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퀘스트 ‘샤먼을 널리 이롭게 하라’를 획득하였습니다.
‘……이건?’
그의 기대와 달리 그의 눈앞에 떠오른 것은 긴급 공지가 아니었다.
새로운 직업 퀘스트를 얻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레온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쩝, 항상 운영자가 전체 공지로 알려 주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그는 약간은 시무룩해진 마음으로 퀘스트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샤먼을 널리 이롭게 하라 / 직업]
당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패치 숲에 갇혀 있는 샤먼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당연하게도 샤먼들이 패치 숲에서 나갈 생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한, 대륙의 모든 모험가들은 샤먼이 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모험가 최초의 샤먼이 된 자로서, 역사적 사명을 함께 부여받았다.
그건 바로 당신과 같은 모든 모험가들에게 샤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태양 마을의 일원이 된 후,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위치의 존재가 되어 숲 바깥으로 그들을 이끄는 것이다.
물론 외부인에 부정적인 그들의 특성상 분명 힘겨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 업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당신은 대륙에서 샤먼과 모험가 사이를 잇는 유일한 장소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SS
퀘스트 목표 : 태양 마을에 100,000 공헌도를 달성 후, 패치 숲 바깥으로의 이동을 제안하라.
퀘스트 보상: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해 있는 길드의 영지에 유일한 샤먼 전직소 설치 가능, 명성 30,000, 알 수 없음.
내용을 읽어 본 레온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건 대박인데?’라고 말이다.
한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상이 말도 안 되게 좋았던 것이다.
‘샤먼과 모험가 사이를 잇는 유일한 장소’라는 말을 보자마자, 혹시나 하는 마음을 지니며 가슴이 진정이 안 될 만큼 떨려 왔는데…….
보상을 읽은 순간, 소리를 지를 뻔할 정도였다.
그의 예상처럼 샤먼으로 전직이 가능한 유일한 전직소가 자신의 마을에 생긴다는 말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암살자 때에는 자동으로 3주 후에 모든 도시에 길드들이 생겨났었는데, 이번에는 이런 특이점이 있었던 것이다.
‘왜 긴급 공지가 안 뜨는지 섭섭해할 필요가 하나도 없었네.’
물론 암살자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샤먼 전직소가 자신의 도시에만 유일하게 설립된다는 것은, 영지 발전에 있어서 엄청난 메리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암살자 때와 마찬가지로 샤먼 직업이 처음 개방되면 모든 유저들의 관심이 샤먼으로의 전직에 쏠릴 터.
그리고 그런 그들이 샤먼으로 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영지에 설치될 전직소를 이용하는 것뿐이리라.
자신의 영지를 부흥시켜야 하는 입장에서 유저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이러한 새로운 요소는 레온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보상이 좋아서일까.
딱 보아도 성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안을 하는 데 필요한 공헌도가 10만이라.’
태양 마을의 공헌도를 무려 10만이나 쌓아야 한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특정 집단의 공헌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서 퀘스트를 받아 완료하거나 적대 세력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 태양 마을의 경우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달 마을과의 전투에서 활약을 하는 것이 공헌도를 빠르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다.
사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레온의 경우 자신의 영지를 마냥 비워 둘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레온이 침음을 삼키며 속으로 생각했다.
‘끄응, 열흘. 아무리 길어도 2주 내로는 해결해야 해.’
다시 영지로 이동하는 시간 등도 모두 고려한 결과였다.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브룩이 영주 대행을 맡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뭐, 공헌도를 쌓는 것도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의 말처럼, 그가 태양 마을의 공헌도를 쌓기 위해서 먼저 해결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후웅.”
한데 그때, 레온의 뒤쪽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타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마 레온이 부산스럽게 군 탓에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
‘마침 딱 좋은 타이밍에 깨어났구나.’
레온은 잘되었다 싶었다.
레온이 그런 만타를 확인하더니, 만타의 곁으로 한걸음에 다가갔다.
처척.
그러더니, 눈높이를 맞추며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말을 건넸다.
“만타 님, 당신을 보필하고 싶습니다. 저를 태양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 주십시오.”
“……?”
만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 * *
같은 시각.
마치 벼락이 쏟아진 것처럼 폐허가 되어 있는 한 장소.
자세히 보니, 이곳은 레온이 흑뢰 강림을 사용해 단 일격으로 암살자들을 괴멸시켰던 곳이었다.
“흐음.”
한데 그곳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한 의문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얼핏 암살자들의 흔적을 쫓아온 다른 암살자가 아닌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지면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살짝 두고 허공에 떠 있었으니까.
심지어 로브 안을 들여다보면 기괴하게 생긴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누군가 그를 본다 해도 정체에 대해서 전혀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단 하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면이 가려 주지 않는 눈동자뿐.
가면의 틈새로 드러나는 눈동자는, 심약한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덜덜 떨다가 주저앉아 버릴 정도로 사납기 그지없었다.
정체불명의 인영은 레온이 흑뢰 강림을 사용한 진원지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 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분명해. 권능의 흔적이군. 이런 곳에서 흑뢰의 발현 흔적을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의 말이 놀라웠다.
그는 지난 전투의 흔적을 본 것만으로 마몬의 권능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암살대를 전멸시켰다는 것은…… 설마 그쪽에도 ‘사도’가 붙었다는 건가?”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음험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번뜩이더니…….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한마디 말과 함께 나타났던 것처럼, 안개처럼 흩어지며 장소에서 사라졌다.
* * *
“그, 그게 정말인가요?”
레온 일행이 있는 곳에서 새된 목소리로 놀람을 표하는 것은 안나였다.
레온이 만타에게 간청을 하는 소리를 듣고, 안나까지 눈을 뜬 것이었다.
헌데 그녀는 왜 그리 놀란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두 분이 잠든 동안, 저는 영령의 힘을 이어받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샤먼이 되고 말았지요.”
그녀가 잠이 든 사이에, 레온이 자신들과 같은 샤먼이 되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레온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샤먼이 되고 나니, 알 수 있었습니다. 만타 님이 얼마나 굉장한 샤먼인지 말입니다. 그러자 이런 분을 호위하고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차올랐습니다.”
안나가 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레온의 손을 맞잡았다.
“오오, 당신도 알아주시는 거군요. 만타 님의 위대함을!”
“넵! 이 벅찬 마음을 만타 님을 위해 행동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도 태양 마을의 일원이 되어 만타 님을 돕도록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만타의 입장을 아는 안나는 레온의 제안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암살대를 혼자서 쓸어버리는 모습이나 그 이후 침착하게 숲을 헤쳐 나가는 모습에서 이미 그의 강함은 알 수 있었으니까.
그 같은 실력자가 만타를 지킨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쁨에 차올랐던 안나의 표정은 점차 안타까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뭐지?’
레온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던 그때, 안나가 말을 꺼냈다.
“……레온 님의 생각에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말을 들은 레온은 얼굴에 화색이 감돌며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받아 주시는 겁니까?”
하지만 안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힘듭니다.”
순간 레온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 놨는데, 태양 마을의 일원이 되는 것을 거절당할 줄이야.
마음속으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명언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허참, 그렇게 은혜를 잊지 말라고 강조했건만, 벌써 싹 입을 닦을 줄이야.’
약간의 배신감까지 느끼는 레온이었지만, 이내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이렇게나 강하고 믿음직한 자신이 진심으로 돕겠다는데, 거절이라니.
게다가 표정만 보면 정말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표정 아닌가.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레온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어째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후우……. 본래 이는 일족과 관련된 이야기이지만, 은인께는 당연히 말씀드려야겠지요.”
안나는 깊게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샤먼들은 전통에 매우 민감합니다. 때로는 일원인 제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레온은 그 말을 듣자, 이어질 뒷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외부와 단절된 장소에서, 전통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일족들.
왠지 그림이 딱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안나의 이야기는, 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저희 마을은 외부인들에게 폐쇄적인 편입니다. 물론 오랜 역사를 뜯어보면 예외적으로 몇몇 외부인을 들인 적은 있지만, 이계인을 마을의 일족으로 용인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
레온은 어떤 것인지 이해가 갔다.
안나와 만타가 거절을 하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을의 분위기가 외부인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만타의 신분이 높다 해도, 일족의 분위기를 무시하고 결정을 내릴 수는 없으리라.
첫 관문이 일족이 되는 것인데,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외부인을 들인 적은 있다 했지?’
“저, 그럼 예외적으로 받아들인 경우는 어떤 건가요?”
이 기회를 차 버릴 수는 없었기에, 레온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질문을 하였다.
“그것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숲을 나섰던 일족이 남긴 핏줄이라든지, 마을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숲지기 일족의 후예라던…….”
숲지기 일족의 후예?
레온은 순간 단어를 캐치하고 눈을 빛냈다.
“……토인족이면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네? 아, 네. 만약 그러셨다면 만타 님을 보필하여 데리고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토인족이면 가능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레온은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아이템 하나가 떠올랐다.
‘이런 젠장.’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가, 표정 관리가 무너지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순간 레온의 머릿속으로 숲지기 마을의 족장 홉스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허허, 정말 잘 어울리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