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아이템 없이 상단 라인으로 향하는 레온에게 거친 욕설을 한바탕 쏟아 낸 직후.
산적남, 우탄은 자신을 보조하는 족제비남, 체비를 데리고 하단 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해 갔다.
그러자 뒤편에서 정글 사냥꾼을 담당하는 타투남의 당황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봐, 어디 가! 리쉬 안 도와줄 거야?”
정글은 라인을 제외하고 형성되어 있는 밀림을 지칭하는 말이었고, 정글 사냥꾼은 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잡고 레벨을 올려 각 라인을 찔러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리쉬란, 간단히 말해 첫 정글 몬스터를 잡는 것을 도와주는 행동이었다.
일반적으로 하단 플레이어들이 담당하여 도와주었다.
한데 우탄은 코웃음을 치며 그 요청을 간단히 무시했다.
‘그거 쳐 주다가 라인에 몰려오는 병사들을 놓치면 어떡하려고.’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병사들끼리 벌어지는 전투에서 막타를 놓치면 경험치도 코인도 얻을 수 없었다.
“이 XX 새끼들아아아!”
정글 플레이어의 쌍욕이 들려왔지만, 간단히 무시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흐른 후 펼쳐진 상황을 보아 하니, 과연 우탄이 그렇게까지 행동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있었다.
“이잇!”
그때 우탄이 연이어 자신의 ‘기초 머스킷총’의 방아쇠를 당겨 댔다.
타탕!
탕!
목표는 당연하게도 적군 병사들이었다.
-MISS.
-MISS.
그러나 야속하게도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는 모두 그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면 막타를 먹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 진짜! 잘 좀 먹어 봐!”
순간 쏟아지는 적 플레이어의 공격을 회피하며, 서포터 체비가 답답하다는 듯 고함을 내질렀다.
우탄은 성질 같아선 자신도 버럭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지만, 자신이 보아도 처참한 막타 처치 실력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제 성질을 못 이긴 채, 씩씩거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빌어먹을, 난 원래 원거리 딜러가 아니라고!’
무작위 스킬 두 개가 원거리 딜러에게 최적화된 스킬이 나오게 되어 어쩔 도리가 없이 하단 라인으로 향하게 됐지만.
그는 이런 총 따위의 원거리 무기를 사용해 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전투 시작에 앞서 체비가 원거리 딜러를 못 할 것 같으면 자신이 원거리 딜러를 맡겠다고 했었지만, 그가 ‘남자가 무슨 서포터냐’며 거부를 했던 탓이었다.
그러던 그때.
“크크, 저 고릴라 CS 보소.”
“상대 원딜 수전증 도지게 만드는 편이야~.”
백군 하단 듀오의 도발이 깊숙이 들어왔다.
부들부들.
그에 우탄이 분노에 몸을 떨었다.
‘……저 새끼들이!’
피융!
피슝!
상대편 원거리 딜러는 능숙하게 막타를 수집하고 있었다.
초짜 티가 풀풀 나는 우탄에 비하여 상대 플레이어는 저격수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서포터와 함께 견제 또한 날카롭게 들어오고 있었다.
정확한 합이 서로 오래 맞추어 본 티가 났다.
분명 바깥에서도 아는 사이인 듯했다.
그때, 우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바! 우리 정글은 뭐 하냐! 상대 정글은 지금 벌써 두 번이나 찔러줬구먼!”
이 모든 책임을 정글에게 전가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의 귓전에 정글 사냥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협곡 안에서는 마치 헤드폰을 낀 듯, 서로 자유로이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개소리 노노. 너 새끼님 때문에 첫 정글 말려서 레벨링 딸리는 거 안 보이심?”
아까 전 안일한 생각 때문에 리쉬를 안 해 준 탓에 첫 정글이 말려, 상대편 정글 사냥꾼에 비해 속도가 엄청나게 늦어져 있었다.
갱킹을 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대 듀오의 도발이 다시금 이어졌다.
“으으, 찡찡이 종특 나왔죠.”
“정글 탓 오져 버리기~ 자기 쓰레기 실력 인정 못 해 버리기~.”
“이이! 개자식들이!”
“묵직한 팩트는 언제나 마음의 상처를 동반하죠.”
“인정. 예스 인정.”
거의 폭격기처럼 쏟아진 도발에 우탄은 뚜껑이 열려 버렸다.
자신이 원거리 딜러라는 사실조차 까먹고 앞으로 돌진해 나가고 있었다.
“으아아! 죽여 버리겠어!”
“아, 안 돼!”
그가 흥분을 하여 적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체비는 우탄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며 말리려 했지만, 한발 늦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백팀 플레이어 ‘마시타’가 청군 플레이어 ‘우탄’을 처치하였습니다.
-백팀 플레이어 ‘야노쟈’가 어시스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이런 젠장!’
이어 우탄이 회색빛 영혼 상태가 되어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사망할 시, 이런 상태가 되어 자동으로 각 팀의 성전으로 이동되게 되어 있었다.
-이 망할! XXX 새끼가! 지가 투우 소야? 왜 제멋대로 쳐들어가!
잔뜩 흥분한 체비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는 가뿐히 무시했다.
‘들어가는 걸 봤으면 따라 들어와야지, 멍청한 자식.’
그는 아무래도 남 탓이 생활화가 되어 있는 듯했다.
그가 이어 불만을 속으로 생각했다.
‘……빌어먹을, 내가 상단 라인을 갔어야 했는데. 아까 그 트롤 녀석이 가게 돼 가지고.’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상단 라인에 갔으면 캐리를 하고 있었으리라.
한데 그 순간, 무언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그가 고개를 갸웃하였다.
‘어라? 근데 생각해 보니까 트롤 녀석 용케 지금까지 안 죽었네?’
그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자신이 청군의 첫 데스였던 까닭이었다.
띠링.
이어 그는 양 팀의 스코어보드를 눈앞에 띄워 보았다.
‘흐음.’
멍청한 정글 놈은 갱킹 없이 성장에만 치중해서인지 레벨을 꽤나 복구해 놓아 있었다.
그리고 중단 라인은 반반을 가고 있었다.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중단 라인이 압도적으로 이겨 주고 있어야 어떻게 비벼 볼 만한데.’
히든 카드였던 자신이 밀리고 있었으니 한 라인이라도 크게 흥했어야 했던 것이었다.
한데 그때.
“어라?”
우탄이 커다랗게 눈을 부풀렸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린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이, 이게 뭐야?’
그의 눈앞에 상단 라인에서의 스코어가 보이고 있었다.
‘트롤이 아니었어?’
[리오 116 vs 라켄 3]
처참할 정도의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 자릿수의 CS라니.
상대 상단 라인이 완전히 쫄딱 망해 있었다.
그가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있던 그때.
“야 이 미친 트롤 새끼야! 살아났는데 왜 안 와!”
이제 신전에서 되살아났음에도, 놀란 나머지 망부석이 된 우탄에게 체비가 고함을 질러 댔다.
그랬다. 트롤은 우탄이었던 것이었다.
* * *
그리고 시간을 잠시 되돌아가.
레온이 상단 라인에 첫발을 디뎠을 때.
“흐음.”
레온은 위용을 자랑하는 1차 포탑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있었다.
아직 양 팀의 병사들은 이곳까지 도착을 하지 못한 시점이었다.
플레이어들의 발걸음이 병사들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시간도 남았겠다, 직업병처럼 자연스레 포탑을 진단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흐음, 내가 만든 포탑보다는 구린데?”
그리고 잠시 후 내린 결론은 역시나 그가 만든 것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포탑이라면 몇십 대를 맞아도 그는 멀쩡하리라.
……하지만 문제는 그것은 그가 온전한 상태일 때에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능력치들을 살펴보니, 현재 약해진 상태에서는 서너 대 이상을 견뎌 내지 못할 것 같았다.
-포탑의 사정거리 안에서 아군 플레이어가 적군 플레이어에게 공격당할 시, 포탑은 자동으로 적군 플레이어를 우선적으로 공격합니다.
‘상대 포탑 사정거리 안에서는 조심해서 플레이해야겠군.’
포탑을 만지자 떠오른 경고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읽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처척.
처처척.
그러던 그때였다.
그의 귓전에 규칙적인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군과 적군의 병사들이 도착을 한 것이었다.
순간 레온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왔군.’
그의 눈에 닭 벼슬 같은 하드한 모히칸 스타일을 하고 있는 상대편 플레이어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레온은 먼저 상대가 들고 있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듀란의 검]
종류 : 한 손 검
공격력 75.
협곡의 이름난 대장장이 듀란이 만든 검.
초보자가 사용 시, 뛰어난 위력을 발휘한다.
-본 아이템은 불멸자의 협곡에서만 장착이 가능하며, 협곡에서 벗어날 시 자동으로 회수됩니다.
[포션(小)]
종류 : 잡화
사용 시, 5초에 걸쳐 플레이어의 체력을 소량 회복시킵니다.
-본 아이템은 불멸자의 협곡에서만 장착이 가능하며, 협곡에서 벗어날 시 자동으로 회수됩니다.
칼과 1포션이었다.
‘근접 공격이라 이거지.’
상단 라인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탱커 혹은 딜탱 전사였다.
그중 아이템으로 보아 상대는 후자일 가능성이 큰 것이었다.
레온은 티 나지 않을 만큼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탱커보다 딜탱이 그의 먹잇감으로 삼기에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때.
“흐흐, 어이.”
백군의 플레이어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레온에게 말을 건네 왔다.
“딱 보니까 트롤 같은데. 얼른 이리 와, 형이 맛있게 먹어 줄게.”
장비를 확인한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는지, 레온의 착용 아이템이 보이지 않자, 그를 얕잡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상대의 꼴같잖은 태도가 거슬린 레온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곤 썩소를 보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옥을 보여 주지.’
라고 말이었다.
파밧!
“흥! 쉽게는 안 주겠다 이거지?”
순간 레온이 빠르게 전투가 벌어진 병사들 틈으로 달려들자, 상대편 또한 호응해 왔다.
레온은 무기가 없었음으로 권각(拳脚)으로, 상대는 검을 휘둘러 댔다.
맨손과 맨발을 휘둘러 대는 레온을 바라보며,
‘후후, 아무리 봐도 이 자식 트롤 맞는 것 같구먼.’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한 닭벼슬남이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퍼퍽!
퍽!
그때 레온의 공격에 닭벼슬남이 막타를 처치하려던 청군 측의 병사들이 연이어 쓰러졌다.
저자의 행동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이 자식, 자신의 병사를 제 손으로 처치하면서 CS를 양보 안 할 생각이구나!’
레온이 1레벨에 배운 스킬인 강제 희생양이 발동되었던 것이었다.
[강제 희생양]
자신의 공격으로 아군 병사를 처치할 수 있습니다.
-아군 병사 처치 시에는 경험치와 코인 모두 습득이 불가능합니다.
-상대가 먹을 CS를 자신이 먹어 버려 코인과 경험치를 차단해 버립니다.
강제 희생양 스킬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망할! 하나도 못 먹었잖아?’
시간이 흘러도 그의 CS는 아직도 0개였다.
그러던 그때.
띠링.
띠링.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반대로 모든 CS를 하나도 놓치지 않은 채, 죄다 챙겨 먹는데 성공한 레온이 레벨이 상승하여 있었다.
AOS에서 선 2렙은 첫 분기점이라 생각될 정도로 상당히 중요한 순간이었다.
레온은 곧바로 획득한 스킬 포인트를 대기실에서 선택하였던 세 번째 스킬에 분배하였다.
그러곤 아직도 1레벨로 허둥지둥하고 있는 적에게 그 스킬을 쏟아 내었다.
“블리딩 다트!”
그러자 레온의 손에서 핏방울이 새어 나오더니, 다트의 형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파공성을 만들며 날아들었다.
피융!
피슈융!
파박!
[블리딩 다트](논 타겟팅)
자신의 체력을 소모하여 만들어 낸 다트를 상대에게 날립니다.
적중시킬 때마다, 블리딩 표식을 적에게 남기며 특수한 효과를 발동시킵니다.
-10번 연속하여 공격을 적중 시, 표식이 발동되어 상대에게 7초간 출혈 효과를 적용시킵니다.
-15번 연속하여 공격을 적중 시, 표식이 발동되어 상대에게 방어력 관통 대미지를 적용합니다.
-25번 연속하여 공격을 적중 시, 표식이 발동되어 상대에게 3초간 스턴을 적용시킵니다.
-스턴이 걸린 상대에게 도약할 수 있습니다.
‘크윽.’
상대 플레이어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한 방, 한 방의 대미지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누적되자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었다.
‘이 시발! 왜 이리 잘 맞히는 건데!’
다트에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그의 전신에 꽂히고 있었던 것이었다.
현실에서 프로 다트 선수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적은 CS 하나를 먹으려 시도를 할 때마다 억 소리를 내며 뒤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순간, 고양이에게 쫓겨 코너에 몰린 쥐새끼 같은 상대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온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논 타겟팅 스킬은 내 주특기지!’
그랬다. 레온의 뛰어난 동체 시력과 컨트롤 능력은 논타겟팅 스킬을 타겟팅 스킬처럼 사용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결국 참지 못하고 상대 플레이어의 비명이 쏟아졌다.
“크아악!”
그의 눈앞에 서글픈 내용의 시스템 메시지가 보이고 있었다.
-10번 연속하여 공격이 적중되어 7초간 출혈 효과가 발생합니다.
-15번 연속하여 공격이 적중되어 방어력 관통 대미지를 입습니다.
블리딩 다트 스킬은 ‘연이어 원거리 공격을 적중시켜야하는’ 정말 발동하기 힘든 조건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레온은 그 힘든 일을 이뤄 내고 있었다.
속으로,
‘누굴 먹어? 이 새끼, 아주 강력하게 조져 주마.’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었다.
그렇게 어찌 해결을 할 바도 없이 CS 격차는 말도 안 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상대 정글 사냥꾼은 ‘망한 라인은 가는 것 아니다’라는 법칙을 알고 있는지, 상단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때에 따라서 다르게 써야 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레온으로써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로 인해 더욱더 상단 라인은 완전히 한쪽의 세계로 변화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리오 116 vs 라켄 3]
우탄이 확인하였던 처참한 스코어까지 진행이 되어 있었다.
-25번 연속하여 공격을 적중을 적중하여, 표식이 발동됩니다.
-상대에게 3초간 스턴을 적용시킵니다.
‘좋아, 이제 준비해 볼까……!’
순간 레온이 품 속에서 찰랑거리는 한 가지 물건을 허리춤의 주머니에 넣어 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