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태양 마을의 부제사장 ‘샤와푸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을 눈앞의 상대들에게 쏘아 내고 있었다.
눈동자에 살기가 번뜩일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항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그였기에, 이런 그의 모습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말 다른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샤와푸흐의 경멸의 눈빛을 따라가자, 복면을 쓰고 있는 부하들 여럿이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에 부복하고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들의 복장이 만타와 안나를 습격했던 이들과 동일했다.
그때 샤와푸흐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국 놓쳤단 말이군.”
그러자 부복하여 있던 부하 중 한 명이 쩔쩔 매며 대답했다.
“……그, 그것이 저희들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입니다. 분명히 황급히 놈들의 발자국을 쫓아갔건만, 길 중간에 신발 두 켤레밖에는 남아 있지가 않아…… 헉! 죄, 죄송합니다.”
변명을 늘어놓던 부하가, 듣고 있던 샤와푸흐가 진한 살기를 내뿜자 더욱 머리를 바닥에 납작하게 조아렸다.
스윽.
샤와푸흐가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대답을 한 부하에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처척.
그러곤 부하의 바로 앞에 멈추어 섰다.
그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정말 찾기 힘들 수밖에 없었구나. 신발 두 짝이 발이라도 달렸는지 홀로 뛰어다니며 너희를 괴롭혔으니 말이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부하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힐끔 샤와푸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자 어느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덜덜.
하지만 그 미소를 확인한 부하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큰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세차게 떨고 있었다.
저 미소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그동안 벌어진 일들로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크억!”
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이어진 샤와푸흐의 행동에 부하가 비명을 토해 냈다.
샤와푸흐가 한 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번쩍 들어 올린 탓이었다.
숨이 막힌 탓에 그가 허공에서 발버둥을 쳐 댔다.
낯빛이 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바라보는 샤와푸흐의 두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샤와푸흐가 공포에 질린 부하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섬뜩한 말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시간과 돈을 들여 만든 암살 부대가 어린아이 하나도 죽이지 못해서야, 쓸모가 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겠느냐?”
그에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부하가 도망치기 위해 거세게 반항을 하기 시작하였다.
버둥버둥.
그는 빠져나오기 위해 쉬지 않고 몸을 흔들어 댔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목을 꽉 쥐고 있던 샤와푸흐의 손이 짐승의 그것처럼 흉측하게 변화하여 있었고.
그와 동시에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힘이 그의 목을 조여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끄……!”
그리고 결국.
우두둑.
침묵으로 가득 찬 공간에, 유난히 선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다른 암살자들은 차마 고개를 들 용기가 없었기에 그 이상을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고개를 들었다면 지금보다 더욱 공포에 질렸으리라.
방금 자신의 손으로 직접 부하를 처치했음에도, 샤와푸흐의 표정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으니까.
샤와푸흐는 손아귀에 들어가 있던 힘을 풀었다.
털썩.
그리고 지탱하는 힘을 잃은 부하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싸아-.
목이 기괴하게 꺾인 시체를 보는 부하들에게는 그저 정적이 맴돌 뿐이었다.
그러자 샤와푸흐가 벌벌 떨고 있는 부하들에게 싸늘한 눈빛을 쏘아 내며 입을 떼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보고만 있을 생각이냐? 같은 꼴이 안 되려면 얼른 다시 흔적을 찾아내야 하지 않겠나?”
그런 그의 말이 끝나자.
푸스스스.
암살대원들이 황급히 동료의 시체를 수습하고는 이내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홀로 남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샤와푸흐가 혀를 차며 속으로 생각했다.
‘쯔쯔, 하등 쓸모없는 녀석들 같으니.’
한데 그때였다.
쿵쿵!
바깥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부제사장님!”
그리고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스으으!
후우우!
그는 괴이한 형태로 변화하여 있던 자신의 손을 원래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입을 열어 방문자를 들여보냈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방문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곳까지 뛰어왔는지, 연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샤와푸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에게 말을 꺼냈다.
“허허, 숨 좀 고르게나. 대체 무슨 일인가?”
“……오셨습니다.”
“으응?”
그의 알 수 없는 말에 샤와푸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데 다음 순간.
충격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마, 만타 님이 돌아오셨습니다.”
“……!”
이야기를 들은 샤와푸흐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했다.
놓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마을에 떡하니 등장할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젠장!’
순간 부하를 죽일 때와 똑같은 잔혹한 눈빛이 떠올랐다가, 전령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가세나.”
그 후, 샤와푸흐는 빠르게 마을의 정문으로 향했다.
그는 끝까지 반신반의하였지만.
‘……정말이군.’
이내 정문에 도착하자,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만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암살자들을 처치한 것도 모자라, 포위망을 뚫어내고 이곳까지 당도하다니.
그는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자꾸만 샤와푸흐의 머릿속에 의문만이 차오르던 그때.
그의 시선이 이내 만타의 곁에 있는 한 사람에게 멈추었다.
그리고 그자를 보자마자, 샤와푸흐는 그자가 바로 이 상황의 단서를 쥐고 있는 인물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샤와푸흐가 눈에 이채를 띤 채 그를 바라보았다.
‘……저 토인족 놈인가.’
그리고 그는 바로 만타의 곁에서 잔뜩 구겨진 얼굴로 토끼 귀를 씰룩이고 있는 레온이었다.
그로부터 잠시 후.
마을의 중심에 설치되어 있는 대회의장이 오늘따라 북적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태양 마을을 구성하는 일곱 부족의 부족장과 부제사장 그리고 되돌아온 제사장 후보 만타까지 모두 모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암살대의 습격으로 행방불명되었던 만타가 무사히 되돌아오자, 긴급히 회의가 소집된 것이었다.
그들은 대회의장 내부에 비치된 원탁에 둥글게 앉아 있었다.
가장 가운데의 상석은 비운 채였다.
만타의 아버지인 전 제사장이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후, 제사장의 자리가 아직까지 공석이기 때문이었다.
빈 상석의 좌우로 만타와 샤와푸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레온은 그런 만타의 옆에 앉아, 여자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듯, 자연스럽게 토끼 귀를 쓸어 넘기고 있었다.
축 처진 기다란 토끼 귀가 레온의 시야를 가렸던 것.
이제는 익숙해진 그 동작에 그는 속으로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크흑, 내가 살아생전에 내 의지로 토끼 귀 코스프레를 할 줄이야.’
물론 자신이 토끼 귀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건 타인, 그중에서도 여자가 하는 것에 제한되어 있었다.
자신이 토끼 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든다 한들, 끼고 있는 토끼 귀를 뗄 수는 없었다.
[위장용 토끼 귀 / 계정 귀속]
분류 : 장신구
등급 : 레어
(……중략……)
-장착 시, NPC들에게 토인족으로 보이게 된다.
-매력도 +100(남자가 장착 시 –100)
왜냐하면 이 ‘위장용 토끼 귀’의 효과로 인해 샤먼들이 자신을 토인족으로 인지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자신이 아이템을 장착 해제하는 즉시 바로 내쫓기리라.
그러던 그때, 샤와푸흐의 곁에 앉아 있던 부족장 한 명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는 샤와푸흐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몽투투였다.
남자의 말에 만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조의 은혜입니다.”
한데 만타의 대답에 몽투투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허무맹랑한 말을 내뱉었다.
“허허, 저는 시녀와 사라졌다고 하시기에 사랑의 도피라도 하신 줄 알았습니다그려.”
싸아-.
몽투투의 말에 대회의장의 공기는 한순간에 양분되었다.
분노로 얼굴이 시뻘게진 만타를 따르는 이들과, 피식하고 웃거나 은근한 동조를 보내는 부제사장 쪽의 무리들로 말이다.
한데 놀랍게도 그 비율이 2 : 8 정도로 후자의 세력들이 훨씬 우세했다.
얼마나 만타가 태양 마을에서 힘을 잃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어딜 감히 그런 망발을 지껄이는 것입니까!”
순간 만타를 따르는 부족장인 ‘알레키노’가 핏대를 세우며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몽투투는 간사하게 실실 웃어 보이다가 만타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말했다.
“허참, 망발까지야. 힘들게 돌아오신 분께 웃음을 드리려 한 것이오. 뭐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만타 님.”
전혀 사과의 태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상전에게 대하는 예절도 없었다.
화를 낼 법도 하건만, 만타는 아무렇지 않게 대응했다.
“괜찮습니다.”
아무튼 만타가 그렇게 나오자, 거기서 이야기는 조용히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 암살대의 정체를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며, 알레키노가 다시 한 번 길길이 날뛰었다.
하지만.
제사장 후보가 암살 위협을 받은 것임에도, 몽투투의 수작으로 빠른 시일 내에 조사단을 꾸리는 것 정도로 일단락이 되더니, 이내 유야무야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설마 이게 끝이란 말인가?’
레온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아 내고 있었다.
만타가 어떤 고초를 겪었을지 짐작이 가 마음이 짠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자, 다음은 만타 님을 호위해 온 토인족, 레온에 대한 건입니다.”
드디어 레온의 이름이 호명이 되었다.
알레키노가 말을 꺼내었다.
“토인족 레온이 태양 마을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해 왔습니다.”
스윽.
모두의 시선이 레온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레온은 어깨를 펴고 당당히 그들의 눈빛을 받아들였다.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몽투투가 말을 이었다.
“어찌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을 마을의 일원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말을 조심하시오. 만타 님을 구해 주신 은인이 아닙니까.”
“흥, 그래 보았자 외부인은 외부인이오.”
“허, 숲지기 일족이 언제부터 우리에게 외부인이었습니까.”
알레키노와 몽투투 두 사람이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 후 한참동안 치열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인원이 많은 몽투투 쪽의 의견 쪽에 힘이 실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레온은 그 현장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속으로 약간 불안해하며 생각했다.
‘……이거 괜찮은 거겠지?’
무언가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뜻밖의 암초를 만난 기분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자 자, 여러분, 그래도 은인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닙니까.”
여태껏 한마디도 꺼내고 있지 않던 인물이 입을 열었다.
레온이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저놈이 왜?’
그러자 너구리같이 생긴 작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었다.
레온이 의아함을 담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전혀 의외의 인물이 레온을 도와주려 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부제사장 샤와푸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