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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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4성 영혼을 얻은 지 며칠 후.
외곽 지대에서도 며칠을 더 이동해야 나오는, 태양 마을과 달 마을 간의 최후방 경계선.
현실보다 더 첨예하게 선을 긋고 대립하고 있는 곳에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타탁-. 타다닥-.
곳곳에 널린 시체에서는 진한 피비린내 뒤섞인 악취가 풍긴다.
하지만 그 정도쯤은 가볍게 덮을 정도로 매캐한 연기가 전장을 뒤덮고 있었다.
사방이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아악!”
“쿨럭!”
‘도대체 이게……!’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의 방어선을 지키고 있던 태양 마을의 부족장 중 하나인 루파는 처절할 정도로 궤멸해 버린 전장의 모습에 경악에 찬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태양 마을과 달 마을 양측 모두 이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세는 언제나 엎치락뒤치락하며 어느 진영이 확실하게 유리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그 균형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크아아!”
칠흑 같은 화마를 불러일으키며 전장을 뒤흔들고 있는, 단 한 명의 외지인 때문이었다.
촤아악!
검붉은 화염이 감싸고 있는 그리아몰의 검이 그어질 때마다.
“끄아아아아아아!”
“아아악! 뜨, 뜨거워……!”
뿜어지는 불길에 뒤덮인 불운한 전사들의 끔찍한 비명이 연신 이어졌다.
압도적인 격차였다.
적들도 결코 낮은 레벨은 아니었지만, 마몬의 사도로 힘을 잔뜩 받은 그의 검에는 대항하지 못하고 두부 썰리듯 썰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전투는 끝났다.
그들을 궤멸시킨 주인공, 그리아몰은 대지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태양 마을 진영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얼굴에 만개한 채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히든 직업은 최고야. 마몬의 검투사! 이것만 있으면 어떤 누구도 해치울 수 있겠어.’
그가 마몬의 사도로서 획득한 직업은 바로 ‘마몬의 검투사’였다.
마몬의 사도 직업들 중 가장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직업이라 할 수 있었다.
마몬의 대장장이가 번개를 다룬다면 그는 보다시피 불꽃을 다루었다.
그가 그렇게 자기애에 빠져 있을 때, 그가 현혹시킨 달 마을의 제사장 요우가 슬며시 다가와 그를 치켜세웠다.
“역시 마몬님의 힘을 이어받은 주교님의 힘은 절륜함 그 자체로군요.”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이제 이곳을 수습하고 이동해 외곽 지대를 넘어 태양 마을로 입성하면 되겠군요.”
“이곳이 가장 험난한 장소였는데 이렇게 쉽게 함락하여 버렸으니 마음 편히 이동하시면 될 겁니다.”
그리아몰은 이미 끝났다는 식으로 말을 꺼내고 있었다.
한데 그가 그렇게 말을 할 만도 하였다.
‘후후, 신호를 보냈으니 태양 마을의 내부도 쑥대밭이 되었을 터. 이제 전열을 정비해서 마을로 향하면 쌈 싸 먹는 느낌으로 다 해치울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그와 같은 시각.
태양 마을 또한 완전히 난리가 나 있었다.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이곳 또한 화마에 휩싸여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혼란과 불신의 기색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크윽, 허억.”
족장 한 명이 부상을 입은 팔을 감싸 안은 채 샤와푸흐에게 이동하고 있었다.
마을 안에서 갑작스런 습격을 받은 터라 반응이 늦어, 결코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어떻게든 물리치고 힘겹게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는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빙의라니……! 그건 분명히 달 마을의 샤먼들이 쓰는 기술일 터. 어떻게 달 마을의 암살자들이 태양 마을의 내부까지 들어올 수 있었단 말인가.’
그랬다.
그를 습격한 이들은, 모두가 달 마을만의 비기인 빙의를 사용해 변신한 후 그를 공격했었다.
의문을 안은 채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도 샤와푸흐의 집은 멀쩡하였다.
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였다.
끼익-.
“이런, 페기 부족장님이 아니십니까.”
“샤, 샤와푸흐 님!”
그보다 한발 먼저 샤와푸흐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페기는 한결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이미 마을의 위기를 알고 대비하고 계셨군요. 어서……?”
하지만 그는 끝까지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샤와푸흐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완전 무장을 하고 있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데 그의 전신에 묻어 있는 핏자국들 하며, 평상시의 온화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한 분위기.
결정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옅은 비웃음을 띠고 있는 얼굴까지.
“어서 무엇을 해 달라는 겁니까? 마을 안에 들어온 달 마을의 적들을 해치워 달라고?”
“그, 그렇습니다.”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페기 부족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런……. 제가 그들을 왜 해치우겠습니까? 마을 안으로 그들을 들여보내 준 것이 나인데.”
“……!”
아직까지 전혀 믿기지 않았지만, 부족장은 이 사태의 주동자가 샤와푸흐임을 알아차리고는 입을 쩍 벌렸다.
물론 그는 샤와푸흐를 지지하는 태양 마을의 부족장들 중 하나였다.
하나 마을에 반기를 드는 것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태양 마을을 이끌 훌륭한 지도자의 그릇임을 믿고 샤와푸흐를 택한 것이었는데, 이런 생각지도 않은 일을 벌일 줄이야.
“다, 당신이 어째서 배신을?”
그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마을의 일원으로서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그가 이런 어마어마한 배신을 벌인 이유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배신? 정확히 이야기하면 배신이 아니지.”
이제는 가식적인 정중함마저 내다 버린 샤와푸흐가 성큼성큼 걸어오며 말을 꺼냈다.
그리고 번개처럼 움직였다.
푸욱!
“크어억!”
페기는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 냈다.
어느새 짐승의 그것처럼 변화해 있는 샤와푸흐의 굵은 팔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샤와푸흐는 핏줄기가 튀는 것을 피할 생각도 않으며 중얼거렸다.
“난 더러운 네놈들과 한 번도 같은 편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페기 족장은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샤와푸흐가 먼지 털어 내듯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시체가 그대로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이런, 얼굴까지 피가 튀었군.”
다시 팔을 원래대로 돌려 얼굴에 튄 핏방울을 닦아 내며, 샤와푸흐는 차갑게 명령했다.
“저 쓰레기를 치워라.”
화르륵.
그의 명령을 들은 부하 하나가 곧바로 시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샤와푸흐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엉망이 된 태양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잠입하였던가.
불더미가 되어 가는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그는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이지…… 오래도 걸렸구나. 참느라 힘들었어.’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제사장을 처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권력을 손에 쥐고 이런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되기까지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의 염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 마을을 잿더미만 남아 있는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것 말이다.
‘이제 만타 놈을 잡고 초점사약결을 빼앗아 돌아가기만 하면 완벽한 마무리가 되겠군.’
순조롭게 풀려 나가는 상황을 보며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데 그때였다.
‘으응?’
저 멀리서 그를 향해 일단의 무리가 이동해 오고 있었다.
샤와푸흐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저들은 분명 만타와 안나를 처치하기 위해 그가 보낸 암살자들이었다.
그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샤와푸흐는 부하들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분명히 만타의 수급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아 놓고도,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말해 주는 것은 단 하나였다.
“만타, 이 조그만 쥐새끼가……!”
만타는 눈치를 채고 벌써 도망을 친 것이었다.
“당장 쫓아! 아니, 내가 직접 가겠다.”
샤와푸흐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대 놓칠 수 없지. 반드시 잡아 죽이겠다.’
샤와푸흐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다다다.
만타와 안나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소수의 인원들이 마을을 빠져나가 어디로인가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샤와푸흐가 딴마음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함께 달리고 있던 부족장, 알레키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며칠 전, 은밀히 방을 찾아온 만타를 만난 순간 그가 얼마나 놀랬던가.
“아니, 만타 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찌…….”
“쉬잇.”
만타가 그를 찾아온 건 단순한 돌발 행동이 아니었다.
레온이 떠나기 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야겠다며 새롭게 만들어 놓았던 스켈레톤 슈트를 주고 간 것이다.
지금의 깜짝 가정방문은, 거기에 담긴 능력으로 레온과 멀찍이서 대화를 나눈 결과였다.
알레키노의 입장에서는 야심한 밤에 홀로 만타가 자신을 찾아온 것만도 충분히 놀랄 만한 일.
한데 만타는 더욱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대피를 준비하세요. 조만간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아니, 그게 무슨?”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설명.
“샤와푸흐가…… 수상하다고요?”
알레키노가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만타는 믿지 않아도 좋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부족민들을 떠나게 할 채비는 반드시 끝내 놓으라고, 강경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그동안 보아 왔던 만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강력한 의지.
설마 만타가 이런 말을 가볍게 꺼낼 리는 없다는 생각을 한 알레키노는, 긴 고심 끝에 만타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오늘.
야심한 시각 갑작스레 마을에 변란이 발생하자, 미리 세워 둔 계획대로 마을을 버리고 외곽 지대로 향한 것이었다.
‘다행히 여기까지는 큰 문제없이 올 수 있었지만…….’
문득 뒤를 돌아본 그는 안쓰러운 심경이 되었다.
“허억, 헉.”
“힘들어.”
그들의 강행군에 일반 주민들이 뒤처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배려할 수는 없었다.
지금쯤이면 샤와푸흐가 만타가 도망쳤음을 눈치채고 행방을 쫓고 있을 터였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얼마 안 가 붙잡힐 것이 뻔하였다.
스윽.
그렇기에 굳은 다짐을 한 얼굴로 그가 만타를 향해 말을 건네었다.
“만타 님, 만타 님만 계신다면 태양 마을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만타는 무슨 말인지 이미 알겠다는 듯이 안 들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자 그는 더욱 직설적으로 말을 꺼냈다.
“일반 주민들은 속도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만타 님이라도 먼저 이동하심이.”
만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만타 님…….”
“……이들이 없다면 홀로 살아남는다 한들,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크흑, 만타 님.’
이런 상황에서 만타의 선택은 최악일 수 있었다.
마을의 지도자가 목숨을 잃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보다 마을 주민들을 먼저 생각하는 인덕을 갖춘 만타를 보면서, 알레키노는 울컥하는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금 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점점 속도는 더 늦춰져 갔다.
어쩔 수가 없었다.
일반 주민들 모두가 급박하다는 것을 알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평상시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주민들에게는 엄연히 체력의 한계가 있는 법.
결국…….
“크아아!”
“크억!”
목적지인 외곽 지대의 초입을 눈앞에 두던 그때.
만타 일행은 결국 따라붙은 샤와푸흐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적들이다!”
“부족민들을 지켜라!”
호위하고 있던 전사들이 뒤편으로 몰려와 대열을 이룬 채, 각자의 무기를 빼 들었다.
주민들을 계속 이동케 하면서 적들을 막아서는 모습에서는, 설령 자신들이 장렬히 산화하더라도 주민들을 지켜 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리고 개중에는 만타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안나가 만류하였지만 만타는 듣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적들은 바로 덤벼들지 않았다.
잠시간 소강상태가 이어졌지만, 그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처척-.
일순간 적들의 진열이 열리며 뒤편에서 여유롭게 뒷짐을 진 샤와푸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고작 여기까지밖에 도망치지 못할 거면서, 왜 그러셨습니까? 일을 번거롭게 만드는군요.”
“샤와푸흐…… 이 배신자 놈……!”
전사들이 찢어 죽이고 싶다는 눈빛으로 샤와푸흐를 바라보았지만, 샤와푸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싸울 생각도 못 하고 도망친 주제에 이제 와서 이빨을 드러내 봤자, 우스울 뿐이지.”
통렬한 비웃음에 전사들은 얼굴을 붉혔다.
그러던 그때, 오만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 샤와푸흐는 이내 자신이 크게 선심을 쓰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한마디를 꺼내었다.
“어떻소. 그대만 자원해서 나에게 온다면 거기에 있는 부족민들은 모두 살려 주리다.”
“……!”
그건 바로 만타에게 알아서 자신에게 오라는 것이었다.
대신 부족민들을 살려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만타 님! 저 말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안나와 알레키노가 소리를 질러 왔지만, 만타의 눈동자는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샤와푸흐는 마음속으로 비웃음을 잔뜩 띠우고 있었다.
‘끌끌, 심약한 놈.’
그는 당연하게도 약속을 지킬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만타가 자신에게로 당도하는 순간, 그의 눈앞에서 적들을 일거에 쓸어 버릴 것이다.
병사들이든, 주민들이든 모두 말이었다.
그러던 그때.
“……알겠소.”
결국 고심하던 만타의 힘없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뒤편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안 됩니다!”
“만타 님!”
하지만 만타는 고개를 돌려 그런 그들에게 괜찮다는 듯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약속은 꼭 지켜 주시길.”
만타가 한마디를 내뱉고는 의기양양한 샤와푸흐에게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피융!
그 순간 어디선가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티잉!
“으윽!”
이어진 다음 순간 샤와푸흐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면에 화살 한 발이 박혀 있었다.
난데없이 샤와푸흐의 눈을 그대로 꽂아 버릴 기세로 화살이 날아든 것이었다.
황급히 휘두른 검으로 겨우 막아 내었지만, 그는 꼴사납게 넘어질 뻔하였다.
“누구냐!”
“어떤 놈이 감히!”
뒤늦게 샤와푸흐의 부하들이 고함을 터뜨렸다.
그러던 그때.
“어이, 내가 초대한 사람 중에 그쪽은 없는 것 같은데?”
언덕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레온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샤와푸흐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