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44화 (144/332)

# 144

잠시 후.

산더미처럼 쌓인 벌레들의 시체가 미궁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발톱에 반 토막이 난 시체, 수없이 꽂힌 화살 다발에 선인장처럼 되어 버린 시체, 돌무더기에 깔려 죽은 시체 등등.

그들의 사인은 무척이나 다양해 보였다.

피 대신 벌레들 특유의 끈적끈적한 분비물들이 땅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참혹한 광경 속으로.

-헤엑. 헤엑.

마루의 거친 숨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녀석은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갈비뼈를 훤히 내보이며 땅바닥에 나자빠져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녀석은 힘에 겨워 보였다.

한데 그런 상태인 것은 녀석뿐이 아니었다.

……끼루.

……따닥.

마루의 옆으로 레온의 모든 소환수들도 일렬로 주르륵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한데 사실 그럴 만도 해 보였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연이어 5시간 동안을 오로지 곤충 무리와 전투를 벌였으니까 말이었다.

하지만 반면에 그렇게 지쳐 있는 소환수들과 달리 레온의 표정은 밝게 물들어 있었다.

‘흐흐, 10코인, 20코인, 40코인.’

그는 쓰러져 있는 소환수들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콧노래를 부르며 이삭 줍는 여인처럼 몬스터들의 시체에서 소울코인을 수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남들 눈에는 끔찍할 뿐인 곤충들의 시체들이 그의 눈에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이고 있었다.

순간 그가 속으로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생각했다.

‘키야, 나처럼 몬스터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털어먹는 사람이 있을까?’

라고 말이었다.

다른 유저들은 해치운 몬스터에게서 아이템을 루팅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레온은 달랐다.

몬스터의 뼈와 영혼까지 빼먹는 것이다.

이렇게 게임 속에서 재활용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문득 개발사에서 자신에게 상이라도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레온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소울코인 수거 과정이 모두 끝나고 난 후.

‘자자, 이제 한번 봐 볼까!’

곧장 레온은 눈에 이채를 띠고는 획득에 성공한 소울코인의 총량을 확인해 보았다.

띠링.

효과음과 함께 그의 눈앞에 상태 창이 떠올랐다.

-현재 보유 소울코인 : 15,420 소울코인

15,420 소울코인이었다.

어느새 그가 처음 목표로 했던 중급 영혼 캡슐을 살 수 있는 만 코인을 훌쩍 넘어 있었다.

몬스터들의 양이 양이었다 보니, 상당한 코인이 쌓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흐음.’

레온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밝았던 얼굴이 한순간에 가라앉아 있었다.

2만은 쌓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5천이나 부족했던 것이다.

순간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끄응, 분명히 이거 한 번으로는 안 될 텐데.’

극악할 것으로 예상되는 뽑기 확률을 떠올려 보면, 한 번에 4성 영혼을 획득하는 일은 쉽지 않으리라.

소울코인이 더 많이 필요했다.

순간 레온이 턱 끝을 손으로 짚으며, 위험성 때문에 반려했던 두 번째 플랜을 떠올렸다.

“……흠, 역시 ‘그 방법’을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나.”

레온이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읊조리던 그때.

마루가 지친 목소리로 그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주인아.

“으응?”

레온이 시선을 돌리자, 지친 소환수들이 일제히 쓰러진 채로 고개만 돌려 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중에 제일 힘들다. 얘네도 죽겠단다.

……끼루.

……따, 닥.

소환수들의 지친 투정이 들려왔다.

그러자 레온은 내심 살짝 미안함이 밀려왔다.

‘하긴, 얘네도 힘들만 하긴 하지.’

확실히 강행군이긴 했기에, 많이 체력이 빠졌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투 중에 사용해 주었던 광신의 축복만으로는 완전히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 그래. 알았어. 일단 체력이랑 피로부터 완전히 회복시키고 가자.”

스윽.

그렇게 말하며 레온이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토템들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토템들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곤 한쪽 무릎을 굽혀 적당한 위치에 그것들을 박아 넣으며, 명령어를 내뱉었다.

“토템 설치, 회복의 토템. 생동의 토템.”

레온의 말이 끝나자, 두 토템이 은은한 연두색 빛을 발하며 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회복의 토템]

30분간 주변의 모든 아군의 체력을 회복 속도를 450% 증가시킵니다.

-전투 중에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전투에서 벗어나, 30분이 경과된 뒤부터 사용이 가능합니다.

[생동의 토템]

30분간 주변의 모든 소환수들의 스태미너 회복 속도를 450% 증가시킵니다.

-전투 중에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전투에서 벗어나, 30분이 경과된 뒤부터 사용이 가능합니다.

띠링.

띠링.

순간 효과음이 울려 퍼지며, 소환수들의 머리 위로 체력이 회복되고 있다는 표식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전투 중에는 사용이 불가하다는 아까운 단점이 있지만, 이렇게 잠시 쉬어 가는 타이밍에 정비를 하며 사용하기에는 딱 좋은 스킬들이었다.

순간 레온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진짜 샤먼이 잘만 사용하면, 보조해 주는 분야에 한한 한 만능에 가깝게 활용이 가능하단 말이지.’

그러던 그때.

-크으.

순간 마루가 사우나에 들어간 것 같은 신음성을 토해 냈다.

부르르 몸까지 떠는 녀석을 보며 레온이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렇게 좋냐?”

-응, 주인아. 뼛속까지 시원하다.

“…….”

뼈밖에 없는 녀석이 뼛속까지 시원하다니.

아무래도 스켈레톤에게는 극찬의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워메, 뜨뜻한 거.

따……닥.

‘쩝.’

어느새 불가마 한증막에서 몸을 지지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된 자신의 소환수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레온이었다.

* * *

같은 시각.

NT의 모니터링실.

“와, 저놈 진짜 지독하네.”

화면을 바라보던 허 주임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가 바라보던 화면에는 레온이 보이고 있었다.

허 주임은 레온을 전담으로 마킹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5시간을 안 쉬고 사냥을 했으면, 좀 로그아웃을 해라.’

다른 유저와는 달리 현실로 잘 나가지를 않는 레온에게 질려 버린 그였다.

레온을 담당한 후로 제대로 된 시간에 퇴근을 한 지가 언제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한데 그때,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도 괜찮아. 조금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쉬게 될 테니까!’

미궁 던전의 몬스터들은 경험치도 짭짤하고 양도 많은 대신, 리스폰 시간이 매우 길게 설정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근처에 미궁 던전처럼 몹 몰이를 해서 효율을 보일 수 있는 던전은 거의 없었다.

그런 까닭에 몹 몰이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 예상하고는 표정이 밝아졌던 것이었다.

‘쌤통이다, 이것아.’

그는 레온의 상태를 조사하며, 현재 소울코인이 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태껏 자신에게 고통을 선사했던 레온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 들자, 조금은 통쾌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처럼 레온이 낭패를 볼 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었다.

* * *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나자.

레온이 먼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체력이 완전히 회복이 되었음에도, 아직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는 소환수들에게 말을 건넸다.

“자, 다시 가자.”

요구대로 체력을 회복시켜 줬으니, 다시금 전투를 재개할 차례였다.

레온은 그대로 소환수들을 이끌고 미궁 안쪽으로 이동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리 미궁 안에 있던 모든 몬스터들을 유인해 쓸어 버린 상태였기에, 그냥 빠르게 진입해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한데 그러는 와중에 레온은 자신의 귀를 후벼 팠다.

‘요새 왜 이리 귀가 간지럽지?’

최근 들어 왠지 모르게 귓속이 간지러운 레온이었다.

이윽고 잠시 후, 미궁의 끝에 다다르자 커다란 문 하나가 나타났다.

끼익.

그러자 레온은 고심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그러자.

띠링.

효과음과 함께 그의 눈앞에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룸에 입장합니다.

보스 룸에 입장했다는 메시지를 보고 레온은 한숨 돌렸다는 표정이었다.

‘일단 첫 단추는 제대로 꿰어졌군.’

그의 두 번째 계획은 실행해 보기 위해서는 보스 몬스터의 유무가 굉장히 중요했던 탓이었다.

이어 문을 열자 나온 통로를 발소리를 낮추고 걸어가며, 그는 머릿속으로 어떤 적이 나타날지 예상해 보았다.

‘무슨 몬스터가 나오려나.’

혹시나 대형 곱등이 같은 것이 나오지는 않을까 문득 걱정이 들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들의 종류가 곤충 종류인 것 때문이었다.

보스 몬스터라면 대부분 더욱 거대할 텐데, 걱정이 앞섰다.

혹시 알이라도 까면 끔찍한 광경이 펼쳐질 것 같았다.

하지만.

레온의 그런 걱정과는 달리 미궁의 보스 몬스터는 곤충형이 아니었다.

쉬이익.

그러던 그때, 음험한 울음소리가 레온의 귓전에 들려왔다.

근원지를 쫓아 레온이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곤 고개를 빠끔히 내밀어 통로의 끝에 있는 몬스터를 확인했다.

‘뿔?’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산양의 뿔이었다.

곧이어 전신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레온은 경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 저놈이 왜 여기에 있지?’

산양의 형상을 한 채, 대형 낫을 들고 있는 몬스터가 있었다.

그건 바로, 악마형 몬스터 중에서도 강력함으로 수위에 꼽히는 바포메트였다.

바포메트는 아직 아무도 잡은 전례가 없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여러 길드가 힘을 합쳐 대규모 척살대를 보냈는데도, 실패했다고 들었었다.

한데 그런 녀석이 뜬금없이 이곳에 있다니.

‘……이거 가능하려나?’

다시 곧장 뒤돌아 나가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

‘어라?’

레온의 눈에 바포메트의 이마에 박혀 있는 무늬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JR.

자세히 보니 영문 글자였다.

‘……JR? 주니어?’

녀석의 이마에는 분명 주니어라고 적혀 있었다.

레온이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바포메트 JR]

등급 : 유일

레벨 : 151

마계의 악마 중 수위에 꼽히는 바포메트의 유아기 형태.

성체와는 현격히 차이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했다가 녀석의 낫에 목숨을 잃은 모험가들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란 표정을 지었다.

‘유아기의 바포메트라.’

저 바포메트는 아직 성장이 덜 된 녀석이었던 것이었다.

저 정도 레벨이라면 자신과 소환수들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순간 레온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래도 만반의 준비는 해야겠어.’

그러곤 어떻게 저 녀석을 상대할까 레온은 고심하기 시작했다.

‘흠, 일단 포탑 설치는 힘들겠군.’

확인해본 결과 현재 발을 딛고 있는 통로의 부지는 포탑을 지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진입해 들어가서 설치하자니, 보스 몬스터가 떡하니 지켜보는 와중에 한편에 포탑을 설치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미리 만들어 놓은 녀석들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결론을 내린 레온이 스킬을 시전했다.

“토템 터렛 소환, ‘비트 판넬.’”

그의 말이 끝나자.

슈웅!

효과음과 함께 지면에 소환진이 나타났다.

그러곤 그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토템 터렛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잉.

네 개의 길쭉한 막대기 형태를 하고 있는 토템 터렛은 소환이 끝나자, 레온의 양어깨 위와 다리 옆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곤 그것들은 각자 부유한 채로 레온을 엄호하기 시작했다.

[토템 터렛, ‘비트 판넬’]

원거리 요격형 토템 터렛, 비트 판넬을 소환합니다.

소환한 토템 터렛은 사용자의 신체 주변에 떠올라 공격을 지원합니다.

-비트 판넬의 공격력은 주인의 마력 총량에 비례하여 상승합니다.

-비트 판넬의 세 번째 공격에 적중당한 적은 30%의 둔화 효과가 적용됩니다.

‘좋아.’

이어 레온이 인벤토리를 살피며 전투에 사용할 또 다른 토템 터렛들을 준비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과정조차 끝나자.

“가자!”

레온이 소환수들에게 큰 소리로 전투 명령을 하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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