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59화 (159/332)

# 159

척-.

처척-.

이윽고 외곽 지대 안쪽으로 들어선 달 마을의 군세는 성큼성큼 거침없이 진군해 가고 있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함께 걸음을 옮기자 지면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밀림 지대에서의 전투로 인해 적잖은 피해를 입기는 하였지만, 워낙에 대규모의 병력이었기에 달 마을의 병사들은 아직도 태양 마을의 병력보다 훨씬 더 많은 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 병사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그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이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 병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꺼냈다.

“……휴, 이거 원 싸울 맘이 들지를 않는구먼.”

“거참, 이 사람 또 왜 그러는가. 이제 여기만 통과하면 태양 마을이야.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러자 동료 병사가 기운 차리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성난 기운을 참지 못하며 이어 말했다.

“지금 그게 문제인가? 아니, 빌어먹을. 세상 천지에 동료를 공격하는 아군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의 말은 밀림 지대에서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아군에게까지도 스킬로 서슴없이 피해를 입힌 그리아몰을 질책하는 것이었다.

그리아몰은 자신의 행동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상당히 떨어졌다 수준으로 치부하였지만, 사실 그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아몰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가 거의 바닥으로 추락하였던 것이었다.

그가 간과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알다시피 판테라는 가상‘현실’ 게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NPC들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현실이었다.

자신의 동료가 눈앞에서 아군의 공격에 타들어 죽어 가는 비참한 모습을 보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그리아몰을 두둔할 생각을 가진 이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아몰은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효율적으로 줄이겠다는 생각에 한 행동일 터이나.

이것은 이어질 전투에서 어떠한 의미로든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때 그리아몰에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내용을 듣고는 사색이 된 동료 병사가 급히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말을 건넸다.

“예끼, 이 사람아. 목소리 낮추게.”

“흥, 들을 테면 들으라지. 내가 뭐 틀린 말 했는가.”

그러나 다행히도 그리아몰은 전혀 듣지 못한 듯했다.

그는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었다.

병사들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리아몰은 그런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연신 외곽 지대의 곳곳을 살피고만 있었다.

그때 그리아몰이 무슨 이유에선가 고개를 갸웃하였다.

‘흠…… 여기 지형이, 기습당하면 큰일 나겠는데?’

그는 샤와푸흐와는 달리 대번에 외곽 지대의 지형이 자신들에게 굉장히 위험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숙련된 눈썰미가 그가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 유저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스윽.

그렇게 알아차린 순간, 그가 한쪽 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정지! 모두 걸음을 멈춰라!”

처척!

처처척!

그러자 한 부족장의 고함 소리와 함께 수많은 병사들이 일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응? 신관님,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병력이 제자리에 서자, 어리둥절해하던 제사장 요우가 이내 그리아몰에게 말을 꺼냈다.

“요우 님, 아무래도 잠시 행군을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갑자기 어째서?”

“정찰대를 다시금 편성해서 앞서 보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통과하기에는 이곳 지형이 저희 쪽에게 너무 위험합니다.”

그리아몰은 시종일관 정중한 태도로 설명을 이어 갔다.

“쩝, 그렇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듣는 요우는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시라도 빨리 태양 마을을 접수하고 싶은 것이리라.

숨길 수 없는 탐욕이 얼굴에 둥둥 떠올라 있었다.

‘쯔쯔, 답답한 녀석.’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리아몰의 표정에 멸시가 스치고 지나갔다.

제사장이라는 위치에 있음에도 간단한 지형조차 읽지 못하는 그가 답답할 지경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꾹 참으며 그리아몰이 다시 말을 꺼내었다.

“수색 작업은 금세 끝날 것입니다. 송구하오나 잠시만 기다리시…….”

한데 그때였다.

빠밤-!

빰빰!

갑작스레 요란한 나팔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난데없는 음악 소리는 순식간에 외곽 절벽에 메아리치며 쩌렁쩌렁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에 순식간에 군사들이 웅성웅성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뭐야, 이건?”

“음악 소리?”

그리고 그것은 그리아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건 또 뭐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가 요우와 대화를 나누던 것도 잊고 이내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음악단?’

다름 아닌 화려한 복장을 갖춘 음악단이었다.

척.

처척.

병사들이 걸어 들어가고 있던 외곽 지대의 깊숙한 곳에서 여러 악기들을 등과 가슴 앞에 둘러맨 수십의 음악단원들이 연신 경쾌하게 연주를 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이 연주하고 있는 곡은 승전을 축하하는 노래였다.

병사들은 너무나 생뚱맞은 광경에 무기를 꺼내 들 생각도 않고 그저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부족장들이 혹시 모를 전투를 준비하려 할 때였다.

“어어?”

“아니, 저분은?”

그 순간 음악단원들의 앞으로 슬쩍 걸어 나오는 한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자, 그런 부족장들조차 할 말을 잃어버렸다.

“허허,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제사장님.”

의문의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꺼냈다.

그러자 요우가 연신 눈을 끔뻑이다가 대답했다.

“……정말 샤와푸흐 자네인가?”

놀람의 연속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여태껏 연락이 두절되었던 샤와푸흐였던 것이었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분명 레온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제사장을 비롯한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그저 갑작스레 등장한 것이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던 그때, 요우가 살짝 언짢은 표정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제대로 되지를 않더니 말이네.”

그러자 샤와푸흐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건넸다.

“……송구합니다. 사실 모든 계획은 한참 전에 성공적으로 끝났었습니다. 다만 급하게 준비할 것이 있었던지라 연락을 못했습니다.”

“준비?”

그의 말에 요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스윽.

그때 샤와푸흐가 뒤편을 향해 고갯짓을 하자.

뚜벅뚜벅.

늘씬한 여인들이 온갖 것들을 짊어지고 나오기 시작했다.

성대한 진수성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오!”

“꿀꺽, 밥이다!”

병사들이 침을 흘렸다.

그들이 눈이 돌아갈 만도 했다.

시간을 줄인다는 명목하에 이곳까지 제대로 된 식사도 없이 그리아몰이 강행군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샤와푸흐가 말을 꺼냈다.

“드디어 태양 마을을 손에 넣으신 제사장님의 역사적인 순간을 위한 축제와 여흥이지요. 지금 태양 마을은 폐허나 다름없습니다. 이곳에서 거나하게 즐기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가시지요.”

축제를 준비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병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사기도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는데, 이런 생각지도 않은 축하연이 벌어지려 하니 행복할 따름인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은 이 상황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지금……!”

지금까지 한마디 연락도 없던 것이 축제를 준비하려는 것에 어이가 없었던 그리아몰이 한마디 쏘아붙이려 하였다.

하지만.

“으하하하! 샤와푸흐 자네 정말 재밌는 선물을 준비했구먼.”

요우가 마음에 쏙 들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자.

‘이런 젠장.’

그리아몰은 이를 갈며 한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샤와푸흐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지쳤을 병사들을 위해서는 이렇듯 식사를 준비하였고, 제사장님을 위해는…….”

그러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끌끌, 이놈을 준비했습니다.”

휘익.

철푸덕.

순간 먼지투성이, 상처투성이의 어린 아이 하나가 병사 한 명에 의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으.”

바닥에 널브러져 연신 신음성을 흘리는 아이의 정체는 바로 만타였다.

“오오, 생포했구먼!”

그것을 눈치챈 요우가 더욱 기뻐 날뛰기 시작하였다.

상대 마을의 제사장이 자신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명확했다.

태양 마을을 장악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질 것이 분명하였다.

게다가.

‘흐흐, 초점사약결을 손에 넣을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구나!’

태양 마을에 숨겨진 초점사약결의 행방을 알고 있을 존재는 만타밖에는 없었다.

어느새 요우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그때, 샤와푸흐가 그에게 손짓하며 불러들였다.

“허허, 제사장님, 얼른 이쪽으로 오시지요. 애써 준비한 음식들이 식겠습니다.”

“껄껄, 그렇겠군! 축배를 들어 볼까!”

요우가 몸을 돌려 병사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뭣들 하느냐, 다들 식은 음식을 먹을 작정이냐! 얼른 가서 먹고 즐기자!”

우워어어!

투다다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달의 마을의 모든 병사들이 괴물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곤 샤와푸흐가 음식을 준비한 곳까지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정밀했던 진열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혼란하기 그지없게 변화하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리아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에라,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래, 그냥 나도 이번에는 적당히 즐기고 입성해야겠다.’

그가 자포자기하듯 단념했던 그때.

“흑염……!”

갑자기 함성과 음악 소리로 가득 찬 그곳에 외마디 고성 하나가 흘러 나왔다.

‘어라?’

시장 통처럼 워낙 시끄러운 탓에 대부분이 듣지 못했지만.

그리아몰만은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목소리?’

그건 바로 분명히 자신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내용이 바로.

“……참파!”

자신이 스킬을 시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지만, 진정으로 놀랄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가 순간 허공을 바라보다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그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슈우우웅!

콰가가가가!

갑작스레 외곽 지대에 굉음이 울려 퍼지며, 검붉은 불꽃이 날뛰기 시작하였다.

달려가던 병사들이 머리 위에서 태양과 같은 맹렬한 열기를 느끼더니, 사색이 되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 모습에 놀란 부족장들과 요우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돌려 그리아몰을 쳐다보았다.

“미, 미친!”

“아니, 이곳에서 그걸 사용하면……!”

“제정신이십니까!”

그러자 그리아몰은 어버버 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도 그럴 것이 분명히 저 이펙트는 자신의 스킬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휘우우웅!

콰아아아아!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검은 불꽃이 병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피, 피해!”

“으악! 불벼락이 쏟아진다!”

“신관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

비명과 신음, 절규가 외곽 지대를 덮었다.

이런 고립된 지형에서 흑염 참파와 같은 광역 스킬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신이 강림했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였다.

콰아아앙!

화르르르!

자신의 동료들을 화형시켰던 끔찍한 기술이 다시금 시전되자 공간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시, 신관, 어째서…….”

“크악!”

병사들의 성난 눈빛이 그리아몰을 향했다.

‘나, 나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스킬을 사용한 적이 없는 그는 그렇게 변명하고 싶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