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레온의 호언장담과는 반대로 조금씩 상황은 역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레온이 불러일으킨 아군의 사기 진작은 놀라울 정도였지만.
“허억, 허억.”
“……너무 많아.”
아군과 적군 간에 존재하는 현저한 물량 차이는 어쩔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레온이 잇따른 흑뢰 강림으로 상당한 숫자의 적군을 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적군의 수는 아직도 아군의 두세 배에 달했다.
파죽지세로 치고 나가는 것 같던 레온의 진영은 점차 밀려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끌끌, 그러면 그렇지.’
그러자 샤와푸흐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주민들을 보호하며 외곽 지대 안쪽으로 후퇴하라!”
순간 퇴각을 명령하는 레온의 목소리가 공간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어느새 만타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레온이었다.
“후퇴하라신다!”
“주민들을 지켜라!”
“전열을 갖추고 퇴각하라!”
그의 말을 들은 아군 병사들은 조금의 의심도 않고, 곧장 명령에 따르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에게 쌓인 레온에 대한 두터운 신뢰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투다다다!
레온 진영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전열을 정비하더니, 빠른 속도로 레온이 가리킨 외곽 지대 안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샤와푸흐가 잔혹한 표정으로 추적을 명령했다.
“모두 뒤쫓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우와아아!
그에 적군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병사들을 뒤쫓았지만.
-거기까지다낭!
키에에!
끼루!
꾸우!
최후방에서 뒤따르며 아군 병사들을 지켜 주고 있는 레온과 그의 소환수들의 존재 때문에 쉽사리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느새 꽤 거리를 벌리는 데 성공한 아군 병사들과 주민들이 목표했던 외곽 지대의 초입에 들어서는 데 속속들이 성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잠시 후, 레온은 가장 마지막으로 블링크를 사용하여 모습을 숨기며.
“쯔쯔, 이정도 말아먹었으면 이쯤에서 꺼져라, 만년 부제사장.”
샤와푸흐를 농락해 주었다.
부들부들.
‘저놈, 뼈까지 씹어 주리라!’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샤와푸흐가 진득한 살기를 내뿜었다.
한데 그때였다.
‘뭐야?’
처척-.
갑작스레 가장 선두에 있던 샤와푸흐의 병사들이 무슨 이유에선가 걸음을 멈추었다.
“뭣들 하는 거냐! 왜 안 쫓는 거냐!”
당연하게도 샤와푸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몽투투가 죽은 후, 부하들을 지휘하던 다른 부족장이 슬쩍 고개를 내밀며 말을 꺼내었다.
“샤와푸흐 님, 이렇게 급격히 좁아지는 길목에서는 적의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의 말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양쪽에 깎아지른 절벽들이 솟아올라 있고, 그 틈으로 좁다란 길목이 나 있는 눈앞의 지형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던 탓이었다.
샤와푸흐의 대군이 한꺼번에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순간 샤와푸흐를 살피며 뜸을 들이던 부족장의 말이 이어졌다.
“정찰대를 꾸려서 먼저 보내 보심이……!”
그러나.
촤아악!
서걱!
그의 머리는 놀란 표정 그대로 제 몸과 분리되어 땅바닥에 떨어졌다.
싸아아-.
순간 좌중이 침묵에 잠겼다.
그의 목을 떨어뜨린 장본인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 따르는 주인이었던 탓이었다.
샤와푸흐가 극도로 흥분한 채, 씩씩거리며 말을 꺼내었다.
“이 뭣도 모르는 놈이 감히 날 가르치려 들어?”
이미 분노에 눈이 돌아간 그는 자상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흉포하기 짝이 없는 음험한 기운이 전신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실핏줄이 터져 붉어진 소름 끼치는 눈으로 샤와푸흐가 말을 꺼냈다.
“어물거리다가 내 손에 죽을 테냐, 아니면 닥치고 안으로 들어갈 테냐.”
그 살기등등함에 부하들이 등 뒤로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곤 부하들이 뒤늦은 함성을 내지르며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넓게 펼쳐져 이동해 오던 그들은 지형상 어쩔 수 없이 진형을 바꾸어 길게 줄을 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 위.
정확히 말하자면, 절벽 위에서 레온이 개미 떼처럼 진입해 들어오고 있는 그들을 보며 악마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목적지까지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랬다. 그의 말처럼 이 협곡이 바로 본래 레온이 적들과 전투를 치르려 했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만타가 적군에게 따라잡히는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진 탓에, 졸지에 이곳까지 유인해 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레온의 빠른 커버로 큰 희생 없이 다시금 이곳까지 유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후후! 이제 지옥길의 서막이다, 그지 깽깽이들아!’
이제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온 그들을 맛있게 씹어 삼키기만 하면 되는 시점이었다.
적군의 전 병력이 모두 진입해 들어온 그때.
처처척!
두드드!
콰가가!
갑작스레 절벽 위에서 귀가 먹먹할 정도의 진동과 소음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함정이다!”
샤와푸흐의 군사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곤 소리가 들려온 절벽 위를 바라보고는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히이익!”
“마, 말도 안 돼!”
한데 그럴 만도 해 보였다.
그들의 눈에 백여 개는 넘을 듯한 포탑들이 줄지어 세워진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도대체 자신이 보낸 사이에 포탑을 몇 개나 만들어 놓은 것이란 말인가.
샤와푸흐는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저만한 숫자의 포탑을 지을 수 있는 것인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위이잉-.
철컥-.
포탑들의 포구가 적들을 향해 내려왔고.
투콰아아!
퍼퍼퍼펑!
이내 쉬지 않고 불을 뿜어내기 시작하였다.
가공할 포격이 쏟아지고 있었다.
“끄아아!”
“크억!”
적군들의 처절한 비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데 샤와푸흐의 의심처럼 어떻게 이렇게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후후, 빠르게 양산할 수 있는 걸 포탑의 콘셉트로 잡았으니까.’
레온이 포탑의 설계 방향을 그렇게 잡았던 것이었다.
저 수많은 포탑들은 모두 한 종류였다.
바로 B등급의 ‘프로토타입 포탑’이었다.
시제품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프로토타입 포탑은 체력도 보통, 사거리도 보통, 공격력도 보통이었다.
게다가 고유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있는 장점이 바로 빠르게 그리고 구하기 쉬운 자재들로 건설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레온은 그 장점을 일전에 만들었던 성장촉진 포탑을 함께 사용하여 배로 증가시켰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프로토타입 포탑 1이 반란군 샤먼, 메트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프로토타입 포탑 13이 반란군 병사, 리크를 처치하였습니다
-…….
-(……중략……)
앞서 평범한 위력이라고 설명했던 것과 달리 프로토타입 포탑들은 적들에게 엄청난 위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레온의 눈앞에 연신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포탑의 위력을 배가시켜 주는 한 존재 덕분이었다.
순간 레온이 한가운데 세워진 포탑을 슬쩍 쳐다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곤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3성 영혼도 생각한 것보다 성능이 괜찮은데?’
자세히 보니, 한쪽 눈에 안대를 끼고 있는 해적 유령 하나가 포탑 위에서 연신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놈들아! 어서 포탄을 장전해라! 해군들을 쓸어버릴 시간이다!
[붉은 수염, 나이브로]
등급: 3성.
카라브 흑해의 제왕으로 불렸던 대해적.
포탄을 손으로 던져 적에게 맞히는 타고난 괴력으로 유명했다.
지병이었던 괴혈병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해적왕에 가장 근접한 사나이로 불렸었다.
보유 영력 :
1. 포탄을 장전하라(포탑)
-40M 반경 안에 있는 포탑의 공격 속도를 30% 증가시킨다.
2. 가디스 오브 데스(포탑)
-‘포탄을 장전하라!’ 스킬의 효과를 받는 포탑들마다, 네 번째의 포격이 고정 피해를 입힌다.
붉은 수염, 나이브로는 레온이 캡슐로 획득했던 3성의 영혼 중 하나였다.
포탑에 광역 버프를 걸어 줄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그 효과들이 모두 상당히 뛰어났다.
30퍼센트 증가된 공격 속도를 부여해 줌과 동시에 네 번째 공격마다의 대미지가 고정 피해로 들어가게 해 주었다.
레온은 이 녀석의 힘을 믿고 프로토타입 포탑을 대량으로 건설해 놓았던 것.
하지만 레온이 준비해 둔 것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두드드드드!
우르르!
쿠가가가!
이미 온갖 소리가 뒤엉킨 전장의 위쪽에서, 이질적인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는 더욱 크고 선명해졌다.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전장에서 싸우던 이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헉!”
“미친, 저게 뭐야?”
그리고 하나같이 입을 쩌억 벌리며 경악했다.
같은 순간, 레온이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입 벌려라, 이제 두 번째 들어간다.’
라고 말이었다.
위를 바라보던 샤와푸흐의 부하들은 극도로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다.
두드드드!
“크억! 도, 돌이 떨어진다!”
“산사태다!”
이미 양산형 포탑들만으로도 지옥을 맛보고 있는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부하들에게 허둥대지 말라고 해야 할 샤와푸흐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산사태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절벽에서 무슨 놈의 산사태가 일어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쿠르르르-.
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쿠와앙-!
그리고 그곳에 있던 부하 한 명이 돌에 깔려 비명 한 번 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 이런.’
그 섬뜩한 모습에, 샤와푸흐의 이마에서 땀방울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샤와푸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산사태의 징후가 전혀 없었을뿐더러, 여태껏 이곳에서 단 한 번도 산사태가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맞았다.
이것 또한 레온의 포탑의 힘이었다.
“저, 저거다!”
“절벽에 매달려 있는 포탑들이다!”
부하들 중 몇몇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 이상 사태의 원인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샤와푸흐도 볼 수 있었다.
마치 배 아래 붙어 있는 따개비들처럼, 절벽에 따닥따닥 붙어 있는 특이한 형태의 포탑.
A등급의 ‘암벽돌출 포탑’이었다.
평상시에는 절벽 속에 엄폐되어 있다가 적들이 발견되면 모습을 드러내고 암석을 떨어뜨리는 신개념 포탑이었다.
“궁수대! 샤먼들! 뭐 하나! 저 포탑들을 공격해!”
거대한 암석들이 떨어지는 통에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와중에 샤와푸흐가 요격을 명령했다.
그러자 곧이어.
“대자연의 분노!”
“업화의 토템!”
“스틸 애로우!”
활을 지니고 있는 부하들과 샤먼들이 암벽돌출 포탑들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팅!
티팅!
티티팅!
“뭐, 뭐야?”
“저건 대체?”
포탑에 닿기도 전에 딱딱한 무언가를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마법의 투사체와 쏘아 낸 화살들이 조금의 피해도 주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순간 레온이 쾌재를 불렀다.
‘좋다 우리 거북이! 고생 좀 해라.’
어느새 포탑들 하나하나마다 흰 방어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암벽에 세워진 포탑들 사이로, 희미한 거북이 한 마리의 영혼이 보이고 있었다.
-Bbook! Bbook!
[어비스 터틀 킹, 노스노스]
등급 : 3성
노스노스는 어비스 지대에서 최고의 방어력을 지닌 것으로 일컬어지는 어비스 터틀의 왕이다.
어비스 터틀의 왕으로 뽑히는 자격은 오로지 등껍질의 단단함.
노스노스의 등껍질은 죽기 직전까지 어떤 적을 만나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보유 영력 :
1. 터틀 쉘 배리어(포탑)
-반경 30M 내에 위치한 포탑에 원거리 투사체 공격을 방어하는 방어막을 두른다.
-포탑의 원래 체력에 220%의 체력에 해당하는 수치를 지니는 방어막을 활성화시킨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공격이 쏟아지는 와중에 절벽을 기어 올라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렇다고 원거리 공격으로 처리하자니 엄청난 수치를 지닌 방어막이 막아 준다.
도저히 어떻게 대처를 할 수가 없었다.
저항이 불가능한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악!”
“크억!”
마치 타워 디펜스의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몰려오는 적들이 포탑들의 화려한 향연에 모두 경험치로 화하고 있었다.
뒤돌아 도망치려 해도 아군들이 가로막고 있었으니,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얻어맞아야 하는 것이었다.
포탑들에 의해 적군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제야 자신이 사지로 걸어왔음을 깨달은 샤와푸흐였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킬 수 없었다.
“무시하고 진격해!”
생존자들은 즐비한 아군의 시체를 밟고 포탑들의 사정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진격해갔다.
어느새 협곡을 빠져나갔을 때, 그들은 고작해야 3할 정도의 병력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자 샤와푸흐의 머리를 장악했던 분노는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뿐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포탑이란 것이 이렇게나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물건이었단 말인가.
한데 그때.
“으으, 이건 또 뭐야.”
“흐흑, 집에 가고 싶어.”
또다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샤와푸흐 진영의 병사들이 공포에 휩싸인 것이 한눈에 보이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그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안색이 파리해졌다.
이번에는 또 시야를 가리는 붉은 안개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런 시각적인 공포감은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단숨에 전염병처럼 창궐하였다.
이번에는 대체 또 무엇을 내보내려 하는 것인지.
어느새 샤와푸흐가 떨리는 눈동자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