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아오, 시바 거, 뒈지게 힘들었네.”
레온은 자신이 통과해 나온 구멍을 다시금 바라본 후, 다시 한 번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에 뻗은 손은 통로의 끝에 겨우 닿았다.
하지만 그 상태로도 레온은 한참을 끙끙거렸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몸을 위로 끌어 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크으, 한 번 말한 것은 지키는 나란 남자.’
레온은 다섯 번이라는 불가능할 것 같던 미션을 해낸 자신을 대견해했다.
그렇게 한참을 자기애에 빠져 있던 레온은 곧이어 주위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후후, 그럼 이제 퀘스트부터 해결해 보실까?’
원시풍수반에 바람의 영의 기운을 담는 장소가 어디인지 찾는 것이었다.
한데 레온은 정상의 풍광을 처음으로 제대로 본 후.
‘와, 근데 꼭대기는 완전 딴 세상이네.’
곧장 감탄을 토해 내었다.
정말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던 아래의 지형과는 정반대였다.
탁 트인 평원 같은 넓은 공간에 별천지와 같은 풍경의 모습이 꼭대기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었다.
“오오! 저기다!”
그때 명화를 감상하듯 주위를 둘러보던 레온이 한군데를 보는 순간, 함성을 내질렀다.
그곳에는 푸르른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작은 신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레온은 한눈에 그곳이 바람의 영의 기운을 담는 장소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헐레벌떡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띠링.
띠링.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오며,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바람의 신단에 도착하였습니다.
-원시풍수반에 바람의 영이 기운이 채워집니다.
“예쓰!”
그에 레온이 쾌재를 부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신단에 다가서자마자, 품에서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는 원시풍수반을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우우우우!
슈우우!
신단에서 내뿜어지던 푸르른 기운들이 원시풍수반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하였다.
마치 반딧불이가 날아드는 듯했다.
‘크으, 오진다 오져요.’
레온은 뿌듯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원활하게 진행되던 그때.
우우우웅!
‘어라?’
그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순간 레온은 또 다른 진동을 감지하였다. 손바닥이 아닌 전혀 다른 부위였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왜 인장이 여기서 반응을 보이는 거지?’
새로운 진동은 바로 오른팔의 인장이 근원지였던 것이었다.
곧이어 그를 더욱 놀라게 만들 메시지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히든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조건을 만족하여, 바람의 신단에서 소환 의식이 진행됩니다.
“뭐야?”
깜짝 놀란 레온이 육성을 토해 냈다.
조건을 만족해서 소환이 된다고?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이었다.
위이이잉!
슈우웅!
메시지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기에, 메시지가 떠오르고 나자 신단 전체에 푸른 기운들이 미친 듯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이어 그 기운들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레온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내가 무슨 조건을 만족시켰다는 거지?’
원래 이런 진행인 건가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코 범상치 않은 현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순간 레온은 한 가지 머릿속으로 스치는 예상이 있었지만, 그것을 정확히 정립할 겨를이 없었다.
신단에서 소용돌이치던 기운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점차 선명해질수록, 레온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해갔다.
‘……오우야.’
소환된 의문의 존재가 거의 반라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소환 의식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소환 의식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자, 레온은 일단 소환된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하니 돌리고 있던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그러자 거기에는 전신이 바람으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형체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 있었다.
볼륨감이 넘치는 것은 그대로였기에, 레온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듯 거침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그런 레온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레온이 쩔쩔매다가 한마디 말을 꺼냈다.
“조, 좋은 아침입니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그런 레온의 반응이 귀여웠는지 여인은 피식 웃어 보이며 신비로운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했다.
-그래, 좋은 아침이구나. 귀여운 아이야.
띠링.
그리고 다음 순간.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레온은 등장한 이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가 소환되었습니다.
레온은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령왕이라면 정령계를 다스리는 최고위의 존재들이 아닌가.
현재 판테라의 정령술사 랭킹 1위도 감히 소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엄청난 정령이었다.
한데 그런 격을 지닌 정령을 레온은 전혀 다른 퀘스트를 진행하던 중에 뜬금없이 소환에 성공한 것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때 실피드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하계는 정말 오랜만이구나. 어떻게 날 불렀느냐, 아이야?
그녀의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레온은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그,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어떻게 부른 걸까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건넨 레온의 엉뚱한 대답에 실피드가 다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레온이 맘에 든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레온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건넸다.
-우연이 우리를 만나게 했나 보구나. 재밌는 아이야, 나와 계약을 하겠느냐?
정령왕과의 계약?
순식간에 레온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이건 엄청난 기회였다.
“오오! 당연하죠!”
레온은 생각도 않고 바로 수락의 의지를 표현했다.
-좋다, 귀여운 정령술사여. 그렇다면 바로 계약을 진행하겠다.
‘어라, 잠깐만.’
한데 그때, 실피드의 말에 의문이 생긴 레온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금 대답했다.
“……어, 저기 근데, 전 정령술사가 아닌데 계약을 할 수 있는 건가요?”
레온의 말을 듣자 실피드도 의아한 반응을 만들었다.
-응? 네가 정령술사가 아니라고? 분명 강력한 영의 기운이 느껴지는……!
한데 그때, 실피드가 경악한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네, 네가 어떻게 그분을 지니고 있는 거지?
‘그분?’
실피드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공포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정령왕을 두렵게 만드는 존재라니?
그리고 그것을 이미 자신이 지니고 있다니, 레온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레온이 질문을 건넬 찰나도 없이, 실피드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감히 그분과 함께 있을 수는 없는 일.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하자꾸나.
‘뭐?’
갑작스레 계약을 안 해 준다는 말에 레온이 잔뜩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레온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려고 할 때.
-……그럼 난 이만 가 보겠다.
휘유우웅!
슈우우!
“아니, 저 잠깐……!”
실피드는 황급히 정령계로 떠나갔다.
순식간에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자.
한동안 멍한 얼굴로 자리에 있던 레온이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신단을 향해 고성을 내질렀다.
“……잔뜩 기대하게 해 놓고, 간만 보고 떠나기냐! 말이라도 말든가!”
그렇게 울분에 찬 레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 그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는 일이 발생하였다.
‘으응?’
슈우웅!
실피드가 등장하였을 때처럼 신단에 신비로운 이펙트가 생겨나더니.
띠링.
띠링.
-원시풍수반에 바람의 영이 완전히 채워졌습니다.
-퀘스트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산들바람 나뭇잎 우산’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바람정령왕의 바람살’을 획득하였습니다.
‘오오!’
퀘스트 보상 아이템이 신단에 나타난 것이었다.
한데 그 아이템 중에 정령왕을 소환하는 데 성공한 것의 보상인지, 바람정령왕의 바람살이라는 딱 보아도 무척이나 좋아 보이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빨리 봐 보자!’
레온은 설레는 마음으로 신단에 나타난 아이템의 정보를 살폈다.
[산들바람 나뭇잎 우산 / 획득 시 귀속]
분류 : 장신구
등급 : 유일
바람의 정령의 기운이 담긴 거대한 나뭇잎으로 만든 우산.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다.
[바람정령왕의 바람살]
분류 : 장궁
등급 : 영웅
공격력 : 620
내구도 : 5,400 / 5,400
착용 제한 : 125레벨, 궁수 직업
-적중 시, 넉백 확률 36%
-공격속도 20% 증가
-치명타 확률 +15%
-치명타 피해 +70%
-소환된 모든 소환수 및 정령의 민첩성이 15%, 공격력이 30% 증가한다.
-장착 시, 스킬 ‘비장의 한 발’ 사용 가능
‘……대박이다!’
그러곤 이내 입을 쩍 벌리고 감탄을 토해 냈다.
정령왕도 왕은 왕이라는 건지, 통이 무척이나 컸다.
“으하하!”
레온이 새롭게 획득한 활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그렇게 기뻐할 만도 했다.
두 번째 영웅 등급 아이템을 획득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심지어 무기였다.
온갖 사기적 스펙과 더불어 레온에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는 소환수의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옵션까지 붙어 있는.
하나 그렇다고 한들 바람살의 착용 제한은 125레벨이었다.
그런데도 레온이 이렇게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일전에 획득했던 ‘제한 상쇄’ 덕분이었다.
[제한 상쇄(패시브)]
초기화를 할 시, 아이템의 레벨 제한을 초기화 직전에 올렸던 레벨까지 무시하고 착용이 가능해집니다.
레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초기화 직전의 내 레벨은 129. 바람살의 장착 요건도 만족하고 있어!’
이 정도의 스펙이라면 초, 중, 후반 모두 전천후로 요긴하게 사용하리라.
그렇게 한참을 웃음꽃이 피어나 있던 레온은 이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이럴 때가 아니군!’
다급히 떠날 채비를 했다.
아이템을 품에 챙기고, 기운이 모두 채워진 원시풍수반을 다시금 품에 갈무리했다.
그러곤.
파밧!
타앗!
꼭대기에서 지상으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미친 짓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손에 커다란 나뭇잎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줄기를 손잡이처럼 잡은 그는 하늘하늘 흔들리며 여유롭게 지상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활과 함께 받은 ‘산들바람 나뭇잎 우산’에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는 기능이 붙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 순간, 레온의 머릿속에는 아까 전 떠올린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흐흐! 두 번째 시험에는 물의 정령왕의 보상을 받아 볼까.’
라는 것이었다.
* * *
같은 시각.
메르엠 영지.
레온이 떠난 이후, 브룩은 자신의 몸이 제발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의 몸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영지의 일이 미친 듯이 바빴기 때문이었다.
레온의 모든 가신들이 도착하며 마을의 인원이 늘자, 할 일도 그만큼 늘어 있었다.
‘으아, 제발 다 사라져 줘.’
브룩이 속으로 그런 절규를 내뱉고 있었을 때.
클라크와 유우와 엡톰 세 사람의 질문이 동시에 들어오고 있었다.
“브룩 공, 다음은 무엇을 하면 될지.”
“오빠, 다음에는 뭘 해야 해?”
“부영주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할 일도 많아 죽겠는데, 갑자기 동시에 세 사람이 찾아와 괴롭히니 머리가 지끈지끈해 왔다.
과중한 업무에 머리가 과열된 상태라 그런지 무슨 명령을 내려야 할지 쉽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이럴 때는 정답이 있지.’
브룩이 순간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건 바로 레온이 건네주고 갔던 ‘영지 개발 지침서 2.0’이었다.
촤라락.
브룩이 떠드는 세 사람의 말을 무시한 채, 책장을 넘겨 갔다.
그리고 그렇게 재빠르게 넘기다 보니.
3장, 유우가 귀찮게 할 때 대처법.
5장, 클라크 일 시키가 제일 쉬웠어요.
7장, 백인대, 제대로 활용하기.
세 사람이 찾아 왔을 때, 각각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브룩은 빠르게 내용을 훑어본 후, 바로 세 사람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자, 유우는 지금 암살자 길드로 가서, 영지민 중에 암살자로 전직해서 가장 큰 성취를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나. 그리고 함께 마을 근처에 있는 초보자 사냥터로 가서 그들의 레벨 업을 돕도록 해. 물론 그러면서 네 레벨도 챙기고.”
“예압!”
“그리고 클라크 님은 본 네크로맨서분들이 새롭게 건설한 쉰 개의 가게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최대한 힘써 주세요. 일단 원래 그분들이 지니고 있던 거래처와 다시 전부 재계약을 이루는 것이 제일의 목표입니다.”
“알겠습니다!”
“자, 오늘부터 백인대는 영지의 치안 유지를 담당합니다. 열 개 조로 편성해서 영지를 순찰하세요.”
“넵!”
브룩의 명령에 만족한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영주관에서 물러났다.
브룩은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책을 힐끔 다시 내려다보았다.
‘……괴물 같은 녀석.’
그러자 새삼 레온이 대단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