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엘릭 형제의 배합 실린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엘릭 형제가 남긴 실험 도구들 중 하나.
-두 포션을 합성하여 더욱 뛰어난 효능을 지닌 새로운 포션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
“후우~ 이게 약간 먼지가 쌓여 있기는 하지만 작동 여부는 확실하다네. 허허, 자네에게 딱 맞는 물건이 아닐까 생각하네만……?”
빠르게 상세 설명을 읽어 내려가자, 레온이 그렇게 흥미로워할 만도 해 보였다.
‘포션을 합성해 새로운 포션을 만든다라…….’
상점 주인이 먼지를 불며 꺼내 든 물건은 바로 두 개의 포션을 조합하여 더 뛰어난 포션으로 만들 수 있는 조합 도구였던 것이었다.
유리 재질로 기다란 원통형이었는데, 표면에 눈금이 새겨져 있었다.
실험실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흔한 외형이었다.
그러나 레온은 실린더를 받아 든 채, 이리저리 살피다가 이내 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거 딱 보아도 뭔가 재밌는 게 나올 것 같은데?’
그는 직감적으로 이 물건이 분명 독특한 효과를 발휘하리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거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그러자 레온이 곧장 가격을 물어보았다.
레온이 이전에 구매하였던 바스타드 소드는 능력치만큼이나 고가의 물품이었기 때문에, 남은 코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로 돌아갔다.
“그건 걱정 말게나, 이 물건은 상당히 저렴하다네.”
‘호오?’
이어 가격을 들어 보니, 정말로 상당히 저렴했던 까닭이었다.
오랜 시간 안 팔리는 악성 재고를 해결하여 신이 난 듯한 그의 설명을 들어 보니.
이 아이템은 이후에 조합비를 내고 상위 아이템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건 레온에게는 희소식일 따름이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실린더를 구매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반짝이는 실린더를 아이템 창에 장착한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가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새로운 직업이 손안에 거의 다 들어왔구나.’
아직 예상이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직업이 탄생하리라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지금 당장 희생양이 필요하리라.
스윽.
그 순간 레온이 자신이 있었던 상단 라인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그러곤 음흉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띄우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후후. 자, 내 인장 경험치의 제물이 되어 줄 닭대가리 친구를 다시 만나러 가 볼까.’
채앵!
레온은 그 말을 끝으로 장검을 뽑아 든 채, 위풍당당하게 상단 라인으로 가는 병사들의 행렬에 몸을 맡겼다.
* * *
백군의 상단 라인을 책임지는 닭벼슬남, ‘버터스’는 연신 쩝, 하고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포탑 사정거리 안쪽에서 마치 구경꾼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그저 쳐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버터스가 속이 까맣게 끓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속으로 답답해하였다.
‘……하, 진짜 미치겠네. 이제는 전장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니 경험치도 못 받아먹고 있잖아.’
처음 라인으로 복귀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실수를 해서 킬을 상대에게 헌납해 버리긴 했지만 이제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매초마다 자동으로 조금씩 쌓이는 코인으로 원거리 공격을 막아 주는 방어 아이템을 어렵사리 구매하였던 데다가.
상대가 먹었던 영약 아이템의 효과도 시간이 지나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병사들 틈에 숨고 이걸로 원거리 견제를 조금이나마 막으면서 딱 한 번, 그래 딱 한 번만 타이밍을 잡으면 설욕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말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현실은 시궁창 그 자체였다.
촤아악!
부우웅!
서거걱!
그 순간 엄청난 크기의 양손 검을 사 온 상대편의 괴물 플레이어가 수많은 병사들을 마치 수수깡처럼 썰어 버리고 있었다.
대검을 들고 적 병사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병사들까지 모조리 다 해치우고 있는 그는 마치 광기에 물든 광전사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 광포한 모습을 보며 버터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니, 저 새끼는 도대체 뭔데 근접 전투 컨트롤까지 저렇게 뛰어난 건데?’
레온은 그의 예상과 달리 이전처럼 견제기를 쏟아 내는 전투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았다.
완전히 정반대의 스타일로 바뀌어 있었다.
대검을 맞추고 오더니, 오히려 그를 그냥 힘으로 짓눌러 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병사 뒤에 숨으려 하면, 병사와 함께 베어 버리려 했고.
방어 아이템으로 견디며 틈을 노리려 하면, 아이템까지 박살을 내 버리겠다는 듯 저돌적으로 맹렬한 공격을 쏟아 내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뛰어난 능력치의 검을 가지고 왔다고 한들, 레온의 스킬 구성은 근접 전투에 특화되어 있지는 않지 않은가.
그에 반해 버터스는 스킬 구성이 완전히 근접 전투에 특화되어 있었기에, 스킬을 잘 활용한다면 반격의 여지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때, 버터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속으로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떠올렸다.
‘젠장, 스킬이 잘 들어가면 뭐 하냐고. 금세 무슨 일 있었냐는 식으로 금방 회복해 버리는데…….’
그가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레온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세히 보니, 무언가 이전과 다른 점이 눈에 띠고 있었다.
띠로롱.
띠로롱.
그건 바로, 레온의 몸 위로 초록색 기운이 넘실거리는 이펙트 효과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현상의 정체는 포션을 사용할 때마다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파바밧.
때마침 레온이 대검을 휘두르고 난 후, 살짝 거리를 벌리더니.
꿀꺽꿀꺽.
포션 병 하나를 꺼내어 들더니 제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삼켜 대고 있었다.
[체력회복 포션 + 체력회복 포션 = 달인용 체력회복 포션]
연금술사의 포션 조제 능력으로 만들어진 상위 등급의 회복 포션. 무척이나 뛰어난 효력을 자랑한다.
-사용 시, 5초간 빠르게 잃은 체력을 회복합니다.
부들부들.
버터스가 억울함에 제 몸을 떨어 댔다.
‘아니, 도핑테스트 해 봐야 하는 거 아냐? 뭐 저렇게 혼자서만 물약을 쪽쪽 빨아 대고 있냐고!’
대체 어디서 솟아나는지 회복 포션을 끊이지 않고 들이붓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공격 스킬을 맞추면 무엇 하는가.
포션 링거라도 꽂혀 있기라도 한 듯이 조금만 지나면 체력이 완전히 되돌아오는데 말이다.
결국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다시금 위험 수치까지 체력은 떨어졌고.
그는 안전한 포탑 사정 내로 돌아와 멍하니 이 사태를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까득.
순간 이를 악물며 버터스가 속으로 생각하였다.
‘크윽! 이러고 있으면 진짜 안 되는데……!’
하지만 혼자서는 어쩔 방도가 없었다.
레온이 그에게 무언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 선을 넘어오면 너 죽는 거다?’
라고 말이었다.
답답해진 그가 같은 백군의 플레이어들에게 다급히 SOS를 요청하였다.
-아 진짜, 상단 라인 좀…… 죽겠어. 제발 살려 줘!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놈들의 시원찮은 반응들이 이어졌다.
-쯔쯔, 상대 정글 사냥꾼도 한 번도 안 갔는데 솔킬을 따이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난 여유 없음.
-하단 라인이 캐리해 드림. 기다리셈.
-제에발 반반만 가요.
빠직.
어지간히 도움이 안 되는 팀원들의 말에 그의 이마에 혈관이 튀어 올랐다.
‘시발, 반반 가는 게 쉬운 줄 아나. 지들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긴.’
불멸자의 협곡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9 대 1로 싸운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해 주었던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데 그때였다.
휘유융!
갑작스레 무언가가 포물선을 그리며 그에게 날아들었다.
레온이 그에게 웬 포션 병 하나를 던진 것이었다.
“어딜!”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이 따위 조잡한 공격에 맞을 성싶으냐 생각하며 버터스가 그대로 검을 휘둘러 포션을 깨뜨렸다.
그러자 그 순간.
퍼펑!
자그마한 폭음과 함께 포션 병이 깨졌다.
그리고 병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이 지면으로 쏟아져 내렸다.
노란색 액체였다.
어느새 버터스의 발밑이 순식간에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뭐, 뭐야. 이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는 그 샛노란 지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헉!”
……그리할 수 없었다.
‘이, 이거 왜 이래?’
그의 몸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않았던 것이었다.
[끈적임 포션 + 민첩 저하의 포션 = 속박의 포션]
연금술사의 포션 조제 능력으로 만들어진 상위 등급의 포션. 밟으면 도저히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끈끈함을 지니고 있다.
-투척된 지면을 밟을 시 4초간 움직일 수 없는 끈끈이 지대를 형성합니다.
꿀꺽.
아무리 움직이려 해 봐도 꿈쩍도 않는 자신의 몸뚱이를 보다가, 치솟는 불안감에 침을 삼켰다.
‘히이익!’
그러곤 시선을 돌린 그는 코앞에서 썩소를 짓고 있는 레온을 확인하고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버터스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채, 비명을 내질렀다.
“사, 살려……!”
하지만.
쐐애애액!
서거걱!
섬뜩한 효과음과 함께 그의 몸이 노란 땅바닥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띠링.
띠링.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플레이어 리오가 학살 중입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한데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또다시 적 플레이어를 해치워 버린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레온이 전혀 들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오히려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흐음, 우리 팀의 형세가 썩 좋지 않군.’
이 순간에도 자신을 제외한 다른 라인의 상황이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밀렸던 하단 라인은 그렇다 치고서라도, 반반은 가고 있던 중간 라인이 점차 밀리고 있었던 것.
순간 레온이 눈을 빛내며 속으로 그 해결책을 생각해 내었다.
‘좋아, 빠르게 궁극기로 해결을 보고 게임을 끝낸다!’
이번 레벨 업을 통해 6레벨을 달성하였던 레온이었다.
이제 네 번째, 궁극기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바로 가자!’
레온은 곧장 스킬 포인트를 분배하였다.
-궁극기 스킬에 포인트를 분배하였습니다.
-스킬 ‘레이즈 스켈레톤’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데 놀랍게도 레온이 대기실에서 선택한 궁극기는 ‘레이즈 스켈레톤’이었다.
약간 의외의 선택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포탑 건설’ 스킬이 이 전장에서는 가장 좋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레온도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앞서 대기실에서 궁극기로 사용할 스킬을 정할 때.
-불멸자의 협곡에서 선택할 수 없는 스킬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던 것이었다.
궁극기로 선택할 수 있는 스킬에 어느 정도 제한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레온은 고심 끝에 레이즈 스켈레톤으로 지정하였다.
한데 여기에도 한 가지 제한이 걸려 있었다.
-궁극기 레벨당, 한 마리의 스켈레톤만 소환이 가능합니다.
그건 바로 단 한 마리의 스켈레톤만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레온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이 게임을 빠르고 손쉽게 제압하는 방법은 당연히 본 드래곤을 지정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레온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또 본 네크로맨서의 경험치가 크게 쌓일 거야.’
그는 직접적인 전투 능력이 아니면서 다른 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스킬이 필요했다.
‘그런 스킬이라면…….’
그 순간 레온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으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녀석이 지니고 있지.’
“레이즈 스켈레톤.”
그러곤 이어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가 소환한 소환수는 바로.
-‘본 바포메트 쥬니어, 포바’를 소환하였습니다.
본 드래곤도, 마루도 아닌 포바였다.
끼에에.
소환진에서 모습을 드러낸 포바가 레온을 바라보며 반가운 듯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레온이 미소를 지으며 그런 녀석을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곤 다음 순간.
슬며시 청군의 정글 속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자, 이제 이 전쟁을 끝내러 가 보실까.’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