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샤와푸흐의 생각과 달리 레온이 흔쾌히 포탑 정비 시험을 받아들이자, 두 패의 반응은 상반되게 나타났다.
몽투투를 비롯한 부제사장 세력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알레키노를 포함한 몇몇 부족장들은 레온이 토인족의 긍지를 꺾을 정도로 만타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것이었다.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을 터인데.’
‘역시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라는 건가.’
그들은 만타에게 새삼 다시 보았다는 눈빛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낌새가 느껴지자.
“……자자, 이제 더 이상의 안건은 없는 것 같으니 이번 회의는 이 정도로 마무리 짓도록 하시죠.”
몽투투의 주도로 회의는 급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가운데 레온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녀석들의 의도를 파악했다.
저러는 이유는 간단해 보였다.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하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는 이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른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 시험을 통과하면 받아 주겠다고 했지 않았던가.
지금에 와서 그것을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외곽으로 못 가게 내 발을 묶겠어, 어쩌겠어.’
그렇게 결론을 내린 레온은 순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앉아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실실거리던 포커페이스가 무너진 채, 차갑게 가라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는 샤와푸흐와 시선이 마주쳤다.
레온은 같잖은 그 눈빛을 당당히 받아 내며 속으로 생각했다.
‘뭐, 이 자식아. 그렇게 꼬나보면 뭐가 나오냐?’
라고 말이다.
피식.
그리고 그러면서 승자의 썩소를 날려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부들부들.
‘저 자식……!’
치욕에 몸을 떠는 샤와푸흐의 눈에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야, 꽤나 화려하네.’
레온은 안나와 함께 만타의 거처로 함께 이동하여 있었다.
역시 제사장 후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만타의 방은 상당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사실 레온은 맨 처음 샤먼의 마을이라 할 때에는 자연인처럼 아무것도 없이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와 보니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방 안에 비치된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안나가 내온 차를 홀짝이고 있던 그때.
“……괜찮으시겠습니까?”
안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겠냐고?
레온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안나가 말을 이었다.
“부제사장은 레온 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자입니다. 한데 이로써 확실히 적이 되어 버렸으니, 분명 레온 님에게도 곧 암수를 펼칠 겁니다.”
‘아.’
뒷말까지 듣고 나자, 레온은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회의장을 나서는 찰나, 샤와푸흐가 음험한 눈빛으로 레온을 쳐다보는 것을 확인하고는 걱정이 든 것이리라.
그에 레온은 하등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 가슴을 당당히 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이미 만타 님을 돕기로 결정한 그때부터 저는 놈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다짐했으니까요. 그리고.”
레온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활짝 웃으며 말을 꺼내었다.
“별것도 아니던데요, 그 녀석.”
레온이 자신에게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는 식으로 자신감 넘치게 말하자.
안나와 만타가 피식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데 그들은 레온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그냥 하는 말이구나 싶었지만.
사실 레온은 정말 진심이었다.
그는 샤와푸흐가 하나도 겁이 안 났던 것이었다.
그는 샤먼으로 전직을 성공하면서 이제 그동안 맘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소환수들을 마음껏 전투에 참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버프 스킬들이 엄청나게 생겨나 전투력은 더욱 급상승되기까지 했으며, 파크라는 생각지도 못한 비장의 카드도 손에 넣었다.
‘흐흐, 초기화 직전보다 거의 두 배는 더 강력해진 것 같은데?’
결코 자만이 아니었다.
레온은 정말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것이 느껴지고 나니, 샤와푸흐가 자신에게 무슨 짓거리를 벌이건 자신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레온이 자기애에 듬뿍 빠져 있던 그때.
“……그럼 이제 약속을 지킬 차례군요.”
만타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안나의 표정도 진지하게 변화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때가 왔군.’
이제 자신이 만타의 거처로 온 목적이 진행되려 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만타가 말을 하는 약속이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안전귀가를 위하여’ 퀘스트의 보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미 안나와 만타 두 사람이 태양 마을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안전귀가를 위하여’ 퀘스트는 완료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태양 마을과의 우호도와 만타, 안나의 호감도는 자동으로 상승하여 있었다.
다만 그 외에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는 보상을 아직 받아내지 못했다.
‘원하는 보상 1회 제안이라…….’
그건 바로, 레온이 원하는 보상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이었다.
레온은 처음 이 퀘스트를 얻은 후부터 지금까지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아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어떤 물질적인 보상들을 제안하더라도, 이루어지지 못하리라는 슬픈 사실을 말이었다.
회의장에서 펼쳐진 작태를 보고 난 후, 레온은 만타가 마을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전적인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한들, 만타의 처지가 그것을 내어줄 여건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휴우, 별수 없군.’
순간 결정을 지은 레온이 눈을 빛내며 말을 꺼냈다.
“제게 다른 물질적인 것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그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유는 묻지 말아 주시고 대답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질적인 것은 필요하지 않다니.
물욕의 화신인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는 미치도록 물질적인 것을 원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어차피 얻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럴 바에는 호감도와 더불어 원하는 정보들이나 확실하게 얻어 가자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저렇게나 속이 깊으실 줄이야.’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안나의 눈에는 감격한 기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혹여나 무리한 부탁을 하지는 않을까 살짝이나마 걱정을 한 것이리라.
띠링.
띠링.
-당신의 세속에 물들지 않은 모습에 안나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당신의 세속에 물들지 않은 모습에 만타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효과음이 들려오며 둘의 호감도가 치솟았음을 알려 주었다.
다음 순간, 만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조에게 맹세하건대, 진실하게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레온은 그에 망설이지 않고 여태껏 묻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것을 정확히 물어보았다.
“혹시 영령을 강제로 소환수에 빙의시키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레온이 물어본 것은 역시나 본 드래곤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순간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크를 빙의시키는 게 정답 같은데 안 된단 말이지.’
그 말처럼 그는 사실 마을에 들어오기 전, 아이들이 잠든 순간 본 드래곤의 뼈에 파크를 빙의시켜 보려 시도했었다.
-본 드래곤의 유해에 아이템 빙의가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무참히 실패로 돌아갔다.
몇십 번이고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 답은 하나였다.
아직 자신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레온은 제사장 후보인 만타라면 그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다.
정말 질문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의심을 받을까 퀘스트가 완료되는 이 순간까지 꾹 참고 참았던 것이었다.
소환수에 영령을 넣다니, 그런 것이 가능하겠냐는 듯한 안나의 반응에 비해 만타는 ‘그걸 어떻게?’라는 표정이었다.
‘역시.’
레온은 만타가 무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던 그때, 만타가 레온에게 말을 꺼냈다.
“……그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선 마을의 비사부터 알려 드려야겠군요.”
‘비사?’
생각지 못한 말에 레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만타의 말이 이어졌다.
과거 하오라는 최초이자 마지막인 샤먼의 왕이 있었다.
그는 샤먼의 모든 힘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마을의 최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예들은 천재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후예들은 오로지 한 가지 힘만을 다룰 수 있었고, 그에 따라 각자 다른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하오는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수많은 비전들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했다.
그래서 그는 ‘초점사약결’이라는 비서에 자신의 최대의 비기인 ‘강령’을 봉인시켜 놓았다.
그때부터 매해 두 마을의 제사장 후보가 만나 함께 수행하며, 초점사약결의 힘을 얻으려 시도하는 것을 두 마을의 전통으로 삼았다.
한데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태양 마을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불렸던 제사장 후보가 함께 수행에 들어갔던 달 마을의 제사장 후보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당연히 달 마을의 샤먼들은 진노했고, 태양 마을의 샤먼들은 생각지 않은 사태에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악화일로를 겪었다.
결국 그들은 초점사약결을 반반으로 찢은 후, 각자 보관하게 됨과 더불어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았다.
레온은 설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귀담아 들었다.
‘초점사약결과 강령이라!’
그러곤 샤먼의 왕이 초점사약결에 봉인한 ‘강령’이 바로 그가 그토록 찾았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데 레온은 그렇게 머릿속에 되새기다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그렇고 깽판 친 놈, 99퍼센트 확률로 전 주인이다.’
이제는 대충만 봐도 날카롭게 각이 서는 레온이다.
저런 막장 짓거리를 하며 초점사약결을 얻으려 할 놈은 오로지 전 주인밖에는 없었다.
‘오만 가지 나쁜 짓거리는 다 하고 다니는구나. 하아, 맞아야 정신을 차릴 텐데.’
한데 그때였다.
스윽.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만타가 레온에게 무언가를 건네었다.
“으응?”
레온은 얼떨결에 그것을 전해 받았다.
그의 손 안에 책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건?’
“마, 만타 님!”
안나가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레온은 손에 들린 책자의 제목을 읽어 내려감과 동시에, 점차 눈이 커다랗게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그 책의 이름은 바로.
“……초점사약결 상권?”
그렇게 레온의 말이 끝난 순간.
띠링.
띠링.
효과음과 함께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건을 만족하여, ‘완전한 본 드래곤을 완성시켜, 본 네크로맨서들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라’의 연계 퀘스트를 획득합니다.
-퀘스트 ‘강령, 그 오묘한 힘에 대하여’를 획득하였습니다.
[강령, 그 오묘한 힘에 대하여 / 연계]
당신은 본 드래곤을 이지를 가진 완전한 형태로 만드는 방법을 드디어 발견했다.
그건 바로 샤먼의 비기인 ‘강령’을 통해 본 드래곤의 유해에 영령을 빙의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강령 스킬은 초점사약결에 봉인이 된 상태이다.
당신은 초점사약결의 상권과 하권을 하나로 합쳐 완전한 완성본으로 만들어야 한다.
달 마을에 숨겨진 초점사약결 하권을 손에 넣어라.
퀘스트 난이도 : SSS
보상 : 완전한 초점사약결
본 드래곤을 완성시키는 퀘스트가 갱신이 되자, 레온은 입을 쩍 벌렸다.
이 메시지가 떠오른 다는 것은 만타가 자신에게 넘겨준 초점사약결 상권이 진짜라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확인해 보자!’
레온은 바로 초점사약결의 상세 설명도 확인해 보았다.
[초점사약결 상권]
분류 : 서책 / 사용 불가
등급 : 전설
샤먼의 왕이 사용했던 강력한 힘이 봉인되어 있는 서책. 반쪽으로 찢어진 볼품없는 모습이나,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말 여태껏 계속 언급되었던 초점사약결이 맞았다.
상권뿐이긴 하지만 이렇게나 빠르게 얻게 되다니.
“이건……?”
레온이 뭉클한 목소리로 만타에게 말을 꺼냈다.
몰래 슬쩍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던 그였기에, 감동스런 순간이었다.
그러자 만타가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건은 각자 모두 필요한 사람이 있는 법이지요.”
그래, 그게 바로 나다.
레온이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이구! 예쁜 녀석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