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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무한전직-122화 (122/332)

# 122

한 번 더 주위를 살핀 여자아이의 눈에 경의와 공포가 함께 떠올랐다.

잠시 전까지만 하더라도 암살대들이 서 있던 공간이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스킬 하나가 만든 결과라고는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녀, 안나는 이럴 만도 하지 하고 쉽게 납득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허공에서 흉흉한 검붉은 번개들이 공간을 잠식하며 쏟아지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으니까 말이었다.

그녀는 살면서 한 번도 이런 파괴적인 힘을 본 적이 없었다.

스윽.

바로 저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었다.

안나가 고개를 돌려 레온을 쳐다보았다.

‘저 사람은 대체…….’

그녀는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처참한 광경을 만들었음에도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섭도록 침착하고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그의 전신에서 알 수 없는 위압감 같은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것이 강자가 자연스레 내뿜는다는 패기라는 것일까.

하지만.

현재 레온의 상태는 그녀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크흑, 내 명성. 흐윽, 내 망치.’

……지금 그는 그저 ‘흑뢰 강림’ 스킬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페널티의 결과를 합산하는 중일뿐이었다.

[흑뢰 강림]

마몬의 7대 사도, 마신의 대장장이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격 스킬.

미리 설정한 사정 범위 안에 위치한 모든 적들에게 마몬이 마신의 대장장이에게 내린 권능 흑뢰를 작렬시킨다.

-시전 시, 명성이 500 하락합니다.

-시전 시, 악명이 500 증가합니다.

-시전 시, 망치의 내구도가 영구히 하락합니다.

(망치의 내구도가 0이 되면, 수리가 불가능하고 아이템이 파괴됩니다.)

명성이 떨어졌고, 그에 반비례하여 악명은 증가했다.

500의 명성.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명성의 양을 생각한다면 극히 소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명성이 쉽게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었다.

‘이런…….’

파스스스.

순간 레온의 손에 들려 있던 망치가 모래 먼지처럼 스르르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있었다.

레온이 그 가는 길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현상의 이유 역시 흑뢰 강림 스킬의 반작용이었다.

-망치의 내구도가 0이 되면, 수리가 불가능하고 아이템이 파괴됩니다.

레온은 억울함에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구도를 깎는 것까지도 좋다 이거야. 근데 아이템을 파괴시키는 건 너무하잖아!’

그의 망치는 결코 싼 물건이 아니었다.

본 블랙스미스가 되고 나서 좋은 망치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큰맘 먹고 꽤 큰돈을 들여서 샀던 망치였던 것이었다.

최대한 전투를 빨리 끝내려 하다 보니, 마신의 대장장이 스킬을 쓰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기는 했지만, 타격이 꽤 있었다.

한데 그때.

‘앗!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레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신이 팔려 있던 이것들보다 더 자신에게 급한 문제를 떠올린 것이다.

그건 바로.

“인장.”

이 싸움의 결과로 인장의 경험치가 얼마나 올랐는가 하는 일이었다.

눈앞에 인장의 상태 창이 떠올랐다.

‘크윽!’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아찔해진 레온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창생의 인장]

티어 0 / 경험치 51%

‘아니, 스킬 한 번 썼는데 이렇게 오르면 어떡해!’

인장의 경험치가 51퍼센트가 되어 있었다.

15퍼센트나 무럭무럭 더 자라 있었다.

‘……이거 괜찮겠지?’

레온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확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인장의 경험치가 오를 것이라 예상은 하였지만, 막상 정말로 오른 것을 보니 눌러두었던 걱정이 고개를 드는 것이리라.

하지만 레온은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워워, 진정하자. 아직 49퍼센트나 남았잖아. 게다가 이 아이들이 날 잘 인도해 줄 거야.’

라고 말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자, 금세 또 안정이 되었다.

그러던 그때.

“……저.”

때마침 안나가 레온에게 말을 건네 왔다.

순간 레온이 목소리를 듣고 제정신을 차린 채, 안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살짝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레온은 안타까움에 탄성이 나올 뻔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작구나.’

암살자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던 용감하고 어른스런 모습 때문일까.

그는 안나를 나이에 비해 훨씬 크게 보았었는데, 이제 다시 보니 팔이며 다리며 얼굴이며 정말 완전 아이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자, 그녀가 만타를 지키기 위해 무리를 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부들부들.

그러자 레온은 아까 전 아이를 죽인다며 미소를 짓던 그 사이코패스 암살대장 놈을 더 아작을 냈어야 하는데 하며 분노했다.

‘아오, 그 쌍놈의 새끼를 한 번에 곱게 보내 주는 게 아니었는데.’

뭐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번은 아니었다.

그놈은 특별히 네다섯 줄기의 번개를 압축하여 정수리부터 하복부까지 쑤셔 넣어 주기는 했었던 것이었다.

하나 그런 레온의 마음은 모른 채, 안나가 냉철한 모습을 찾은 후 레온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태양 마을의 안나라고 합니다. 누구신지는 모르나, 정말 큰 빚을 졌습니다. 영령님들에게 다짐하건대, 정말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극진한 감사를 표했다.

그녀의 격의를 다한 표현에 레온 또한 자세를 고치며 존댓말로 예의 있게 대답을 해 주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만 잊지 말아 주십시오, 제 은혜를.”

약간의 사족을 달아서 말이었다.

“……네?”

안나가 레온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과정에서 또래의 아이 같은 얼굴이 나오자, 레온이 피식하고 진심으로 웃어 보였다.

“하하, 잘 들은 거 맞습니다. 부디 저의 은혜를 잊지 말아 주시고 꼭 갚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 네.”

순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장난인가 싶었지만, 이내 보상을 바라는 레온의 진심이 느껴져 안나는 놀랐다.

그리고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속이 훤히 보여서 다행이라고 말이었다.

아예 이렇게 대놓고 보상을 바라니, 이자의 그들을 구한 목적이 합당한 대가를 제공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두 눈을 빛내며 생각했다.

‘……그래, 이런 상황이라면, 도리어 이런 자가 믿을 수 있을 수 있어.’

분명 구함을 받았지만, 외지인인 레온을 쉽사리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는데,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았다.

한데 그때.

“어라?”

생각을 정리하던 그녀가 자신의 생각 중에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곤 레온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어떻게 외지인이 숲에?”

그랬다. 지금까지는 암살대의 습격에 경황이 없어 레온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이제 점차 안정이 되니, 외지인이 어떻게 이 숲에 들어와 있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흐음, 이런 상황이라면…….’

스윽.

그러자 레온이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는, 품에서 풍수의 구슬을 슬쩍 꺼내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엇! 이건?”

그의 예상대로 역시나 안나는 대번에 풍수의 구슬을 알아차리고는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레온이 안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숲지기 마을의 시련을 통과하고 패치 숲에 들어올 자격을 얻었습니다.”

‘오오!’

그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숲지기분들이 믿지 못할 이에게 증표를 내어주었을 리 없어.’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숲지기 일족의 보증을 받고 숲에 들어온 이계인이 나타난 지가 얼마 만이던가.

이런 상황이 되자, 안나는 한 가지 마음을 굳힌 듯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안나가 눈을 반짝이며 레온에게 정중하게 다시금 말을 꺼내었다.

“다시 한 번 소개하겠습니다. 태양 제사장이 되실 만타님을 보필하는 시녀 안나입니다.”

“메르엠의 영주, 레온입니다.”

레온의 말이 끝나자, 절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안나가 제안을 건네었다.

“부탁드립니다, 숲지기의 친우여. 염치없지만 저희를 호위하여 태양 마을까지 데려다주십시오.”

띠링.

그녀의 말이 끝나자, 효과음이 울려 퍼졌고.

동시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안전 귀가를 위하여’ 퀘스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 or (N)

그녀의 제안이란 그에게 태양 마을까지 호위를 부탁한 것이었다.

[안전 귀가를 위하여]

태양 마을의 제사장 후보 만타와 시녀 안나는 호위대와 함께 외곽의 순찰을 나섰다가, 대규모 암살대의 습격을 받고 둘만이 살아남아 도망쳤다.

그들은 태양 마을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들을 추적했던 암살대의 인원이 더 있을지 모르는 노릇인 데다가, 설령 그들이 없더라도 패치 숲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들에게 무리이기에 둘이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그들의 앞에 당신이 나타났다.

당신은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퀘스트 난이도 : S

퀘스트 조건 : 만타와 안나를 안전하게 구출한 자.

퀘스트 보상 : 태양 마을과의 우호도 상승, 만타, 안나의 호감도 상승, 원하는 보상 제안 1회 가능

‘오호!’

레온은 퀘스트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가, 보상란의 내용을 읽고는 깜짝 놀랐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보상의 제안을 자신이 꺼내 볼 수 있다는 획기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것들은 단칼에 거절당하겠지만, 그가 지금 원하는 것들을 획득하기에는 분명히 엄청나게 좋은 기회였다.

‘이걸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렇기에 레온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흔쾌히 제안을 수락하였다.

“좋습니다, 제게 맡기시지요. 만타 님의 안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그녀의 감사 인사를 듣던 중에 레온은.

스윽.

‘으응?’

갑작스레 누군가 자신의 소매를 당기는 것을 느꼈다.

“마, 만타 님.”

레온이 밑을 내려다보니, 멀리 떨어져 있던 만타가 그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왜 이러지?’

한데 그렇게 레온이 의아한 눈빛을 띠며 만타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

‘헉!’

레온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만타의 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레온은 이내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도리어 멍한 표정이 되었다.

스윽.

그러자 만타가 레온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어, 어라?’

무슨 이유에선가 레온은 만타의 고사리손에 힘없이 끌려갔다.

그러자 만타는 자신의 손을 그의 오른팔에 가져갔다.

“……이제 바깥으로 나오렴.”

그러곤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이건 뭐?’

당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레온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어진 다음 순간.

그는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우우우우웅!

파아아아앗!

만타의 말이 끝나자마자 만타의 손길이 닿은 자신의 오른팔에서.

아니, 정확히는 인장이 새겨진 부분에서 지금껏 경험한 것 중에 가장 강렬한 진동과 광휘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윽!”

미친 듯이 격동하는 자신의 팔을 다른 한쪽 팔로 힘겹게 잠재우며 레온이 침음을 내었다.

한데 그때.

띠링.

띠링.

그 혼란 속에서 레온의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앞에 등장한 시스템 메시지의 내용은.

‘……이건!’

잠시나마 레온의 혼을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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