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60화 (160/332)

# 160

이글거리는 검은 불꽃이 만드는 생지옥의 현장.

절벽 위쪽에 몸을 숨기고 있는 덕에 다행히 그 불길의 영향권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는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입을 쩍 하고 벌린 채, 아래의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레온의 비서 역할을 자처한 부족장 알레키노였다.

순간 알레키노는 검은 화염을 전장에 흩뿌린 장본인을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이런 힘을 숨기고 계셨다니.’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레온이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전장을 뒤덮은 것과 동일한 검은 불꽃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아몰이 억울해할 만도 했다.

흑염 참파 스킬을 시전한 것은 정말로 그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레온이 일전에 파크의 베르제브의 식탐으로 빼앗아 두었던 스킬을 이번에 개방시켰던 것이었다.

한데 알레키노가 현재 놀란 것은 흑염 참파 스킬의 가공할 위력도 있었지만,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정말 레온 님의 말대로 저들이 제 발로 아가리 속으로 들어왔잖아?’

분명히 정찰대를 편성하려 걸음을 멈추었던 적들을 안쪽으로 불러들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적들이 도착하기 전에 레온에게 자신이 건넸던 질문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 그런데 레온 님, 달 마을의 본대가 과연 안쪽까지 들어올까요?

태양 마을의 군세가 외곽 지대에 온갖 덫을 깔아 놓으면서도 가장 걱정했던 것은 그 한 가지였다.

적들의 본대가 과연 외곽 지대의 중심부까지 순순히 들어오겠냐는 것이었다.

샤와푸흐야 한껏 방심하고 대책 없이 달려들었지만, 본대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본대가 정찰대를 편성해 샅샅이 살펴 가며 통과를 하게 된다면, 그들이 준비한 포탑과 전략이 너무나 손쉽게 파훼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한 레온의 대답은 경쾌했고 매우 간결했다.

-물론입니다. 그러게끔 다 준비해 놓았으니까요.

당시에는 그냥 용기를 북돋게 하기 위한 말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척척 진행이 되었던 것을 본다면 그것이 정말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놀랍고 두려울 정도군…….’

도대체 저분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알레키노가 왠지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레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했다.

레온이 달 마을의 일원으로 있는 것을 상상하자,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하기 그지없었던 것이었다.

다음 순간 알레키노가 동경과 두려움이 동시에 담긴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레온 님.”

“네, 알레키노 님.”

“이제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시죠.”

레온이 그의 말에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모르는 척했다.

알레키노는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물었다.

“저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 저것들 모두 레온 님이 만든 저 포탑의 작품인 거죠?”

그가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그들이 있는 절벽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독특하게도 유리처럼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진 포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 포탑은 태양빛을 반사시키며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우웅!

샤르르!

진동음과 더불어 묘한 효과음이 연신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무슨 효과인지는 모르나, 작동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알레키노의 질문에도 레온은 대답 없이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릴 뿐이었다.

아직 다 설명해 주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던 그때.

달 마을의 병사들을 뒤덮었던 검은 화마가 드디어 힘을 잃고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싸아아-.

순간 외곽 지대에 싸늘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누구도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그 시간이 지속되다가.

“크흑.”

“흐윽.”

이내 설움이 복받친 듯한 신음성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병사들이 허망한 표정으로 일순간에 처참한 몰골이 되어 버린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이는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조용한 분위기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빌어먹을, 대체 또 왜!”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이 미친 신관 같으니!”

병사들의 거대한 분노가 활화산처럼 펑펑 터져 나오고 있었다.

원망이 가득 찬 표정으로 달 마을의 병사가 사무친다는 듯 소리를 질러 댔다.

물론 그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은 당연히 신관 그리아몰이었다.

그리아몰이 그들의 살벌한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상황 참 거지같이 꼬였군.’

정말로 그리아몰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달 마을의 병력 모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가 스킬을 사용했다고 믿고 있었다.

제사장인 요우마저도 말이었다.

순간 요우가 그에게만 들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신관님, 마몬님이 제물이 더 필요했던 겁니까……? 하아, 미리 말씀을 좀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리아몰은 대답할 가치를 못 느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은 제사장마저 자신을 의심할 정도라니.

그리아몰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시작하였다.

언제부터였더라.

술술 풀려 갔던 자신의 퀘스트가 답도 없이 꼬여 가고 있다고 처음 느낀 날이 말이었다.

‘빌어먹을, 분명히 상대편에 마몬의 사도가 등장한 이후부터일 거야.’

한데 그때.

상황은 그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욱 파멸적으로 진행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처척-.

병사들이 몸을 돌려 그대로 그리아몰을 향하더니.

채챙-!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든 것이었다.

“흥! 변명도 없다는 건, 전부 다 의도적이었다는 걸 시인하는 거겠지?”

“두 눈 멀쩡히 뜬 채 손 한 번 못 쓰고 앉아서 죽을 순 없지.”

병사들의 눈에 명백한 살의가 번뜩이고 있었다.

한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총 병력의 삼 할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인원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완전히 편이 갈려 버리자, 요우를 비롯한 지휘관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 갔다.

이런 경우는 마을이 생겨난 이래 처음이었다.

병사들이 반기를 들다니 말이었다.

“네 이놈들! 칼을 집어넣지 못하겠느냐!”

“지금 무슨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고 있는 것이냐!”

그들은 연신 고성을 질러 댔지만, 쉽사리 진정이 되지를 않았다.

“신관을 넘겨주시오!”

“망할 신관만 넘겨주면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 이! 건방진 놈들이!”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당사자인 그리아몰은 자신에게 닥친 이런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고 있었다.

순간 그가 답답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이게 갑자기 뭔 난리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연회를 열자며 축하하던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갑작스레 시전된 흑염 참파 탓이었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끄응, 혹시나 버그가 걸려서 자동으로 시전된 건가 싶어서 확인해 보았는데, 사용 가능 횟수는 하나도 안 줄어 있었다고.’

흑염 참파는 24시간 동안 단 두 번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한데 지금 그의 스킬 가능 횟수는 2/2로 표시되고 있었다.

그 말인즉 분명히 자신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증명되는 것이었다.

순간 그리아몰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렇다면 누군가 의도한 계략이라는 건가?’

지금 당장 이 안에서 그런 짓을 할 만한 인물은 하나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상대편 마몬의 사도의 존재가 스쳐 지나가던 그때.

갑작스레 노기가 가득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 망할 놈들이 감히 나에게 반기를 들어!”

그에 깜짝 놀라 그리아몰이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옆에서 제사장 요우가 잔뜩 흥분한 채, 반기를 든 병사들에게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라? 잠깐 쟤는 또 왜 저래.’

지닌 성정이 거칠고 급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저렇게 제 병사들을 향해 죽일 듯이 언사를 할 인물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기에.

그리아몰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것을 깨닫자 그는 지금 상황이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고 있었다.

마치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내분’을 일으키려는 것 같다고 할까.

‘일이 언제부터 이상하게 진행이 되었지?’

라고 생각하던 그리아몰의 시선이 소란 내내 잠자코 있는 한 남자를 향했다.

‘그래, 저자.’

그건 바로 샤와푸흐였다.

면밀히 바라보자 그에게서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마치 인형의 그것처럼 생기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느낌을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건 함정이야!’

그리아몰은 직감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해 낼 수 있었지만…….

“에잇! 반란군을 진압하라!”

“신관을 죽여라!”

안타깝게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우아아아!

투다다다!

달 마을 병력 내에서 자중지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레키노와 같이 절벽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태양 마을의 일원들은 거의 대부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놈들은 왜 아까부터 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거지?’

‘그러더니 왜 갑자기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야?’

라고 말이었다.

한데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자신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을 향해 음악단의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고 하지를 않나.

음식들이 있다며 달려들지를 않나.

분명히 자신들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한 샤와푸흐를 만났다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러던 그때.

‘좋아, 좋아. 모두 제대로 레드썬이 됐구먼.’

다만 레온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달 마을 제사장, ‘요우’가 상태 이상, ‘최면’에 걸렸습니다.

-달 마을 샤먼, ‘무라’가 상태 이상, ‘최면’에 걸렸습니다.

-달 마을 샤먼, ‘자리’가 상태 이상, ‘최면’에 걸렸습니다.

-(……중략……)

시스템 메시지들은 적들 모두가 최면에 걸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최면은 상당히 강력한 효과를 지닌 상태 이상으로 적 몬스터를 일시적으로 자신의 수하로 사용하거나, 혹은 적 몬스터들끼리 싸우게 만들 수 있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경우 후자의 효과로 쓰이고 있었다.

‘저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 저것들 모두 레온 님이 만든 저 포탑의 작품인 거죠?’

앞서 알레키노가 레온에게 말했던 말처럼, 이 모든 것은 거울의 형상을 띠고 있는 새로운 포탑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아이케의 최면 포탑]

LV. 1 / 제작자 : 레온

등급 : S

공격력 : 800

방어력 : 3,120

생명력 : 271,000

시야 : 80M

고유 능력

1. 수월경화

미리 설정해 놓은 환각을 포탑의 사정권 내에 있는 모든 적들의 눈에 보이게 한다.

2. 반목의 상

수월경화에 걸린 적들에 한하여 최면 상태로 만들고 적들이 서로를 공격하게끔 만든다.

-아군의 공격이 가해지는 순간, 반목의 상 스킬은 효력이 사라집니다.

궁극기

궁극기 게이지 : 27%

1. 아이케 소환 / 재사용 대기시간 12시간.

레온이 아이케의 최면 포탑을 사용하여 행한 전말은 이러했다.

일단 첫 번째 능력인 ‘수월경화’의 효과로 샤와푸흐와 환영단의 환상을 적들 모두에게 비추어 외곽 지대의 깊숙한 곳으로 유인한다.

그런 후, 적들이 완전히 방심하였을 때 흡수해 두었던 흑염 참파를 개방하여 큰 피해를 입히고.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반목의 상’을 실행하여 적들을 최면 상태로 만들어 서로 싸우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가능할까 싶었던 계획이었지만…….

‘완벽하게 해냈죠.’

그는 결과로 완벽하게 증명하여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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