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레온은 마을을 샅샅이 뒤지듯 곳곳을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뭐가 이렇게 발전이 안 되어 있어?’
자신의 생각보다 마을의 실태가 너무 허접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내정은 하나도 신경을 안 쓴 건가?’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일단 마을에 설치된 건물들의 종류가 너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이미 설치되어 있는 기본 건물들 말고는 정말 아무런 것도 증설하지 않은 듯했다.
분명 마을의 설명에 발달한 편이라던 여관과 가게들도 메르엠과 비교하면 너무 수준이 떨어졌다.
그는 뒤를 전혀 생각지 않고 그냥 군사력에다가 모조리 쏟아부은 경우인가 싶었지만.
곧이어 마을의 자경단원들을 살핀 레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이 쭉정이들은.’
퀭한 얼굴에 마른 몸들이 딱 보아도 상태가 정상이 아니어 보였다.
이런 병사들은 한 트럭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메르엠의 군사들에게 털끝만큼도 해를 끼치지 못하리라
군사력에 쏟아부은 건 절대 아니었다.
이런 경우 이유는 하나일 듯싶었다.
레온이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참나, 게임 속에서도 돈을 횡령하는 영주들이 있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분명히 영주가 돈을 착복한 것이 틀림없었다.
쯔쯔, 하며 혀를 찬 레온은 이어 영지의 NPC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기 시작했다.
NPC들의 불만도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타지인에게 영주에 대한 욕설을 한 바가지 내뱉을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영주 자식, 전쟁 때문에 살 수가 있어야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통에 어디 일이나 할 수 있겠소?”
“……혹시 우리가 계획을 하나 짜고 있는데, 동참할 생각 없는가?”
심지어 그에게 반란을 제안하는 영지민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그냥 막장 중에서도 개막장 영지라고 말할 수 있을 터였다.
‘조금 떨어진 지역이라고 이렇게 관리를 안 하나? 랭킹 1등이라고 하더니, 영 별론데.’
레온은 여태껏 흑풍회라는 길드에 대하여 상당히 뛰어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들어선 마을에서 여러 정보들을 취합하던 레온은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는지, 남은 시간 동안 해결할 퀘스트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정말 수집한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그는 마을에서 받을 수 있는 퀘스트란 퀘스트는 모조리 얻고 있었다.
띠링.
띠링.
-글래셜 타우루스 처치 0/70
-니들 카우의 외뿔 수집 0/50
-에인션트 리치 처치 0/2
-(……중략……)
효과음과 함께 그의 시야 오른편에 퀘스트 제목들이 연이어 추가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퀘스트들을 모으는 레온은 금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이봐요, 그렇게 바겐세일하듯이 퀘스트를 죄다 쓸어 담는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해결 못 하고 실패 페널티를 한꺼번에 받으면 어쩌려고요.”
“쯔쯔, 망했네 망했어.”
곧이어 레온을 대책 없는 멍청이로 본 몇몇 유저들이 조언을 가장한 무시의 말들을 던져 댔다.
‘네, 네, 쓸데없는 오지랖 감사하고요.’
하나 레온은 그것들을 모두 듣는 둥 마는 둥 넘겨 버렸다.
그는 대책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그가 받은 모든 퀘스트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몬스터 처치’ 혹은 ‘몬스터 처치 시 나오는 부산물 수집’뿐이라는 것이었다.
레온은 암흑성국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그는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레온은 청소하듯 지정 몬스터들을 차례로 쓸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의 품 속에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소환수가 잠들어 있었다.
기대감에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있었다.
드디어 본 드래곤을 제대로 사용해 볼 순간이었다.
* * *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판테라 내에서 아주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다.
유저들을 제외한 이 세계의 주민들은 어느 누구도 드래곤을 몬스터라고 부르지 않았다.
몬스터라고 취급하기에는 너무나 상위의 개체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믿는 신과 동급으로 놓기도 하였다.
드래곤이 얼마나 상위의 종족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증하듯 아직 유저들 중 어느 누구도 드래곤 처치에 성공한 이가 없었다.
그건 바로 드래곤들이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는 수많은 강점들을 극복하지 못해서였다.
한데 그중에 가장 거품을 물고 욕을 하는 것이 바로.
모든 드래곤이 패시브로 지니고 있는 ‘마력 반발’ 스킬이었다.
그리고 그때.
어느 던전의 내부.
-……황혼보다도 더 어두운 것.
-……흐르는 피보다 더 붉은 것.
어딘가에서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끔찍함을 지닌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쫓아가자, 텅 빈 백골의 눈에서 붉은 기운을 번뜩이고 있는 에인션트 리치들이 지팡이에 검은 마력들을 띄워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팡이가 향하고 있는 곳에 레온과 본 드래곤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문이 이어질수록 강대한 기운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드라고나 슬레이버!
-드라고나 슬레이버!
본 드래곤을 향해 그들의 스킬이 쏟아졌다.
한눈에 보아도 엄청난 위력이 담겨져 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레온은 전혀 여타의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리고 있었다.
쿠아아아!
콰아아!
구우웅!
스킬들이 본 드래곤에 직격하자,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 두 명의 에인션트 리치는 이곳의 보스 몬스터였다.
던전 내부가 지진이라도 난 듯 거침없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간지럽다, 이 해골바가지들!
공격을 적중당한 파크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의 타격도 입지 않아 있었다.
그러자 레온이 순간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본 드래곤 최고다!’
라고 말이었다.
[마력 반발 / 패시브]
인류에게 마법을 전수한 드래곤은 태생적으로 어떤 마법 피해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모든 마법 공격에 대한 피해량을 45퍼센트 경감시킵니다.
-받은 마법 피해의 20%를 공격한 적에게 반사 대미지로 입힙니다.
마력 반발은 모든 마법 공격을 무려 45퍼센트나 경감시켜 주는 사기적인 패시브였다.
그리고 그건 저들과 같은 메이지형 몬스터들은 절대로 본 드래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었다.
-끄에에에!
-크어어어!
곧이어 리치들이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에인션트 리치 1’이 본 드래곤, 파크의 ‘마력 반발’의 효과로 반사 대미지를 입습니다.
-‘에인션트 리치 2’가 본 드래곤, 파크의 ‘마력 반발’의 효과로 반사 대미지를 입습니다.
마력 반발의 또 다른 효과인 자신에 대한 마법 공격에 대한 반사 대미지를 입은 것이었다.
비틀거리는 그때에 레온이 마지막을 장식할 스킬을 사용하였다.
“아이스 버스트!”
그의 말이 끝난 순간, 본 드래곤이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그러자 리치들이 보였던 기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공할 기운이 입속에 머금어졌다.
순식간에 몸을 떨리게 만드는 한기가 던전을 가득 채웠다.
일전에 사용했던 스킬인 블리자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레온의 본 드래곤은 빙룡(氷龍)이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전시간이 끝이 나고 난 후.
쿠아아아!
본 드래곤의 입에서 순백색을 띤 가공할 기운이 내뿜어졌다.
-……!
-……!
그에 직격당한 적들은 미처 비명을 내지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쨍그랑!
쨍강!
곧이어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에 부서졌다.
-‘에인션트 리치 1’을 처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에인션트 리치 처치’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한계 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더 이상 경험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좋았어! 한계 레벨 달성!”
순간 레온이 쾌재를 불렀다.
마을에서 만났던 ‘오지라퍼’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완벽하게 해결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레온의 경험치로 화한 몬스터들의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가 암흑성국으로 가던 와중에 이렇게 시간을 낸 이유에, 입성하기 전에 한계 레벨까지 마저 올리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하암, 새 주인아, 그럼 난 이제 자러 가 볼게.
귓전에 파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령 유지 가능 시간이 모두 끝났습니다.
-자동으로 소환이 해지됩니다.
슈웅.
본 드래곤의 모습이 점점 옅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어느새 강령으로 소환이 가능한 4시간이 모두 지난 것이었다.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레온이 이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쩝, 뭐 어차피 하나 빼고는 다 끝났으니까.’
무려 스무 개가 넘게 가지고 왔던 퀘스트들 중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모두 끝마친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금세 끝낼 수 있었다.
‘조금만 하면 되겠네.’
성큼성큼.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던전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으아! 사람 살려!”
앞쪽에서 뜬금없이 웬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순간 레온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곧이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뭐야, 저 아재는?’
“히익!”
그의 눈이 닿은 곳에, 웬 동양풍의 도포를 입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몬스터의 공격을 힘겹게 피해 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어리둥절하게 쳐다보고 있던 레온과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감동한 듯한 반응을 만들었다.
“오오, 사람이다!”
투다다다!
그러곤 몬스터들에게서 벗어나 레온에게로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키에에!
-쿠에에!
그에 몬스터들은 당연하게도 레온 또한 공격 대상으로 인식하였고 말이었다.
“허억, 헉, 사해가 동도라는데, 젊은이, 온정을 베풀어 주지 않겠는가.”
헉헉거리며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레온은 눈초리를 좁혔다.
혹시라도 갑자기 자신을 기습해 오기라도 할까 의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그런 생각을 지워 버렸다.
그렇게 남자를 지그시 바라보던 레온이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흠, 니들 카우인가. 뭐, 찜찜하긴 하지만 어차피 저놈들이 목표이긴 했으니까.’
어차피 퀘스트 지정 대상인 몬스터들이었기에, 잡기는 잡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느릿느릿 검을 뽑으려던 그때.
“도와주면 꼭 내 크게 답례하겠네!”
보상을 약속하는 중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채앵!
“이 간악한 놈들! 모가지를 댕강댕강 잘라 주마!”
순간 나의 아저씨를 곤경에 빠뜨린 몬스터들에 분노가 차오른 레온이 재빠르게 검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