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달 마을에 세워진 집들과 건물들을 보면, 태양 마을의 것들과 거의 동일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같은 마을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한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래 그들은 서로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으니까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달 마을에 이질적인 외견으로 뒤바뀐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달 마을의 제사장이 머무는 거처였다.
작은 신전과 같은 모습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완전히 다른 건축양식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달 마을의 샤먼들 또한 태양 마을의 이들처럼 전통에 대해 양보가 없는 외골수적인 면이 존재하지 않은가.
한데 마을을 이끄는 수장의 공간이 생뚱맞게 다른 국가의 신전 같은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니 말이다.
반발이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건물의 내외부에 타 종교의 상징들이 수없이 많이 꾸며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모양은 전부 까마귀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까마귀를 상징으로 삼는 것은 하나의 종교밖에는 없었다.
바로 마몬교였다.
“오오, 마몬이시여.”
그러던 그때, 제사장의 방 안에서 경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한 남자와 기괴한 가면을 쓴 한 남자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윽고 남자의 기도가 끝이 나자,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가면남이 그에게 다가섰다.
“이제 어느덧 진정한 마몬의 성령을 받으신 것 같군요.”
가면남의 목소리는 일전에 숲에서 레온이 마신의 대장장이 스킬을 사용했던 흔적을 확인하고 갔던 의문의 존재와 동일하였다.
그의 말이 끝나자, 기도를 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달 마을을 이끄는 제사장인 요우였다.
이어 그가 감격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부끄럽습니다, 주교님. 아직 부족합니다.”
요우는 달 마을에서 최고위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가면남에게 존칭을 붙였다.
태도와 말투를 보면 오히려 가면남의 지위가 높아 보일 정도였다.
한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면남 ‘그리아몰’이 지난 시간 동안 갖은 노력 끝에 제사장을 현혹시키는 퀘스트를 성공하였기 때문이었다.
현재 요우는 완전히 그리아몰에게 조종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태양 마을까지도 내 손아귀에 넣을 수 있겠군.’
그러기 위해선 가벼운 장애물 하나만 뛰어넘으면 되리라.
순간 그리아몰은 머릿속으로 태양 마을에 나타난 자신과 같은 ‘마몬의 종’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러곤 가면 속으로 비웃음을 떠올렸다.
‘다 쓰러져 가는 쪽에 붙다니. 저쪽 마몬의 종은 운도 없군.’
자신과 달리 마을에 미치는 영향력이라고는 하나 없는 어린아이 제사장을 선택한 레온이 우스웠던 것이었다.
이후 그리아몰은 제사장과 다시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마을 운영과 더불어 전쟁의 전술까지도 모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요우가 레온이 하고 있는 포탑 증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포탑을 증축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는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후일 저희의 발목을 잡진 않을지?”
걱정스러운 표정에 그리아몰이 괘념치 말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미리 확인해 본바로는 포탑의 위력도 매우 저급할뿐더러 ‘그자’에게 이미 담당자에 대한 암살대가 꾸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오, 그렇습니까?”
“예, 그건 그렇고…….”
안심한 듯한 요우의 모습을 지그시 지켜보던 그리아몰이 무슨 이유에선가 말에 뜸을 들였다.
그러자 그가 그리아몰에게 집중했다.
눈에 이채를 띤 채, 그리아몰이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드디어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마몬 님께서 거사의 날을 내려 주셨습니다.”
“오오!”
그의 말이 끝나자 요우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감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아몰은 어느새 마몬의 종들끼리의 세력전 양상이 된 상황을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자신이 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기 때문이었다.
순간 그리아몰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이 퀘스트는 내가 가져간다.’
라고 말이었다.
* * *
그러던 그때.
유호는 현실에서 자신의 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눈을 비비고 있었다.
밤새 채광 노가다를 하다가, 게임 이용 시간이 위험 수위까지 도달하였고.
어쩔 수 없이 조금이나마 눈을 붙이기 위해 로그아웃을 한 것이었다.
“흐암.”
그가 크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게임 속에서 곡괭이를 휘두른 것이라 근육통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피곤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가 멍한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가, 문득 조금만 더 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휴, 일단 밥부터 먹자.”
그에게 밥이란 빠르게 한 끼를 뚝딱 해결할 수 있는 시리얼을 뜻했다.
곧이어 주방으로 가 집어 든 그릇에 시리얼을 쏟아붓고, 우유를 말아 넣은 후.
삐빅.
유호는 곧장 TV를 켰다.
당연하게도 게임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흠, 어떻게 되어 가고 있으려나.”
한동안 패치 숲에 처박혀 있느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지 못했기에, 레온은 방송에 집중했다.
-OGTV를 사랑해 주시는 시청자 여러분 오늘도 반갑습니다! 저는 리포터 보미입니다!
일전에 자신을 인터뷰했던 리포터 보미가 방송을 하고 있었다.
‘게임 속이네?’
그녀의 옷차림과 배경으로 보아 그녀는 현실이 아닌 게임 속에서 방송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화면 옆에 조그맣게 라이브라고 적혀 있었다.
‘생방인가? 무슨 일이지.’
유호는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에 더욱 눈과 귀를 집중하였다.
한데 그때, 카메라가 돌아가며 비추는 모습과 보미의 이어진 말에 유호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는 오늘 두 번째로 북부 대륙에 진출하는 데 성공한 길드의 출정식에 와 있습니다!
‘뭐? 북부 대륙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점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고, 북부 대륙으로 진입하는 데에 성공한 길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는 바로.
-와! 이 현장의 우렁찬 함성 소리가 들리십니까, 여러분? 역시 판테라의 공식 길드 랭킹 1위에 빛나는 흑풍회의 출정식이네요!
현재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차이를 벌리고 있는 굳건한 랭킹 1위의 길드 ‘흑풍회’였다.
흑풍회는 유명한 게임들이 새로이 오픈될 때마다 달려들어 결국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유명한 길드였다.
잔뼈가 굵은 두터운 간부들과 그들을 이끄는 길드장이 특히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유호는 혀를 내둘렀다.
더 이상 리포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빠르군. 역시 랭킹 1위는 다르다 이건가.’
그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는 더 소요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다른 이들을 너무 무시한 모양이었다.
순간 유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후에 다른 길드들도 자신의 예상보다 빠르게 속속들이 북부 대륙으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삐빅.
유호가 티비를 껐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질 수 없겠군.’
조금만 더 쉬자는 사치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다른 이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진행 속도를 더 올려야 했다.
유호는 시리얼을 후루룩 다 삼켜 버린 후, 얼른 캡슐로 이동해 자리에 앉았다.
“접속.”
그러곤 곧바로 게임 속으로 로그인하였다.
* * *
게임 속에 돌아온 레온은 동굴을 벗어나 포탑을 세우던 외곽 지대로 이동하여 있었다.
물론 며칠간은 다시 캐러 가지 않아도 될 만큼의 상당한 양의 광물들을 획득하여 놓은 상태였다.
‘어휴, 진짜 쓰레기네.’
레온은 자신이 만들어 놓았던 최약의 포탑을 쳐다보고는 민망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한데 그때.
최약의 포탑 근처에서 무언가를 확인한 레온은 표정이 달라졌다.
‘이건?’
그건 바로 발자국이었다.
자신들이 떠나기 전에는 없었던 의문의 발자국이 희미하지만 분명히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신경 쓰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흑풍회의 일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레온의 눈썰미는 그런 사소한 변화까지도 눈치채고 있었다.
레온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떠졌다.
‘분명 샤와푸흐겠군.’
이곳은 위험 지대인 탓에 누군가가 찾아 올 일이 없었다.
이어 레온은 피르호크를 소환해 주변을 수색하게 하였다.
하지만 레온은 무슨 이유에선가, 께름칙한 기분이 남는 것을 숨기지 못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촉이 발동할 때는 분명히 안 좋은 일이 발생하고는 하였다.
레온은 턱에 손을 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무언가 방비는 해 놓아야겠군.’
그러던 그때.
“저…… 레온 님.”
요세프와 하이른이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는 레온을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말을 건넸다.
“포탑 건설 시작할까요?”
그들은 당장이라도 건설을 시도할 생각을 하고 싶어 했다.
고된 채광을 안 하니, 너무나 행복한 모양이었다.
‘그러지 마, 얘들아. 너희 얼마 안 돼서 또 가야 되니까.’
레온은 차마 그런 속마음을 말해 주지는 못한 채, 그들에게 대답했다.
“일단 무슨 포탑을 만들지 말해 봐. 그럼 위치를 선정해 줄 테니까.”
레온은 생각해 보니 아직 두 사람이 어떤 포탑을 지을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초짜인 것은 알지만 어느 정도인 것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레온이 그렇게 말하자 두 사람이 살짝 머뭇거렸다.
그들은 앞서 동굴에서 레온이 만든 활력 강장 포탑의 이모저모를 확인하고는, 그의 실력에 깜짝 놀란 상태였다.
곧이어 만타와 요세프가 자신들이 만들 수 있다는 포탑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레온이 침음을 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곤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너희 실력 되게 없구나?”
슬쩍 그 포탑들의 이름을 듣고 등급들을 찾아보니, 고작 D등급인 포탑들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창피함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던 그때.
스윽.
레온이 둘에게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건네었다.
“이건?”
두 사람이 얼떨결에 받아 들은 후,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것 짓지 말고 이것들이나 지어 봐.”
그건 바로, 그가 설계 스킬을 통해 만든 설계도들이었다.
B등급과 C등급 중에 쓸 만한 것들을 몇 개 추려서 건네주었던 것이었다.
‘불쌍한 중생들, 내가 구제해 줘야지.’
그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감동에 젖어 들었다.
유저들은 시스템이 있지만, NPC들의 경우는 달랐다.
다른 NPC에게 전수받거나 스스로 깨우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레온이 건네준 설계도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숲속에 갇혀 사는 이들이 이런 경험을 해 본 일이 없을 터였다.
‘기술을 전수해 주시다니!’
‘레온 님……!’
그들의 눈빛에 무언가 레온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계속 잘해 주던 사람이 한 번 못 해 주면 기억에 남고, 계속 나쁘게 해 주다가 한 번 잘해 주면 큰 감동을 받는 법이지 않던가.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당근과 채찍으로 이루어지는 노예의 늪에 한 걸음 더 깊숙이 발을 디뎠음을 말이었다.
순간 레온이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뭐 해? 받았으면 일해야지. 요세프는 저쪽에다가 짓고, 하이른은 이쪽에다가 지어.”
“넵!”
그러자 두 사람은 얼굴에 웃음꽃이 핀 채로 일을 시작하였다.
뚝딱뚝딱.
잠시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레온은,
‘……그럼 나도 슬슬 일을 해 볼까.’
라고 생각하며 본인도 성큼성큼 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한데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레온은 두 사람이 만들고 있는 지역이 아닌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하는 좁은 길목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런 레온에게 말을 건네었다.
“어디 가십니까?”
그러자.
고개를 갸웃하는 그들에게 레온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쥐새끼들 잡을 대형 덫 좀 설치해 놓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