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첫 번째 페이즈의 목표는 동굴의 전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섯 개의 굴마다 한 마리씩 있는 몰맨 사범을 처치하는 것이 목표였다.
레온과 브룩 모두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들어오자마자 몰맨 사범만을 죽이고 얼른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몰맨 권법가들이 마치 몰맨 사범을 수호하듯 빙 둘러싼 형세의 진을 치고 있던지라,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레온과 브룩은 조를 나누었다.
브룩의 속박조와 레온의 암살조로 말이었다.
브룩이 다른 몬스터들을 묶어 두면, 레온이 은밀히 잠입해 목을 따오는 시스템이었다.
‘찾았다! 길!’
지금껏 몰맨 권법가들이 갖춘 수비 진형의 외곽 쪽에서 회피에 집중하고 있던 레온이 일시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슬며시 오른발을 들어 올리곤.
후욱, 꽝!
그대로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총알처럼 튀어 들어갔다.
그저 발을 굴렀을 뿐인데, 얼마나 큰 힘이 담겨 있었던 것인지 닿은 지면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꾸, 꾸!
꾸욱?
자신들의 사이사이를 레온이 번개처럼 이동해 다니자, 당황한 몰맨들이 다급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후욱!
콰아!
몰맨 권법가들의 공격들이 그에게 쏟아졌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모두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허공에다 헛손질을 하고, 옆에 서 있던 죄 없는 동료를 때리고, 애꿎은 지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말은 종이 한 장 차이였지만, 그것이 누차 반복된다는 것은 아깝게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리라.
레온이 컨트롤로 딱 그만큼의 차이를 두며 그들을 농락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에게 참격을 난사하며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레온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에게 공격을 뻗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목표는 저 자식이니까!’
그의 눈에 아직도 상황을 파악 못 하고, 여유롭게 서 있는 몰맨 사범의 자태가 들어왔다.
그러던 그때.
후욱!
레온의 몸이 땅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미꾸라지처럼 몰맨 권법가들을 돌파한 그가 어느새 그림자 은신을 사용할 수 있는 사정거리에 접근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슈우욱!
그리고 다음 순간, 레온은 몰맨 사범의 그림자에서 벼락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뒈져라!’
레온이 살의를 담은 눈을 빛내며 놈에게 칼을 휘둘렀다.
……한데 그 순간.
전혀 예상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꾸웃!
챙!
칼날이 닿으려는 찰나, 몰맨 사범이 마치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한 움직임으로 레온이 쏟아 낸 불시의 일격을 상쇄해 버린 것이었다.
-몰맨 사범이 스킬 ‘마음의 눈’을 사용하였습니다.
-공격이 무효화되었습니다.
‘……막았다고?’
레온은 크게 당황했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빠르게 다잡았다.
지금 여기서 평정심이 흐트러졌다가는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습은 실패한 순간이 가장 위험한 법이었다.
후욱!
쐐애액!
역시나 다음 순간, 몰맨 사범의 반격이 이어졌다.
파공성을 낼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담은 정권이 퍼부어졌다.
‘윽!’
처척.
정통으로 맞을 뻔한 위기에서 레온은 땅에 닿을 것처럼 허리를 뒤로 접으며 공격을 피해 냈다.
타다닷.
그러자마자 몇 걸음 뒤로 물러선 레온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스킬 효과가 뭐지? 몰맨들은 그림자 은신이 먹히지 않는 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레온은 스킬의 효과로 인해 자신의 공격이 무효화되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대충 예상컨대 두더지들은 시력이 없으니, 대신 육감을 주기라도 한 것 같았다.
사각에서의 공격을 무효로 되돌리다니, 암살자의 하드 카운터가 아닌가.
다른 상황이었다면, 힐러 스켈레톤 슈트로 갈아입고 장기전을 도모할까도 생각했을 테지만.
투다다다!
레온은 다시금 녀석에게로 돌진해 갔다.
‘까짓것 그림자 은신 안 쓰고 정면 돌파로 잡으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차피 거리는 좁히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다시 사용해도 실패할 확률이 매우 큰 그림자 은신을 고집하느니, 그냥 다른 패턴으로 공격을 하는 편이 나으리라.
“안개 분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달려들며, 레온이 안개 분신을 발동했다.
슈우웅!
우웅!
그러자 순식간에 다섯 명이 된 레온이 엄청난 속도로 사범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개 분신은 공격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지 않은가.
똑같은 모습으로 칼을 휘두른다 한들 대미지는 본체의 것 하나만 들어갈 터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펼쳐진 장면에 레온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후욱, 후욱.
파밧, 파바밧.
달려들던 다섯 명의 레온이 야바위처럼 엄청난 속도로 서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몰맨 사범은 다시금 마음의 눈 스킬을 사용하는 것 같았지만, 레온은 내심 아까처럼 공격이 실패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사각이 아닌 정면에서 그대로 들어오는 공격에는 무쓸모인 것 같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꾸……?
본신과 완전히 똑같은 분신들의 돌진에 혼란스러워하는 몰맨 사범의 당황에 찬 침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아앗!”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힌 다섯 명의 레온이 일시에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방어을 하는 몰맨 사범은 낯빛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공격이 들어오는 이 순간까지도 어느 것이 진짜인지 짐작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섯 개의 참격이 교차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떤 참격을 막을지, 선택이 필요했다.
그리고.
뀨우우!
이내 오른쪽 사선으로 그어지는 참격을 택한 놈이 그곳에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잠시 후.
서거걱.
들려오는 것은 몰맨 사범의 살점이 날카로운 칼날에 무참히 썰리는 소리였다.
꾸……엑!
몰맨 사범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였습니다.
-몰맨 사범이 상태 이상 부패에 걸렸습니다.
‘됐다!’
레온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결국 몰맨 사범은 그의 공격을 감지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네가 감히 여유를 부려?’
촤아악!
서거걱!
꾸에에엑!
레온은 같은 방법으로 연이어 놈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몰맨 사범의 비명이 계속하여 쏟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띠링.
띠링.
레온의 눈앞에 효과음과 함께 첫 성공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페이즈 1 지정 몬스터, 몰맨 사범을 처치하였습니다.
-남은 몰맨 사범 1/5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기뻐하기도 전에 레온은 바로 타이머를 확인했다. 그러곤 눈을 반짝였다.
‘6분! 좋았어!’
예상 시간보다 빠르게 전투를 끝낸 것이었다.
그는 바로 다음 계획을 떠올렸다.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분씩으로 잡고 다섯 개 동굴 전부 7분 컷으로 끝낸다!’
이어 그는 전투에 빠져 아직도 레온이 몰맨 사범을 해치웠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아직도 전투를 치르고 있는 브룩과 소환수들에게 소리쳤다.
“적장의 목을 베었다! 퇴각! 다음 굴로 간다!”
그리고 잠시 후.
해법을 알고 있는 문제만큼 손쉬운 것은 없었다.
첫 번째 굴보다 두 번째 굴을, 두 번째 굴보다 세 번째 굴을 더 쉽게 돌파해 갔다.
다만 레온을 제외한 파티원들이 힘들었던 것은 단 하나였다.
야구 동영상을 일컬어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하던가.
“버프!”
“드, 드리겠습니다!”
어느새 버프 중독자가 되어 버린 레온은 버프가 떨어질 때마다, 섬뜩하게 눈을 빛내며 버프를 요구했던 것이었다.
그러곤 광기 어린 모습으로 남은 네 개의 굴에 있던 몰맨 사범들을 죄다 휩쓸어 버렸다.
승부욕이 발동한 레온의 모습은 마왕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브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주인은 왜 저럴까, 마루야?”
-……저는 모른답니당.
하지만 그래도 얻어 낸 결과물은 너무나 값졌다.
첫 번째 페이즈를 마친 후.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브룩은.
“개쩐다!”
라며 육성으로 환호성을 토해 냈다.
한데 그럴 만도 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