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 * *
그로부터 나흘 후.
스르륵.
일단의 무리가 밤을 틈타 은밀한 움직임으로 숲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레온이 있는 외곽 지대였다.
그들은 복면과 더불어 온몸을 가리는 검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일전에 레온과 만타를 공격하였던 무리와 동일한 옷차림이었다.
복면에 나 있는 유일한 틈으로 보이는 그들의 눈빛에 매서운 살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예고한바와 같이 샤와푸흐가 레온을 처리하기 위해 암살대를 보낸 것이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레온을 기필코 처치하고 말겠다는 샤와푸흐의 의지가 엿보였다.
그들의 레벨과 능력이 일전에 만타를 죽이기 위해 보냈었던 암살대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던 것이다.
게다가 한 사람을 처치하는 데, 무려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을 보낸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해 보였다.
암살대 모두가 이동 시에 소리를 크게 줄여 주는 스킬인 무음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데 숙련도가 상당히 높은 듯했다.
수많은 인원이 거대한 나무와 수풀을 넘어 진입하고 있음에도,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쾌속하게 숲을 통과해 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나오는 좁은 협곡 하나만 넘으면 레온이 있는 외곽 지대에 돌입할 수 있으리라.
한데 그때, 가장 선두에 있는 암살자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쳇, 그자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나 많은 인원이 간담.’
상사가 까라니 까고는 있지만, 그는 고작 한 놈을 죽이는 데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순간 그는 혀를 차며 속으로 생각했다.
‘쯔쯔, 화살 하나를 못 막아서 전부 죽어 나가다니.’
그들은 레온을 궁수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일전에 만타와 안나를 데리고 그들의 포위선을 돌파하며 생긴 시체들이 화살에 맞아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궁수 따위에게 죽다니. 수치야, 수치.’
그는 레온에게 당해 죽은 동료들을 비웃으며, 자신의 장기인 ‘기척 감지’ 스킬을 사용하여 뒤따라오는 인원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였다.
기척 감지 스킬은 사용하면 시전자의 반경 내에 있는 ‘생명체’를 감지할 수 있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상당히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수색과 정찰에 매우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리고 기척 감지 스킬은 궁수들을 상대하는 데에 특효약인 스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에 숨어서 쏘는지 위치만 파악이 되면 궁수의 강점이 확연히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암살대는 그뿐만 아니라, 궁수에 대한 완벽한 방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그들은 각자 목적에 따라 나뉘어 있었다.
레온을 감지하기 위한 수색대.
쏟아질 원거리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하는 수호대.
그리고 레온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거리를 좁혀 죽일 수 있는 암살대까지 말이었다.
그들이 철저히 준비를 하고 찾아 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부분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놈들은 죄다 걱정이 너무 많은 게 탈이란 말이지.’
그가 그렇게 속으로 한탄하던 그때.
타닥.
투웅-.
그는 발끝에서 의문의 저항감을 느꼈다.
의문의 물체가 그의 발에 턱 하고 걸리더니, 그대로 채여 수풀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
한데 그때.
복면 속의 그의 표정이 의아함을 담고 있었다.
‘……분명히 목소리였지?’
발에 채인 순간, 분명히 그의 귓전에 자그맣게 여자아이의 신음 소리 같은 것이 들렸던 것이었다.
평상시였다면 작은 야생동물인가 하고 생각하였겠지만, 그럴 리 없었다.
분명 기척 감지 스킬에는 어떠한 생명체의 반응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의 눈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확인해 보아야겠군.’
스윽.
그렇게 생각한 암살대원이 걸음을 멈추고 슬며시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처척.
그러자 일시에 동료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었다.
의심스런 일이 발생하였으니, 잠시 걸음을 멈추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와 거리를 벌리며 삼엄한 경비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혹여나 화살이 쏟아질까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는 수호대들이 앞으로 나왔다.
확실히 잘 훈련된 이들이긴 한 것 같았다.
그러자 모두를 멈춰 세운 암살대원이 자신의 발에 채여 날아간 수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날카로운 비수를 역수로 든 채였다.
부스럭.
그리고 수풀 속을 뒤적인 그는 찾던 의문의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손바닥을 펼친 것 정도의 크기의 나무 인형이었다.
확인한 순간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토템이잖아?’
현실의 장승처럼 기괴한 얼굴을 갖추고 있는 그건 분명히 토템이었다.
토템이란 샤먼이 미리 설치하여 그 지역에 버프를 거는 매개체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그는 목표 대상이 설치한 토템인가 싶었지만,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그건 바로,
‘근데 왜 토템이 인형처럼 팔다리가 붙어 있지?’
라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토템은 인형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본래 토템은 대부분 말뚝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사용할 장소에 박아 고정해 놓기 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목표 대상이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나 보다 생각하며, 자신의 동료들에게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려 주려 했다.
“헉!”
한데 그때, 암살자가 신음을 토해 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가 경악하고 있었다.
한데 그럴 만도 해보였다.
‘뭐, 뭐야?’
갑자기 그가 들고 있던 토템 인형의 눈알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그를 떡하니 바라본 것이었다.
그가 신음을 내자,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던 동료들이 말을 건네 왔다.
“이봐, 왜 그래?”
“뭐야, 무슨 일이야?”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소름 끼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아 있었던 것이다.
-오오, 주인의 말이 맞았다. 정말로 바보들이 왔다!
이제는 토템이 말까지 시작한 것이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 내려갔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이, 이건 위험해!’
“모두 조……!”
그가 목소리를 높여 동료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려 한 그때.
파앗!
촤아악!
그는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뒷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
갑자기 손에 쥐고 있던 토템 인형이 펄쩍 뛰어오르더니, 그의 얼굴에 날아든 것이었다.
이어 인형의 얼굴 부분이 활짝 펼쳐지더니, 얼굴을 감싸듯 달라붙었다.
입 부분까지 그렇게 된 탓에, 그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차오르는 공포심에 그는 쥐고 있던 칼도 떨어뜨린 채, 인형을 벗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전혀 떨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접착제라도 발라져 있는 듯이 그의 얼굴에 완전히 착 달라붙어 있었다.
“으읍! 으으읍!”
그가 신음을 토해 내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자.
“뭐, 뭐야!”
“가서 빨리 떼 줘!”
암살대 동료들까지 당황에 찬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사리 그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우우웅!
갑자기 토템 인형이 진동음을 내며 환한 빛을 쏟아 내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빠른 속도로 그 빛은 더욱 강렬해지고 있었다.
“우, 우으읍!”
그리고 다음 순간!
콰강!
퍼엉!
폭음과 함께 토템 인형이 그에게 달라붙은 채, 그대로 터져 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암살대들은 경악한 반응을 쏟아 냈다.
“으아! 뭐야!”
“저, 정비하라!”
화살을 막을 준비만 했지, 이러한 폭탄 테러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그들은 패닉 상태가 된 듯했다.
침묵을 고수하던 것을 까먹고 버럭버럭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데 그때.
무언가를 확인한 그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터벅.
터벅터벅.
수풀이 들썩이더니, 그 속에서 열댓 마리가 넘는 토템 인형들이 그들을 향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간, 그 인형 중의 하나가 고개를 치켜들더니,
-헤헤, 안녕?
악마를 떠올리게 하는 사악한 목소리로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 왔다.
* * *
퍼펑!
콰앙!
숲 안에서 차례로 터져 나오는 폭음을 들으며 레온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암살대가 있는 숲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어느새 일전에 사용했던 아이템 빙의를 한 체력 포션을 미리 마셔 두고 야간 시야를 높여 둔 상태였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속속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새롭게 얻은 직업인 터렛 샤먼의 스킬이 내뿜는 가공할 위력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었다.
‘토템 터렛. 이것도 완전히 개꿀 스킬인데?’
[토템 터렛, ‘랜드러너’]
유도형 자폭 토템 터렛, 랜드러너를 설치합니다.
설치한 토템 터렛은 적을 발견하기 전까지, 계속하여 이동하며 시전자에게 시야를 제공합니다.
적을 발견 시, 접근하여 자폭하며 주변의 적들에게 범위 대미지를 입힙니다.
건물에 공격 시, 125%의 추가 대미지를 입힙니다.
그랬다. 자폭을 하는 토템 인형의 정체는 바로 레온의 스킬인 ‘토템 터렛 제작’으로 만든 토템 터렛이었던 것이었다.
버프용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토템과 달리 이처럼 전투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스킬
게다가 토템 터렛의 장점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흐흐, 토템 터렛에 파크를 빙의시킬 수 있다니. 대박이야.’
그건 바로, 아이템 빙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템 빙의]
토템 터렛 ‘랜드러너’
-적을 발견하고 다가갈 때의 이동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적의 신체에 닿는 순간, 떼어 낼 수 없게 달라붙습니다.
적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효과를 부여했던 것은 파크의 힘이었다.
‘쩝, 페이스허거처럼 얼굴에 달라붙은 건 좀 혐오스럽기는 하지만 말야.’
레온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고전 공포 영화에 나오는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괴생명체를 떠올리던 그때.
“달라붙기 전에 터뜨리면 된다!”
“거리를 더 벌리고 달려들기 전에 터뜨려 버려!”
몇몇의 희생자들을 통해 처리법을 터득한 암살대들은 하나하나씩 토템 터렛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레온이 그 현장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어우, 아까워.’
그 이유는 간단했다.
토템 터렛은 소환수와 달리 터지면 역소환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터지면 그것으로 수명을 다하는 일회용이었던 것.
순간 그는 입맛을 다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쩝, 파괴되었을 때 나오는 파편을 모으면 다시 복구가 가능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가 그렇게 아쉬움을 토로하던 그때.
“저기다!”
살아남은 수색조 중에 한 명이 레온의 위치를 감지해 내고는 커다랗게 소리를 질러 댔다.
파바밧!
그러자 암살대들이 레온이 있는 언덕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의문의 일격을 얻어맞은 탓에 패닉에 걸렸던 그들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매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새끼들, 빠르네?’
레온은 그런 녀석들을 보며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그는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자, 그러면 페이즈 2로 넘어가 볼까.”
그들을 보며 레온은 언덕의 한 장소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갔다.
그의 눈앞에 자그마한 포탑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한데 무언가 이상했다.
설치된 포탑이 단 하나뿐이었으며.
게다가 그 포탑에는 포탄을 쏘는 포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딱 보아도 미완성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역시 포탑을 만드는 실력은 완전 아니라더니.’
‘불량품을 만들어 놓았구먼!’
레온과 가까워지며 미완성 포탑을 확인한 녀석들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한데 그때.
처억.
레온이 그 포탑에 자신의 활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처척-.
철컹-.
갑자기 미완성이라 보였던 포탑에서 연결 걸쇠들이 튀어나오더니, 활을 고정시켰다.
마치 포탑과 레온의 활이 한 몸처럼 되어 있었다.
레온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그들을 겨냥하며, 한마디를 토해 냈다.
“너희들, 개틀링이라고 들어는 봤니?”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파바바바!
퓨퓨퓨퓽!
적들을 향해 엄청난 숫자의 화살이 연발 사격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