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암흑무투전이라…….”
유호가 게시글의 제목에 적혀 있는 이름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되뇌었다.
계속된 검색 작업 때문에 피곤에 지쳐 있던 그의 눈이 어느새 이채를 띠고 있었다.
‘이 얘기, 진짜인가?’
그가 쉽사리 믿지 못한 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악명을 몰아준다’는 내용의 문장을 살펴보았다.
암흑성국 자체가 도박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것도 있을 줄은 몰랐다.
‘일단 읽어 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
유호가 게시글의 내용을 뚫어져라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악명 몰아주기빵, ㄱㄱ? 암흑성국 콘텐츠의 꽃! 암흑무투전에 대해 알아보자 Ver. 2.0]
(일단 편한 설명을 위해 음슴체로 쓰겠음. 양해 바람.)
마몬교의 신도가 된다든지, 암흑성국 소속의 병사가 되는 것이 아니면 악명은 대부분의 유저에게 최악의 페널티나 다름없음.
암흑성국 외의 도시에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데다가, NPC들에게 각종 불이익을 얻을 때가 많기 때문임.
그래서 아직도 수많은 유저들이 악명을 없애려고 여러 신전에다가 기부금을 쏟아붓고 있음.
하지만 그 방법은 단점이 있었으니, 레알 비싸도 너무 비싸다는 것임.
그래서 신전을 이용하지 않고 악명을 낮추고 싶어 하는 수많은 이들의 욕망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암흑무투전임.
각종 성인 컨텐츠들로 가득한 도시, ‘제에’에서 상시 열리고 있음.
암흑무투전은 여러 등급으로 구분되어 있는 수많은 종류의 미니 게임으로 구성이 되어 있음.
참여하는 유저들은 플레이어로 불리며, 이들은 승리할 시, 자신의 악명의 일정 수치를 상대에게 전가할 수 있음.
그리고 그 과정을 방청할 수 있는 방청객 유저들은 그걸 보며 플레이어의 승패에 자신의 골드를 걸 수 있음.
아, 근데 암흑무투전도 공짜는 아님.
적잖은 참가비를 내야 들어갈 수 있음.
그래도 기부금보다는 확실히 낮은 가격이니, 걱정 마시길.
게다가 맨 처음에는 푼돈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승수에 따라 커지는 승리 보상도 있기는 함.
대충 7연승 이상 하면 본전은 뽑는다고 하는 듯함.
거의 대부분이 3연승도 못 하는 것이 팩트이기는 하지만ㅎㅎ.
아무튼 마지막으로 암흑무투전의 게임 종류를 첨부하겠음.
판테라의 모든 범죄자 횽들, 암흑성국으로 와 보아욧.
(……중략……)
유호는 내용을 읽어 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쉽게 이해하자면, 서로의 악명을 떠넘기기 위해 벌어지는 콜로세움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건가.’
그러고 난 후, 유호는 작성자가 첨부해 놓은 게임 종류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처음 그는 암흑무투전이라는 이름을 듣고 흔히 있는 토너먼트식의 대전인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암흑무투전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미니 게임의 종류가 열 가지가 넘어갈 정도로 많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개인전과 단체전으로도 나뉘었고, 각 게임마다 난이도와 등급도 달랐다.
그렇게 암흑무투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그는 이어 게시글에 달린 댓글의 반응들을 한 번 살펴보았다.
그러자 암흑무투전에 대한 댓글들이 온도 차가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레알 개꿀잼임. 관중석에서 봐 보셈. 어떻게든 이기려고 별 지랄을 다하는데, 보는 맛이 있음.
-이런 콘텐츠라니…… 너무 불편하네요. 게임사가 미친 것 같음.
-실력만 좋으면 악명 없애기 개꿀임. 난 PK로 쌓였던 거 싹 털어 버림.
-……윗분 참여해 본 거 맞음? 난 시바, 마지막 기회 같은 걸로 한 건데 오히려 더 쌓여서 캐삭함.
유호가 턱을 짚은 채,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고심을 하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결국 길은 암흑성국인가.’
마치 운명이 그에게 손짓을 하는 것처럼, 암흑성국이 그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유호는 속으로 한 가지 생각을 덧붙였다.
그건 바로.
‘……게다가 잘만 하면 이걸 통해서 만들고 싶었던 새로운 직업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지.’
라는 것이었다.
아직 확신까지는 아니었지만, 암흑무투전의 게임 종류와 내용들을 읽다가 작은 힌트를 획득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좋아, 그럼 결정지은 김에 곧바로 착수해 보실까.”
유호는 곧바로 게임에 접속할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 * *
잠시 후.
판테라에 접속한 레온은 영주관에서 후다닥 여행을 떠날 짐을 꾸렸다.
한데 사실 꾸릴 짐이라고 해 보아야, 포션 등과 같은 잡화밖에 없었기에 금방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러고 난 후 레온은 곧바로 암흑성국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리 할 수는 없었다.
‘나도 양심이 있지. 패치 숲에서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또 훌쩍 가면 너무 양아치지.’
물론 그가 패치 숲에 놀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지 관리를 브룩에게 모두 맡긴 채 떠난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영주로서 할 일은 끝마치고 떠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자, 그럼 하나하나 해치워 보실까.”
뚜둑.
손의 관절들을 소리 나게 푼 레온이 바로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첫 번째로 한 행동은 브룩을 만나 이 사실을 전하는 것이었다.
레온이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채,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또 떠나야 된다고? 그래, 다녀와.”
한데 예상외로 브룩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다.
그가 그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도시로 승급을 하면서 영주관에 총관 NPC가 생겼고, 지침만 내려 주면 거의 내정을 자동으로 해결해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이전과는 다른 여유롭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현실 속 학교에서 만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에, 이전보다는 확실히 부쩍 여유가 생겨나 있었다.
그러던 그때, 브룩이 레온에게 말을 꺼냈다.
“근데 너도 참 기구한 겜생이다. ……이제는 무슨 대륙을 횡단하러 가냐.”
그의 말에 레온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그렇게 말을 할 만도 했다.
레온이 있는 곳은 적대 세력이라 갈 수 없는 제국을 제외하면 서쪽 끝이었고, 암흑성국은 동쪽 끝이었다.
그의 말처럼 횡단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마을의 내정이 해결이 되고 난 후.
레온은 마을의 외곽 지역에서 커다랗게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하이른, 정신 안 차릴래? 좀 못 봤다고 개빠졌네, 이거?”
“요세프! 저 아저씨들 아직 뭔지 모르니까 네가 잘 알려 드리란 말이야!”
뒤늦게 도착한 태양 마을의 건설가들과 메르엠에 있던 건설가들을 모두 모아 마을을 휘감는 포탑들의 진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경우는 없겠지만, 혹여라도 자신이 없는 사이에 적이 습격이라도 해 왔을 때 완벽히 방비할 수 있을 정도는 만들고 가고 싶었다.
영지의 방어력을 견고히 하는 문제였기에, 레온은 2주 이상의 긴 시간을 투자하였다.
그것까지 끝이 나자.
“계속 이렇게 교류를 하며 서로 힘을 키워 가도록 하죠. 우리는 피를 나눈 동맹이니까요.”
“……형님.”
그의 영지에 와 있던 만타까지 패치 숲으로 돌려보냈다.
레온을 바라보는 만타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뒤편에서 만타를 바라보는 네기의 눈은 질투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말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후.
대망의 그날이 다가와 있었다.
성벽이 지어지고 있는 메르엠의 정문 앞에 길드원들이 모여 있었다.
떠날 채비를 끝내 놓은 레온과 한 명 한 명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역시나 핏줄인 유우였다.
“오빠, 잘 다녀와.”
“그래, 고맙…….”
“암흑성국에만 있다는 카드 세트 꼭 사 오는 것 잊지 말고? 알았지?”
“…….”
두 번째는 네기였다.
“또 이별이라니……. 크흑, 형님, 잘 다녀오세요.”
“금방 와, 인마. 영상은 이제 다시 또 꾸준히 보내 줄게.”
이어 눈을 마주친 브룩은 그냥 귀찮다는 듯 말없이 얼른 가라는 듯 손짓만 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아직 도장만 안 찍었다 뿐이지, 자연스레 길드의 식구처럼 취급받고 있는 리안과 멜로니도 서있었다.
“그럼 다녀올게.”
그런 그들에게 짧은 인사를 보낸 후, 레온은 드디어 암흑성국으로 가는 긴 여정에 첫발을 내디뎠다.
* * *
레온은 암흑성국으로 긴 여정을 피르호크를 타고 이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본 드래곤의 이동 속도가 피르호크보다 훨씬 더 뛰어났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 엄청난 손해였기 때문이었다.
고작 4시간밖에 없는 소환 가능 시간을 그런 식으로 전부 소모해 버리면, 정작 전투에 사용할 수가 없지 않은가.
최대한 빨리 이동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싶었지만, 그가 짜 둔 계획은 그것과 달랐다.
그렇게 피르호크를 타고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하루가 넘게 이동을 하고 난 후.
……끼루우우.
“고생했다.”
탈진 상태가 된 피르호크를 레온은 역소환하였다.
푸슝.
효과음과 함께 피르호크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졌다.
피르호크를 비행에 사용하면 지속적으로 깎이는 소환 유지 마력에 더불어 매초 추가적으로 마력이 소모되었다.
이 정도까지 가능한 것도 레온의 막대한 마력 량 덕분이었다.
그렇게 마무리를 지은 후, 레온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야로 작은 마을 하나가 보이고 있었다.
[파라스 / 윈드러스 복속 영지]
영주 : 말라킨
도시 발전 정도 : 촌락
영토가치 : 723
인구 : 781명
넓이: D 군사력 : B
경제력 : C 종교 영향력 : F
북부 대륙에서 그나마 윤활한 중부 지역에 위치한 영지 중 한 곳으로 유랑객을 상대로 한 숙박업과 식당들이 발달하여 있다.
사방에 위치한 영지들과 모두 사이가 좋지 않아 잦은 전투가 벌어지는 탓에 자경단의 전투력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윈드러스라면 분명 흑풍회 길드의 메인 영지의 이름.
그랬다. 이곳은 판테라의 랭킹 1위 길드인 흑풍회의 복속 영지였다.
레온이 이곳에 들른 이유는 간단했다.
피르호크를 다시 소환하기 위해 조금 휴식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거니와.
‘암흑성국으로 가는 와중에 경유지에 있는 영지들을 염탐이나 좀 해 보아야겠어.’
라는 계획 때문이었다.
어차피 대륙을 횡단하다시피 하는 먼 길이를 이동하는 대여정.
중간중간 쉬는 타이밍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쉬어야 하는 시점마다 둘러볼 수 있는 영지들을 물색해 놓았던 것이었다.
패치 숲에 들어가 있느라, 다른 길드들이 어느 정도까지 영지를 발전시켜 놓았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되어 있는 것을, 약간이나마 만회하려는 것이었다.
한두 번쯤은 이렇게 직접 발품을 팔아 볼 가치는 충분했다.
성큼성큼.
레온은 곧이어 자연스럽게 파라스의 정문을 지나쳐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경비병과 검문 체계가 확실히 되어 있는 도시 이상의 영지는 악명 탓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이런 촌락 수준의 마을들은 들어갈 수 있었다.
레온이 눈을 빛내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어디 한번 중부 지역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정보를 좀 찾아볼까. 겸사겸사 호로록 깰 수 있는 퀘스트들도 좀 받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