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21화 (121/332)

# 121

‘뭐야, 저 녀석들은.’

레온은 아이들을 공격해 온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들은 대사만큼이나 전형적인 악당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눈구멍만 뚫린 복면과 전신을 가리는 검은 로브와 흉악한 암기들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레온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끄응, 이걸 어쩐다.’

마음 같아선 당장 도와주고 싶었지만, 처한 상황이 섣불리 나서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야의 오른편에 자그맣게 인장의 상태 창이 떠올라 있었다.

[창생의 인장]

티어 0 / 경험치 36%

그의 인장 경험치가 36퍼센트에 달해 있었다.

1차 시험에서 31퍼센트가 되었었고.

2차 시험에서는 별것도 안 했는데 5퍼센트가 추가되었던 것이었다.

저 정도의 인원이라면 전투가 상당히 크게 벌어질 터, 그의 경험상 전투 경험치가 가장 빠르게 차오르는 것을 생각하여 볼 때 문제가 많았다.

물론 도의적으로는 누가 봐도 악당 여럿에게 어린 아이가 핍박받는 모양새라 당장이라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만약 전투가 길어진다면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자칫하면 인장에 전투 경험치만 그득그득 쌓여서 샤먼으로의 직업 전직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렇다고 또 저걸 지켜만 보기에는 마음이 좀 불편하고.’

이전에 그냥 지나치려 했던 네기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아무리 레온이 자신과 상관이 없는 자에게 괜한 참견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아이가 눈앞에서 암살당하는 것을 보고도 무심하게 지나칠 만큼 냉혈한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레온이 일단 바로 달려 나갈 수 있게 준비는 마쳐 놓고 지켜보고 있던 그때.

비열함이 느껴지는 암살대 대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아, 쫓느라 고생이었습니다. 조막만 한 발로 참 도망도 잘 다니시는군요.”

다른 이들보다 앞으로 한 발 나선 채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분명 그가 그들을 이끄는 대장인 듯싶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두 아이 중 여자아이가 자신의 등 뒤로 남자아이를 숨기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감히 누구에게 화살을 쏘는 거냐! 이 씨를 발라 먹을 잡놈들아!”

‘워우.’

레온은 소녀의 예사롭지 않은 언어 구사력에 감탄했다.

그건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까칠한 대답이 이어졌다.

“흥! 조용한 꼬맹이와 달리 계집이 그렇게나 입이 험하다더니, 사실이었군요.”

여자아이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말을 삼가라! 쓰레기 따위에게 모욕을 당할 뿐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다른 아이에게 꼬맹이라 지칭한 것에 더욱 분노한 모양이었다.

한데 그 후, 암살대 대장이 이어 말한 내용이 놀라웠다.

“끌끌, 예, 제가 훗날 태양 마을을 이끌 제사장이 되실 만타 님에게 실례를 했군요.”

‘제사장?’

그 말을 들은 레온이 화들짝 놀랐다.

제사장이라 함은 한 단체를 이끄는 지도자가 아니던가.

아이는 그냥 샤먼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한데 그때, 암살대 대장이 싸늘한 눈빛을 내뿜으며 섬뜩한 말을 건넸다.

“끌끌, 한데 어쩌면 좋습니까. 그 훗날이 오지 않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움찔.

지금껏 당차게 맞섰지만, 결국 아이는 아이였다.

긴장한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암살대 대장이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자, 이제 조용히 가시죠. 마지막 온정으로 깔끔하게 보내 드리죠.”

암살대 대장이 아이들을 향해 고갯짓을 하자.

저벅저벅.

음험한 눈빛을 내며 암습자들이 한 발자국씩 아이들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멍한 표정의 만타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치십시오, 만타 님.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만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암살대 대장은 그 모습을 보며 비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끌끌, 멍청하기는. 우리들의 손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암살대 대장의 말이 끝나자 그 부하들이 저마다 칼집이며 허리춤에서 무기와 암기들을 꺼내었다.

스르릉!

스윽-.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암살자들의 검이 아이들에게 향하려던 그때.

“자, 거기까지!”

갑작스레 그들이 있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수풀이 부스럭하며 움직이더니.

파바밧!

처척!

한 남자가 높게 뛰어오르더니, 두 세력의 중간 지점에 정확히 착지하였다.

당연하게도 그의 정체는 레온이었다.

참전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난입에, 암살대는 당황하여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비소를 머금은 레온이 말을 꺼냈다.

“어휴, 쓰레기 놈들. 니들은 애들 죽이려는 게 재밌냐?”

레온은 성큼성큼 걸어가, 두 아이를 적으로부터 가로막고 당당하게 섰다.

여자아이는 새롭게 나타난 레온에게도 경계를 하였지만, 이어진 그의 말을 들으니 적은 아닌 것 같아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씨익.

그 모습을 본 레온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다독였다.

“걱정 마, 적 아니니까. 아, 그런데 너희들 혹시 도와준 은혜를 잘 잊는 편은 아니지?”

레온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자, 여자아이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레온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제사장이 될 아이라면, 왕국으로 따지면 왕세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라는 걸 테니. 흐흐, 일단 도와주면 내가 원하는 걸 훨씬 쉽게 얻어 낼 수 있을 거야.’

지금 레온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샤먼으로 전직하는 것.

그리고 아까 들었던 이 아이들의 직위라면, 그것을 훨씬 쉽게 만들어 주리라.

게다가 그뿐만 아니라 마을에 있을 본 드래곤을 움직일 단서 같은 것을 얻을 때에도, 예비 제사장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포지션이면 더 큰 것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스친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레온은 고민을 멈추고 행동을 개시한 것이었다.

‘게다가 저 애를 죽이려면 서 웃음을 짓는 사이코패스 새끼를 제대로 족쳐 주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릴 것 같고 말이지.’

레온의 그 모습을 보며 이제야 정신을 차린 암살대 대장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네놈은 뭐 하는 놈이냐!”

레온은 한 손으로 귀를 파며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응? 내가 누군지 알아서 뭐 하게, 고백이라도 하시게?”

“그게 무슨 개소리……!”

그의 말을 끊으며 레온이 마치 바퀴벌레를 보았을 때의 혐오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으으, 참나, 목소리부터 못생겨 가지고 누굴 넘보시는지…….”

“이, 이, 내가 누군지 알고!”

레온의 거듭된 조롱에 암살대 대장은 흥분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하지만 레온의 깐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전 그쪽이 누군지 전혀 노관심이거든요?”

폭주 기관차처럼 이어졌다.

“그냥 얼른 황천으로 꺼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에 아예 이성을 잃은 암살대 대장이 부하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명령을 하달했다.

“까득! 뭐 해! 저 새끼부터 죽여!”

투다다닥!

암살대 대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암살자들 전원이 레온에게 달려들었다.

쐐액!

십여 명의 암살자들이 레온에게 한꺼번에 수많은 검과 암기를 쏟아 내고 있었다.

휘이익!

레온이 묘기 대행진처럼 닿을 듯 안 닿을 듯하며, 종이 한 장 차이로 계속 피하고 있었다.

그러자 몸이 달은 암살자들이 필사적으로 그를 뒤쫓았다.

한데 무슨 이유에선가 레온은 스켈레톤들을 아직 소환하지 않았다.

회피에 중점을 둘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순간 암살자 중에 한 명이 레온에게 소리쳤다.

“이 하찮은 대장장이 따위가!”

그들이 레온의 직업을 그렇게 예측한 이유는 간단했다.

레온이 무슨 이유에선가, 망치를 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스켈레톤을 소환하지 않을뿐더러, 제대로 된 무기도 갖추지 않고 있다니.

그는 왜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여유를 부리는 것일까?

쉽사리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던 그때, 암살대 대장이 레온에게 특유의 비열한 웃음을 내지으며 말을 꺼냈다.

“끌끌, 쥐새끼같이 도망을 치더니, 막다른 곳은 생각지 못했나 보구나?”

그의 말처럼 계속해서 도망을 치던 레온은 정말 등 뒤가 막힌 곳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최악의 위치에도, 도주로를 모두 막고 있는 암살자 무리 앞에서도 그는 전혀 겁먹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때 레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이 정도 위치면 되겠군. 딱 좋아.’

라고 말이었다.

이 위치는 최악의 위치가 아니었다.

레온이 그들을 유인한 공간이었다.

‘안정권이야, 여기면 애들이 다치지 않겠어.’

그러고 보니 어느새 암살자들과 아이들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그랬다. 그가 그동안 회피에 중점을 둔 것은 아이들과 거리를 벌리기 위함이었던 것이었다.

순간 레온의 눈빛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먹이를 앞에 둔 맹수의 눈빛과 같았다.

그 섬뜩한 눈빛을 확인한 몇몇 암살자들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흐흐, 죽여 버리겠어.”

이미 분노에 눈이 돌아간 그들의 대장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죽여!”

레온을 죽이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는 암살대 대장의 목소리와.

“흑뢰……!”

비장의 한 수를 사용하는 레온의 목소리가 한데 겹쳐졌다.

파바밧!

한발 빨랐던 모든 암살자들이 레온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한데 그때.

레온의 전신에서 정체 모를 칠흑의 기운이 폭사되기 시작하였다.

사이한 그 기운은 보는 것만으로 숨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였다.

막다른 골목에 쥐새끼를 몰아넣었다고 기세등등하여 돌진한 암살자들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 순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건 위험해!’

라고 말이었다.

곧이어 그 힘은 레온이 쥐고 있는 망치로 모여 들더니, 잠잠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잠잠해진 것이 아니었다.

폭풍 전의 고요였다.

촤아아!

쐐애액!

“죽…!”

적들의 칼날이 레온을 닿기 직전.

레온은 스킬의 시전을 마무리하였다.

“……강림!”

그러자 그 순간!

머리 위로 높게 들고 있던 그의 망치에서 검붉은 빛을 띤 전뢰가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우박이 쏟아지듯 지면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

콰카카가가가!

“끄아아아!”

“크아!”

수십, 수백 개의 검은 번개에 직격당한 암살자들이 처절한 비명을 토해 냈다.

비명이라도 토해 낼 수 있는 이는 다행이었다.

수많은 번개를 연이어 맞은 이는 입도 뻥긋 못 한 채 그대로 절명하였다.

스킬 한 방의 위력이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 파괴력이었다.

거의 수많은 마법사 유저가 한군데에 집중포화를 쏟아 낸 것과 비슷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까맣게 타 버린 암살자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쓰러져 있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암살대 대장은 모든 것이 타 버린 채, 검은 재만 남아 있었다.

레온은 일거에 모든 적들을 쓸어버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띠링.

띠링.

(……중략……)

-암습자, 리아세를 처치하였습니다.

-암습자, 헤인르를 처치하였습니다.

-암습자, 듀크를 처치하였습니다.

-명성 500이 하락되었습니다.

-악명 500이 증가하였습니다.

-망치의 내구도가 하락하였습니다.

-망치의 내구도가 0이 되었습니다.

오로지 레온의 귀에만 승전의 결과를 알리는 효과음이 들려올 뿐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