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NT의 모니터링실.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는 허 주임은 화면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린 채,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바로 옆자리에서 한탄이 쏟아졌다.
“으으, 죽겠네.”
“말도 안 돼, 저놈이 결국 이겨 버렸어.”
두 사람의 한탄의 이유는 그들이 함께 보고 있는 모니터 속에 있는 인물 때문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화면 속에는 분신과 함께 샤와푸흐를 해치우고 있는 레온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랬다. 이제 레온을 전담하는 직원이 허 주임 말고도 두 명이 더 추가로 붙은 것이었다.
그 말인즉, 레온의 경계 등급으로 한 단계 더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판테라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슈퍼컴퓨터 ‘휴프노스’가 예측한 흐름 속에서는 달 마을이 태양 마을을 집어 삼키는 전개로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전개의 첫 번째는 샤와푸흐가 만타를 처치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한데 레온은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판테라는 유저의 행위에 따라 수많은 방향으로 메인 스토리가 진행될 수도 있다고 광고를 해 오고 있지만, 사실 그것조차도 99%에 가깝게 휴프노스의 예측 범주 안에서 이루어졌다.
한데 정말 드문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레온의 관리 등급이 상승할 만도 해 보였다.
그러던 그때.
“이야, 저놈 운빨 보게?”
3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운데 머리숱이 상당히 날아간 남자가 혀를 내두르며 말을 꺼냈다.
그는 NT의 콘텐츠 관리팀장인 남도경이었다.
정말 오랜 만에 등장한, 휴프노스의 예측을 틀리게 할지도 모르는 유저의 얼굴을 확인하러 왔던 것이었다.
“하, 저기서 NPC가 그냥 협곡 안으로 병력을 죄다 꼴아박아 버리네.”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은 그는 이내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주유리가 말을 건넸다.
“벌써 가시게요?”
“뭐, 생각보다는 별거 없어서. 그냥 내 생각에는 운이 억수로 좋은 놈으로밖에는 안 보이네.”
남도경의 눈에 보이는 레온은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 같았다.
그는 그의 상대편인 마몬의 검투사가 지닌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도경이 주유리에게 말을 건넸다.
“주 팀장, 너무 후하게 평가하는 것 아냐? 저런 유저한테 세 명이나 배치하다니.”
그 말에 주유리가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남도경이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유리를 바라보고는 이내 자리로 떠났다.
주유리의 말은 이러했다.
“아뇨, 반복되는 운은 실력이거든요.”
* * *
만타가 태양 마을로 떠나고 만 하루가 지났을 무렵.
태양 마을과 달 마을 간의 국경 지대.
이곳의 주인은 일전의 전투로 인해 달 마을의 제사장 요우의 것이 되어 있었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곳이 완벽히 함락된 지 24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고 있었건만, 달 마을의 본대가 아직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곳에 있던 태양 마을 진영의 군사들은 그들의 손에 완전히 괴멸하였기에, 본대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하하, 축배를 들어라.”
“껄껄,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거나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거짓말이 아니었다.
전쟁을 치렀던 바로 이 자리에서 술자리가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달 마을의 샤먼들은 고위 전사들이건, 말단 병사들이건 가리지 않고 얼굴이 벌게져 있었으며 동공이 풀려 있었다.
전쟁을 하러 온 이들처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축제라도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마몬의 사도, 그리아몰이 상황이 답답해 죽겠는지,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항시 쓰고 있는 가면에 가려 다른 NPC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순간 그리아몰이 속으로 생각했다.
‘……하아, 진짜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달 마을 샤먼 놈들아. 지금 술판을 벌일 때냐.’
그는 하루 전 이곳을 함락하는 데 성공하였을 때.
지금 이 시간이면 외곽 지대에 당도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하지만 그 예측은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보이다시피 단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아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태양 마을에 잠입시켜 놓은 스파이인 샤와푸흐의 연락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던 것이 화근이었다.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 동안 간단히 승리를 자축하자던 것이 이렇게까지 길어진 것이었다.
‘샤와푸흐, 그자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는 샤와푸흐가 실패를 하였을 가능성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병력 차이가 너무나 현저하게 났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마몬의 사도라고 한들, 단체에 레이드를 당하면 죽기 마련이었다.
한 사람이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근데 왜 연락을 안 하냐고!’
혹시 일부러 연락을 안 하는 것인가.
태양 마을의 반격이 거셌고, 그것을 자신이 성공적으로 진압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자신과 2인자 경쟁을 한다고 혼자 착각하며 귀찮게 굴던 모습이 떠오른다.
순간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주물렀다.
순간 그런 그리아몰의 애타는 마음은 모르고 가장 상석에 앉은 이가 광소를 터뜨리며 말을 꺼내었다.
“크하하, 역대 그 어떤 제사장도 이루지 못했던 국경 지대의 정복을 내가 이루어 냈다. 내가 바로 샤먼들의 왕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이들을 엄벌에 처해도 모자랄 제사장이 오히려 가장 만취되어 술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여윽시 요우 님이십니다!”
“이제 이대로 태양 마을까지 가지 말입니다!”
“크하하하! 그러자꾸나.”
그 장면을 목격하며 그리아몰이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런 상태에서는 그가 세뇌를 한 것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역시나 이 게임, 쉽지 않았다.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줄 알았는데,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었다.
‘젠장, 처음부터 이런 자리를 허락을 했으면 안 됐는데.’
짧은 연회는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최악의 판단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그때, 그가 속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휴, 아니야, 이제 수습해서 얼른 출발하면 되지. 4개월 동안 얼마나 공을 들였냐. 참자, 참아. 정말 고지가 얼마 안 남았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레온과 달리 그리아몰은 이 퀘스트의 성공에 4개월이 넘는 시간을 투자하였다는 것이었다.
하긴 보통 유저에게는 그 정도의 진행 속도가 정상적인 것이리라.
레온의 퀘스트 진행률의 속도가 타에 추종을 불허하게 빠른 것일 터였다.
‘어찌 됐건 여기서 더 시간이 지연되는 건 안 돼. 어떻게든 수를 써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그는 안 되면 샤와푸흐에게 연락이 왔다고 거짓말로 속여서라도, 어떻게든 그들을 움직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무튼 이런 달 마을 제사장, 요우의 방심 덕에 레온은 하루의 시간을 추가로 더 벌 수 있었다.
* * *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돌아오셨군요.”
레온이 막 외곽 지대로 돌아온 만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건넸다.
황급히 서둘렀는지 만타와 병사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지만 그만큼 태양 마을로 떠났던 만타는 레온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왔다.
고작해야 6시간 정도가 흘렀을 무렵이었다.
이동하는 시각을 제하면 가자마자 거의 속전속결로 모든 것을 끝낸 듯했다.
레온의 말에 만타가 전보다 눈에 띄게 환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군사님의 말대로 정말 피라미들밖에는 없더군요. 최우선적으로 감옥에 붙잡혀 있던 부족장분들을 탈출시킨 이후부터는 잔당들의 정리에 1시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곤 만타는 부모에게 ‘나 잘했지’ 하며 자랑하는 아이의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에 레온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칭찬을 건넸다.
그러던 그때.
처척-.
“총군사님을 뵙습니다.”
“총군사님을 뵙습니다.”
“총군사님을 뵙습니다.”
만타의 곁에 서있던 새롭게 합류한 다섯 명의 부족장들이 모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레온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샤와푸흐의 배신을 겪고, 자신들을 구해 준 동료들에게 레온의 활약상을 듣고 나니 이런 은인이 없었다.
과거에 우습게 보았던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 진실한 태도로 레온을 상관으로 깍듯이 모시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레온은 그런 자세한 내심은 모르지만, 그래도 전해지는 바는 있었기에 작게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잘 부탁하네.”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난 후, 레온은 미리 세워 둔 임시 막사로 이동해 만타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레온은 훨씬 밝은 표정이 되었다.
‘좋아,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인원이군.’
새롭게 합류한 병사들의 숫자가 예상치보다 훨씬 많았던 탓이었다.
단번에 전력이 서너 배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나, 적과 비교하면 훨씬 약체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그러던 그때, 만타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는 부끄럽게도 태양 샤먼의 힘을 제대로 못 보여 드렸지만. 이제는 다를 겁니다. 태양 샤먼의 힘은 최소 세 부족 이상이 힘을 합쳤을 때 제대로 나오니까요.”
‘네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레온은 사실 그 얘기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다.
이전 전투에서 생각보다 태양 샤먼들의 활약이 평범함 그 자체였던 탓에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때 레온은 만타에게 말을 건넸다.
“아, 그건 그렇고 한 가지 더 부탁드렸던 것은……?”
“아, 잊을 뻔했군요.”
그러자 만타가 곧이어 바깥에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에게 ‘그들’을 데려오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잠시 후, 일단의 무리가 막사 안으로 줄줄이 들어왔다.
한데 그들은 특이하게도 하나같이 쭈뼛거리며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마치 경찰서에 들어온 범죄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후후, 잘 만났다. 요놈들.’
레온이 먹이를 바라보는 살모사와 같은 눈빛을 그들에게 뿌렸다.
그의 눈앞에 태양 마을에 있던 건설가 길드의 모든 조합원들이 불려와 있었다.
레온의 뒤편에 서 있던 하이른과 요세프 또한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들이 겪었던 과중한 업무를 그대로 수행할 그들의 모습을 보니, 고소해 죽겠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우르르-.
촤르륵-.
이윽고 레온이 눈앞에 있던 책상에 엄청난 양의 설계도들을 들이부었다.
순식간에 책상 위로 산더미같이 쌓였다.
전부 A등급 포탑들이었다.
길드원들 모두가 멍하니 그 양피지 산맥을 바라보던 그때.
용기를 낸 길드장이 말을 꺼냈다.
“……이, 이 중에 얼마나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그에 레온이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물론 전부 만들 겁니다. 설계도마다 위치를 표시해 놓았으니, 알아서 분배하셔서 지으러 가시면 됩니다.”
“……이게 가능한 양인 겁니까?”
레온은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가능하게 해야죠. 지금과 같은 위험 상황에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군법으로 다스려야 할 테니까요.”
“구, 군법요?”
설마 거짓말이겠지 했던 건설가들은 레온의 눈빛을 보고는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이 무언의 압박을 쏟아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내 등 뒤로 식은땀까지 흘러내렸다.
순간 레온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꺼냈다.
“응? 아직 안 가셨습니까? 당장 시작해도 간당간당할 텐데요.”
후다다닥!
“내가 먼저 집었어!”
“어허,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것 모르냐!”
“뭔 소리야, 물이면 다 같은 물이지.”
레온의 말이 끝나자마자, 건설가들이 각자 조금이라도 손쉬운 포탑의 설계도들을 고르기 위해 다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