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그러나 잠시 후.
“끄응, 끙!”
호기롭게 도전을 외쳤지만 레온은 무언가 잘 안 풀리는지, 연신 신음성을 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우, 왜 안 빠져!”
망치를 다시 휘둘러야 올라갈 수 있을 텐데, 온 힘을 주는데도 망치가 박힌 곳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정 마법이라는 것이 정말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홈과 망치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완전히 결합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낑낑거리던 레온은.
“헉, 헉. 안 돼, 안 돼. 이거 뭔가 있는 거야.”
결국 얼굴을 붉힌 채 망치를 빼내려 힘을 주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이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점검하기 시작했다.
한데 그 모습이 하체는 항아리와 하나가 된 채였기에, 팔에 엄청난 무리가 갈 것 같았다.
발에 철추를 매달고 철봉에 매달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이 상태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예상 외로 레온은 전혀 힘들지 않은가 보았다.
그럴 수 있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오히려 항아리를 장착하니,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만든 제작자가 무게를 줄여 주는 마법까지 걸어 놓은 듯했다.
그러던 그때.
‘아!’
레온은 등산용 슬레지해머의 설명에 적혀 있던 한 줄의 추가 효과를 떠올렸다.
-장착 시, 고정 마법 해제 스킬 ‘마함오’ 사용 가능
망치에 내장된 스킬을 사용해야 빠지는 것이었다.
“마함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레온은 곧바로 그 스킬을 사용하였다.
‘다시 휘두를 정도의 시간을 내어주다가 떨어지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다음 순간, 그가 주문을 외우자마자.
처컹-.
고정되어 있던 망치가 일순간 홈에서 쏙 빠져나왔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기우뚱하며 뒤집혀서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 어라?’
다시 휘두를 시간 안 주는 거야?
레온은 예상이 벗어나자 완전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후우우!
‘히익.’
올라온 높이는 낮았지만, 레온은 떨어지면서 하체가 아닌 상체부터 바닥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이러다간 얼굴부터 지면에 닿으리라.
‘에잇!’
항아리를 해제하기에는 너무 촉박했던 레온은, 차선책으로 바깥으로 빠져 나와 있던 상체를 항아리 안으로 전부 집어넣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그것이 딱 완료되었을 때.
휘융!
쿠웅!
데구르르.
그의 항아리가 떨어지며 지면과 부딪쳤다.
큰 소음을 만든 항아리는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이내 멈추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난 뒤.
뒤집어진 항아리 안에서 레온이 거북이 혹은 달팽이처럼 얼굴을 드러내었다.
무언가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형상이었다.
“쩝, 이런…….”
아쉬움에 찬 목소리를 내뱉은 레온은 항아리의 장착을 해제하고는 곳곳을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깨진 곳은 없나 살핀 것이었다.
하지만 작은 기스 하나도 없었다.
말대로 견고하긴 견고한 것 같았다.
홈에 박히면 어떤 짓을 해도 안 빠졌던 망치의 마법의 힘을 확인한 레온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는 항아리의 능력도 이제 믿어지기 시작했다.
‘후후, 추락사에 대한 걱정만 사라지면 금방 끝낼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레온이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해머를 다시 손에 쥐었다.
그리고 속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될 때까지 해 주겠어!’
라고 말이었다.
승부욕에 불이 붙은 레온은 곧바로 항아리를 장착했다.
그러곤 망치를 머리 뒤로 쭉 빼며 휘두르려던 찰나.
멈칫.
그 순간 레온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하던 동작을 급히 멈췄다.
‘……잠깐, 설마?’
그의 얼굴이 무슨 이유에선가 불안한 표정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 다음 레온은 자신의 걱정이 기우로 끝나기를 기원하며 명령어를 입 밖에 내뱉었다.
“인장.”
그는 인장의 상태 창을 눈앞에 띄웠다.
‘설마 아니겠지?’
갑작스레 그는 이 도전도 인장의 경험치로 쌓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 탓이었다.
그는 계속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창생의 인장]
티어 0 / 경험치 15%
……그의 걱정은 사실로 드러나 있었다.
이어 내용을 확인한 레온이 경악한 반응을 내보였다.
“4%라고? 아니, 미친 거 아니야?”
도전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히 11퍼센트였는데, 한 번에 무려 4퍼센트나 올라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표정이 한 번에 확 굳었다.
사실 레온은 이 도전을 쉽게 생각했다.
첫 시도야 낯설었던 탓에 실수가 나와 어쩌다 보니 칼같이 떨어졌지만, 이후에 다시 도전한다면, 그의 컨트롤 능력과 동체 시력이라면 10~15번 정도 내에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라 결론을 지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열다섯 번이면 생겨나는 경험치가 그것만 60퍼센트였다.
이미 있는 15퍼센트를 합치면 75퍼센트였다.
그런 상황에서 25퍼센트의 경험치를 샤먼에 관련한 것으로 채운다고 한들, 인장을 사용한 결과로 샤먼이 나올 리가 없었다.
샤먼보다 항아리 인간 따위의 직업이 나올 가능성이 훨씬 더 높으리라.
그렇기에 자신은 도전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되는 것이었다.
‘한 번에 4퍼센트……. 하아, 몇 번까지 허용해야 할까.’
그렇게 레온은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는, 어렵게 최대한도를 정하였다.
그의 도전 한도는.
‘네 번.’
이후로 딱 네 번까지였다.
그에겐 그것이 한계였다.
그 이상은 더 투자할 수 없었다.
사실 네 번도 많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라, 현재 15퍼센트에 네 번을 더 시도하면 생기는 경험치 16퍼센트를 더하면 이미 31퍼센트이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세 번으로는 너무 부담감이 막중할 것 같았기에, 딱 하나만 더 추가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면, 레온이 이렇게 경험치가 쌓이는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조금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이런 것이었다.
만일 인장의 경험치가 샤먼과 관련이 없는 전혀 다른 것으로 100%가 채워진다면.
그냥 그 상태에서 인장을 사용해 다른 직업을 만들었다가, 다시 초기화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럼 다시 0퍼센트에서 샤먼에 대한 경험치를 쌓을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레온이 그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예민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방법을 알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리스크가 분명 존재하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레온이 걱정하는 것은 ‘초기화 혜택이 있다면, 초기화 패널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레온은 지금까지 낮은 티어에서 초기화를 한 적이 없었다.
이전에 5티어까지 키워 놓았었는데, 이번에 1티어에서 초기화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만일 획득해 놓았던 5티어에서의 초기화 혜택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물론 모두 추측에 불과하기에 헛된 걱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레온은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쉽게 보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인장의 경험치가 쌓이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었다.
그때 레온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남은 네 번에 사활을 건다!’
그러곤 항아리에 들어간 채로 오를 절벽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래, 저쪽에 망치를 박아 넣고 다음으로 저기에다가 휘두르고…….’
머릿속으로 바쁘게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용히 읊조리며 중요 포인트 지점들을 눈에 담은 레온은 다시 한 번 해머를 손에 움켜쥐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를 비장함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는 첫 번째 계획을 머릿속을 다시금 되짚었다.
‘일단 첫 번째에 최대한 높은 곳에 박아 넣어야 해!’
레온이 미리 정해 둔 한 지점을 쏘아보았다.
그러고 난 후, 레온이 기합을 내질렀다.
“흐앗!”
그러면서 망치의 손잡이를 최대한 끝부분으로 길게 잡은 후, 그 지점에 망치를 박아 넣었다.
까치발을 해도 닿을까 싶은 가장 멀리 있는 홈이었는데, 다행히도 레온의 꼼수가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홰애액!
처척!
단번에 고정이 되며 레온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첫 번째에 고정했던 장소보다 반 배는 더 높은 곳이었다.
레온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아! 첫 단추는 제대로 꿰었고!’
하지만 그 행복감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였다.
곧바로 레온의 다음 행동이 이어졌다.
휘이익.
휘익.
그는 다음으로 망치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고는 위아래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몸이 가벼웠기에, 항아리가 붙어 있음에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위로 솟구쳐 올라오려는 찰나.
“마함오!”
레온은 대담하게 망치의 고정을 해제해 버렸다.
슈우우!
슈웅!
그렇게 회전의 반동으로 몸이 위로 올라갈 때 해제를 시키니, 아까처럼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 오히려 더 위로 레온의 몸이 날아올랐다.
레온이 붕 뜬 상태에서 눈을 빛냈다.
‘좋았어! 이제 망치를 휘두르면!’
“하앗!”
다음 순간 레온이 어느새 뒤로 제쳐 놓았던 망치를 휘둘러 더 위에 있는 홈에 박아 넣었다.
처척!
완벽한 성공이었다.
‘좋았어! 이렇게 하는 거구나!’
레온은 아직도 손에 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요령 하나를 알아차렸다.
까득!
그 순간, 레온이 이를 악물며 속으로 다짐하였다.
‘네 번! 그 안에 기필코 성공한다.’
그의 눈이 의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가, 레온이 바람의 계곡에 도착하였을 때.
주디 또한 함께 바람의 계곡에 도착을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은 레온을 볼 수 있지만, 레온은 그녀를 볼 수 없는 적절한 은신처에 숨은 채,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
잠시 후, 레온이 낭떠러지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레온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순간 그녀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버지는 왜 저런 사람에게 원시풍수반을 준 거지?’
사실 그녀가 레온을 쫓은 것은 단지 자신을 놀라게 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화는 거의 다 풀려 있었다.
다만 레온이 짐작하는 것보다 원시풍수반을 내어준다는 것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주디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자가 우리의 동맹이 될 자격이 있다고?’
그랬다. 원시풍수반은 바로 동맹의 증표이기도 한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원시풍수반의 영기를 채워 오는 고행을 끝마친 이는 숲지기 일족의 친구이자 동맹으로 받아들이는 규율이 있었던 것이었다.
숲지기 일족에게 동맹이란 굉장히 큰 의미였다.
그건 형제가 되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토인족은 형제에게 분란이 생긴다면, 언제나 함께 피를 흘렸다.
그래서 오랜 시간, 숲지기 일족의 족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원시풍수반을 건네주지 않았다.
한데 그의 아버지가 그런 물건을 저자에게 떡하니 내준 것이었다.
순간 그녀가 레온을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체 당신의 무엇이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는지 지켜보겠어!’
그러던 그때, 레온의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