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는 유우에게로 향했다.
이내 그들은 꽤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뛰어난 유우의 외모가 눈에 들어온 것이리라.
한데 그 눈빛들 중에는 은근한 무시가 담긴 것들이 제법 보이고 있었다.
저렇게 게임 경험도 별로 없어 보이는 여자가 설마 노파를 이기겠느냐는 생각이리라.
노파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내고 있는 유우를 바라보더니 말을 건넸다.
“흘흘, 그럼 아가씨랑 한번 해 볼까?”
그러자 유우가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 좋아요.”
“끌끌, 기운이 넘치는 아가씨구먼. 자자, 진정하고 이리로 가까이 오게나.”
그녀가 잰걸음으로 노파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탁자 앞에 놓인 자그마한 의자에 앉아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재밌는 상황을 만나자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은 이미 싹 사라져 있었다.
“카드 게임을 좋아하나?”
그러던 그때, 여태껏 노파가 상대했던 상대들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물어보았던 질문을 던졌다.
그에 유우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대답했다.
“그럼요! 헤헤,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 카드 게임인걸요! 카드로 하는 게임은 전부 좋아해요!”
“흘흘, 나랑 똑같구먼. 나도 카드 게임을 정말 좋아한다네.”
유우의 말이 맘에 들었는지, 노파가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
“헤헤, 저희 오빠가 게임을 진짜로 잘하거든요? 근데요, 제가 다른 건 다 져도 카드 게임은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요.”
카드 게임에 관한 한 레온에게 모두 승리를 따냈다. 이건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일전에 유우를 영입하려 할 때, 레온이 말했었던 그녀가 자신보다 잘하는 게임 장르가 있다는 것이 바로 카드 게임이었던 것이었다.
언젠가 재미 삼아 출전했던 아마추어 포커 대회에서 결승에 올랐을 정도였다.
그곳에 있었던 심사위원이 그녀에게 장래에 프로 포커 플레이어를 지망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소리를 했을 정도이니.
그녀의 카드 게임 실력은 나이와 성별을 벗어나 매우 뛰어난 것이리라.
노파가 다시금 말을 건넸다.
“자, 그럼 듀얼을 하기에 앞서 사용할 카드 덱을 선택해 주시게나.”
‘듀얼?’
순간 노파가 탁자 위에 다섯 개의 카드 뭉치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덱이란 단어는 카드 뭉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아들었지만, 듀얼이라는 생소한 용어에 유우는 머리를 갸웃했다.
노파의 말이 이어졌다.
“이 덱들 중에 하나를 고르게. 흐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안에 있는 카드 구성들을 확인할 시간은 딱 5분만 주도록 하지.”
“헉! 그것 밖에 안 줘요? 빨리 봐야겠다!”
5분이라는 제한 시간에 유우는 호들갑을 떨며 노파가 꺼내어 탁자에 올려놓은 카드 뭉치들에 급히 손을 뻗었다.
촤르르륵.
그러곤 유우는 덱들의 카드 구성을 한눈에 확인하기 위해, 탁자에 카드 뭉치들을 일렬로 주르륵 펼쳐 보았다.
그리고 파악에 들어갔다.
한 덱마다 마흔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카드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였다.
몬스터 카드. 마법 카드, 함정 카드였다.
카드마다 그려진 일러스트들을 살펴보다가 유우는 한 가지를 더 알 수 있었다.
‘덱들마다 콘셉트가 있네?’
다섯 개의 덱들이 모두 다른 콘셉트로 꾸며져 있다는 것이었다.
각각 ‘검은 마법사’, ‘하얀 용’, ‘슈퍼 히어로’, ‘기계 용’, ‘거대 벌레’였다.
거기까지 파악이 되자, 유우는 이 게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거 TCG구나.’
TCG, 즉 트레이딩 카드 게임은 카드를 수집하여 자신만의 덱을 구성해 상대와 대결하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제한 시간을 5초 남겨 놓았을 때.
‘좋아, 기억했어!’
놀랍게도 그녀는 200장이나 되는 카드들의 내용 전부를 모두 머리에 숙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 짧은 순간에 해내다니, 대단한 능력이었다.
동체 시력이 레온의 장점이라면, 그녀의 장점은 순간 기억 능력을 연상케 하는 놀라운 암기력이었던 것.
“전 이걸로 할게요.”
결정한 유우가 하나의 카드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노파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말을 건넸다.
“호오, ‘검은 마법사’인가. 좋은 파트너를 골랐군.”
노파는 선택을 받지 못한 덱들을 모두 뒤편을 치웠다. 그리고 깨끗해진 탁자 위에 자신의 덱을 착, 하고 소리 나게 올려놓았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네! 좋아요!”
그리고 바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한데 그때,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승부에 집중하는 유우를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르르릉!
그건 바로 유우의 눈빛이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너무나 사납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저 사람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
‘같은 사람 맞아?’
‘어휴, 눈빛 봐. 무섭다, 무서워.’
싸아.
그녀는 카드 게임에 한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항상 웃는 얼굴인 그녀이지만, 이때만큼은 완전히 성격이 뒤바뀌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카드 게임을 하면 나오는 이 하이드 같은 모습에 레온이 붙여 준 별명이 바로 어둠의 유희였다.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희대의 명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레, 아니 제 턴입니다!”
“카드 드로!”
“몬스터 소환! 상대방을 직접 공격!”
“이런이런, 저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셨군요!”
“하앗! 함정 카드 발동!”
검만 들지 않았지, 서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그저 카드 게임을 하는 것에 불과하건만, 주위의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꽤나 긴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져, 졌네.”
지금까지와 똑같이 한쪽의 패배 선언으로 게임은 끝이 났다.
다만 딱 한 가지가 달랐다.
그건 바로.
“수고하셨습니다, 할머니. 제가 운이 좋았네요.”
패배 선언을 하는 쪽이 유저가 아닌 노파 쪽이라는 것이었다.
“……좋은 듀얼이었네.”
한데 그때였다.
나지막한 노파의 목소리가 끝이 나자.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스르르.
“……어어!”
마치 신기루처럼 노파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유우는 물론 주변 사람들 전체가 입을 쩍 하고 벌린 채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띠링.
‘어라?’
순간 난데없이 유우의 귀에 효과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놀라운 내용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오오오!’
내용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의 감정이 동시에 떠올라 있었다.
-조건을 만족하여 히든 직업을 획득하였습니다.
-히든 직업 ‘듀얼리스트’로 전직하시겠습니까?
* * *
이튿날.
북부 영지 메르엠.
저벅저벅.
무슨 이유에선가 레온은 브룩과 함께 그들의 영지를 벗어나, 영지 근방의 험준한 산길을 걷고 있었다.
끙끙 거리며 산을 타던 중, 브룩이 레온에게 말을 꺼냈다.
“이쪽 맞지?”
그러자 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어, 맞는 것 같아. 저기 보이네.”
레온이 가리킨 멀리 보이는 목적지 부근을 바라보던 브룩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쩝, 갔는데 던전이 아닌 건 아니겠지?”
“야, 모든 RPG의 기본 법칙인 ‘NPC가 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 던전이 있다’ 모르냐? 100퍼센트야, 나만 믿어.”
그들은 마을 주민들에게서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근방에 있다는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는 동굴’을 향하고 있었다.
영지 건물들이 완성되는 데 소요되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생각지 않게 발생하자, 그 틈에 사냥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하루만 편히 좀 쉬자는 브룩을 이끌고, 레온은 적극적으로 사냥터를 물색했다.
‘빨리 최대한 많이 레벨을 올려놔야 돼!’
그는 레벨 업 욕구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건 바로 초기화를 하기 전에, 최대한 레벨을 올려놓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레온은 영지가 어느 정도 정상 궤도에 오르면, 브룩에게 잠시 내정을 맡긴 뒤 패치 숲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당연하게도 전 주인의 흔적을 쫓아 샤먼이 되기 위해서였다.
한데 지금 그의 직업에서 인장을 사용해 샤먼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예 다른 방향의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높은 확률로 초기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데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초기화 혜택, 즉 인장 사용 전 레벨까지 추가 경험치를 부가해 주는 효과 때문에 최대한 레벨을 올려놓는 일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한계 레벨까지 올려 설령 클래스 승급에 실패하더라도 인장을 사용해 직업을 창조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이리라.
어차피 초기화를 할 것이라면, 승급에 실패해도 초기화를 해야 하니 직업 총람에 하나의 직업이라도 더 추가시키는 편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계 레벨까지 찍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쩝, 일주일은 아무래도 좀 힘들겠지?’
현재 그의 레벨 106.
한계 레벨까지는 14레벨이나 남아 있었다.
100레벨부터는 필요 경험치의 양이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게 높아졌기에, 일주일 안에 120레벨을 찍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지!’
레온은 마음을 다잡으며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데 그러다가 그는, 문득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동 중에 ‘직업 예측’이나 사용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칭호 효과 사용. 직업 예측.”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띠링.
그 순간, 빈 칸 두 개가 들어 있는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합성할 첫 번째 직업을 선택해 주십시오.
딸칵.
레온은 첫 번째 직업에 당연히 본 블랙스미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곧장 두 번째 직업을 선택하려던 레온은.
‘어라? 잠깐만.’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미 합성했었던 직업을 또 넣으면 어떻게 되지?’라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레온은 두 번째 직업의 선택으로 본 블랙스미스의 재료가 되었던 ‘대장장이’를 선택해 보았다.
‘혹시나 대장장이의 능력이 더욱 상승하나?’
라고 레온은 기대했지만.
삐익!
현실은 그의 귓전에 뾰족한 경고음이 들려왔다.
-첫 번째 직업의 합성에 사용했던 직업입니다.
-합성이 불가합니다.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쩝, 안 되나 보군.’
합성을 한 직업의 재료로 사용했던 직업은 재합성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이내 레온은 마음을 접고 다른 직업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쩝. 뭐 그러면 다른 걸로 하지, 뭐.’
직업 예측은 다섯 번을 할 수 있었는데, 대장장이와 본 네크로맨서를 제외하자 본 블랙스미스는 네 개만이 가능하여서 하나는 다른 두 개의 직업을 선정해 보았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연이어 효과음이 울려 퍼졌고.
곧이어 그 결과가 레온의 눈앞에 떠올랐다.
1. 대장장이 + 섀도우 워커 = 그림자 대장장이(정크)
-너무나 작업을 하기 싫었던 게으른 대장장이가 마족에게 영혼을 팔아, 자신의 그림자를 대장장이로 부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작업을 잘할 리 없다. 효율은 엉망이다.
2. 본 블랙스미스 + 허수아비 검사 = 스케어크로우 블랙스미스(정크)
-소환수 형태의 허수아비 골렘을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 허수아비들의 공격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약하다.
3. 본 블랙스미스 + 비겁자 = 사기꾼 대장장이(러스티)
-손님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을 즐기는 사악한 대장장이. 무기를 강화해 준다 해 놓고 부숴 버린다.
4. 본 블랙스미스 + 암살자 = 해머 어쌔신(노멀)
-‘깔끔하게 한 방’이라는 신조를 지니고 있던 망치를 자신의 주 무기로 사용했던 암살자.
5. 본 블랙스미스 + 섀도우 워커 = 섀도우 인챈터(레어)
-몬스터들의 그림자를 수집하여, 아이템에 부여해 여러 효과를 부여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인챈터.
예상 직업들을 쭉 살핀 레온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실망이 담겨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쩝, 역시 샤먼의 근처에도 간 직업이 없군. 그렇다고 유니크도 없고.’
가장 높은 직업이 동급인 레어가 끝이었던 데다가, 샤먼과 관계가 있는 직업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레온이 투덜거리고 있던 그때.
“오오!”
갑자기 그의 앞에서 앞서 걷던 브룩이 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탄성을 내질렀다.
그에 레온이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오오.”
그러자 레온도 브룩처럼 탄성을 내뱉었다.
그들의 눈앞에 음험한 분위기를 내는 동굴형 던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띠링.
그리고 그때.
-경쟁 던전 ‘바라곤 동굴’을 발견하였습니다.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 or (N)
효과음과 함께 두 사람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