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잠시 후.
레온을 바라보는 브룩의 표정이 참 가관이었다.
사람이 웃기면서도 슬픈 상황을 목격하면 이런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일까.
브룩은 턱 끝까지 차오른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레온에게 말을 건네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 마몬의 사도라는 직업이 암흑성국을 제외하면, 어떤 나라의 도시도 들어갈 수 없다는 거지?”
레온이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자 브룩이 말을 이어 나갔다.
“……한데 그 제약이 우리 영지에도 해당이 돼서, 넌 영지로 못 들어간다는 거고?”
브룩의 말에 레온이 바로 그렇다고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인정하기 부끄러운 것이리라.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레온이 언젠가 독립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그의 영지 메르엠은 네크로폴리스의 국가에 소속이 되어 있었으니까.
잠입하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으니, 정 들어가고 싶다면 몰래 들어가는 방법을 써먹어야 하리라.
하지만 물론 들키기라도 한다면 분명히 어떤 사달이 날 것이 분명해 보이긴 했지만 말이었다.
자신의 영지민들에게 쫓겨나는 첫 번째 이계인 영주가 될 터였다.
그에 레온이 다시 한 번 서글픈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큭, 크하하!”
결국 브룩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레온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말했다.
“……아씨, 웃지 마. 누구는 지금 가능성의 돌을 통짜로 날려서 아까워 죽겠는데.”
하지만 그 말에도 브룩의 웃음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크하하, 미친놈아, 네가 영주인데 못 들어가게 되면 어떡해.”
할 말이 없던지라, 레온이 민망해하며 침음을 내었다.
울컥한 레온은 그래도 조금은 흥미를 동하게 하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끄응.’
하지만 지금 이 분위기에서 말을 해 보았자, 브룩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파묻힐 것이 뻔할 것 같았다.
‘이 자식, 내가 말을 해 주나 봐라.’
그는 브룩에게 약이 올라, 혼자만 알고 있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신의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얻고 난 후, 생각지도 못하게 받은 대형 퀘스트들을 다시금 살폈다.
그리고 그 퀘스트들의 내용은 이러했다.
[마신을 강림시켜라 / 공동 / 경쟁]
마몬의 일곱 사도들은 공통된 과제를 부여 받는다
그건 바로 대륙에 마신 마몬을 강림시키는 일이다.
7인의 사도 중 누구든 강림에 성공하는 순간, 암흑성국 부교주의 자리는 그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SSSS
퀘스트 조건 : 마몬의 일곱 사도
보상 : 암흑성국의 부교주
-이 퀘스트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퀘스트는 획득 시, 자동으로 계정에 귀속됩니다.
-클리어한 유저가 생길 시, 다른 6인의 퀘스트는 자동으로 실패로 처리됩니다.
‘쩝, 4S의 난이도라니. 엄청나긴 하단 말이지.’
그가 인장을 손에 넣으며 얻었던 5S의 퀘스트를 제외하면, 역대 최고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데 난이도만큼이나 보상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암흑성국의 부교주라니. 나 빼고 다른 여섯 명들은 아주 X알에 땀띠 나게 열심히 하고 있겠네.’
암흑성국은 신정 일체인 나라이니, 부교주라면 전체 지위 중 두 번째인 것이었다.
물론 암흑성국이 모든 나라에서 배척을 받고 있기는 하나.
그래도 일개 유저가 거대한 나라의 2인자 자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레온은 별로 그 보상에 혹하지 않았다.
‘되려면 1인자가 되어야지, 무엇 하러 2인자가 되려고 발악을 해.’
일단 최종 보상이 2인자라는 것이 가장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단언컨대 인장의 모든 사실을 밝혀내면, 이것보다 훨씬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는 자신이 획득한 인장의 가치를 이 퀘스트보다 훨씬 높게 치고 있었던 탓도 있었다.
퀘스트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강림을 위한 매개체를 찾아라 / 연계]
마몬을 강림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막대한 제물과 소환 의식을 위한 강대한 마력을 내재하고 있는 매개체이다.
대륙의 곳곳에 그 역할로 쓸 수 있는 매개체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여러 중요 인물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거나, 봉인되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당신은 일곱 사도로서, 암흑성국의 수많은 교도들을 이끄는 부교주가 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개체를 손에 넣어야 한다.
퀘스트 난이도 : SSS
퀘스트 조건 : 마몬의 일곱 사도
보상 : 마몬의 소환 의식에 대한 정보, 악명 30,000, 알 수 없음
-이 퀘스트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퀘스트는 획득 시, 자동으로 계정에 귀속됩니다.
그건 바로 마몬을 강림시키기 위한 첫 번째 연계 퀘스트였다.
대륙의 곳곳에 존재한다는 마몬의 강림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마력을 지닌 매개체들을 손에 넣으라는 최초의 연계 퀘스트였다.
‘……흠, 매개체라.’
한데 레온이 왠지 모를 사색에 빠져들어 있었다.
물론 그는 두 번째 퀘스트도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그는 이 두 개의 퀘스트들의 내용들을 살피자, 문득 머릿속으로 아직 유저들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지만,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은밀히 암약하는 마몬의 사도들과 세력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북부 대륙에서 땅따먹기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있다가는, 언젠가 암흑성국에게 크게 뒤통수를 쳐 맞을 수도 있겠군. ……조금씩 마몬교도들과의 싸움도 준비해 놓아야겠어.’
라고 말이었다.
퀘스트들의 내용을 살피며 이런저런 정보들을 수집하는 레온은 정말 베테랑의 모습이 엿보이고 있었다.
“크흑, 푸흐흑, 지 영지를 못 들어가다니.”
“…….”
물론 브룩의 눈에는 자기 영지도 못 들어가게 된 바보로 보이고 있었지만 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휴, 그럼 난 먼저 간다.”
레온과 브룩은 따로 움직이기로 결정한 후, 헤어지고 있었다.
싸우고 토라져서가 아니었다.
‘야, 아깝잖아. 바로 초기화하지 말고 며칠간 연구 좀 해 봐.’
그 희귀한 가능성의 돌을 사용하며 만든 직업을 조금이라도 더 연구해 보라는 브룩의 제안을 레온이 고심 끝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브룩은 잘 생각했다며 그 동안은 자신이 영지를 관리하고 있겠다고 말했다.
“야, 엿새 뒤다 엿새 뒤. 그때 가신들이랑 유희랑 접경지 마을에서 모두 이쪽으로 들어온다고. 그때까지 초기화하고, 잘 맞춰서 돌아와.”
“아휴, 알았어, 인마. 엄마보다 잔소리가 더하네.”
브룩은 한 번 더 당부한 후, 아까부터 열려 있던 바깥으로 나가는 포털을 통해 사라졌다.
순식간에 던전 안이 조용해졌다.
브룩이 사라지고 나자, 레온은 바로 뒤를 돌았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 그럼.”
뚜벅뚜벅.
그는 자이언트 몰맨의 사체로 다가갔다.
경쟁 던전은 유저가 포털을 타고 빠져나가지 않으면 몬스터의 사체는 그대로 남아 있기에, 아까 죽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스윽.
레온이 손을 뻗더니 입을 열었다.
“해체.”
우우웅!
스스스!
남은 할 일이란 두 번째 보스 스켈레톤의 뼈의 정수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그래, 엿새 안에 최대한 더 강해지겠어!’
레온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 * *
엿새 후.
브룩은 레온 대신 마을의 완공식에 가 있었다.
사실 완공식이랄 것도 없었다.
거창한 행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닌 그저 151채나 되는 통나무집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던 것이었다.
“후아, 끝났습니다!”
“와아! 끝났다.”
저쪽에서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완공이군요.”
밍시아가 브룩에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다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해요.”
“무슨 말씀을요. 영주님과 부영주님 덕에 마을이 활기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밍시아의 진심 어린 칭찬에 브룩이 쑥스러운지, 연신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허허,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됐는걸요.”
“그러니까 더 대단하신 거죠. 아, 저기 그런데…….”
밍시아가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않자, 브룩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밍시아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슬쩍 레온의 행방을 물어왔다.
“……그, 영주님은 어디에?”
“네? 녀석은 왜.”
“아, 아니에요. 그냥 요 며칠 안 보이시는 것 같아서요.”
“걱정 안 하셔도 되요. 그럴 사정이 있어가지고요.”
“……아, 네.”
밍시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그에 브룩이 한마디 말을 더 물어보려던 그때.
“브룩 오빠!”
‘이크!’
뒤쪽에서 낯익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브룩이 곧장 몸을 돌리자, 뒤에 본 네크로맨서들과 백인대원들을 이끌고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유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 왔네, 유우야.”
“오빠야도. 오랜만! 오랜만!”
한데 브룩은 순간 손을 흔드는 유우를 바라보다가, 이상한 표정을 지어냈다.
‘팔에 저건 또 뭐야.’
그녀가 팔 한쪽에 반원형의 디스크를 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형태의 무기였다.
하지만 브룩은 그 물건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그건 뭐…….”
그가 그건 뭐냐고 물어보려 할 때, 저 멀리서 다급하게 아이 하나가 달려오며 브룩에게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일 났어요!”
잠시 후.
‘이건 대체?’
아이가 말한 마을의 입구로 이동한 브룩은 하늘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파스스.
파츠츠.
마을의 하늘에 펼쳐진 결계의 한 부분에서 스파크가 연이어 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한데 그럴 만도 했다.
스파크가 튈 때마다, 그 부분에 있는 결계의 보호막이 뻥뻥 뚫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허어. 생기다, 생기다 이제 입구까지…….”
“크흑, 조금 마을이 살 만해지나 싶었더니.”
“……역시 우리 영지는 안 되는 건가.”
영지민들의 절망스러운 말들이 이어졌고.
-메르엠 주민의 행복도가 5 하락하였습니다.
‘이런!’
곧이어는 영지의 행복도까지 떨어졌다.
브룩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데 그때였다.
전 촌장, 참퐁이 눈을 빛내며 단호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네. 내일이라도 내가 숲에 들어가 샤먼들을 만나 보겠네.”
“아니, 참퐁 님이 그 위험한 곳에 들어가셔서 어쩌시려고요.”
“어허,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보다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내가 다녀오는 편이 낫지.”
“……크흑, 참퐁님.”
참퐁의 말에 갑자기 영지민들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그 우울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 속에서 브룩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그때.
-영지 퀘스트 ‘결계 복구’를 획득하였습니다.
그 영지를 보유하고 있는 길드원들에게 일괄적으로 부여되는 영지 퀘스트가 떠올랐다.
[결계 복구 / 영지]
위험하던 메르엠 마을의 결계가 결국 입구 쪽까지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아직까지 입구 부근은 한 번도 결계가 약해진 적이 없기에, 주민들의 충격은 매우 크다.
입구의 결계가 힘이 다하면 메르엠 주민들의 이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영주의 선정으로 살아갈 용기를 되찾고 있는 영지민들의 공포심이 다시금 차오르고 있다.
해결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누군가 패치 숲으로 들어가, 샤먼을 만나고 결계가 약화되는 원인을 묻고 해결을 해야 한다.
퀘스트 난이도 : S
퀘스트 보상 : 메르엠의 결계 완전 회복, 메르엠 주민들의 행복도 30 상승, 명성 6,000
‘이런, 내가 가야 하려나.’
한데 걱정이 들었다.
지금 당장 자신이 빠지면 영지를 책임질 사람이 없는 탓이었다.
레온은 무엇을 하는지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이건만, 아직도 돌아오지를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러다가 아무도 퀘스트를 선택 안 하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휴, 그럼 제가…….”
그렇게 브룩이 포기하고 자신이 가려고 했던 그때.
두드드드.
위우우웅!
느닷없이 그들이 딛고 있던 땅 밑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했다.
“뭐, 뭐야?”
“으헉!”
한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드그그극!
갑자기 땅 밑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더니.
쿠과가강!
퍼펑!
곧이어 웬 거대한 형상이 지면을 뚫고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러자 솟구친 흙더미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곧이어 사람들이 눈을 비비며 이제 움직임을 멈춘 의문의 형체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깜짝 놀란 반응을 만들었다.
“두, 두더지?”
“여, 영주님?”
뼈로 이루어진 거대 두더지 안에서 모래를 털며 나온 레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넋이 나간 참퐁을 향해 씨익, 하고 웃어 보이며 말을 건네었다.
“패치 숲의 샤먼, 제가 만나 보겠습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