 듯했다.
그러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보급관이 슬쩍 말을 꺼냈다.
“승리 기여도에 따라 보상의 차이가 날 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레온의 보상 골드가 많은 것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는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유저들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모두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도 일말의 양심은 지니고 있는 듯 보였다.
한데 그때.
띠링.
‘어라?’
효과음과 함께 마지막으로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레온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암흑성국에서의 지명도가 500포인트 상승하였습니다.
‘……지명도? 이건 뭐지?’
생소하기 그지없는 ‘지명도’라는 개념이 나타나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건 커뮤니티에서도 미처 찾아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레온이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지명도에 대해 몰랐던 것은 우탄도 마찬가지였는지, 슬쩍 옆에 있던 체비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봐, 근데 지명도인가 이건 뭐야?”
레온은 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지명도? 최근에 성왕의 명령으로 이방인들에게 부여하기 시작한 점수인데,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왜지? 이게 높으면 무슨 이득이라도 있는 건가? 돈으로 바꿔 줘?”
그러자 체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좋지. 지명도를 높게 쌓으면 암흑성국의 요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거든.”
“호오, 요직이라.”
요직에 진출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 순간 레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한데 그때, 체비가 방에 나 있는 창문 바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 잘만 하면 저기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가 있더군.”
스윽.
자연스레 레온의 시선에 창문 바깥의 풍경.
즉 콜로세움 아래로 비치는 도심의 거리가 담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리에는.
‘……저자들은.’
칠흑의 갑주를 입은 일단의 기사단이 음험한 기세를 내뿜으며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엇!’
레온은 화들짝 놀라며 허리춤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갑작스레 돌려받은 거태도가 거칠게 떨려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퍽!
그에 레온은 깜짝 놀란 나머지, 거태도를 진정시키려 주먹으로 한 대 후려갈겼다.
그러자 거태도가 다시금 잠잠해졌다.
곧바로 레온이 슬쩍 체비와 우탄의 눈치를 살폈지만.
‘휴우.’
다행히도 그들은 거태도의 이상 현상을 눈치채지는 못한 듯 보였다.
‘에고 이 자식! 뭔데 대체.’
갑작스런 상황에 레온이 에고에게 불만을 토해 내었다.
……한데 그때였다.
띠링.
띠링.
효과음과 함께 레온의 눈앞에 생각지도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