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또 저놈인가……!’
순간 레온을 바라보는 샤와푸흐의 눈이 짐승의 그것처럼 사납게 변하였다.
어느새 그에게서 풍기던 여유로운 분위기는 사라져 있었다.
그는 정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레온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의 수년에 걸친 계획을 망쳐 놓은 주범이 또다시 훼방을 놓고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이잇! 하찮은 토인족 놈이 감히 누구에게 화살을 쏘는 거냐!”
순간 옆에 서 있던 샤와푸흐의 오른팔인 몽투투가 분노에 찬 함성을 터뜨렸다.
마치 그는 자신이 화살을 맞은 양, 볼썽사납게 소리를 꽥꽥 질러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온은 귀를 파며 그에게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그러곤 곧바로 작게 입을 달싹였다.
“가서 만타를 지켜.”
라고 말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난 순간.
만타가 있는 곳을 향해.
파바밧!
언덕 위에서 거대화한 마루가 펄쩍 뛰어내렸고.
쐐애액!
파공성과 함께 하늘에서 피르호크가 내려앉았으며.
두드드!
땅속에서 너클즈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녀석들은 모두 레온의 스켈레톤 중에 한 덩치 하는 소환수들.
“허억!”
“뭐, 뭐야 저건!”
만타와 안나를 제외하고는 아군과 적군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틈에서 마루가 만타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꺼냈다.
-쯔쯔, 바보 샤먼. 가면 자살이다낭. 얼른 돌아가라낭.
스켈레톤이 말까지 하며 만타를 보호하기 시작하자, 적들은 더욱 당황한 듯 보였다.
‘저건 또 뭐야?’
그건 샤와푸흐 또한 마찬가지였다.
보냈던 암살자들이 모두 처치된 까닭에 그는 레온의 소환수들에 대해서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스켈레톤들에게서 딱 보아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그는 수적으로 몇 배는 더 많은 군세를 지니고 있음에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
레온이 언덕 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태양 마을의 전사들이여, 그대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사지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만 볼 작정인가!”
레온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자, 태양 마을의 전사들은 울컥하는 심정이 되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려 한 만타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참된 주인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전사의 최후로는 마땅하지 않은가!”
그리고 레온의 마지막 말이 이어졌다.
“자! 이곳에서 주인을 지키고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하자!”
그러자.
“우와아아!”
“만타 님을 지키자!”
“싸우자!”
아군 진영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수세에 몰려 잔뜩 쪼그라들어 있던 그들은 어느새 태양 마을의 전사로 되돌아와 있었다.
레온은 그 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면 만타에 대한 충성심도 꽤나 올라왔겠군.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겠어.’
라고 말이었다.
사실 레온은 한참 전부터 이미 참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것은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혹여 전투를 벌이다 샤와푸흐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아군이 등을 돌린다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었다.
하나 이렇게 된 이상 아군의 배신은 생각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아아아아!”
“적들을 쓰러뜨리자!”
“쓸어 버려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챙!
채챙!
날붙이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
“저 건방진 놈의 사지를 끊어 버려라!”
투다다다!
그러자 몽투투가 스물에 가까운 부하들을 이끌고 레온이 있는 언덕 위를 향해 뛰어들기 시작했다.
일전의 암살자들보다 더욱 강력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 엄청난 속도로 돌파해 들어왔다.
레온의 주력 소환수들이 모두 만타의 보호에 나가 있는 시점이기에, 위험천만한 상황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가 볼까!’
타다닷!
그런 상황임에도 오히려 레온은 눈을 번뜩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뛰어들기 시작했다.
‘멍청한 놈!’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그 모습에 몽투투는 가소로운 나머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활잡이 따위가!’
“죽여라!”
“선조시여, 나에게 힘을! 야만의 파동!”
“영혼의 힘을 담아! 스톰 서지!”
“대지 강타!”
버프를 몸에 두른 적들이 수많은 공격 스킬들을 레온에게 쏟아부었다.
한데 그때였다.
“뭐, 뭐야?”
서로가 격돌하려는 찰나.
휘익!
일순간 마술처럼 레온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크아아!”
“으어억!”
난데없이 언덕 아래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몽투투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아니, 어떻게?’
분명히 자신들에게 달려들고 있던 레온이 어느새 언덕 아래에서 자신의 동료들을 해치우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옆에는 본 적 없는 또 다른 소환수까지 모습을 드러내 있었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이! 다시 내려가라!”
그렇게 몽투투가 언덕 아래로 내려가려는 찰나.
처척!
철컹-!
갑작스레 땅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들 전체를 자기장에 가두었다.
“크억!”
그건 바로 일전에 레온이 설치해 두었던 최후통첩 포탑이었다.
조건을 만족하여 재발동된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부……!”
갇혀 버린 공간 속에서 몽투투가 부하들에게 발악을 하던 그때.
파밧!
파바밧!
파바바밧!
그들이 갇힌 땅속에서 지뢰형 토템 터렛, 스파크-마인들이 끝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투콰아앙-!
순간 언덕 위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폭발음을 들으며 레온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띠링.
띠링.
동시에 귓전에 효과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적들을 처치하는 데 성공하였다는 메시지 때문에 들려오는 것이었다.
‘블링크! 이거 대박인데?’
그러곤 이어 그는 자신을 저 언덕 위에서 한순간에 이곳까지 이동시켜 준 비법을 속으로 떠올렸다.
[블링크]
전방으로 30미터를 순간이동 합니다. 이동 지점에 장애물이 없어야 합니다.
-소환자와 함께 이동이 가능합니다.
레온은 본 파포메트 주니어를 보스 스켈레톤화에 성공하였고.
적들을 함정에 몰래 빠뜨리는 데 성공한 찰나의 순간.
미리 소환해 놓았던 본 바포메트 주니어, 아니 이제는 포바의 스킬인 블링크를 이용하여 함께 언덕 밑으로 순간이동 한 것이었다.
‘그림자 은신보다 낫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그의 주력 이동 스킬이었던 그림자 은신은 사용 조건도 까다로웠고,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끼에에!
소름끼치는 울음소리와 함께.
“으아아!”
“크헉!”
적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바가 낫을 들고는 적들을 휩쓸어 버리고 있었다.
레온이 몇 번이고 되살리며 고통을 준 까닭일까.
녀석은 적들에게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듯 미쳐 날뛰고 있었던 것이었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모르면서,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레온이 말을 꺼냈다.
“자, 그럼 나도 제대로 가 볼까!”
처척.
순간 레온이 미친 듯이 쏘아 내고 있던 활을 장비를 해제하여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죽여라!”
투다다다!
싸우던 상대가 뜬금없이 무기를 집어넣자, 이때다 싶었던 적들이 단체로 레온에게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레온이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말거나 레온은 품에서 다른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건 바로, 태양 마을에서 미리 준비해 놓았던 망치였다.
그리고 그가 망치를 꺼낼 까닭은 한 가지밖에는 없었다.
레온이 눈을 빛내며 자신이 지닌 스킬 중 가장 강력한 것을 시전하였다.
“흑뢰 강림!”
투콰카카!
콰가가강!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하늘에서 음험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풍기는 칠흑 같은 벼락이 떨어졌고.
“끄아아아!”
“크아아아!”
순식간에 그에게 달려들던 수많은 적군들이 일거에 잿더미 신세가 되고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파괴력은 혼란을 가져오는 법.
그 가공할 위력에 부하들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중에 통솔자 같은 이가 전열을 정비시키며, 잔뜩 겁먹은 부하들을 다독였다.
“겁먹지 마라! 이런 능력을 연달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다! 죽여라!”
“우우어어어!”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주춤하던 적들은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다시금 칼을 꼬나 쥐고 달려들었다.
분명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일전에도 레온은 암살자들에게 한 번 사용하고, 망치가 터져 나가 더 이상 사용하지 못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흑뢰 강림!”
적들이 코앞까지 당도하자 다시 한 번 레온이 스킬을 시전하였다.
그랬다. 어떻게 된 까닭인지, 그의 망치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투콰아아아!
콰가가가!
내리꽂히는 번개들이 만드는 쩌렁쩌렁한 소음 틈으로 레온의 귀에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허허, 황금의 힘은 위대해.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망치의 내구도가 대폭 하락하였습니다.
-빙의된 영혼 ‘황금 망치, 런드 골’의 ‘골든 타임’ 스킬 효과로 인해 망치의 내구도가 1 유지됩니다.
‘후후, 이건 몰랐지 이놈들아.’
자신의 몸에 빙의시킨 영혼의 힘으로 파괴되어야 할 망치의 내구도가 1에서 계속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레온의 활약에 아군들은 기쁨에 몸을 떨고 있었다.
“오오!”
“우리도 질 수 없다! 이때다, 가자!”
“와아아아! 우리 뒤에는 번개의 수호자, 레온 님이 계신다!”
사기가 엄청나게 올라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레온이 흑뢰 강림을 사용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레온은 그렇게 두어 번 정도 스킬을 더 사용하고는 망치를 품에 갈무리하고, 다시 활을 꺼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명성이 500 하락하였습니다.
-악명이 500 증가하였습니다.
‘끄응, 이거 너무 기분을 냈나. 엄청 떨어졌네.’
영혼의 힘으로 망치는 파괴가 되지 않았지만, 본신의 명성의 하락과 악명의 증가는 멈출 수 없었던 탓이었다.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쩝. 일단 흑뢰 강림은 이 정도로 하기로 하자.’
레온이 입맛을 다시며, 매섭게 활시위를 당기던 그때.
“이잇! 멍청한 놈들! 뭣들 하는 거냐!”
샤와푸흐는 뭐 씹은 표정으로 꽥꽥대며 악을 지르고 있었다.
‘이 무슨 멍청한……!’
자신이 생각했던 전황과 정반대의 결과가 펼쳐지고 있었던 탓이었다.
-예측하지 못한 변동 사항이 생긴다면, 바로 전서구를 날려 주십시오.
그 순간, 샤와푸흐의 머릿속에 계획이 실행되기 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샤와푸흐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이런 간단한 것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알리면 요우 님이 날 좋게 보실 리가 없어.’
이것이 다 저놈 때문이었다.
샤와푸흐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레온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피식.
레온이 특유의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개자식이!’
그 비웃음을 본 순간, 그는 앞서의 이야기를 전부 잊어버리고 말았다.
뿌득.
‘죽여 버리겠어!’
어찌나 이를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레온은 통쾌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쯔쯔, 이 정도로 벌써 그런 표정을 지으면 어떡하니.’
레온이 슬쩍 언덕 위를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 메인 디시는 나오지도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