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자신의 뒤를 따라붙은 주디의 존재는 까맣게 모른 채, 레온은 마을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람의 계곡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한데 무언가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랴!”
우우!
투다다다!
놀랍게도 그가 숲지기 일족들의 탈것인 두두를 타고 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두두의 엄청난 속도를 체감하며, 레온은 속으로 감탄하였다.
‘와, 진짜 이 타조 엄청나게 빠르구나.’
시간이 부족하다는 족장의 배려로, 숲지기 마을 입구에 만들어져 있던 두두 마구간에서 한 마리를 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마굿간 주인은 두두를 숲지기 일족이 아닌 다른 이에게 빌려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파밧!
타닷!
“흐읍.”
순간 레온은 두두가 달리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저항감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분명 처음 타는 것일 텐데도, 꽤나 능숙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흐음, 처음에는 말이랑은 또 느낌이 달라서 헤맬 것 같았는데 타다 보니까 훨씬 편하네.’
일전에 피르호크를 조종할 때 보여 주었던 선천적인 조종 능력이 거대 타조를 다루는 데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리라.
한데 그때 레온은 메르엠에 있을 참퐁에게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녀석들을 타고 다니는 숲지기 일족들을 숲을 걸어 다니다가 만나겠다는 계획을 짜다니…….’
다시 한 번 생각해도 그가 레온에게 제시했던 방법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쩝, 소환수들에게는 사과를 해야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정말 숲지기 일족을 만나는 데에만 시간이 엄청나게 소모될 뻔했네.’
한데 그때, 그는 그렇게 십년감수한 듯한 표정을 짓다가.
‘앗, 잠깐만.’
“인장!”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는지, 다급하게 인장의 상태 창을 눈앞에 띄웠다.
그러는 그의 마음에 조그마한 불안감이 차올라 있었다.
‘이거 인장 경험치가 몇 퍼나 올랐으려나…….’
자신이 소환수들에게 했던 몹쓸 짓을 떠올린 순간, 그 행동으로 인해 인장의 경험치가 상승했겠구나 하는 걱정이 든 것이었다.
[창생의 인장]
티어 0 / 경험치 11%
개방 특성(4/?)
(1) 창조
(2) 합성
(3) 진화
(4) 초기화
‘윽, 이런.’
그의 걱정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지금껏 경험한 결과, 인장의 티어가 0의 상태에서는 다른 티어일 때보다 더욱 세밀하게 그의 행동이 경험치로 책정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말 조심조심하며 있었건만, 이번에 소환수들에게 행한 전기 고문(?)때문에 11%의 경험치나 쌓여 있었던 것이었다.
‘하아, 결계에 들어가게 시키기 전에 분명 2%에 불과했는데. 9%나 더 오르다니……!’
그는 이러다가 직업이 고문 기술자 같은 것이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만일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말을 할 수도 있으리라.
아직 11%에 불과하지 않지 않느냐며 말이다.
하지만 그가 이렇듯 민감하게 걱정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아, 이거 대체 어떻게 샤먼으로 전직을 해야 하나.’
그는 아직 샤먼으로 전직할 확실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네크로맨서 때는 직업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샤먼은 현재 어떤 유저도 전직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말인즉 어떠한 정보도 깔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가 스스로 전직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레온은 속으로 답답해하며 생각했다.
‘끄응, 샤먼은 대체 어떻게 직업을 만들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오네.’
바닥에 배틀 액스 두 자루라도 뒤집어 놓고 작두 타듯이 올라가야 하나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발바닥에 피만 날 것 같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레온은 두두를 탄 채, 별별 생각들을 다 떠올려 보았으나, 마찬가지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리던 그는.
‘에라, 모르겠다. 숲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길이 보이겠지!’
낙천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일단 눈앞에 놓인 것부터 하나하나 해결하자고 결론을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던 그때.
“워, 워워.”
레온이 두두의 고삐를 당기며 녀석을 멈춰 세웠다.
처척.
“수고했다.”
그러곤 안장에서 내려와 헉헉거리고 있는 두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에 이어 레온은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보았다.
“호오, 저기인가.”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봉우리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곡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짙은 안개에 가려 상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저곳이 확실해 보였다.
그가 그렇게 확신한 이유는 간단했다.
우우웅!
도착한 순간부터 공명을 시작한 원시풍수반이 저 계곡의 꼭대기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는 목표지인 바람의 계곡에 도착하였던 것이었다.
그에 레온은 눈을 빛냈다.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계곡의 꼭대기로 가면 바람의 영을 담을 장소가 나오겠군!’
레온은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처럼 경쾌한 발걸음으로 곧장 그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한데 무슨 이유에선가.
백 걸음, 쉰 걸음, 열 걸음.
계곡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밝았던 그 표정은 묘해지기 시작했다.
처척.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라 완전히 걸음을 멈추었을 때.
그의 표정은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사실 그는 원시풍수반 퀘스트를 획득하고 난 후,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여 몬스터를 사냥해 오라는 퀘스트를 족장이 주었다면, 인장의 경험치 탓에 정말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순간 레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끊겼던 뒷말을 이어 덧붙였다.
‘하,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군.’
스윽.
순간 레온이 다시 한 번 자신이 올라야 하는 계곡 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게임이기에 가능한 듯한 기괴한 형태의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것을 산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평지와 낭떠러지, 기암괴석과 해괴한 방향들로 자라난 나무들이 비정상적인 형태로 뒤섞여 있었으며, 어느 지형은 설산, 또 어느 지형은 화산으로, 마치 위험한 지형이란 지형은 죄다 한곳에 짜깁기를 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레온은 혀를 내두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쩝, 이 산에 비하면 브룩과 함께 그레이트 피죤의 공격을 받으며 올랐었던 절벽은 아파트 계단인데?’
이건 도저히 맨손으로 올라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레온이 하늘의 몬스터들과 싸울 것을 각오하고 피르호크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그때.
띠링.
띠링.
효과음과 함께 레온의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허락받지 않은 자가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퀘스트의 연계 퀘스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를 획득하였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 연계]
바람의 계곡은 수행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장소다.
꼭대기에 세워진 바람 성소에 어느 곳보다 바람의 영기가 충만하게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끔찍하리만큼 지독한 산세로 인해 극소수의 사람만이 등반에 성공을 하였다.
이 같은 일에 안타까움을 느낀 두 수행자가 후인들을 위해 방법을 고안했다.
한 사람은 어느 높이에서도 떨어져도 절대 다치지 않는 튼튼한 항아리를 만들고,
또 한 사람은 절벽에 수많은 홈을 파내고, 그 홈에 정확히 맞는 쇠망치를 준비하였던 것이다.
당신은 그 두 물건을 이용해 산을 올라 정상에 다다라야 한다.
퀘스트 난이도 : S
퀘스트 조건 : ‘허락받지 않은 자가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퀘스트 소유자
퀘스트 제한 : 퀘스트 진행 중에 비행 스킬, 비행형 소환수 사용 시 퀘스트 자동 실패
보상 : 원시풍수반 영기 충전 가능
퀘스트 설명을 읽고 레온은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항아리? 쇠망치?’
그러다가 두 단어에 의문을 느끼고는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로 저 앞쪽에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레온이 홀린 듯한 얼굴로 두 물건이 놓인 곳으로 걸어갔다.
눈앞에 성인 남성이 들어가고도 남을 거대한 항아리 하나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동화 속에서 마녀들이 시약을 만들 때 쓰는 커다란 서양식 가마솥 같은 느낌이었다.
‘어디 한 번.’
스윽.
레온이 각각의 물건에 모두 손을 가져다 대자, 그의 눈앞에 자동으로 두 아이템의 상세 설명이 떠올랐다.
[안전제일 항아리]
등급 : 영웅
분류 : ?
수행자가 후인들은 조금 더 안전하게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만든 물건.
수천 미터의 상공에서 떨어져도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강도를 지니고 있으며, 낙하 시 안에 있는 사람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다.
안에 들어가면 상체를 제외한 하체가 자동으로 항아리와 결합된다.
-장착 시 전투 불가
-소유권 획득 불가
[등산용 슬레지해머]
등급 : 영웅
분류 : ?
수행자가 후인들은 조금 더 편하게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만든 물건.
1.3M의 긴 길이를 지니고 있다.
망치의 머리 부분에 고정 마법이 걸려 있어, 산에 패여 있는 홈들에 정확히 맞출 시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장착 시, 고정 마법 해제 스킬 ‘마함오’ 사용 가능
-소유권 획득 불가
아이템들의 설명을 모두 읽어 내려간 레온은 그제야 이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일단 피르호크를 소환하려 했던 계획은 바로 폐기 처분이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퀘스트 제한에 비행형 소환수를 소환하는 즉시 자동으로 실패 처리된다고 적혀 있었으니까.
다음 순간 레온은.
쑤욱.
자신의 몸을 항아리 안에 집어넣었다.
온몸을 모두 집어넣은 것은 아니었다.
두 팔과 상체는 항아리 바깥으로 빼놓고, 하체만 집어넣었다.
그러자.
슈웅.
촤착.
“오호?”
신기하게도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항아리 안과 자신의 하체가 착하고 달라붙는 느낌을 받았다.
‘심비오트를 입으면 이런 느낌인가?’
그런데 또 외형적으로는 전혀 달라진 점이 없자 레온은 신기해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덥석.
레온은 항아리에 들어간 채로 등산용 슬레지해머를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그리 무겁지 않았다.
제작자 친구가 무게까지 신경을 써 주었나 보았다.
그렇게 두 아이템을 완전 장착한 후, 레온은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절벽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산에 패인 홈에 망치를 박아 넣으라 했지?’
망치의 설명에 적혀 있던 산에 패여 있다는 홈을 찾는 것이었다.
‘이것들이구나!’
곧이어 레온은 금방 그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집중해서 보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의식해서 보기 시작하니 수많은 홈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홈들은 모두 똑같은 크기였다.
‘이제 시작해 볼까.’
레온은 손에 퉤, 하고 침을 살짝 뱉은 후 망치를 꽉 쥐었다.
“하앗!”
쐐애액!
그러곤 그대로 호를 그리며 망치를 휘둘렀다.
따캉!
그의 망치가 정확히 패여 있는 홈에 적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들어맞는 소리가 나며 망치가 홈에 고정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레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쑤욱!
“오옷?”
그 힘에 이끌려 레온의 몸이 항아리째로 위로 매달려 올라온 것이었다.
한동안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에서 헛웃음을 지어 보이던 레온이 이내 두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도저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