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달 마을의 병력이 서로 피를 튀기며 싸움을 시작한 그 순간.
척!
처척!
몰래 숨어 그런 그들을 쳐다보고 있던 태양 마을의 일원들이 절벽의 곳곳에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데 그렇게 드러난 병력의 규모가 상당해 보였다.
달 마을의 그것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밀리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아직 차이는 분명 있으나, 이제는 한 번쯤 붙어 볼 만한 정도랄까?
격차가 꽤나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두 세력의 차이가 그렇게 좁혀진 데에는 여러 이유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단 밀림 지대에서의 예상치 않은 큰 타격이 첫 번째였고.
방금 전, 레온의 흑염 참파가 한정된 좁은 공간에 제대로 쏟아부어지며 수많은 병사들이 리타이어한 것이 두 번째.
그리고 현재 시작된 내전으로 인해 실시간으로 계속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까닭도 있었다.
그러던 그때.
뚜둑.
뼈 소리를 내며 손과 목 관절을 푼 태양 마을의 부족장 중 하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들도 시작해야겠구먼.”
그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태양 샤먼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난 후, 곧이어 그들은 모두 3인 1조로 모여 다시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자, 다들 레온 님의 명령만 제대로 따르자. 그러면 승리가 눈앞에 있을 것이다!”
“네!”
어느새 병사들을 넘어 부족장 중에도 레온을 추앙하는 이들이 생겨나 있었다.
큰 소리로 대답을 한 이들은 각 조마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들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철컹-.
철커컹-.
순간, 공간에 톱니바퀴가 맞춰지는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위잉!
그리고 곧이어 수많은 포탑들이 절벽 곳곳에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수많은 종류의 포탑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나하나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
활을 장착하여 사용하는 개틀링 보우 포탑과 같이 레온이 일전에 사용했던 경험이 있는 포탑들도 여러 개가 보이고 있었고, 아예 처음 보는 새로운 종류의 포탑들도 굉장히 많았다.
벌어 놓은 시간 동안 얼마나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후후, 든든하네.’
레온이 순식간에 절벽 위에 깔린 포탑들의 장엄한 광경을 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그러면서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건설가 길드 놈들의 모든 노동력을 갈아 넣었으니.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건설가들을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탈진 상태까지 돌린 레온이었다.
군대에서 걸레를 짜듯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비틀어 짜내었다.
그러다 보니 거의 이곳의 절벽 부지에 세울 수 있는 포탑들은 다 건설해 놓은 듯했다.
무슨 콩나물시루에 담긴 콩나물처럼 포탑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포탑들이 절벽에 포구들을 드러낸 상황임에도.
‘빌어먹을, 역시……!’
단 한 사람, 그리아몰을 제외한 달 마을의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S등급 포탑의 최면 효과가 강력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신관. 죽인다. 성공적.”
“막는다. 병사들.”
그들은 어느새 제대로 된 말도 잇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왜 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지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이 이들을 공격을 하기에 완전한 적기인 듯 보였다.
그런데…….
그 수많은 포탑들에서 단 하나의 포격 소리도 울려 퍼지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태양 마을의 병력은 무슨 이유에선가 심지어 평범한 일반 원거리 공격조차도 아무도 하고 있지 않았다.
한데 그들은 공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 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바로 ‘반목의 상’ 스킬에 붙어 있는 제한 조건 때문이었다.
[반목의 상]
수월경화에 걸린 적들에 한하여 최면 상태로 만들고 적들이 서로를 공격하게끔 만든다.
-아군의 공격이 가해지는 순간, 반목의 상 스킬은 효력이 사라집니다.
아군의 공격이 적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순간.
적들을 서로끼리 싸우게 만드는 스킬의 효력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최면이라는 막강한 위력을 지닌 상태 이상을 거는 효과를 지니고 있기에, 제한 조건도 컸다.
물론 아예 공격을 안 할 생각은 아니었다.
효력이 슬슬 떨어질 무렵에 모든 화력을 집중해 쏟아부을 것이었다.
하지만 단지 아직은 아니었다.
순간 그들은 레온이 그들에게 당부하듯 말했던 한마디를 떠올렸다.
-일단 내분으로 최대한 꿀을 빨죠.
하지만 공격을 못 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들이 더욱 막대한 피해를 입도록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되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포탑을 가동시킨 것이었다.
이어진 다음 순간.
드디어 여러 조로 나뉜 태양 샤먼들이 동시에 모두 동일한 포탑 하나를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리버스 포탑 발동.”
[리버스 포탑]
LV. 1 / 제작자 : 레온
등급 : A
공격력 : 0
방어력 : 750
생명력 : 65,000
시야 : 40M
고유 능력
강제 역전 : 포탑과 링크된 대상이 버프 효과를 지닌 스킬을 적에게 발동 시, 무작위로 선정된 디버프 효과를 지닌 스킬로 바꾸어 적에게 적용시킵니다.
상세 설명
버프 스킬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적에게 악몽을 선사해 줄 수 있는 포탑.
어떤 이들은 리버스 포탑을 원래의 이름이 아닌 저주 포탑이라고도 부른다.
그들이 선택한 포탑은 A등급 포탑인 리버스 포탑이었다.
이 포탑은 적힌 설명처럼, 버프 스킬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적에게 끔찍한 경험을 선사해 줄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포탑이었다.
직접적인 전투 대미지를 못 준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도록 디버프는 걸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작금의 상황에 딱 알맞은 포탑이었다.
일전에 레온이 개틀링 보우 포탑을 사용했을 때처럼, 각 샤먼들은 리버스 포탑과 링크를 마쳤다.
그러곤 곧바로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 버프 스킬들을 연달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수리의 태세.”
“라이트닝 혼.”
“블러디 하트.”
“선조의 가르침.”
(……중략……)
태양 샤먼들의 장점은 지닌 버프 스킬의 수가 끝도 없이 많다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자 리버스 포탑의 힘으로 모두 무작위의 디버프 스킬로 바뀌어 적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독수리의 태세’가 ‘녹슨 정신’으로 변환되어, 달 마을 샤먼 ‘카몬’에게 적용됩니다.
-‘라이트닝 혼’이 ‘방패 찢기’로 변환되어, 달 마을 샤먼 ‘라투’에게 적용됩니다.
-‘블러디 하트’가 ‘무장 해제’로 변환되어, 달 마을 샤먼 ‘모륜’에게 적용됩니다.
-‘선조의 가르침’이 ‘헛된 욕심’으로 변환되어, 달 마을 샤먼 ‘가투소’에게 적용됩니다.
(……중략……)
태양 마을의 전 병력이 디버프 스킬들을 쏟아붓기 시작하자, 내분 속에서 양측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간 레온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거, 뭐 가만히 내버려 둬도 지들끼리 자멸 각인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행복판테라를 즐기고 있는 레온과 달리 그리아몰은 이곳이 혹시 지옥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제사장이면서 최면에 가장 강력하게 취한 요우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꽥꽥 소리를 질렀다.
“다 죽여 버려! 나에게 거역하는 놈들은 다 반역자다!”
“요우 님, 제발 진정하십시오.”
그러자 그리아몰이 잔뜩 구긴 얼굴로 뜯어말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제정신을 돌아올 기색이 보이지를 않고 있었다.
그저 보이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죽여 대는 광경뿐이었다.
크억!
크아악!
더불어 끔찍한 비명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순간 답답함에 그리아몰이 병사들의 틈 속에 서서 멍하니 서 있던 샤와푸흐에게 제 손을 쭉 뻗더니, 이어 크게 소리쳤다.
“야, 이 멍청이들아! 이것 보라고, 그냥 통과하잖아, 내 손을!”
환각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는 샤와푸흐에게 손을 뻗은 것이었다.
그러자 정말 홀로그램처럼 그의 몸을 뚫고 그리아몰의 손이 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런 충격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흐리멍덩한 눈으로 서로를 향해 공격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속칭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리아몰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이렇게는 안 되겠어.’
이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갑작스레 귓전에 울려 퍼지는 효과음에 그가 의아해했다.
그러곤 이어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는.
‘이런 망할! 장난하나!’
그가 분노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헤비 슬로에 적중당했습니다. 3분간 이동속도가 25% 저하됩니다.
-러스티 웨폰에 적중당했습니다. 1시간 동안 장착한 무기의 내구도 손상 확률이 크게 증가합니다.
-저주 ‘신체 약화’에 적중당했습니다. 15분간 물리 대미지를 8% 추가로 받습니다.
그에게도 디버프들이 습격해 온 것이었다.
효과들 자체는 그다지 큰 디버프들은 없었지만.
가뜩이나 화가 나 죽겠는데, 또 신경을 건드리자 그의 얼굴이 어느새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스윽.
그가 시선을 돌려 절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뿌득.
그러곤 이어 소리가 들릴 만큼 세게 이를 악물었다.
그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이 몇 개월간 죽도록 공들인 판을 뒤엎어 버린 장본인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절벽 위에서 토끼 귀를 살랑거리는 한 유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근처에 서서 호위를 하는 이들로 보아, 저자가 분명히 상대편에 있는 마몬의 사도인 듯했다.
순간 그리아몰의 속이 더욱 부글부글 끓어 왔다.
그가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저딴 토끼 귀나 차는 변태에게!’
그리아몰의 눈에 레온은 다 큰 성인 남자가 토끼 귀를 끼고 있는 괴상한 취향을 지닌 놈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 또한 슬며시 그런 그에게 눈을 맞추었다.
드디어 마몬의 사도 두 명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을 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한쪽은 분노로 눈이 돌아가 있는 데 반해 한쪽은 여유만만이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레온이 한껏 얕잡아 보는 분위기를 풍기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네까짓 놈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그의 속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레온이 자신을 향해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것을 목격한 뒤.
그리아몰은 한 가지를 포기하였다.
그건 바로 단체로 상태 이상에 걸린 아군들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리아몰의 전신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마몬의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파바밧!
이어 그가 스킬을 시전하며, 있던 공간에서 뛰어올랐다.
“흑염보(黑炎步)!”
그의 발이 예의 검은 불길에 휩싸였다.
투다다다!
그러곤 레온이 있는 절벽 위를 향해 단숨에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불길이 뒤따랐다.
‘저 쓸모없는 새끼들, 다 필요 없어! 그래, 나 혼자 네놈들을 다 휩쓸어 버리고 초점사약결을 손에 넣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