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식육식물들이 광채에 휩싸인 채, 심상치 않은 변화를 시작하자.
병사들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하였다.
“크윽, 누가 가서 저것들 좀 어떻게 해 봐!”
“허억, 헉, 말 나온 김에 네가 가면 되지 않을까?”
진화를 시작하고 난 뒤, 식육식물들은 움직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멈춰 있었기에.
누구든 가서 공격을 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아이비의 매혹에 당해 버린 아군들을 상대하고 있는 병사들은 당연히 신경을 다른 곳에 돌릴 여력이 없었던 데다가.
“자리를 지켜라! 저 요망한 것을 향해 후방 사격만 하도록! 접근해선 안 돼!”
더 많은 병력이 매혹에 당할까 걱정한 지휘관들이 현재 진입한 것 이상의 병력들의 개입을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쐐애액!
“에잇!”
“흐아앗!”
뒤늦게나마 동료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소수의 인원들이 어떻게든 틈을 파고들어 식육식물들을 공격하였지만.
처억.
처척!
안타깝게도 한발 늦어 버렸다.
마침내 진화가 모두 끝난 식육식물들이 더욱 두꺼워진 덩굴들로 쏟아지는 공격들을 전부 막아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스킬 ‘맹렬한 성장’의 효과로 인해 ‘뚜벅풀’이 ‘라플러시아’로 진화하였습니다.
-스킬 ‘맹렬한 성장’의 효과로 인해 ‘모다피르’가 ‘우츠요트’로 진화하였습니다.
-(……중략……)
-쉬이익!
-쉬이이!
녀석들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제, 젠장!”
“이런……!”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들의 표정에서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상대하던 식육식물들도 감당하기 버거웠는데,
한눈에 보아도 진화를 마친 이 녀석들은 그보다 더욱 강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호오?’
레온은 그 모습을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뚜벅풀과 모다피르 두 개체 모두 진화가 끝나자 그 크기는 배로 커지고, 외형은 더욱 무섭게 변해 있었다.
[라플러시아]
뚜벅풀이 아이비의 힘을 받아들여 한 단계 더 강력해진 형태.
마침내 개화한 거대한 꽃잎에서 맹독 성분을 지니고 있는 꽃가루를 사방에 뿌려 댄다.
꽃가루가 담긴 성분이 너무나 독한 나머지 제대로 발산하면 주위의 공기가 노랗게 보일 정도이다.
[우츠요트]
모다피르가 아이비의 힘을 받아들여 한 단계 더 강력해진 형태.
머리에 불과하였던 포충낭이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변화하였다.
그러면서 용해액은 더욱 강력해져 이제는 체내에 들인 것은 어떤 생명체든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녹여 버린다.
라플러시아가 자신의 거대한 꽃봉오리를 흔들거렸다.
그러자 극독을 담고 있는 꽃가루가 공기 중에 섞여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끅!”
“……!”
곧이어 들이마신 병사들이 제대로 된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한 채,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으아아아! 살려……!”
꿀꺽.
그리고 그에 이어 입을 쩍 벌린 포충낭 속으로 인간 하나를 통째로 집어 삼켜 버리는 끔찍한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우! 우우!”
“엔 타로 아이비!”
거기에 더해 매혹 스킬에 더욱 깊게 빠져 버린 병사들이 내는 소리가 더해지자.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지켜보던 병력들의 낯빛이 까맣게 질려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리아몰이 얼굴을 굳혔다.
‘하아, 이 쓸모없는 녀석들.’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전황을 바라보고 있다가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더 시간 낭비를 할 순 없어. 어쩔 수 없겠군.’
그는 무언가 큰 결정을 내린 표정이었다.
이어 그가 제사장 요우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갔다.
그러곤 넋을 놓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요우 님.”
“아, 예, 신관님.”
요우가 그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리아몰이 잠시간 말을 멈추었다가 한 자, 한 자 힘을 주어 가며 말했다.
“지금은 중요한 성전(聖戰)을 앞둔 상황. 이렇게 적의 꾐에 빠진 어리석은 형제들 때문에 늦춰지는 것은 마몬님께서 결코 원치 않으실 겁니다.”
그리아몰의 말에 요우는 무언가가 예상되는 듯했지만,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저, 그 말씀은?”
그러자 그리아몰이 차갑게 식은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슬프지만 모두 데리고 갈 수는 없을 듯합니다. 형제들은 마몬님께 제물로 바치기로 하시죠.”
그리아몰의 말에 요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민에 빠져 있던 그는 전장과 그리아몰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리아몰에게 대답을 건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휘관들이 큰 소리로 아군 병력에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제정신인 이들은 모두 자리를 피해라!”
타다닷.
그 말이 끝나자, 전투를 치르고 있던 모든 병력이 곧장 본대에 합류하기 위해 등을 돌리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으아! 빨리 도망쳐야 해!”
“끄아아!”
‘뭐지?’
무슨 이유에선가 지금까지 보다 더 겁에 질린 채 달려가는 그들을 보며 레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잠시 후.
레온은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건!’
우우우우웅!
적의 본대가 있는 곳에서 심상치 않은 진동음이 들려온다.
그 진원지에 그리아몰이 하늘 높이 제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에 음험하기 짝이 없는 검은 불꽃이 미친 듯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이 타오르고 있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때 그리아몰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흑염……!”
그 말과 동시에 더욱 맹렬하게 열기가 차올랐다.
레온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것이 바로 자신의 흑뢰 강림처럼 저자가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이라는 것을 말이었다.
피하지 않는다면 단언컨대 엄청난 피해를 입으리라.
한데 그 순간.
이해하기 힘든 일이 하나 있었다.
씨익.
분명히 위기 상황이 닥쳤는데도, 레온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참파!”
그리아몰의 기술이 쏟아졌다.
쿠아아아아!
똬리를 틀고 있던 검염(劍炎)이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더니, 곧이어 검은 폭염이 식육식물들과 매혹에 걸린 병사들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은 레온도 마찬가지였다.
투콰콰콰-.
푸화악!
마치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다는 메테오 스트라이크 스킬에 버금가는 파괴력이 전장을 덮쳤다.
-꺄아아아!
아이비조차 버티지 못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쏟아 내었다.
워낙 스킬의 범위가 넓었던 탓에 숨겨 두었던 모체 포탑 또한 큰 타격을 입고 있었던 탓이었다.
허망한 최후였으나, 엄청나게 넓은 범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약점이 있는 것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열기의 충격파가 밀림 지대를 휩쓸어 버렸고.
싸아아-.
전체의 5분의 1에 달하는 지역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린 참혹한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던 수많은 적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한데 놀랍게도 그 와중에 살아남은 존재가 있었다.
단 한 명의 사내였다.
그는 바로.
‘어우, 생각보다 더 빡세네.’
역시나 레온이었다.
적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그림자 은신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은밀히 이동한 그는 놀랍게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던 그때,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꺼억, 배부르다. 주인아.
순간 레온의 어깨에 내려앉아 있는 파크가 볼록해진 배를 두드리며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랬다. 레온이 쏟아지는 스킬의 영향권 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은 파크의 힘이 주효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번에 중급 영령이 되며 새롭게 얻어 낸 힘인 ‘베르제브의 식탐’ 덕분이었다.
[베르제브의 식탐]
식탐은 7대 악신 중 하나인 베르제브의 권능이다.
상대의 스킬 공격을 무위로 돌리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다.
-흡수한 스킬은 자동으로 스킬 목록에 저장되며, 흡수한 스킬의 사용은 1회로 제한됩니다.
-스킬이 저장된 상태에서 다른 스킬을 흡수할 시 이전 스킬은 자동 삭제됩니다.
레온은 파크의 배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진짜 간발의 차였군.’
자신이 있던 곳에 남은 흔적만 봐도 명확했다.
파크가 중급 영령으로 진화하며 얻은 새로운 능력이 아니었다면 바로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띠링.
띠링.
성공적으로 스킬을 흡수한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베르제브의 식탐을 발동하였습니다.
-‘흑염 참파’ 스킬을 흡수하였습니다.
[흑염 참파]
마몬의 7대 사도 중 하나인 ‘마몬의 검투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미리 설정한 사정 범위 안에 위치한 모든 적들에게 흑염을 작렬시킨다.
-시전 시, 명성이 2,000 하락합니다.
-시전 시, 악명이 2,000 증가합니다.
-시전 시, 무기의 내구도가 영구히 하락합니다.
(무기의 내구도가 0이 되면, 수리가 불가능하고 아이템이 파괴됩니다.)
-최대 사용 횟수 1/2
-스킬 사용 횟수는 24시간마다 다시 충전됩니다.
메시지를 읽어 내려간 레온이 이내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잘 먹고 갑니다!’
마몬의 사도를 상대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점.
그건 바로 자신의 흑뢰 강림과 같은 강력한 필살기라고 레온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샤와푸흐의 병력을 상대할 때,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것이 바로 흑뢰 강림이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리고 스킬을 흡수할 수 있다는 베르제브의 식탐의 효과를 보자마자 떠올린 계책은 만일 후에 가능하다면 상대의 가장 강력한 기술을 흡수해 보자는 것이었다.
순간 몸을 숨기고 있던 곳에서 레온이 몸을 일으켰다.
‘후후, 이걸로 얻을 건 다 얻었군.’
이제 돌아가야 할 때였다.
“레이즈 스켈레톤, 바포.”
곧이어 바포가 나타나자, 레온은 블링크 스킬을 활용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의 저편에서, 방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한 채 한껏 우쭐해 있는 그리아몰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 지금은 좋아하고 있어라. 곧 제대로 뒤통수를 날려주마.’
레온이 그 모습을 보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 * *
불길이 사그라진 밀림을 돌파한 본대는 이전과 달리 빠른 속도로 주파해 가기 시작했다.
조금은 쉴 법도 하건만, 그리아몰은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하루 내내 강행군을 거듭한 끝에 목적지였던 외곽 지대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요우는 연신 그리아몰을 추켜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으하하, 역시 신관님의 힘은 대단합니다.”
한껏 기세가 등등해진 그리아몰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스킬이 레온에게 흡수당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식육식물들뿐 아니라 아군 병사들까지 한꺼번에 해치운 탓에, 그들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리아몰은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다 끝난 게임. 사기 따위야 마을을 약탈시키면서 올려 주면 그뿐이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으응?’
그런 그의 눈에 한 부족장이 연신 머리를 갸웃하는 것이 들어왔다.
‘저자는 분명…….’
이곳까지 오는 진격로를 앞장서서 인도했던 부족장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순간 그리아몰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아, 그게 아니라, 지도에 적힌 지형과 달라진 점이 있어서 말입니다.”
“지형이요?”
그가 슬쩍 지도를 보여 주었다.
샤와푸흐가 오랜 시간을 공들여 제작했다는 지도였다.
그가 현재 그들이 있는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리아몰이 보니 그의 말처럼 차이가 존재하였다.
“지도상에는 여기에 저런 지형 같은 건 안 나타나 있는데…….”
외곽 지대의 높은 절벽 지대에, 무언가 지도와는 다른 지형들이 있었던 것이었다.
“……뭐, 시간이 지나다 보면 지형이 조금 변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아몰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혹시나 저번처럼 예상치 못한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것인지 의심했었는데, 생각한 것보다는 그닥 중요치 않은 이야기였다.
부족장이 무언가 한마디를 덧붙이려 했지만, 그리아몰이 말을 끊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니면 이 지도가, 샤와푸흐 님의 말처럼 공들여서 만든 것이 아닌 것일 지도 모를 일.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말도록 하지요.”
신이 아니고서야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저런 거대한 지형을 뚝딱 만들 수 있기라도 하겠는가.
“괴상한 몬스터들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니 바로 진행하시죠.”
그리아몰은 곧바로 진군을 독촉했다.
“……예.”
그러곤 곧바로 외곽 지대 안쪽으로 진입이 시작되었다.
“이동하랍신다!”
“가자!”
드디어 달의 마을의 병력과 그리아몰이 외곽 지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새롭게 발생하였다는 지형 위에서, 들키지 않게 몰래 병력의 행군을 내려다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흐흐, 왔구나.”
그는 바로 레온이었다.
레온은 손바닥 위에 웬 주사위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빛냈다.
‘이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 짓고. 본 드래곤을 손에 넣겠어……!’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