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64화 (164/332)

# 164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사라지고 감추어져 있던 모습이 드러난다.

그건 바로.

‘……뭐가 저렇게 커?’

일반 포탑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포탑이었다.

그 위용에 절로 위압감을 느낀 그리아몰이 얼굴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한데 그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어라?’

무언가 조금 이상했던 탓이었다.

거창하게 모습을 드러낸 포탑은 아무런 움직임도, 어떠한 이펙트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이내 마음을 다스린 그리아몰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흐흐, 멍청한 놈! 겉만 번드르르했지, 실패작인가 보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작동이 온전히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미 그의 검에서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흑염 참파가 병력에 내리꽂히기 일보 직전인 상황.

이 타이밍을 놓친 것을 레온은 피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이제 멈출 수 없다!’

쿠가가가가!

화르르르르!

마침내 엄청난 폭음을 터뜨리며 흑염 참파가 절벽 아래를 뒤덮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으아아! 불벼락이 또 떨어진다!”

“도, 도망쳐!”

얼굴이 하얗게 질린 병사들이 내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순간, 그리아몰은 레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못 가지면 너도 못 가져!’

라고 말이었다.

그는 레온이 승리하여 저 태양 샤먼들을 온전히 제 세력으로 편입시키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콰가가강!

퍼퍼퍼펑!

전장이 다시 한 번 처절한 비명과 폭음으로 뒤덮이며, 시커먼 연기들이 절벽에 가득 차올랐다.

그리아몰은 정말 아군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전투의 최중심지에 그대로 스킬을 꽂아 넣었다.

레온이 파크의 힘으로 사용했던 것보다 위력이 더욱 강력하였다.

하지만 곧이어 시야를 뒤덮은 연기가 걷히고 나자.

“……!”

눈앞에 펼쳐진 전혀 예상 밖의 결과에 그리아몰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너무 놀란 나머지, 차마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를 않을 지경이었다.

극과 극의 결과가 펼쳐져 있었다.

“크어어어!”

“……이 미친 신관 놈!”

“사, 살려 줘!”

달 마을의 인원들은 지옥에 와 있는 것처럼 그를 저주하며 고통에 찬 신음성을 지르고 있었던 반면.

“뭐야 이거?”

“별거 아닌데?”

“뜨뜻하구먼.”

태양 마을의 병력은 너무나 가볍게 툭툭 몸에 붙은 불을 털어 내더니, 다시금 적들을 처치해 가고 있었던 것.

그들은 마치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나왔을 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윽!”

너무 놀란 나머지, 연이어 자신의 소환수들에게 공격을 허용하는 그리아몰을 바라보던 레온이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크으, 거의 방화복을 입혀 놓은 것 같네. 포탑을 짓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그랬다. 역시나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였던 포탑의 힘이었다.

그가 만든 마르젤라의 진염 포탑은 오로지 상대의 흑염 참파를 봉쇄하기 위해 만든 포탑이었다.

[마르젤라의 진염(鎭炎) 포탑]

LV. 1 / 제작자 : 레온

등급 : S

공격력 : 0

방어력 : 1,620

생명력 : 1,615,000

시야 : 160M

고유 능력

엑스틴기르(Extinguir)

-30분 동안 포탑 반경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아군의 화염 저항력을 80% 상승시킵니다.

-발동하기 위해서는, 3시간의 사전 충전 시간이 필요합니다.

레온은 밀림 지대에서 복귀한 후, 모든 건설가들을 자신의 앞에 집합시켰다.

그러곤 돌아오는 내내 실패를 거듭하며 겨우 만들었던 설계도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건설가 전부와 적군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밤을 새워 가며 설계도의 포탑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이 진염 포탑이었다.

오로지 아군에게 극도의 화염 저항력을 맞추어 주기 위해 만들어 낸 포탑이었다.

밀림 지대에서 상대 마몬의 사도의 힘이 검은 화염을 다루는 것임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만일 그리아몰이 밀림 지대에서 아군을 희생시키려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터.

그때 그리아몰은 자신의 비장의 한 수를 스스로 노출시키는 치명적인 실수를 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태양 샤먼들이 레온이 이런 상황이 펼쳐지면, 큰 소리로 외치라고 했던 대사들을 줄줄이 읊어 대고 있었다.

“모두 힘을 내라! 변절한 적군이 우리를 돕고 있다!”

“내통자가 우리를 돕고 있다!”

“배신자 신관이 우리를 지원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리아몰이 자신들을 돕기 위해 스킬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겨우 스킬을 피해 낸 달 샤먼들의 낯빛이 단번에 하얗게 질렸다.

몇몇 이들은 쥐고 있던 무기를 내려놓고, 그대로 투항하는 이까지 생길 정도였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의 신관의 무지막지한 힘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지 않던가.

그런 존재가 상대편에 붙었다니, 전의를 상실하기에 충분한 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리아몰의 스킬이 적군들을 휩쓸어 준 덕택에 전투는 이제 태양 마을 쪽의 승리라는 결말로 가는 9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곧 정리되겠고, 모두 올라와서 같이 저놈을 잡으면 끝인……!’

그렇게 레온이 절벽 아래의 정리되는 상황을 훑어보던 그때.

그의 촉이 위험을 감지하고 신호를 미친 듯이 보내기 시작했다.

‘이런!’

방심을 허용한 찰나의 순간.

“투기 방출!”

콰아앙!

파아앗!

-크억!

끼, 루!

아니나 다를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리아몰이 전신에서 충격파를 발동시키며 순간적으로 소환수들의 포위를 벗어났다.

“흑염 강신!”

그리아몰이 빼 들고 있던 검을 품에 갈무리한 채, 대신 전신에 물결치는 검은 불꽃을 휘감았다.

파바밧!

레온이 당황해 멈칫하는 사이, 그리아몰이 맹렬한 속도로 지면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그의 전신을 휘감은 검은 불꽃은 마치 그의 몸조차 태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생명력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레온은 그리아몰이 생존하겠다는 생각을 아예 내버린 채, 최후의 수단을 사용한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저런 리스크를 지닌 스킬이 위력이 약할 리가 없어!’

곧장 개틀링 포탑에서 활을 꺼낸 후, 재빨리 바닥으로 구르며 피하려 했던 레온이었지만.

“뒈져라!”

안타깝게도 딱 종이 한 장의 차로 그리아몰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콰아아앙-!

검은 불꽃이 이글거리는 그리아몰의 주먹이 레온의 가슴 부근을 그대로 강타했다.

“크억!”

적중당하는 순간, 레온이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비명을 내질렀다.

-유저, 그리아몰의 공격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쿨럭, 이 자식 딜 미친 것 아냐?’

단 한 방을 허용했을 뿐인데, 그의 체력 바가 5분의 1이 줄어들어 있었다.

근접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직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의 위력이었다.

레온은 속으로 자신의 뼈아픈 실책을 안타까워하였다.

‘젠장, 순간적으로 방심했어.’

콰가가!

쐐애액!

그리아몰이 주먹을 뻗을 때마다, 공기가 찢기는 파공성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죽여 주마!”

레온은 숨 가쁘게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공격들을 피해 내고 있었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레온의 소환수들은 안타깝게도 그런 그를 도와주지 못하고 있었다.

-쿨럭, 주인아.

따, 딱.

소환수들에게 사용했던 스킬인 투기 방출은 상당히 긴 지속 시간의 스턴 효과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투기 방출에 노출됐던 소환수들 전체가 그 자리에서 꿈쩍도 못하고 있었다.

미친 듯한 속도로 펼쳐지는 공격과 회피의 연속 속에서 레온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크윽, 일단 소울 슬롯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다 찼는데……!’

어느새 소울 슬롯을 다시 한 번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사용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소울 슬롯은 이렇게 1초의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한 스킬이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만 벌면 되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슈욱!

순간 레온이 신형이 지면으로 파고들듯 사라졌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 위해 그림자 은신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놓칠 것 같으냐! 흑염보!”

투다다다!

그림자 은신으로 벌린 거리를 그리아몰은 미친 듯한 이동 속도로 간단하게 따라잡아 버렸다.

“크윽!”

레온은 계속 도망치는 것을 반복하다 결국 등 뒤에 절벽의 낭떠러지를 두게 되었다.

독 안에 든 쥐 신세인 레온을 바라보는 그리아몰의 눈동자가 뱀의 그것처럼 잔혹하게 빛났다.

파바밧!

“죽어!”

그리아몰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레온이 동시에 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하나 꺼냈다.

그건 자그마한 주사위였다.

레온은 그 주사위를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그대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두의 눈앞에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타닷!

펄쩍!

갑자기 레온이 등지고 있던 절벽 아래로 제 몸을 던져 버린 것이었다.

-어, 어? 주인아, 안 된다낭!

끼, 끼루!

끼엑!

순간 소환수들이 당황해 큰 소리를 내뱉었고.

“……?”

달려들던 그리아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무슨 자살행위란 말인가.

한데 그렇게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던 찰나.

레온은 야구 선수처럼 세차게 팔을 휘둘러 쥐고 있던 주사위를 그리아몰에게 던졌다.

“소울 다이스!”

라고 소리치면서 말이다.

슈웅!

타앗!

레온의 손에서 날아간 주사위는 정확히 그리아몰를 향했지만.

“어딜!”

그리아몰은 이내 손으로 주사위를 간단하게 쳐 내었다.

하지만.

‘어, 어, 어?’

그가 그렇게 쳐 내며 신체와 주사위가 맞닿은 순간.

파아아앗!

갑작스레 주사위에서 엄청난 빛이 내뿜어지며,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리아몰이 눈을 다시 한 번 끔뻑이자.

후우우웅!

“으어어!”

‘미, 미친!’

그리아몰은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며 수직 낙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개자식이!’

그가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절벽 위를 쳐다보자, 분명히 자신이 있었던 위치에서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레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울 다이스]

소울코인과 3성 이상의 영혼을 소모하여 다양한 효과를 지닌 무작위의 주사위를 소환합니다.

주사위는 단 하나만 지니고 있을 수 있습니다.

1. 위치 변환 주사위.

2. 천사와 악마 주사위.

3. 연쇄 폭발 주사위

(……중략……)

[위치 변환 주사위]

지정한 적의 위치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서로 맞바꿉니다.

-같은 상대에게 사용할 시, 30분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필요합니다.

-전환된 대상의 이동속도는 위치를 전환한 뒤 3초 동안 70% 감소합니다.

그는 일부러 상대와 위치를 바꾸는 소울 다이스, ‘위치 변환 주사위’를 사용하기 위해 스스로 불리하게 절벽을 등지고 섰던 것이었다.

꽈아앙!

그때 그대로 지면으로 추락한 그리아몰이 거대한 소음을 만들었다.

‘크윽. 비, 빌어먹을. 몸이 안 움직여.’

그리아몰은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진 탓에 막대한 낙하 대미지와 더불어 패널티로 스턴 상태에 걸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레온의 계획은 단 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띠롱!

띠롱!

띠롱!

[6 / 6 / 6]

귓전에 울려 퍼지는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어느새 레온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삐에로의 눈들은 모두 숫자 6으로 일치되어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소울 슬롯을 사용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축하합니다. 번호를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6번 지정 스킬, ‘사일런트 왈츠’가 발동됩니다.

위잉!

뒤따르는 메시지와 함께 순식간에 그의 활이 어그러지며 다른 형상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정령왕의 바람살이 유리 세공을 할 때의 그것처럼 낭창낭창 휘어지더니, 이내 초승달처럼 날카로운 칼날을 자랑하는 대낫으로 변해 있었다.

[사일런트 왈츠]

보유하고 있는 3성 이상의 영혼 두 개를 소모하여, 유계의 사신들이 사용하는 무기인 데스 사이드를 빌려 옵니다.

-본래 무기의 450%에 해당하는 공격력이 적용됩니다.

-공격에 적중당한 상대는 3초간 침묵 상태가 적용됩니다.

(동일 대상에게 재적중시, 15분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적용됩니다.)

이어진 다음 순간.

파바밧!

레온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

“흐아아앗!”

그러곤 충격으로 홈이 크게 패인 지면에 대자로 누워 있는 그리아몰을 향해 데스 사이드를 맹렬하게 휘둘렀다.

쐐애액!

끼에에에!

캬갸갸갸!

그리고 그럴 때마다, 파공성과 귀신의 비명 소리와 같은 것이 울려 퍼지며 초승달의 형상을 띤 바람의 칼날이 그리아몰에게로 날아들었다.

꿈쩍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머리 위로 내리꽂히는 스킬들을 바라보며.

‘이런 시……!’

그리아몰이 당장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은 비참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투카아아앙!

꽈아아아앙!

갑자기 절벽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더니, 곧이어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폭음이 터져 나오자, 전장에 있던 병력의 시선이 레온을 향했다.

‘뭐, 뭐야.’

‘……사신이다.’

그들의 눈에는 레온이 말 그대로 사신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지그시 자신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고는 이내 전장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적장을 처치했다!”

그가 확인한 시스템 메시지는 바로.

-마몬의 사도 ‘그리아몰’을 처치하였습니다.

강적 그리아몰을 해치우는 데 성공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곧이어 전장에 마지막 변화가 나타났다.

철컹.

철컹.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한 적들 모두 하나둘씩 자신들의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아아아아아!

“우리의 승리다!”

“이겼드아!”

태양 마을 병사들의 열화와 같은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레온 또한 감동에 찬 미소를 머금었다.

‘됐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샤먼 마을에서의 전쟁이 그의 승리로 끝이 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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