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그는 슬며시 자신의 오른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일전에 포를란의 암살자 클랜의 수장 판탈로네에게서 받았던 건틀릿이 장착되어 있었다.
순간 레온이 제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그래! 이게 있었잖아.’
[판탈로네의 비전 건틀릿]
분류 : 암기 / 건틀릿
등급 : 유일
내구도 3,000/3,000
방어력 50
옵션 :
-장착 시, ‘스핏파이어’ 스킬 발동 가능.
폴른 왕국의 암살자 길드 ‘다마스커스’의 수장 ‘판탈로네’가 ‘레온’에게 건넨 선물.
외형은 평범한 팔목 보호대로 보이지만, 그 내부에 암살 대상에게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비장의 암습 스킬이 숨겨져 있다.
판탈로네의 비전 건틀릿은 방어구이면서, 동시에 암기인 독특한 컨셉의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레온이 지금껏 사용해 온 방어구로서의 용도가 아닌 암기로 사용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스핏파이어’가 바로 그가 찾던 원거리 공격 스킬이었던 것이다.
한데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건 바로 왜 그는 여태껏 스핏파이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레온이 건틀릿을 방어 도구로만 사용하고 사용했던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쩝, 사용 제한 조건이 너무 빡셌지.’
[스핏파이어]
자신의 마력을 고농도로 응축하여 생성한 마력탄을 적에게 발사한다.
-착용자의 레벨 +10%만큼의 피해량 증가.
-지혜 스텟 300 이하 스킬 사용 불가.
-한 발당 마력 소모량 5,000.
-재장전 : 한 발의 마력탄을 발사할 시, 2분의 재장전 시간이 필요합니다.
-과열 : 마력탄을 일곱 발 이상 발사할 시, 과열 상태가 되며 해제되기까지 12시간의 냉각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랬다. 암살자가 사용하는 암살 도구 주제에 지혜 스텟의 필요 요구치가 엄청나게 높았던 것이었다.
무려 지혜 스텟이 300이나 필요로 했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었다.
‘필요 마력도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높았으니까.’
한 발당 무려 5천의 마력 소모가 생기는 통에, 얻었을 당시의 저레벨 기간에는 감히 사용할 생각도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다음 기회로, 다음 기회로 넘기다 보니 어느새 기억 속에서 잠시 잊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다르지.’
그의 지혜 스텟은 요구치를 웃돌았다.
게다가 안개 여신의 장식가면의 추가 효과 중 하나가 보유 마력을 22,300이나 올려 주는 것이었기에 그의 마력의 총량은 뻥튀기가 되어 있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이제 스핏파이어에 걸려 있는 일곱 번의 사용 횟수 제한을 모조리 쓸 수 있을 만큼, 그의 마력이 넘친다는 것 말이었다.
순간 레온이 눈을 빛내며 속으로 생각했다.
‘흠, 일단 한 발 시험 삼아 쏴 보실까.’
그리고 다음 순간 레온은 올라탄 피르호크의 몸에서 혹여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자세를 고정했다.
그러곤 주먹을 쥔 오른팔을 총구처럼 자이언트 몰맨에게 향하게 한 후.
“스핏파이어!”
망설임 없이 스킬을 발동하였다.
‘과연!’
과연 어떤 위력이 나올지, 레온은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그러나 잠시 후.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레온은 이내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싸아-.
‘어라?’
그의 명령어가 실행되었음에도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탓이었다.
건틀릿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스킬이 사용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가 머리를 갸웃하며 자신의 마력 창을 살피자, 분명히 자신의 마력은 소모가 된 상태였다.
‘마력만 잡아먹는 거야? 버그야?’
“야, 뭐 해, 얼른 힐 걸어! 단단이 죽는다!”
“으응.”
순간 브룩의 고성이 터져 나오자, 레온이 의아함을 뒤로하고 힐 스킬을 준비했다.
한데 그때.
철컹-.
철컥-.
‘어라?’
어디서 쇠들이 맞물리며 생기는 철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는 곧장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갔다.
그건 바로 자신의 건틀릿이었다.
“……이건?”
레온은 아까 와는 다른 의미로 당황한 표정을 지어냈다.
위우웅!
철커컹!
‘개, 개쩐다.’
두텁고 단단한 강철판이 덧대진 평범한 형태였던 자신의 건틀릿이 여러 부분으로 분해되더니, 이내 재구축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새 그의 손까지 뒤덮은 그것은 점차 대포의 포구砲口 같은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철컹-.
타당.
이윽고 소리가 멈춘 뒤.
-장전이 완료되었습니다.
-발사합니다.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온은 완전히 이형의 것으로 변해 버린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며 속으로.
‘록버스터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곧장 왼쪽 팔로 자신의 오른팔을 가볍게 짚어 지탱한 후, 다시 한 번 스킬을 발동하였다.
“스핏파이어!”
그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이전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우우우웅!
슈유유융!
레온의 마력이 휘몰아치듯 건틀릿의 총구 앞부분에 집중되며 빛줄기와 공명음을 만들더니.
일시에 폭음을 터뜨리며 푸른빛을 뿜는 마력탄을 쏘아 낸 것이었다.
“읏!”
반동으로 레온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힘겹게 다시금 균형을 되찾았다.
‘워우, 피르호크의 뼈 틈에 자세를 고정시켜 놓지 않았으면 떨어졌겠는데?’
휘이이이!
일직선으로 쏘아진 마력탄은 빛줄기와 함께 몰맨을 향해 날아갔다.
쿠콰앙!
그러곤 몰맨의 동공에 직격되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꾸에에!
그 순간, 자이언트 몰맨이 비명을 쏟아 냈다.
-자이언트 몰맨의 급소를 공격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자이언트 몰맨에게 크리티컬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재장전 시간이 필요합니다. (2분)
갑작스레 불을 뿜은 의문의 포격에 깜짝 놀란 브룩이 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브룩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었다.
“너 인마, 그건 또 뭐야?”
그러자 레온이 입맛을 다시며 이어 말했다.
“쩝, 나도 모르겠다. 이게 뭔지.”
“…….”
그 말에 브룩은 할 말을 잃을 정도로 황당해했지만, 레온은 진심으로 말을 한 것이었다.
‘이건 뭐지 대체?’
이 건틀릿은 아무리 보아도, 결코 평범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판탈로네는 자신에게 대체 무엇을 준 것일까.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레온은 다짐했다.
‘이건 절대 평범한 건 아니야. 판탈로네를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겠어.’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쿠워어어!
제대로 한 대 얻어맞은 자이언트 몰맨이 브룩들에게서 목표를 수정해, 하늘을 날고 있는 레온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레온이 있던 자리에 자이언트 몰맨의 거대한 손이 스치고 지나갔다.
‘짜식, 많이 아팠냐?’
비행의 고도를 높이면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을 터였지만, 그러면 광신의 축복 스킬의 사정거리를 벗어나기에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마치 괴수가 전투기를 뒤쫓으며 공격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끝내 괴수의 공격에 완파당하는 여느 영화들의 결말과는 다르게 진행될 것 같았다.
휘이이잉!
쐐애액!
“오른쪽으로! 바로 꺾어!”
레온이 환상적인 조종 실력을 선보이며 손쉽게 자이언트 몰맨의 공격을 농락하고 있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
“스핏파이어!”
휘이이잉!
쿠콰앙!
재장전이 완료된 스핏파이어를 다시 먹여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말이었다.
꾸에에엑!
녀석의 분노와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
-크와아앙! 날 무시하다니!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자이언트 몰맨에게 진득한 살기를 뿜어내며, 마루가 자신의 발톱을 맹렬히 휘둘렀다.
한데 이상했다.
휘두른 위치가 발톱이 전혀 닿을 정도의 거리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쐐애액!
스거걱! 스거걱!
꾸에에엑!
귀가 얼얼한 파공성이 터져 나왔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자이언트 몰맨이 다시 한 번 비명을 토해 냈다.
녀석의 널찍한 등판에 마치 칼로 베인 듯한 상처들이 여럿 나 있었다.
그건 바로 마루의 스킬인 풍인조가 적중하여 발생한 상처였다.
[풍인조(風刃爪)]
발톱을 휘둘러 바람의 힘을 담은 칼날을 흩뿌립니다. 적중 당한 적은 바람의 상처 표식이 남습니다.
표식이 적중당한 적에게, 시전자가 물리 공격을 적중할 시 추가 대미지를 입힙니다.
파바밧!
-크롸!
마루가 풍인조를 맞아 ‘바람의 상처’ 표식이 생긴 등판의 상처로 뛰어올라, 자신의 칼날 같은 이빨을 쑤셔 넣었다.
-바람의 상처 표식이 남아 있는 상대입니다.
-추가 대미지를 입힙니다.
그러자 표식이 남아 있는 상대에게 추가 대미지를 입히는 스킬의 효과로 인해, 자이언트 몰맨이 격하게 몸부림을 쳤다.
“나이스 플레이! 마루!”
그에 레온이 위에서 감탄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강했었나?’
라고 말이었다.
마루는 레벨이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다른 소환수들과는 격이 다른 공격력과 전투 센스를 보이고 있었다.
스스로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이 어떤 것인지 위엄을 선보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자 레온이 순간 휘청이는 자이언트 몰맨을 바라보며, 탐욕에 젖은 눈빛을 뿜어냈다.
‘쓰읍, 자이언트 몰맨. 네놈도 내 걸로 만들어야겠어.’
그러나 자이언트 몰맨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놈은 갑작스레 제 입을 부풀리더니.
크와아아!
괴성과 함께 입에서 짙은 녹색을 띤 맹독 브레스를 내뿜은 것이었다.
‘미친! 무슨 두더지가 브레스를 내뿜어!’
-자이언트 몰맨이 ‘맹독의 숨결’을 사용하였습니다.
얼마나 지독한 기운을 담고 있는지, 숨결이 닿은 곳들이 죄다 녹아내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레온은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런!’
단단이는 피하지 못하였다.
-소환수, 단단이의 체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소환수, 단단이가 역소환됩니다.
뿜어지는 독무 속에서 단단이가 뼈다귀도 남기지 못한 채, 녹아내려 버렸다.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레온과 브룩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에 자이언트 몰맨은 기세가 등등해져 괴성을 토해 냈다.
크와아아!
놈의 다음 타깃은 마루인 듯했다.
녀석이 마루에게 눈을 맞추며 다시금 입을 부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레온은 순간 초조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마루까지 역소환되면 진짜 큰일인데!’
한데 그때.
크와아!
다시 한 번, 놈의 맹독 브레스가 뿜어지려 하고 있었다.
레온이 다급하게 마루에게 소리쳤다.
“피해! 마루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말보다 먼저 스킬이 발동되었다.
-자이언트 몰맨이 ‘맹독의 숨결을’ 사용하였습니다.
드래곤 브레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자이언트 몰맨의 브레스 또한 뿜어지는 속도와 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아!’
레온이 안타까움에 탄성을 흘렸다.
회피하려는 마루를 맹독의 숨결이 덮친 것이었다.
한데 다음 순간.
‘어라?’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레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대체?’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은 마루가 조금의 타격도 입지 않은 멀쩡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입 냄새 난다낭! 더러운 놈! 죽이겠다낭!
마루는 쌩쌩함 그 자체였다.
레온은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뭐야, 마루는 왜 하나도 대미지를 입지 않은 거지?’
독 대미지를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려 버린 단단이와 달리, 체력 현황을 살피자 마루는 솜털만큼의 대미지밖에 입지 않은 것이었다.
‘아!’
한데 그때, 레온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저 녀석, 독 내성을 지니고 있었지!’
라는 것이었다.
[독 내성 / 패시브]
적의 모든 독 공격에 대하여 완전한 내성을 가진다.
-특수 지형에 의한 독 대미지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마루는 독 내성이라는 패시브 스킬을 통해, 적에게 받는 독 공격에 관한한 완전한 내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루를 바라보던 레온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어쩐지 혼자서 전장에서 미쳐 날뛰듯 한다 했더니, 이런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니.
‘후후, 좋았어!’
레온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루가 자이언트 몰맨을 완벽하게 카운터칠 수 있는 소환수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독이 가장 큰 주 무기인 몬스터의 힘이 하나도 먹히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적의 가장 강력한 공격이 무력화되었으면, 이 게임은 끝난 거지!’
“좋아! 마루야, 우리 둘이 끝낸다!”
레온은 그 후로 마루와 함께 10여 분을 더 끈질기게 들러붙으며 녀석을 괴롭혔다.
자이언트 몰맨은 레온의 공격을 맞으면 레온을 쫓다가, 마루의 공격을 맞으면 마루를 쫓다가 하며 우왕좌왕했다.
……끄어어, 어.
물론 그럴 때마다 포기한 다른 상대에게서 날카로운 공격이 쏟아졌다.
치명적인 대미지가 계속 쌓여 갔다.
그리고 결국 자이언트 몰맨은 단 한 대도 버티지 못할 체력만이 남아 버렸다.
그리고.
‘지금이다!’
그 순간을 레온이 놓칠 리가 없었다.
파밧.
“마루!”
레온은 타고 있던 피르호크의 등에서 뛰어 내리며, 마루를 불렀다.
그러자 마루가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더니 펄쩍 도약하더니, 자신의 등에 레온을 태웠다.
투다다다!
그러곤 폭주 기관차처럼 속도를 높이더니.
“박아 버려!”
정신을 못 차리며 빈혈에 걸린 것처럼 비틀거리고 있는 자이언트 몰맨에게 돌진해 그대로 박아 버렸다.
꾸에에!
후우!
쿠우웅!
그러자 자이언트 몰맨의 거대한 몸체가 볼품없이 땅바닥에 무너져 내리며, 굉음을 토해 냈다.
그러자 레온과 마루는.
“마루! 독화조!”
-크왕! 독기에 범벅이 되어 죽어랑!
[독화조毒華爪]
발톱에 극독의 기운을 담아 적을 무참히 베어 버립니다.
“스핏파이어-!”
자신들의 마지막 공격을 쏟아 냈다.
쐐애액-!
서거걱!
피유우!
콰아앙-!
귀가 찢어질 듯한 파공성과 폭음이 함께 뒤섞여 터져 나왔다.
……끄어억.
무방비 상태가 된 채, 쏟아지는 공격들을 모두 받아 낸 자이언트 몰맨은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다가.
추욱.
이내 꿈틀거리던 미세한 움직임마저 완전히 멈추었다.
‘잡은 건가?’
레온과 브룩이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띠링.
띠링.
띠링.
멈추지 않는 효과음들이 들려왔다.
“좋았어!”
“잡았다아!”
환호성을 내지르는 레온과 브룩의 눈앞에 막대한 양의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