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바하모르가 보여 주는 강력함은 단순히 강하다는 표현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보랏빛의 붉은 눈을 번뜩이며 바하모르가 자신에게 몰려드는 적들에게 우아한 동작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쿠가가가!
콰앙!
“꾸에에!”
“끄어어!”
충격파가 발생하며 변이체들이 마치 거센 폭풍이 덮치기라도 한 것처럼 박살이 났다.
그뿐이 아니었다.
까드득.
까득.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나풀거리는 바하모르의 망토에 몸을 담고 있는 망령 개들은 변이체 무리를 말 그대로 ‘씹어 삼키고’ 있었다.
싸아아-.
잠시간 전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이지를 상실한 변이체 무리들은 자신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동물의 감으로 바하모르의 위험함을 느끼고 멈칫한 것이었으며.
만타군의 군사들은 괴물이 괴물을 잡아먹는 이 소름 돋는 장면이 주는 위압감에 할 말을 잃은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이 멍청이들아! 그래 봐야 한 명이다! 단체로 물어뜯어!”
샤와푸흐가 악을 질렀다.
“그어어어!”
“그르, 그르!”
그러자 아직 살아 있는 수많은 변이체 무리가 가래가 끓는 듯한 듣기 싫은 울음소리를 드높이며 살기를 내뿜었다.
투다다다!
변이체들이 떼를 지어 바하모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건방진.
그에 바하모르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곤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눈빛을 번뜩이더니, 이어 한마디를 덧붙였다.
-일어서라.
우우웅!
그러자 그의 눈동자 색과 동일한 보랏빛 기운이 발밑의 지면에 치솟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 기운은 소환진의 형상을 갖추었고.
슈웅!
슈웅!
슈웅!
……그 숫자를 점점 늘려 갔다.
그리고 곧이어 소환진 속에서 새로운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사역마 소환]
생전에 바하모르를 보필하던 스무 명의 흡혈귀들을 소환합니다.
그들은 바하모르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적들을 처치합니다.
그 정체는 과거에 바하모르가 이끌었던 스무 명의 수하 뱀파이어들이었다.
바하모르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쓸어버려라.
샤아아.
스르르.
그의 말이 끝남과 사역마들이 순간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크아아!
-크르르!
곧이어 바하모르에게 덤벼드는 변이체들을 가로막고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바하모르가 전장에 등장한 파급효과는 대단했다.
“우아아아!”
“레온 님이 우리한테도 괴물을 붙여 주셨다!”
“이 새끼들아! 우리도 괴물 있다!”
“이에는 이, 괴물에는 괴물!”
워낙 바하모르가 그들의 눈에 대단하게 보였던 탓일까.
이형의 존재로 변한 적들 때문에 하락세였던 군의 사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치솟아 있었고.
조금 전까지는 대처 한 번 못 하고 픽픽 쓰러지고 있었건만, 이제는 제대로 반격을 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한데?’
레온이 전황을 뒤집어 버린 바하모르의 활약에 혀를 내두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곤 그는 전투로 바쁜 와중에도 흡혈 포탑과 바하모르의 상세 정보 창을 눈앞에 불러와 힐끔힐끔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흡혈귀 군주, 바하모르]
등급 : 4성
흡혈귀들 중 가장 고결한 혈통만이 속할 수 있는 로얄 블러드의 일원인 바하모르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반 흡혈귀는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능력을 버티지 못하고 도시 하나가 괴멸 상태에 처할 정도였다.
수많은 뱀파이어 헌터들이 그를 노렸으나, 어느 누구도 그를 처치하지 못했다고 한다.
보유 영력 :
1. 바스커빌 가의 개
2. 사역마 소환
3. 핏빛 파동
4. 피의 수확
[바하모르의 흡혈 포탑]
LV. 1 / 제작자 : 레온
등급 : S
공격력 : 0
방어력 : 4,530
생명력 : 2,535,000
시야 : 30M
고유 능력
1. 핏빛 안개
궁극기
*S등급 이상의 포탑은 궁극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궁극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궁극기 게이지가 100%에 도달하여야 합니다. [설명 닫기]
궁극기 게이지 : 0%
1. 바하모르 소환 / 재사용 대기시간 12시간.
[상세 설명 보기]
‘크으, 궁극기가 정말 꽃이구나.’
레온은 시스템 창을 끄며,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건설에 사용한 영혼을 생전의 상태 그대로 불러낼 수 있는 궁극기는 정말 최고의 스킬이었다.
짐작건대 바하모르는 지금 레온의 수중에 있는 소환수 중 가장 센 마루보다 훨씬 더 강력하였다.
그의 본 스켈레톤들처럼 레벨 업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처음부터 저런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소환수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
이제 S등급의 포탑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레온의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리라.
후에는 일인 군단에 필적할 정도로 말이었다.
하지만.
장점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점 또한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첫째는 동일한 포탑의 양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포탑을 건설해 본 결과 창작해 낸 설계도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재료로 사용한 영혼은 포탑에 깃들며 사라졌다.
동일한 포탑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일한 영혼이 필요하였다.
한데 랜덤으로 나오는 영혼 캡슐의 특성상 같은 영혼을 뽑는 것은 매우 희박한 확률이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궁극기의 제한 시간이 1시간 30분 남았습니다.
-제한 시간이 모두 소요될 시, 자동으로 궁극기는 해제됩니다.
‘쩝, 제한 시간이 있다니.’
그랬다. 바로 지속적으로 마력만 공급해 주면 계속 데리고 있을 수 있는 소환수와 달리.
궁극기를 통해 소환된 바하모르는 2시간이라는 소환 제한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포탑의 레벨이 오르면 능력과 제한 시간이 오른다는 말이 상세 설명에 적혀 있기는 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뭐 이정도면 대박이지.’
라고 말이었다.
사실 이 정도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여기서 더 바라면 욕심일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단지 아쉬움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포탑을 만들기 어렵다고 한들.
‘뭐, 매번 다른 S등급 포탑을 지으면 되지.’
보스 몬스터 노가다를 통해 소울 코인을 획득한 후, 새로운 4성 이상의 영혼을 뽑아내면 그만이지 않던가.
걱정이 없었다.
‘후후.’
다시 바하모르의 활약을 눈에 담는 레온의 표정에 웃음이 절로 지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빌어먹을.’
반면 샤와푸흐의 얼굴은 당혹감과 패배감이 떠올라 있었다.
만타의 군사들이 자신의 변이체들을 파죽지세로 물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무 마리가 넘는 흡혈귀들과 레온의 스켈레톤들이 있었다.
‘망했군. 다 끝나 버렸어.’
순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부하들마저 희생한 마지막 시도마저 이렇듯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니,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꺼낸 카드보다 상대방이 꺼낸 카드가 훨씬 더 강력하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 샤와푸흐가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레온을 바라보았다.
끄득.
그러자 절로 이가 갈렸다.
억울함과 분노가 속 깊은 곳에서 차올랐다.
도대체 저놈의 정체는 무어란 말인가.
자신의 세월을 다 바친 대계가 갑작스레 툭 튀어나온 저 망둥이 같은 놈 하나 때문에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되고 말았다.
순간 그는 살의를 불태웠다.
‘오냐, 어차피 죽은 목숨 네놈만이라도 길동무로 함께 데려가 주마!’
물론 레온은 유저인지라 죽여 보았자 다시 되살아날 테지만.
아직까지도 그를 토인족으로 알고 있는 샤와푸흐는 레온을 살해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빙의 융합!”
파바밧-!
샤와푸흐는 스킬을 시전하며,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달려들었다.
“크롸아! 죽이겠다!”
어느새 샤와푸흐의 얼굴을 포함한 전신이 짐승의 그것처럼 변하여 있었다.
마치 라이칸스로프와 같은 모습이었다.
달 샤먼만이 지니고 있는 스킬 중 하나인 빙의 융합의 효력이었다.
빙의 융합은 강대한 영혼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어 신체 능력을 급격하게 증대시키는 스킬이었다.
대신 이지를 상실하고 광전사에 가깝게 변하여 버리지만 말이었다.
“그아아아!”
흰자만 남은 눈으로 레온에게 미친 듯이 달려드는 샤와푸흐의 기세가 엄청났다.
목숨을 내던질 생각으로 달려드는 것이니, 더욱 그러하리라.
현재 레온은 모든 소환수들과 거리가 꽤 벌어져 있었다.
언뜻 보면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보였다.
끼에!
그러자 순간 멀리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바포가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곧장 낫을 고쳐 잡으며, 레온을 구하기 위해 블링크를 사용하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처억.
끼에?
그런 바포를 막아서는 뼈 발이 하나 있었다.
그 주인은 바로 마루였다.
바포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마루가 고래를 살며시 가로 저으며 말을 꺼냈다.
-즐기게 놔둬라낭.
……?
그에 바포는 어리둥절한 반응을 하고는 다시금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짐승처럼 달려드는 샤와푸흐를 바라보며 레온은 가소롭다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미 연이은 포탑들의 공격과 핏빛 안개로 인해 샤와푸흐의 체력은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그런 와중에 자신을 궁수로 오인하고는, 근접 전투면 승산이 있겠다 하며 저렇듯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꼴이 같잖기 그지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바밧!
‘쉽게 죽여 주지는 않으마!’
그렇게 생각하며 반대로 레온이 샤와푸흐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안개 분신!”
슈우우!
파아앗!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레온의 분신이 네 개가 생겨났다.
코앞까지 당도한 샤와푸흐가 목표물이 갑자기 다섯 개가 되자 당황하여 허둥대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촤르르륵!
본신까지 합쳐 총 다섯 명의 레온이 당황에 찬 샤와푸흐를 뺑그르르 둘러쌌다.
그리고 곧이어.
후욱!
퍽!
한 레온의 주먹이 샤와푸흐의 명치를 정통으로 후려쳤다.
“크억!”
샤와푸흐가 고통에 신음성을 토해 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레온의 폭풍 구타가 시작되었다.
“그러게.”
퍽!
“왜.”
퍼퍽!
“핏덩이 같은.”
퍼퍼퍽!
“애들을 죽일라 하냐.”
퍼퍼퍼퍽!
“쌍노무 시키야!”
어찌나 신속 정확하게 격통을 줄 수 있는 급소만 노려 가며 매만져 주는지, 샤와푸흐의 몰골이 급속도로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안개 분신 스킬로 만들어진 분신들은 어떠한 전투 능력이 없었는데.
“크억!”
“억!”
“컥!”
샤와푸흐는 분신들이 때릴 때에도 고통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건 바로.
-와, 겁나 잘 때린다. 새 주인아.
[아이템 빙의]
안개 여신의 장식 가면
-안개 분신에 근접 전투 능력을 부여한다.
(스킬 사용은 불가.)
-본신의 1/4의 스탯 지수를 획득한다.
안개 여신의 장식가면에 아이템 빙의를 사용하며, 분신들이 전투 능력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본신의 4분의 1에 불과한 힘이기는 하지만 샤와푸흐를 처치하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정말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샌드백처럼 샤와푸흐를 두들기던 그때.
“마지막이다!”
레온이 마지막 한 방을 샤와푸흐의 엉망진창이 된 면상에 내리꽂았다.
콰아앙!
주먹으로 낸 것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샤와푸흐가 그대로 날아가 지면을 굴렀다.
그러자 곧이어.
띠링.
띠링.
띠링.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레온의 눈앞에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오르고 있었다.
-반란군, 샤와푸흐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한계 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더 이상 레벨을 올릴 수 없습니다.
그때 전투를 벌이고 있던 만타군 병사들의 놀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어라?”
“사, 사라지고 있다!”
그들과 전투를 벌이던 모든 변이체들이 허물어지듯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푸스스.
끄으으.
아무래도 아이템을 사용한 주인이 사망하면 효력이 사라지는 모양이었다.
변이체들이 순식간에 검은 가루로 변하였다.
안타깝게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렇게 한순간에 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만타와 안나를 포함한 모든 병사들이 일시에 고개를 돌려 레온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레온이 하늘 위로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우리의 승리다!”
그러자 다음 순간.
우어어어어!
살아남은 만타군의 열화와 함성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아직 끝이 아닌 시작이기는 했으나, 어찌 되었건 첫 전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